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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1810

6월의 달력 한 해 허리가 접힌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중년의 반도 접힌다. 마음도 굵게 접힌다. 동행 길에도 접히는 마음이 있는 걸, 헤어짐의 길목마다 피어나던 하얀 꽃. 따가운 햇살이 등에 꽂힌다. 2023. 6. 14.
유월이 오면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 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 밀이삭 마늘잎새를 말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저녁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것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쪽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빗줄기를 보내 감자순을 아.. 2023. 6. 10.
6월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느니.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청이 신록에 젖었다.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 있다. 지금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한 폭의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2023. 6. 3.
꽃 가꾸는 여인 내가 당신이라면 그 식물을 너무 살살 다루지 않겠어요 너무 세심하게 보살피면 해로울지 몰라요 흙을 쉬게 해 주세요. 너무 갈아엎지 말고요 물을 주기 전에 충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리세요 잎은 스스로 제 방향을 찾기 마련이에요 스스로 햇빛을 찾도록 그냥 두세요 너무 세심하게 챙겨 주고 너무 정성으로 보살피면 오히려 잘 자라지 못해요 우리는 사랑하는 것들을 그냥 놓아둘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해요 2023.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