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1807 나는 오늘 나는 오늘 토마토 앞으로 걸어도 나 뒤로 걸어도 나 꽉 차 있었다 나는 오늘 나무 햇빛이 내 위로 쏟아졌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위로 옆으로 사방으로 자라고 있었다 나는 오늘 유리 금이 간 채로 울었다 거짓말처럼 눈물이 고였다 진짜 같은 얼룩이 생겼다 나는 오늘 구름 시시각각 표정을 바꿀 수 있었다 내 기분에 취해 떠다닐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종이 무엇을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텅 빈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사각사각 나를 쓰다듬어 줄 사람이 절실했다 나는 오늘 일요일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오늘 그림자 내가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잘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 공기 네 옆을 맴돌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너를 살아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나는 오늘 토마토 네 앞에서 온몸이 그.. 2024. 2. 17. 2월의 시 하얀 눈을 천상의 시처럼 이고 섰는 겨울나무속에서 빛나는 당신 1월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새벽마다 당신을 맞습니다 답답하고 목마를 때 깎아먹는 한조각 무맛 같은 신선함 당신은 내게 잃었던 주지 못한 일상에 새 옷을 입혀준 고통과 근심 내가 만든 한숨과 눈물 속에도 당신은 조용한 노래로 숨어있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우리의 인사말 속에서도 당신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음으로 또다시 당신을 맞는 기쁨 종종 나의 불신과 고집으로 당신에게 충실치 못했음을 용서하세요 새해엔 더욱 청정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2024. 2. 10. 이월 이월은 홀로 걷는 달 인디언 수우족의 달력이다 홀로 걸어가는 뒷모습 터벅 터벅 터벅...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생은 잠깐이라는데 할 일도 많을 텐데 오직 홀로 걸어간다는 것 홀로 걷다 보면 만나게 되리라 구름도 나무도 이정표도 그리운 그대도 만나게 되리 새들도 만나고 꽃도 만나고 인생은 마냥 걸어가는 것 구름 따라 바람 따라 걷다보면 아름다운 것들과 하나가 되리 강도 만나고 산도 만나고 그러다 보면 절로 산이 되고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리 어느 순간이면 당도하리라 꿈꾸던 바닷가 어느 기슭에 한 마리 깃푸른 눈망울 새벽을 기다리는 한 마리 가릉빈가 새가 되어서 2024. 2. 6. 이월 입춘이 지나갔다는 걸 나무들은 몸으로 안다 한문을 배웠을 리 없는 산수유나무 어린 것들이 솟을대문 옆에서 입춘을 읽는다 이월이 좋은 것은 기다림이 나뭇가지를 출렁이게 하기 때문이다 태백산맥 동쪽에는 허벅지까지 습설(濕雪)이 내려 쌓여 오르고 내리는 길 모두가 막혔다는데 길가의 나무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삼월도 안심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월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 무엇이 있다 녹았던 물을 다시 살얼음으로 바꾸는 밤바람이 위세를 부리며 몰려다니지만 이월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지나온 내 생애도 찬바람 몰아치는 날 많았는데 그때마다 볼이 빨갛게 언 나를 나는 순간순간 이월로 옮겨다 놓곤 했다 이월이 나를 제 옆에 있게 해주면 위안이 되었다 오늘 하침에도 이월이 슬그머니 옆에 와 내가 바.. 2024. 2. 4.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4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