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시

가을 서한

by IMmiji 2024. 10. 31.



1
끝내 빈 손 들고 돌아온 가을아,
종이기러기 한 마리 안 날아오는 비인 가을아,
내 마음까지 모두 주어버리고 난 지금
나는 또 그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몰라.

2
새로 국화잎새 따다 수놓아
새로 창호지문 바르고 나면
방안 구석구석까지 밀려들어오는 저승의 햇살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만의 겨울양식.

3
다시는 더 생각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내려오는 등성이에서
돌아보니 타닥타닥 영그는 가을꽃씨 몇 옴큼,
바람 속에 흩어지는 산 너머 기적소리,

4
가을은 가고
남은 건
바바리코우트 자락에 날리는 바람
때 묻은 와이셔츠 깃

가을은 가고
남은 건
그대 만나러 가는 골목길에서의
내 휘파람 소리

첫눈 내리는 날에
켜질
그대 창문의 등불 빛
한 초롱.

 

 

가을 서한 / 나태주 >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산책  (0) 2024.11.08
11월  (0) 2024.11.04
시월의 예찬  (0) 2024.10.25
그립다  (0) 2024.10.23
천천히 가는 시계  (0) 2024.10.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