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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We shall overcome (김성수 목사)

by IMmiji 2013. 12. 28.

 

 

김성수 목사님 설교문은

창세기(105건) 요한복음(92건) 로마서(38건) 에베소서(91건) 계시록(95건) 입니다.

처음에 블로그에 올릴 때는 잡히는 대로 올려서 체계적이지 못했습니다.

최종정리를 하다보니 성경별로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처음과 중간이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결국

스크랩이 금지 되어 있었지만 인쇄창(절묘?)을 뜨게해서 복사할 수 있었고

힘들었지만 완전히 보완하여 권별로 총편집을 완료했습니다.

빠져 있는 파일은 역순이긴 하지만 오늘부터 추가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문서사역은 널리 전하기 위함인데 이메일로 스크랩해가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머리털까지 세시고 계시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감사합니다.

 

We shall overcome

 

(김성수 목사)

 

 

(9장까지 무시무시한 여섯 나팔의 재앙이 묘사가 되고 그 마지막에 ‘이러한 무시무시한 재앙에도 인간들이 회개하지 않더라.’로 끝이 납니다. ‘그러면 진짜 회개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인가? 아니다. 회개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회개를 하게 되는가?’에 대한 답이 10장입니다. 10장에는 복음이 적힌 작은 책이 등장합니다. 그것을 요한이 받아먹습니다. 그랬더니 입에서는 달았으나 배에서는 썼다고 합니다. 복음은 그것을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꿀같이 달고 감사한 것이지만 그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죽는 것 보다 힘들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계 8:1-5) “1 그 어린 양이 일곱째 봉인을 뗄 때에, 하늘은 약 반 시간 동안 고요하였습니다. 2 그리고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나팔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금향로를 들고 제단에 섰습니다. 그는 모든 성도의 기도에 향을 더해서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려고 많은 향을 받았습니다. 4 그래서 향의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5 그 뒤에 그 천사가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제단 불을 가득 채워서 땅에 던지니,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난주에 7장까지를 다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일곱 번째 인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고 나팔 재앙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나팔 재앙으로 넘어가기 전에 지금까지 공부한 요한 계시록의 간략한 구조를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나팔 재앙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억을 잘 더듬어 보세요. 요한 계시록 1장1절에서 8절까지는 서론입니다. 그리고 1장9절에서 3장 마지막까지에서 이 땅의 불완전한 교회를 나타내는 일곱 교회에 대해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4장과 5장에서 천상의 완성된 교회를 한번 보여 줍니다. 그리고 6장에서는 드디어 첫 번째 인에서 여섯 번째 인의 재앙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고 6장의 말미에서 ‘이렇게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설 자가 누구인가?’하고 수사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6장을 마칩니다. 그리고 7장에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144,000, 허다한 무리인 이미 하나님의 인을 받아 안전한 교회, 천상의 완성된 교회를 한번 또 보여 줍니다. 그리고 8장으로 넘어와서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이 나오고 나팔 재앙이 시작됩니다. 이 나팔 재앙도 인의 재앙의 내용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9장까지 무시무시한 여섯 나팔의 재앙이 묘사가 되고 그 마지막에 ‘이러한 무시무시한 재앙에도 인간들이 회개하지 않더라.’로 끝이 납니다. ‘그러면 진짜 회개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인가? 아니다. 회개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회개를 하게 되는가?’에 대한 답이 10장입니다. 10장에는 복음이 적힌 작은 책이 등장합니다. 그것을 요한이 받아먹습니다. 그랬더니 입에서는 달았으나 배에서는 썼다고 합니다. 복음은 그것을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꿀같이 달고 감사한 것이지만 그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죽는 것 보다 힘들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받고 이해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게 되는가가 11장입니다. 11장에는 두 증인이 등장하지요? 그 두 증인은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들의 죽음에 환호를 하고 장사도 지내주지 않습니다. 당시 고대 시대에는 죽은 사람의 장사를 지내주지 않는 것은 최대의 모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우리 교회는 이 세상에서 그러한 대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같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너만 잘났냐?’‘왜 그렇게 배타적이야?’이런 대우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10장과 11장이 삽입이 되고 11장 말미에서 일곱 번째 나팔이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는 천상의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살짝 보여 줍니다. 그리고12장부터 14장까지에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완벽하게 요약해서 보여줍니다.

 

이 세 장이 사실 요한 계시록의 핵심 장입니다. 12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 나오고 그 분의 부활이 나옵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땅으로 쫓겨 난 사탄 마귀의 세력이 어떻게 세상을 미혹하는지가 13장에 나옵니다. 13장을 보면 마귀의 세력은 삼위 일체 하나님을 그대로 흉내를 냅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죽은 것 같았다가 다시 살아납니다. 성자 예수님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그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경배하도록 힘을 씁니다. 그런데 그가 이적과 기사로 일을 합니다. 불이 땅에 내려오게 할 정도로 커다란 이적들을 행합니다. 성령 하나님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한 모든 자들의 이마에 인을 칩니다. 그 인을 받는 자들은 모두 사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 표를 666이라고 하는데 그 숫자는 삼위 하나님의 숫자인 3과 하나님의 안식의 수, 안전수인 777로 표기되던 하나님을 그대로 흉내는 내지만 절대 그 능력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속이는 자들, 마귀의 세력을 나타내는 숫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15장부터 다시 일곱 대접의 재앙으로 들어가서 다시 한 번 지금까지의 내용이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 계시록은 점진적 개괄의 방식(progressive recapitulation)의 방식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절대 역사적 순서나 역사적 사건의 나열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한 구조를 머릿속에 잘 넣어두시고 오늘의 본문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언뜻 보시면 일곱 번째 인의 재앙이 어디까지인지가 별로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지 않은 것 같아 보입니다. 1절과 2절을 연이어 읽어보겠습니다.

 

(계 8:1-2)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일곱 번째 인을 떼었는데 일곱 나팔이 나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일곱 나팔이 일곱 번째 인의 내용이다’라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2절 앞부분을 헬라어 원어 성경으로 보면 ‘카이 에이돈’입니다. 개역성경에는 ‘내가 보매’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서 두리 뭉실하게 되어 버렸지만 원래 제대로 번역을 하면 ‘또 내가 보매’입니다. 계시록에 여러 번 등장하는 단어들입니다. 이 ‘또 내가 보매’라는 구절은 요한이 다른 사건이나 다른 환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항상 쓰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1절과 2절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일곱 번째 인은 1절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께서 일곱 번째 인을 떼셨을 때 하늘이 반시 동안 고요해 졌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궁금하시죠?

 

여러분이 여섯 번째 인의 재앙까지를 공부하시고 나서 일곱 번째 인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셨습니까? 이 인의 재앙은 세상에는 심판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역 창조와 재창조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섯 번째 인에서는 우주와 자연의 파괴가 나옵니다. 그러면 이제 그 다음은? ‘완성’이 나와야지요? 악의 완전한 소멸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승리가 나와야 합니다. 그럼 이 일곱 번째 인이 떼어졌을 때 하늘이 ‘반 시 동안 고요해 졌다’는 이 짧은 구절이 어떻게 악의 소멸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묘사하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시 76:6-8) “6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이 들었나이다 7 주 곧 주는 경외할 자시니 주께서 한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이 장면은 애굽의 병거와 말이 바다에 빠져서 몰살이 되는 모습입니다. 이 시편 76편의 7절과 8절과 여섯 번째 인의 마지막 구절인 6장17절과 일곱 번째 인인 8장1절을 비교해 보세요.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누가 능히 서리요, 반 시 동안 고요하더니‘ 어떠세요? 아주 유사하지요? 세상을,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애굽이 모두 몰살이 되는 장면에 ‘잠잠하다, 고요하다’라는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똑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계 18:21-24) “21 또 힘센 천사가 큰 맷돌과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고 말하였습니다. "그 큰 도시 바빌론이 이렇게 큰 힘으로 던져질 터이니, 다시는 그 흔적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22 거문고를 타는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과 피리를 부는 사람들과 나팔을 부는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요, 어떤 종류의 기술자도 네 안에서 하나도 보이지 않을 것이요, 맷돌 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23 등불 빛도 다시는 네 안에서 비치지 않을 것이요, 신랑과 신부의 음성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네 상인들이 땅의 세도가로 행세하고 모든 민족이 네 마술에 속아 넘어 갔기 때문이고, 24 예언자들의 피와 성도들의 피와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의 피가 이 도성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이 까불며 외치던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조롱과 멸시의 소리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던 쾌락의 잡음들이 모두 그치게 되고 하나님 앞에 고요해 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던 세상 모든 것들이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현 앞에 그 모든 입을 다물게 되는 모습인 것입니다.

 

(합 2:20) “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그 잠잠함을 이렇게 이해하시면 쉬울 겁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 가면 처음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튜닝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트럼펫, 트럼본, 팀파니 온갖 악기가 튜닝을 하는 소리는 그야말로 소음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본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그 모든 튜닝은 다 끝나야 합니다.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그리고 지휘자의 신호로 마침내 아름다운 연주곡이 흘러나옵니다. 이 고요함, 이 잠잠함은 어떤 아름답고 위대한 연주곡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계 19:1-5)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모든 것이 다 끝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모두 끝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천국에 입성하게 되면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찬송의 소리가 영원히 끊임없이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 찬양이 울려 퍼지게 되는 시작을, 고요함, 잔잔함으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일곱 번째 인은 그렇게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닥치는 재앙의 끝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지긋지긋한 재앙의 끝은 이렇게 자명하게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을 우리는 이 일곱 번째 인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곱 인의 내용과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는 일곱 나팔의 재앙에서도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이 울릴 때 이제 심판의 끝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보여 줍니다.

 

(계 11:15-19)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큰소리가 났습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주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16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는 스물네 장로도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17 말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권능을 떨치시며, 다스리고 계십니다. 18 뭇 민족이 이것에 분개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진노를 샀으며 죽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고, 주님의 종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자든 큰 자든 주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고,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왔습니다." 19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그 때에 번개가 치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이제 완전히 끝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엄위 하신 하나님 앞에 천지가 잠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반시 동안’인가? 요한 계시록에서는 시간이라는 단어로 헬라어 ‘호라’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이 ‘호라’는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모아들이는 것을 포함한 하나님의 큰 시간을 지시하는데 사용 된 단어입니다.

 

(계 14:7,15)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여기서 쓰인 단어가 호라입니다. 이렇게 종말의 때 심판의 때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때를 가리킬 때 쓰는 단어가 ‘호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쓰인 단어는 ‘반시’ ‘헤미오리온’입니다. 그 시간의 반입니다. 요한은 이 반시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종말론 적 시간의 첫 반시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빛의 시간들, 그 고요함과 잔잔함을 지나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찬양과 함께 지속 될 찬란한 그 때까지를 반시로 보아서 이제 곧 하나님의 완전한 시간이 차고 하나님의 계획 전부가 완성을 이루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나팔 재앙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나는데 그 천사는 금향로를 들고 제단 앞에 서 있습니다. 그 천사는 성도들의 기도에 향을 더해서 그 기도와 향을 함께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여기서 이 다른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다, 아니다 그냥 천사다“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그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이든 아니든 간에 그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가지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도 피 조 된 천사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에는 천사가 등장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계 18:1-2) “1 또 나는 힘센 다른 천사 하나가 구름에 싸여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고, 그 얼굴은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과 같았습니다. 2 그는 손에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펴서,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른발로는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디디고 서서,”

 

여기서 등장하는 힘센 다른 천사는 분명 우리가 계시록 1장에서 공부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얼굴이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 같고, 손에 두루 마리 책을 펴서 들고 있고 오른발로 바다를 왼발로 땅을 딛고 서있습니다.

 

(마 28:1-3) “1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여기서도 천사가 등장하는데 그 천사를 예수님을 묘사 할 때 쓰는 단어로 묘사를 합니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옷이 눈 같이 희다고 하지요? 이 천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의 이러한 표현들은 천사를 등장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 다른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다른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가서 그 향로에 담긴 기도를 다른 향과 보태서 하나님께 올려드리지요? 이 장면은 구약의 레위기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레 16:12-14) “12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13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 14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속죄 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구약의 대 제사장이 향로를 가지고 하나님의 지성소로 들어가서 피를 뿌리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대 제사장이 향로에다가 향을 가득 담아 태우며 지성소에 들어가서 향으로 법궤를 가리우고 피를 뿌리는 동안 사람들은 밖에서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금 계시록 8장에서 그대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다른 천사는 지금 대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향로에는 성도들의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그냥 기도가 아니라 성도들의 ‘모든 기도’입니다. 그 성도들의 모든 기도가 하나님께 올려 집니다. 하나도 땅에 떨어 짐 없이 성도들의 모든 기도가 하나님께 올려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드리는 그런 엉터리 기도들도 모두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말인가? 네, 맞습니다. 모두 올라갑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향을 덮어서 올려 보내십니다. 우리의 이 더러운 욕심과 탐욕과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온 악취가 나는 기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기도가 되어 하나님께 올려지는 것입니다. 그 모든 성도들의 기도는 어디로 수렴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하나님 우리 피를 신원 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 까지 하시려나이까?’ 이 기도가 뭐라고 했지요?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열망이라고 했지요? 우리 성도들의 모든 기도는 바로 이 기도가 되어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기도 응답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것이 되어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병을 낫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때 그 병이 나음으로 해서 그의 거룩에 도움이 되고 그가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된다면 그의 병이 낫는 것으로 응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다시 건강이 돌아왔을 때 그가 전처럼 다시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 것을 탐닉하는 자로 돌아갈 것이라면 그의 병이 점점 위중해 져 가는 것으로 응답이 될 것입니다. 이건 제가 한 가지 예로 들어드리는 것입니다. 괜히 또, 아픈 사람은 전부 뭔가 부족해서 아픈 건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이렇게 우리의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그리고 최고의 선으로 우리에게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온갖 핍박을 받던 신자들은 ‘하나님이 정말 자신들이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긴 들으시는 것인가’하는 불안함과 초조함과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성도들의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 다 올라간다는 것을 모든 교회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가장 최선의 것으로 우리에게 내려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 성도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확신이 되는 장면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로 바꾸어서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면 이런 기도를 했을 것이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는 기도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정말 많이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엉터리 기도들을 많이 드리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도를 아름답게, 향기 나게 만드셔서 그 모든 기도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자 그 향로에 하나님의 불이 담기게 되고 그 향로를 땅에다 쏟으니까 번개와 뇌성과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이 땅의 모든 재앙들은 다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까?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의 내용이 뭐라고 했지요? “하나님, 하나님 나라를 빨리 완성해 주세요. 저의 이 더러운 욕망과 지저분한 죄 속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열망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성도들의 기도라 했지요? 그러면 우리의 삶에 내려오는 재앙들, 환난, 핍박, 곤고, 이 모든 것들이 다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닥치는 것이지요? 우리의 거룩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오는 것입니다. 일곱 나팔 재앙은 그렇게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쏟아지게 됨을 8장 서두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이 땅에 지진과 해일과 태풍과 전쟁과 전염병과 기근이 엄청난 힘으로 인간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대하게 될 때 겁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키고 계시는 구나.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고 계시는구나. 이 모든 것들은 세상에게는 심판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회개의 나팔이요, 성숙의 나팔이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이 역사에 실현되고 있으니 그 나라는 곧 완성이 될 것이다. 그러니 더욱 더 힘을 써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도록 노력하자’ 하고 힘을 얻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끝날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엄위 한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닫고 처분만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잠잠해 질 것입니다. 고요해 질 것입니다. 세상이 그러한 두려움 앞에 떨게 될 때 그 때 우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영광의 찬양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살아내셔야 합니다. 죄와 싸우셔야 합니다. 세상의 풍조와 관습과 유행을 거스려 올곧고 바른 삶을 살아 내셔야 합니다.

 

우리는 144,000, 군사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민수기의 군사계수 장면을 인용해서 우리를 144,000으로 묘사를 한 것은 우리는 이 땅을 전투하는 자로, 하나님의 군사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라 했지요? 싸우셔야 합니다. 대장 되신 예수께서 앞장서서 싸우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대장이 힘차게 싸우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숨어만 계실 것입니까? 그 싸움에 동참하셔야지요. 나팔은 군사를 모을 때 진군 명령을 내릴 때, 승리 개가를 부를 때 불던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가 약속된 싸움으로 부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싸우셔야 합니다. 다수가 가는 길은 옳게 보입니다. 그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입니다. 그래서 정말 바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수가 하는 일은 합리화가 됩니다. 그러나 소수가 가는 길은 늘 불안합니다. 혹시 우리가 틀린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줍니다. 그래서 세상은 늘 틀린 길을 제시하면서 다수가 그 길을 따르게 만들어 버립니다.

 

여러분 복음은 입에서는 달지만 배에서는 쓴 것입니다. 그것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따를 것 같습니까? 소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늘 그렇게 소수로 힘없는 자들로 이 땅을 살다 갔습니다. 그래서 그 길이 좁은 길이고 힘겨운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순교자라 부르는 것입니다. 어줍지 않은 기복신앙이나 신비주의, 자유주의, 종교 다원주의 같은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마시고 힘이 들더라도 바른 복음 안에서 바르게 신앙생활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우림과둠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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