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나오라
(Come out my people)
(김성수 목사)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기 전까지는 항상 제단을 두 개를 만들어 놓고 한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옆 제단에서는 풍요의 신 바알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한 것입니까? 하나님만을 섬기다 보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안 주시는 것들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안 주시는 것은 우상에게 빌어서 받아내려고 한 것입니다.)
(계 8:7-12)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우박과 불이 피에 섞여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푸른 풀이 다 타버렸습니다.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에 사는, 생명이 있는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서졌습니다.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큰 별 하나가 횃불처럼 타면서 하늘에서 떨어져서, 강들의 삼분의 일과 샘물들 위를 덮치면서 내렸습니다. 11 그 별의 이름은 '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물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고, 많은 사람이 그 물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그 물이 쓴 물로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의 삼분의 일과 달의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입어서,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고, 낮의 삼분의 일이 빛을 잃고, 밤도 역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팔 재앙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러분은 이 재앙의 정체를 궁금해 하시기보다는 이 재앙이 주는 메시지를 잘 정리하시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일곱 인의 재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이 나팔 재앙은 쉽게 풀어 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 교회에게 반복적이며 점진적인 기법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 나팔 재앙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7절을 보시면
(7절)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우박과 불이 피에 섞여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푸른 풀이 다 타버렸습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집니다. 그 결과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과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재가 되어 버립니다. 인의 재앙에서는 사분의 일이었던 것이 이제 나팔 재앙으로 넘어와서는 삼분의 일로 늘어나지요? 그러나 아직 삼분의 일입니다. 이 삼 분의 일이 뜻하는 것은 이 재앙은 아직 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우리가 출애굽기에서 익히 보았던 내용이지요?
(출 9:22-25,31)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어 애굽 전국에 우박이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 내리게 하라 23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뇌성과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24 우박의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애굽 전국에 그 개국 이래로 그 같은 것이 없던 것이라 25 우박이 애굽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무릇 밭에 있는 것을 쳤으며 우박이 또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되 31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 우박과 불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기근이지요?
(겔 5:2,12) “2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지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지 일은 가지고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지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에스겔이 심판의 결과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대목입니다. 그 대목을 12절에서 어떻게 설명을 하는지 보세요) 12 너의 가운데서 삼분지 일은 온역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지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지 일은 내가 사방에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기근이지요? 세 번째 인하고 같은 내용입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우리가 이 재앙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세상에는 심판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성도들의 거룩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고 우리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기근이, 가난이 여러분의 삶에 닥쳤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하나님, 이러한 제 삶의 기근으로 말미암아 제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더 아름답게 다듬어질 수 있다면 기쁘게 감수하겠습니다.' 하고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 빨리 제게 돈벼락 좀 내려주세요'로 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난은 절대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삶의 기근은 절대 여러분의 실패를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상황들은 하나님의 최선의 배려인 것입니다.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도 그 달콤한 풍요의 매력에 빠져서 하나님을 오히려 멀리하게 된 자들입니다. 두 번째 나팔로 넘어갑니다. 8절을 보세요.
(계 8:8)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두 번째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집니다. 그 결과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그 가운데 생명 가진 것들이 삼분의 일이 죽습니다. 그리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죠? 여기서 불붙는 큰 산을 세대주의자들은 엄청난 화산 폭발로 봅니다. 어떤 이들은 원자탄의 낙진으로도 봅니다. 성경은 그렇게 수수께끼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요? 성경은 항상 성경 안에서 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문자 적으로만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오늘 이 본문은 해석이 안 됩니다. 여기서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은 '단수'입니다. 그리고 불붙는 큰 산도 아니고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입니다. 그 한 개의 '산 같은 것'이 어떻게 오대양에 한 번에 떨어집니까? 그 불붙는 큰 산이 성경 어디서 인용된 것인지 예레미야로 가서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렘 51:24-25) “24 그들이 너희 목전에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거민에게 갚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세계를 멸한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대적이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세상의 악한 세력을 상징하는 바벨론을 성경은 큰 산이라 표현합니다. 왜 바벨론을 산이라고 표현을 했느냐하면 바벨론에는 우상을 섬기는 '지그라트'라는 제단이 있었습니다. 그 '지그라트'가 바로 산처럼, 피라미드처럼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저들의 죄악 된 모습을 특징화해서 바벨론을 부를 때 '멸망의 산'이라고 부릅니다. 그 산처럼 생긴 '지그라트'위에 늘 제물을 바치기 위해 불을 태우는데 그 전체가 불탄 산이 되어 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악 된 일들을 저지른 것이 스스로 자신들의 멸망을 자초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번째 나팔은 ”하나님을 거역한 악한 세력에 대한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악한 세상을 심판하시는데 바다가 피로 변하고 바다 속에서 살던 것들이 죽습니다. 그리고 그 바다 위를 떠다니던 배들이 파괴가 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계시록 18장으로 가볼까요? 18장에도 악한 세력을 상징하는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이 나옵니다.
(계 18:21) “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큰 성 바벨론이 바다에 던져지면서 세상에 나타나는 결과가 뭡니까?
(계 18:11,15-19) “11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5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일시 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세상의 풍요를 추구하던 자들이 일시에 망하는 것입니다. 당시 무역은 전부 바다의 상선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바다 위의 상고들, 장사치들이 전부 애통하여 울고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 보배로운 것들이 일 시간에 이렇게 불타 버릴 수 있단 말인가?''영원히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 같았던 이 풍요가 어떻게 이렇게 일 시간에 불 타버릴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그 마지막 최후의 심판 때 일어날 일들을 미리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러한 바벨론의 유산, 이렇게 일순간에 타 버릴 것들을 때로 태워 버리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그래, 우리가 소망해야 할 것은 결국 이 땅의 것들은 아니구나, 지금이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자’ 그렇게 자신의 상황이 정리가 된다면 여러분 사업이 망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화입니까? 복입니까? 우리 성도들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다 망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물질 세계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신기루 같은 세상의 달콤한 매력에 빠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모든 것들은 큰 성 바벨론이 불 탄 산이 되어서 바다에 던져 지듯이 다 멸망해 버릴 것들입니다. 세상의 풍요를 좇던 바벨론의 ‘지그라트’가 완전히 불덩이가 되듯이 우리의 욕심이 우리를 그렇게 불태워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백성들아 거기서 나와라’하고 우리 삶에 때로 그러한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계 18:2-4) “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 이게 제 이야기입니까? ‘세상에 눈 두지 말고 하늘에 눈을 두자’ 이게 제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 여러분, 제발 바른 소망을 가지십시오. 세 번째 나팔로 넘어갑니다.
(계 8:10-11)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세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그 별이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까 물이 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이 쑥(압신데스)라는 것은 근동지방에서 자라는 ‘아르테메시아 압신디스’라는 아주 쓴 물풀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풍요를 약속하던 우상을 섬기던 자들을 심판하실 때 자주 쓰시던 단어입니다.
(렘 9:14-15) “14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렘 23:13-15) “13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중에 우매함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14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에도 가증한 일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이렇게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쑥을 먹는 일을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우상을 왜 만듭니까? 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어서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그런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기 전까지는 항상 제단을 두 개를 만들어 놓고 한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옆 제단에서는 풍요의 신 바알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한 것입니까? 하나님만을 섬기다 보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안 주시는 것들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안 주시는 것은 우상에게 빌어서 받아내려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한 번도 하나님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때마다 이스라엘이 나를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을 함께 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은 그런 세상의 풍요로 우리를 속입니다. 하나님으로만 기뻐하고 하나님으로만 평안해야 하는 성도들에게 그 하나님의 평안과 하나님의 기쁨을 비슷하게 흉내 낸 세상의 편안함과 세상의 편리함으로 하나님을 대체시켜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좇는 삶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얻어낼 이 땅의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쑥을 맛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정신 차리고 돌아서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첫 번째 내리셨던 나일 강을 피로 만드셨던 재앙을 기억하시지요?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을 섬기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강을 피로 만들어 버리심으로 해서 진정한 신은 하나님 한 분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풍요를 약속하는 우상에 속지 마십시오. 그 자들은 곧 멸망해 버릴 악한 자들입니다.
(사 14:12-15)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지금은 빛나는 별 같지만 그 별은 곧 떨어질 별입니다. 세상을 호령하던 바벨론 왕이 이렇게 땅에 쳐 박혀 버릴 것을 예언하신 하나님의 예언대로 그 바벨론 왕이 땅에 쳐 박혔습니다. 이 세상 권세 잡은 그 자도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가 약속하는 세상의 달콤함에서 빠져 나오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여러분은 그와 함께 그 저주의 쑥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네 번째 나팔로 넘어갑니다.
(계 8:12)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애굽에 내린 아홉 번째 재앙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것을 세대주의자들처럼 일식이나 월식이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나오는 행성들의 그랜드 크로스, 그런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참 가난한 해석입니다. 이 네 번째 나팔 재앙 역시 구약에서 인용이 된 것입니다.
(암 8:9-10) “9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10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사 13:6,9-10) “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9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10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엘 2:31-32)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해, 달, 별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타버릴 첫 창조를 지탱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해 달, 별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초로 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야 할 자들이 세상의 것들을 믿고 의지하고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궁극 적인 최후의 심판에서 건지시기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세상 것들만을 의지하고 살아 갈 때 그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속에도 그 첫 창조의 부산물들을 쳐버리시는 일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이 부자 되는 것이고 남들 앞에서 자랑스러운 자로 서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회개하십시오.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그런 부자 말고 진정한 부자가 되셔야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자는 모든 자에게 배우는 사람이요 강자는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요 부자는 자족하는 사람이라‘ 제가 전무후무한 부자가 되는 비결을 알려 드릴까요? 어떻게 하면 전무후무한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지금 자기의 상황에 만족하는 사람이 전무후무한 부자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지금이 만족스러워진다면 여러분은 진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부자가 되고 싶으시거든 하나님을 아는데 힘쓰세요.
이렇게 처음 네 나팔의 재앙의 결과처럼 땅이 바다가 강이 오염이 되어 점점 못 쓰게 되어지고 해, 달, 별로 상징되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와 생태계가 점점 파괴되어져 갈 때 세상은 알아듣지 못해도 우리 성도들은 그 의미를 깨닫고 그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물질 세계의 것들, 이 세상 것들이 멸해지고 떠나가는 경험을 하게 될 때 여러분은 이 요한 계시록을 생각하십시오. 결코 그 일들이 여러분에게 내리는 저주나 심판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때때로 여러분의 삶에 닥치는 일들이 너무 힘겹고 무거워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드렸는데도 하나님께서 전혀 돌아보지 않으시고 무심하게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심한 침묵이 아닙니다. 그 일들이 우리의 신앙여정에 꼭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엔도 슈사꾸의 ‘침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한, 카톨릭 선교사가 일본에 가서 선교를 하는데 일본 정부가 너무나 가혹한 핍박을 가해서 숨어서 선교를 합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핍박을 좀 거두어 달라고, 왜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는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야 하냐고,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마치 욥의 기도처럼 이쪽에 계신가 하고 돌아보면 거기도 안계시고 저쪽에 계신가 하고 돌아보면 거기도 안 계신 그런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됩니다. 결국 그 선교사는 변절을 하고 일본 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엔도슈사꾸는 그 책을 통해서 ‘누가 그 선교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하고 독자들을 설득합니다. 그는 열심히 기도했고 그럼에도 침묵을 지킨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누구도 그 선교사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이유도 없이 성도들을 괴롭게 놔두시는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닥치는 어려움, 고난은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슥 13:9) “9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보세요, 마치 요한 계시록의 나팔 재앙을 요약해서 설명해 주는 것 같지 않으세요? 여러분, 영원하지 않은 것에 목숨 걸지 마십시오. 그리고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것들을 목숨처럼 꼭 붙들고 계시면 언젠가 그것들이 불 탈 때 여러분은 함께 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여러분의 존재의 안전과 행복을 걸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이 마실 쑥을 만들고 계신 것입니다. 또 다시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요.’ 로 가시겠습니까? 여러분, 신앙생활은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의 생각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너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분별과 선택의 싸움입니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고 지켜내는 충성과 인내의 싸움인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말없이 공부를 합니다. 공부 못하는 사람은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라면 끓여 먹고 자는 사람입니다. 생각이 아닌 여러분의 팔 다리를 움직여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하는 종교 행위가 신앙생활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을 배우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을 배워서 실제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상상 설교에서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짜 신앙인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에다가 돈과 시간을 쓰고 있는가를 보면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한 달간만 여러분이 어디다가 어떻게 여러분의 돈을 쓰는지 한번 적어 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시간을 어디다 얼마나 쓰고 있는지도 잘 적어 보세요.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나는 정말 신자 맞나?’ 세상의 시작이 있었듯이 반드시 세상의 끝이 있다는 것을 매순간 잊지 마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이 영원히 탈 지옥이 실재한다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희 교회 설교 테잎을 매주 신청해서 들으시고 계신 목사님들께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이 설교 방송을 듣고 계신 목사님들과 설교자들 성경을 가르치시는 분들께도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 정말 지옥을 믿으십니까?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설교하러 올라갈 때 성경을 가르치러 단에 설 때 딱 한 번씩만 그 지옥을 묵상하고 올라갑시다. 그러고 나면 절대 나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회중이 듣기 좋은 말을 골라서 해주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이 설교를 통해 어떤 사람이 복음을 오해하고 하나님과 오히려 멀어지게 된다면 나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함을 가지고 말씀을 전합시다.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복음만을 이야기합시다. 그리고 하박국과 같이 우리도 기도합시다. ‘주여, 수년 내에 이 땅을 부흥케 하옵소서.’
'the words of trut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로마서강해 01] / 개관 (롬 1:1) (김성수 목사) (0) | 2013.12.31 |
---|---|
[스크랩] 전갈을 밟으십시오 (김성수 목사) (0) | 2013.12.30 |
[스크랩] We shall overcome (김성수 목사) (0) | 2013.12.28 |
[스크랩]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그리고 기도 (김성수 목사) (0) | 2013.12.27 |
[스크랩] 믿음의 방패(II) / 김성수 목사 (0) | 2013.12.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