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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그 후...

아 기??

by IMmiji 2013. 3. 7.

오늘은 정기검진일이자, 이식 후 꼭 반 년이 되는 날이었다.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나자신도 어느새 반 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금은 무지 힘들어도 언제 그랬냐 싶게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했던,

의료진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날이 갈수록 절감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해서, 안 그래도 나중에 약을 받으면 가방이 잠기지

않을 정도로 가득차는데, 우산까지 챙기려니 망설여졌었다.

그러다 안되면 하나 사서 쓰고 오지... 싶어 그냥 놔두고 갔는데,

다행히 집에 오는 순간까지 비가 오지 않았고, 점점 날이 환해지고 있었다.

멀리 사는 친구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엔 비가 온다고 알려왔었는데 말이다.

 

늘 하던 검사를 받고, 병원 내 매점 겸 식당에서, 식사하고 약을 먹고...

혼자 음식을 먹는 일은 언제나 어색한데, 특히나 거기서는 더 그렇다.

이 달 첫 날부터, 병원 내 전산이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곳곳에 적혀 있던 것과는 달리,

병원의 모든 컴퓨터가 무엇 때문인지 속도가 느려져서 가는 곳마다 기다려야 했다.

검사실에서부터 진료실, 간호사실 그리고 수납하는 곳까지, 느려진 컴 때문에 엄청난

대기자들이 순서를 기다려야만 했다.

 

<선생님, 잠시 후에 진료실로 올라가는데요,

커피 주문하세요. 아메리카노, 아님 라떼 종류로 할까요?

주문하시는대로 배달이 됩니다. 단, 30분 내로 주문하셔야 됩니다~~^^>

십여 분 후 답이 왔다.  (아메리카노 - 무설탕 -)

그럴 줄 알았다. 그냥 아메리카노로 들고 가려다 혹시나 해서 여쭤본 거였다.

선생님은 언제나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블랙커피만 드신다.

 

목요일인데도 신장내과 대기실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마도 느린 컴퓨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앉아서 기다렸다가, 일어나 혈압 측정하고, 다시 기다리고... 

이윽고 이름이 불려지고 진료실로 들어가 앉았다.

안 그래도 서툰데, 컴까지 느려지니 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선생님도 그러셨다.

 

두 대의 컴을 번갈아 보시던 선생님이, 이것 때문에 환자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며, 문제...라고 하셨다.

그러시더니, 오늘도 뜬금없이, 점점 더 이뻐진다<>고 하셔서 말문이 막혔었다.

아무 소리를 못하고 있는 내게, 사람들이 그러지 않더냐?고 하셨다.

도대체 전의 내 모습, 아니 몰골이 어떠했길래 자꾸 그러실까...새삼 의아스러워졌다.

 

물론, 투석하는 동안, 사진은 아예 찍지도 않았고, 가급적 거울은 보지 않고 살 정도로

나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 이쁜 게

될 만큼 말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오늘은 더 충격적인 소리도 들었다.

선생님께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 아기도 가질 거지?" 하시는 통에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가질거냐?도 아니시고 당연한듯이 가질 거지?라고 하셔서 말이다.

 

아니, 난 그런 이야기를 들으리라곤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다.

"이 나이에요? 내년이면 당뇨 인생 40년인데요? 신장만 문제가 있어 이식을

받은 거라고 해도 어려운데요? 그런 생각 전혀 없고요, 그저 이식받은 신장이 오래도록

아무 문제없이 버텨주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예요." 라는 내 말에,

선생님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셨다.

이 늦은 나이에, 이 상태로, 내가 어떻게 아이를?? 

투석하기 전 상태로, 그것도 더 안좋은 상태로, 돌아간 것 뿐인데,

그때도 하지 않던 말씀을 왜 지금, 이제와서 하시는지 모르겠다.

 

"선생님, 근데 곧 할아버지 되실 때 안 됐어요?"

"됐다. 보름전에..."

"그래요? 할아버지 되신 걸 축하드린다고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아직 예순도 안되신 선생님이 할아버지가 되신 걸 축하하다고 해야 하나 싶어서

말이 선뜻 나오질 않았다. 왠지 난 좀 그럴 것 같아서... ^^

"아직 실감이 안간다. 자꾸 울어대서 잠도 설치고... 제 어미 고생시킨다 싶고..."

그러시면서 멋적게 웃으셨다.

'기어다니고 말도 하고... 그러면 정말 예쁘고, 실감도 나실 거예요."

"그래, 그렇겠지...^^"

 

감염을 막아주는 약을 줄이는 대신, 철분제<빈혈 수치가 낮아서>를 받았다.

전처럼 주사로 처방을 내실까봐 신경이 쓰였는데 약으로 처방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하긴 철분제를 먹으면 속이 불편해져서 결국 주사로 대신 한 거였지만...

약이 하도 많다보니, '무사히 임무를 마쳤다!'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살피실 게 많았다.

잘 가시게~~ 하는 선생님께, "할아버지 되신 거 축하드려요!" 결국 해버렸다. ㅎㅎ

 

뒤이어 들어가는 환자분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고,

선생님이 사과하시는 소리가 들리고, 간호사도 웃으며, 정말 오래 기다리셨다...고 해서,

미안하고 민망해서 얼른 처방전과 검사예약증을 받아 부리나케 빠져나왔다.

오늘따라 오래 기다려야 해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도 많았는데 참...

진료시간이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마는,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둘러 안과에 갔는데, 마침 선생님이 수술 중이라며,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대서,

그리고 거기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처방전만 받아 약을 받아왔다.

다음에 꼭 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그러마 답하고서...

덕분<?>에 생각보다 집에 일찍 돌아올 수 있었다.

다섯 시간이 넘어 돌아왔는데, 어디 멀~리 떠났다가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기...라.  남편이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우리 두 사람 다 그 문제에 있어서는, 꼭 내 질병떄문이 아니라도, 초월하고 사는데,

생각지도 않은 소리를 듣고보니, 기분이 참 묘하다.

모습에 대해서, 상태에 대해서, 짐작도 못하던 말들을 들으면서,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환골탈태' 의 참의미가 아닐까 싶어 혼자 웃었다.

 

이제 몇 년만 있으면 쉰이 되는 나이의 한참 중년 여자인 내가,

더 젊었을 때도 듣지 못했던 외모에 대한 낯간지러운 말을 듣고,

상상도 하지 않던 임신 - 아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것이 다 무슨 일이고 뭔 조화인가 싶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집에 돌아와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니, 희끗희끗 흰머리도 나있고,

웃으면 주름도 지고, 여전히 두리뭉실하기만 한데... 다들 이상해진 것만 같다. ㅎㅎ

 

일어나자마자 준비해서 집을 나선다고 드리지 못한 예배를 돌아와서 드리며,

그 모든 것을 접고서라도, 오늘은 오늘 감당해야 했던 내 몫의 일을 잘 처리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에 우선 감사를 드렸다.

부딪히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무얼 실수하거나 잃어버려 난감한 일을 겪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고, 어느덧 수술 후 반년이 되도록 거부반응 없이 여기까지 잘

견뎌준 내 신장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 그거면 됐다. 뭘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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