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지 않고 어찌 기도할 수 있으며
병들지 않고 어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병들지 않고 어찌 다른 이의 아픔을 알며
병들지 않고 어찌 긍휼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오! 나는 병들지 않고는 인간일 수도 없습니다.
- 미우라 아야꼬 -
이틀 전 정기검진 때,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아직은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조용한 구관 1층 복도를, 담당 선생님과 간호사에게 갖다 줄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서 천천히 걷자니, 일년 전 그 날이
새삼 떠올랐다.
마치 그렇게 걷고 있는 내 옆으로 침대차에 실려 가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만 같았었다.
구관 1층 복도를 따라 죽 늘어서 있는 방사선실들 앞을 지나가니,
병원 응급실에 오자마자 수술복으로 갈아입혀져 손목에 환자 정보가
담긴 테입을 두르고, 링거 꽂고서, 침대차에 실려 거기 방사선실 중
한 곳으로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었지...
일년 전 오늘은, 바로 그랬던 날이었다.
그냥 가슴 사진을 찍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기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6년여동안 사용하지 않아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었던 나의
방광에, 수액을 집어넣어 억지로 부풀리는 것부터 했었다.
얼마큼 들어가고 들어간 만큼 나오는가를 보려는 시험이었다.
이미 들어서 그게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알고 있었지만,
그건...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아... 그런데, 그랬던 것이 어느덧 일년이 지난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무상하다고 해도,
내게 지난 일년은 결코 무상한 세월이 아니었다.
하루 하루, 한 주 한 주, 한 달 한 달... 결코 잊을 수 없는 날들이고,
내 평생 잊을래야 잊혀지지도 않을 시간들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로 여기기에는, 아직은 너무 생생하고,
너무 또렷하게 기억되니까 말이다.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살짝 고개만 뒤로 젖히고 지난 시간을 돌아봐도,
내 눈은 금방 젖어들고 목이 메여온다.
여기까지 걸어온 그 한걸음 한걸음의 시간들...
그 순간들... 두번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고통들...
하지만, 그만큼 크고 깊은 감사와 사랑과 은혜의 시간이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내 평생, 지난 일 년보다 더 하나님과 긴밀하고 가까웠던 적이
없었고, 그분의 임재를 전심으로 전영으로 느꼈던 적도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시간들을 다 버틸 수 있었고,
아버지 덕분에 결국 이렇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걸 감히 어느 누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늘이 알고 세상이 다 아는 진실인 것을 말이다.
"선생님, 벌써 일년이예요. 다 하나님 덕분이예요.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끔 애써 주신 선생님께도 감사드려요..."
검사 결과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 끝에,
내가 이식받은지 어느새 일년이 되었음을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도 사뭇 감격스러우신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을 잇지
못하시더니, '감사하다' 그 한 마디를 하셨다.
그래, 그 말 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것이 다이고, 그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을...
감사하다. 감사하다. 진실로 감사하다!!
내 몸뚱아리에만 신경을 써도 부족할 마음과 시간에,
사실 거기에는 미처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온갖 불상사들이 다 생겼고,
대관절 나로하여금 살라는 건지 죽으란 건지... 어쩌자고 이리도
사방에서 우겨싸고 나를 누르지 못해서들 안달인가 싶었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감사하다.
내가 신경쓰지 못할 상황인데도 하나님께서 다 살펴 주시고,
죽일 것 같았으면 너로하여금 수술을 받게 하지도 않았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처럼, 계속 신장을 잘 지켜주셨으니까 말이다.
여전히 모든 문제들은 그대로 다 있다.
아니, 사실 더 어렵고 더 힘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하다.
내가 다 감당다고 겪어내야 할 일들이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것은 내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 상황에서 어쩜 그리 태연하고 태평할 수 있느냐고
묻고픈 이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ㅎㅎ
하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늘 그래왔듯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뿐이다.
지난 일년간 이식받은 신장만 내게 적응하느라 힘든 게 아니었다.
나도 그 신장에게 적응하느라 나름 힘들었다.^^
피차 서로에게 적응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저도 나도 안 것이지...
그런 적응의 기간없이, 힘겨움 없이... 한 몸이 될 순 없는 거다.
내 몸 속에 들어온 다른 이의 장기 뿐아니라,
부부 사이에도, 주님과 우리 사이에도...
하나가 되기 위한 고통과 고난의 시간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래야 비로소 온전한 일치를 이루게 되는 거니까.
그렇듯, 내 마음이, 영혼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발 내딛기 위해서, 다음 과정을 밟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이었고 힘겨움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상황을 누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인생 공부를 하고, 삶을 배우고, 자기 수양도 하고...말이다.
나이는... 결코 그냥 먹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럼 된거지...
이제 일년이다.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지만, 이년, 오년 혹은 십년...
아니 그 이상 가더라도, 지금의 감사함을 늘 마음비에 새기고서,
늘 되새기며 함께 가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얼마나 오래... 가느냐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끝까지 같이 가고픈 그 마음밖에는 없다.
솔직히 그러기에는, 현실적인 내 몸 상태가 더없이 안좋지만,
주님은 그 안좋은 조건의 내 몸뚱아리에, 이미 수없이 많은 기적을
일으켜 오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나는, 그 주님을 기대할 뿐이다.
어차피 당신 핏값으로 이 몸을 사셨으니까...
나름 최선을 다해 관리야 하겠지만,
주인은 주님이시니 알아서 하실 것이다... ㅎㅎ
오늘은, 일년됨을 주님께 감사함으로 몇 자 적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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