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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그 후...

어느새 세월이...

by IMmiji 2013. 7. 4.

 

 

 

 

 

 

어느새 세월이 흘러 이제 이식한 지 열 달이 되었다.

두 달만 더 있으면 일 년이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 일인 듯 그러면서도 순식간에 여기에 이른 듯하다.

열 달이 되니까, 이뇨제를 반으로 줄여도 많이 붓지 않는다.

하긴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한 달 가까이 하루 네 번씩

인슐린을 맞으며 혈당 조절에 애를 쓴 덕분인지 모르지만서두...

 

열 달만에, 오늘 처음으로, 약에 대한 실수를 했다.

늘 집에서 물이랑 약을 챙겨와서, 알람 울리면 제 시간에

칼같이 먹었는데, 오늘은 가방에 우산을 챙겨넣고 하느라,

집을 나서기 직전에 반 시간 정도 당겨서 약을 먹어 버렸다.

오늘따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어서 간호사한테

아직 더 기다려야 하느냐고 두 번이나 물었더니,

신장과 간호사가 평소와 달리, 약 먹기전에 하는 약물 중독<면역

억제제 때문에 하는> 검사가,

결과가 늦게 나온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꼭 약을 먹지 않고 해야

하는 검사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는 거였다. 이런...

 

오늘 첨으로 약을 반 시간 정도 일찍 먹고 집에서 나왔는데,

어쩌냐니까,

일단 검사 결과를 보시고 선생님이 말씀하실 거라고 해서

난감함을 느끼며 대기실로 돌아왔다.

주 중인데도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신장과 대기실에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침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와 엉거주춤 서 계시는데,

대부분 환자들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일어날 기미들이 아니었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내 자리를 내드리며 앉으시라고 하고서는

나는 그대로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자릴 양보하고 그 곁에 서 있으면 할아버지가 불편해 하실 것 같아서...

 

신장과가 있는 건물은 구관이고, 수술 받고 입원했던 건물은 신관이고,

그 옆에 더 높고 더 크고 더 넓게 짓고 있는 새 건물은 신신관이다.

30년전 내가 첨 그 병원에 갔을 때는 오로지 구관 하나 뿐이었는데...

대기실을 나와 건물 외부로 나 있는 계단에 서서 한참 바람을 쐬었다.

투석을 해서 몸이 무겁고 힘들 때는,

아무리 그러고 싶었어도 마음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추호의 망설임 없이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마음이 가볍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이미 진료 시간을 반 시간도 더 지난 뒤에 다시 대기실로 돌아갔더니,

마침 다음이 내 차례라고 간호사가 알려 주었다.

약을 먹고 검사한 것에 대해,

선생님은 결과를 보시고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네가 또 내 머리를 흔드는구나..." 하시면서...

왜요? 문제 있어요? 했더니,

"어떻게 약을 먹기 전이나 후나 검사한 결과가 별반 다르지

않을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참."

그럼 안 좋은 건가요? 하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하시며 말을 흐리셨다.

아무튼, 신장 기능은 거의 정상이라고 하셨으니 뭐, 그럼 된 거지.

 

지지난 달부터, 선생님은 나만 보면,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그러신다.

오늘도 또 그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고 했더니,

비슷하다고 사람들이 그러지 않느냐셨다.

울 엄만 얼굴도 작고 엄청 마르셨는데...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는데, 선생님께는 그렇게 보이시나 보다.

울 엄마가 그렇게 미인이시란 말인가? <푸하하, 이런 농담을~~ㅋㅋ>

이제 거의 예전 모습이 되었다시며 신기해 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예전이란 언제일까. 아마도 투석하기 전이란 의미시겠지...?

그렇겠지요. 나이 먹은 것만 빼면... 했더니,

나이를 먹긴 뭘 먹었다고 그러시냐며 혼자 웃으셨다.

뭐지, 저 웃음의 의미는?? <← 속으로 한 말임.>

 

너댓 시간만에, 모든 볼일을 다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설 때,

그 사이 비가 내렸는지, 응급실 앞 마당은 비로 말끔히 씻겨져 있었다.

아, 다행이다, 비가 그쳐서... 하고는,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지붕 아래로 들어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도로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차들로 가득했고,

겨우 버스를 타고 바라본 차창 밖의 풍경은... 정말 대단했다.

저 빗속에 서 있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비는 퍼붓고 있었다.

그렇게 내리는 빗속을 달려본 게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아스름했다.

내리는 빗속에 서 있는 건 싫지만 그 비를 바라보는 건... 좋았다.

 

다행히도, 내가 내릴 때쯤 빗줄기는 많이 약해졌다.

장마철 필수품인 우산을 챙겨 넣었지만 작은 것이라 이 우산으로 저 비를

막아낼 수 있을까 내심 염려했는데, 다행히 비가 약해져 괜찮았다.

그리고 그 약해진 비는, 내가 집에 들어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

다시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저 기이할 따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독 날씨에 대해 내게 너무 배려가 많으신 듯하다.

꼭 감각이 없어 잘 넘어지는 나의 상태를 감안하셔서 그러신 것 같다.

정말 고마우신 아버지 하나님...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버스 안에서, 10cm 정도 바짓단을 접고,

우산을 꺼내들고, 가방도 미리 등에 메고... 나름 준비를 했었는데,

하나님의 자상하심에, 내 모습이 오버를 한 것 같아 실없이 웃었다.

 

그렇게 오늘도, 긴 시간을 잘 보내고, 검사도 잘 하고,

쏟아지는 비도 피해서 무사히 집까지 잘 도착해서

이렇게 일기 쓰듯 글을 쓰니 감사함으로 맘이 넉넉해진다.

지금의 내 상황이 어떠하든지, 내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든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은 이 순간도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 어차피 외로운 길이고, 힘든 날의 연속이다, 인생은...

나 뿐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다...고 믿는다.

단지 차이는, 그 길을... 그 날을... 누구와 함께 걷느냐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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