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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그 후...

일반 병실에서의 38일

by IMmiji 2012. 10. 23.

'격리 보호'라고 적힌 1인실로 옮겨왔다.

나의 긴 입원 생활 가운데 1인실에서 지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병원비의 부담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는 나로서는,

1인실은 꿈조차 꾸어보지 못했고, 어쩌다 병실이 없어 2인실에 있게 될 때에도

그 부담감에 6인실로 옮겨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병원비가 부담스럽고 힘들어도,

가고 싶대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싫고 좋고 선택의 여지없이 혼자 방을 써야만 했으니까...

무균실에서 달고 있던 줄들을 그대로 다 달고 와서 지내다가,

하나씩 줄을 떼면서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소변줄과 복수줄을 달고 있어야 했고,

기저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술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소변이 거의 나오질 않았다.

소변이 나오지 않으니 부기가 빠지질 못했고,

결국 목에 관을 꽂고 혈액 투석을 열 시간 가까이 받아야 했다.

내 한 몸뚱아리에, 이식과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의 관들이 다 이어져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믿음의 자매 곁에 있던 신장내과 의사가,

일주일이 되었는데도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투석을 해야한다는 의미이고 결과적으로 수술이 실패한 거라고 했다 한다.

 

마음이 급해진 믿음의 자매가, 철야예배에 가서 그곳 성도들과 함께

통성 기도를 하는 중에, 내가 소변이 나오는 환상과 회복될 거라는 말씀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소변이 나오기 시작했고 다음 다음날에는 말 그대로 소변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알지 못하는 나를 위해 기도해 준 그 성도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나 못지 않게 마음 졸이며 기도해 준 믿음의 자매한테 말할 수 없이 고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진들은 내게 부정적인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소변이 나오지 않다가도 나오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며 격려했다.

뇌사자의 몸에서 장기들을 척출할 때 맨나중에 하는 것이 신장이라

거기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뇌사자가 떨어질 때 받은 충격으로 인해 그럴 수도 있다고,

그리고 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식받은 신장이 나와 조직이 잘 맞지는 않았다고...

이래저래 내 안에서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날마다 이식받은 신장에 손을 대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내 안에 들어온 신장에게, 내게 와줘서 고맙다고, 잘 지내자고 말을 건넸다.

낯선 장기가 들어온 내 몸도 놀랐겠지만 낯선 곳에 들어온 신장은 얼마나

더 놀라고 적응하기가 어려울 것인가.

이 모든 것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조율해 주셔야만 해결될 일이었다.

 

하나씩 링거병들이 줄어가고, 스무 날만에 마침내 지겹고 아프던 소변줄을 빼고

혼자 힘으로 화장실 출입이 가능해졌지만, 그러면 살 것 같았는데,

옆에 꽂혀 있는 복수줄에서는 여전히 물이 샜다.

스태플러로 생살을 찝었지만 그래도 새고,

밤낮없이 새나오는 물에 거즈며 수건이며 옷이 끊임없이 젖어야 했다.

몸 안의 림프관이 제자릴 찾지 못해 그렇다는데,

그건 림프관이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야 되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니...

 

그 와중에, 혈액 속에 나쁜 바이러스가 생겼다고 했다.

면역을 최대한 낮춰 놓은 상태라 - 그래야 내 몸이 이식된 장기를 공격하지 않는다니까 -

원래부터 내 몸 속에 있던 바이러스가 들고 일어난 것이라 했다.

그 바이러스가 위험한 것이라 내 안에서 과다 출혈을 일으킬 수 있대서,

생으로 위내시경을 받고 그렇게 받는 중에 조직 검사도 여러 번 했다.

최소 3주 동안 항바이러스제를 맞아야만 한다고 해서 입원이 더 길어졌다.

 

생각해보니, 내 몸에 바늘이 꽂혀 있지 않았던 것은 채 사흘도 안되는 것 같다.

손등과 팔에 꽂을 만큼 꽂아서 더는 꽂을 데가 없어 발목과 종아리까지 바늘을

꽂았었다.

온통 구타를 당한 듯 시커멓고 퍼렇고 자줏빛의, 총천연색으로 멍이 들었고,

아직도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만지면 혈관이 뻗어 있는 곳은 여전히 아프다...

 

퇴원하기 일주일전 쯤에, 6년간 꽂혀 있던 투석관을 빼는 수술을 받았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다른 수술 받을 때처럼 그 과정은 똑같았다.

보호자 동의서를 쓰고, 금식하고, 수술복 입고, 링거 꽂고

그리고 중앙 수술실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수술실로 침대를 밀고 들어가면서 외과 의사가 그랬다.

이제 수술실 들어오는 거 다시는 하지 맙시다...라고.

제발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보다 더 절실한 사람이 또 있을까.

국소 마취를 하고 멀쩡한 정신으로 그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을 했다.

머리 위에 비추는 조명등의 테두리에 그 과정이 그대로 다 보였다.

 

절개를 하고, 관을 뽑고, 그리고 한참 꿰매고... 계속 배어나오는 피를

닦으면서, 마취를 했지만 그래도 통증이 있을 거라고 여겼는지,

의사가 물었다. "아줌마, 괜찮아요?"

조금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참을만 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괜찮다' 고 하자, 의사가, "이 아줌마는 맨날 괜찮대!!" 라며 웃었다.

잘 참는 것도 때론 문젠가 싶었다.

 

수술 중에 한 번 더 마취 주사를 맞긴 했었다. 좀 많이 아팠으니까...

관을 제거하면서, 옆에 꽂힌 복수줄도 빼고 몇 바늘 꿰맸다.

나로서는 한꺼번에 다 해버려서 힘은 들어도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그로써 내 몸에 꽂혀 있던 줄들을 모두 다 제거했다.

절개하고 꿰매고 한 터라 며칠은 아팠다.

꿰맸는데도 복수줄을 뺀 곳에서는 다시 물이 샜고,

그래서 그 다음 다음날 외과의가 와서 그 위에 스태플러도 다시 네 번 찝었다.

꿰맨데다 찝으니 통증이 엄청났다...

 

다행히 그 뒤로는 물이 새지 않지만,

문제는 새던 그 물이 안에서 고인다는 거였다.

림프관이 제자릴 찾아가서 더는 새지 않고, 고인 물도 자연스럽게 몸에

흡수되어야 하길래, 그것만 기도하고 있다.

제발 그로인해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기만 바란다.

그래야 이 수술이 비로서 성공적인 것이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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