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 들어간 후로,
나는 나이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아니,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게 맞지 싶다.
의료진들도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거기 있었지만
인간이라고 여기고 수술대 앞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수술을 위해 옳은 태도인지도 모를 것 같다.
의식을 잃은 뒤의 일은 내가 알 수 없지만,
의식이 돌아온 뒤에 전신을 덮치는 고통 앞에서,
차라리 그냥 사는 날 동안 투석을 받으며 견디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하고 힘들었다.
고통 앞에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감정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수술실을 나와 중환자실, 거기서도 나만 격리되어 무균실 안에
갇히다시피 했다.
어디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사지가 알 수 없는 줄들로 온통 연결이 되어 있고
수술 전에 비해 수술 후 내 몸은 마치 두꺼운 고무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퉁퉁 부어서 부풀어 있었다.
팔이 접혀지지 않았고 손가락조차도 터질 듯 부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수술 후 10kg도 더 부어 있었다.
후덥지근한 무균실에, 내 몸에서 나는 열까지 더워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한 번씩 들어오는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수건을 물에 적셔달라고 해서
그것을 이마에 얹고 있었다.
식사는 고사하고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그곳에서,
시간마저 정지되어 버린 것처럼 십 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침과 저녁에 십 분 정도 면회가 허락되었다.
유리문 너머로 나를 보러 온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도 웃으며 손을 흔드는 내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눈물을 보였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했다.
얼기설기 나를 감싸고 있는 줄들 때문에, 그리고 수술한 부위의 통증으로
움직이는 게 힘들었지만, 남편이 들고 온 선풍기를 돌리며 그 바람을 쐬고
사흘째 되는 날 간호사가 너무 심심하겠다고 틀어준 라디오 덕분에
무균실을 나오기까지 그나마 덜 힘들게 지낼 수 있었다.
어떤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도, 무균실에서 일주일만 지내면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회개할 거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곳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내 몸 상태가 힘들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지낸 닷새는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저 참고 또 참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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