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좋아한다는 건,
기분좋은 어느 맑은 날이
가슴에 한가득 들어와 있는 상태다.
청소하려고 손에 낀 고무장갑이
청소를 마친 후에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 상태가 사랑이라면,
그나마 잘 벗겨지는 쪽이
좋아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게 노를 젓지 않고도 마음이 움직여
바다를 건너 섬에 안착하는 거라면,
사랑하는 건 눈동자에 물감 한 통이
통째로 주입되어 시야와 감정 모두가
그 색으로 물들어 빠지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겠다.
하지만 그 둘의 차이가 분명하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어쩌면 단지 양력 11월의 어느 날과
음력 10월 어느 날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할수록 희미하고,
또 차이가 없다고 할수록 선명하다.
"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
[출처: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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