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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그 후...

3년 하고 열흘째...

by IMmiji 2015. 9. 17.

 

예전에,

울 엄만 가끔씩 '좋지도 않은 세월'이 왜이리 잘 가느냐고,

안 좋은 세월도 이리 잘 가는데

'좋은 세월'은 얼마나 잘 가겠냐는 말씀을 푸념섞인 어투로

한숨과 함께 내쉬곤 하셨다.

 

이제 그때의 엄마만큼 나이를 먹어서인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고, 허한 기분에 혼잣말을 그렇게 한다.

엄마가 말씀하신 '좋은 세월'은 어떤 것이었을까?

믿지 않는 분이니,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등 따습고 배 부르게, 걱정, 근심없이 잘 사는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내게 '좋은 세월'은 어떤 것일까?

내 기억의 전부가, '아픈 세월'이었으니,

아프지 않고 살면 그게 좋은 세월일까?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좋은 세월...은 감사가 있는 때였고,

좋지 못한 세월은, 감사가 없는 때였던 듯하다.

처해진 상황이 어떠하든, 내 건강 상태가 어떠하든간에...

 

요즘 난 좋은 세월을 사는 걸까,

좋지 못한 세월을 사는 걸까... 궁금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경계선이 점점 모호해지는 듯하다.

빨리 본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이기도 하지만,

세세토록 어린 양을 찬양하며 사는 그 곳을 소망해서이기도 하듯,

그 경계선도 갈수록 불분명해지는 것 같다.

 

왜 삶을 살아갈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고,

자신없어지는 것들도 늘어나는지 모르겠다.

내 능력, 내 재주, 내 힘...으로 살아온 적이 없었던터라

전 몰라요, 그러니 주님께서 다 책임져 주셔야 해요...만

입버릇처럼 읊고 살아서 그런 걸까...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져야 할 책임을 주님께 떠맡기고 회피하듯 살아서

그런 건 아닌지... 민망하다.

왜 자꾸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것처럼 느껴지는지 참...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생각했었는데,

열흘이란 시간이 거짓말처럼 휙하고 지나가버렸다.

지난 7일이 이식받은지 만 3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기억하고, 감사하며 보내지를 못했다.

그 날이 그 날인 삶을 살아서 그런가...

아무 생각없이 그 하루를 보냈다.

하긴 며칠 전 생일도 허접하게 혼자 보냈으니 뭐...

그렇게 보내는 생일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그 날은...

기쁨과 감사로 잘 보냈어야 하는데 말이다.

 

작년 가을부터, 일 년 사이에 세 번이나 입원을 하고,

호되게 고생하고, 다시 회복되고...를 반복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지치고 삶의 의욕이 많이 가라앉았나 보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힘겨운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시간은 잊은 듯 희미해지고 별일 없었던 듯이 살게 된다.

하긴, 그러니 살지, 안 그러면 심각한 우울증이라도 생겼겠지...

 

주인 잘못 만나 고생시킨 신장에겐 미안하지만,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생하듯 다시 회복되어 준 게

그저 고맙기만 하다.  물론, 그리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늘, 미안하고 고맙고... 그런 마음뿐이다, 신장한테는...

남은 세월이 얼마든, 끝날까지 함께 가기를 항상 소망한다.

얼마나 오~~래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를 기준으로...

신장이 잘 견뎌주듯 나도 이 아이를 잘 보듬으며 가고프다.

 

늦었지만, 같이 해온 시간을 감사하면서,

어느새 3년이 된 것을 더욱 감사하면서,

힘든 시간 잘 버텨준 신장에게 고마워하면서,

서로 화이팅!!하자고 다짐해본다.

잘 살아보자고, 좋은 세월을 엮어가자고... 말이다.

 

 

 

 

 

혈관을 찾지 못해 네 명의 간호사가 서너 번씩 찌르던 날,

마지막 간호사가 간신히 링거 바늘을 꽂고서,

테입 위에다 날짜와 싸인을 한 뒤에 빨간 하트를 그려주었다.

그 후로, 퇴원할 때까지 그 간호사는 새로 바늘을 꽂을 때마다

빨간 하트를 그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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