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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그 후...

674

by IMmiji 2014. 7. 13.

 

 

 

 

 

 

나도 참 어지간히 할 일 없는 인사인 듯싶다.

아마 계산기가 아니었으면,

이 계산은 내 머리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숫자라고

단언코 말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오늘로써, 새로운 신장이 내 안에 들어와

자릴 잡은지, 꼭 674일째 되는 날이라는~~^^

왜 갑자기 그 날 수가 궁금해졌는지는 나도 모른다.

얼마나 되었을까... 문득 의아해졌던 것 뿐이니까.

 

암환자들이, 수술을 받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5년안에 재발이 되지 않으면 안심 단계에

접어들어도 된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도 같다.

그거랑은 다르지만,

이식받고 2년이 제일 위험하단 소릴 들었다.

거부 반응 오지 않게 그 동안 조심하고 잘 관리해야 한다고...

 

가끔씩 건강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오다가다 보면,

장기 이식을 받고 피할 수 없는 면역억제제의 복용으로

부작용이 생기고 너무 힘들어하는 이들이,

그 약의 독소를 어떻게든 완화시키고 풀어보고자

좋다는 건 뭐든 다 해보려는 노력들을 보면서,

수시로 난 내게 온 신장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마음으로야 수도 없이 미안해 하지만,

그 미안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아니, 감추려고

무던히도 애를 쓸 때가 많았었다.

덜 힘들게 해주겠다고 좋다는 건 고사하고,

더 힘들게 스트레스나 쏟아붓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겼으니까.

 

가장 위험한 시기에 조심을 하는 게 아니라

마치 그 시기에 시달리게 하고 마르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명이라도 부여받은 듯이 온갖 것들로

이 아이를 너무 너무 힘들게 했다.

내 몸 때문에 아파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새로 온 이 아이를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유월 끝날부터 칠월이 한참 지나기까지,

한 웅큼씩 먹는 약도 모자란다고

날마다 거기다 한 웅큼씩을 더 보태야 했던 것도

결국엔, 충만하다 못해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난 참 얘한테 못할 짓을 너무 하고 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오른쪽 아랫배 부분에

손을 얹고 고해 성사라도 하듯 혼잣말을 한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어쩌겠냐, 너를 이렇게 나한테 보내주신 것을...

우리 둘이 같이 견디고 버텨야 한다는 거 알지...라고.

 

내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짧게든 길게든, 두 번 다시 예전처럼 투석하는 일 없이,

그냥 얘랑 나랑 같이 있다가 같이 떠나는 것,

오로지 그것 뿐이다.

그것만은 허락해 주십사고... 떼를 쓰듯 기도한다.

 

최소 두 주간은 항생제, 해열제, 위장약...을 덧붙여

복용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기특하게 나흘 줄였다.

항생제로 인해, 몸도 붓고, 소변도 시원찮고,

속도 연일 메스껍고, 어지럽고... 힘들었는데,

늘 그래왔듯이, 잘 버텨주어서 고맙기만 하다.

 

내가 어리버리하니까,

내 속의 장기들은,

그래도 나보다는 똑똑하고 끈질긴 것으로 주신 듯하다.

그래서 사는가 보다.  안 그랬으면 벌써... ㅎㅎ

수십 년 그렇게도 찌르고 약도 쏟아붓고 했는데,

이렇게 사는 걸 보면, 얘들 덕분에 내가 산다.

 

하기야 내가 언제 몸 때문에 힘들어 했었나.

날 때부터 앞 못보는 사람, 못 듣는 사람처럼,

그건 내가 당연히 감수해야 할 내 몫의 삶이라고 여겼고,

나 뿐아니라 누구라도 다 이 정도는 힘들다고 받아들였지.

정작 힘들었던 건 이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이었으니까.

그걸 얘들도 같이 감당해야 해서 늘 그게 안타까웠던 거지...

 

얼마나 남았을까... 부쩍 자주 생각한다.

여기가 힘들어서, 지쳐서, 빨리 떠나고 싶어서...

그래서 남은 날을 생각하면 안된다던데,

어쩔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고

힘든 건 힘든 것을... 아니라고 한대서 아닌 게 되나.

 

이젠 그런 '척'하는 것도 지겹다.

본디 그럴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들 나를 오해해서, 과대평가해서들 보니까,

스스로가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척'을 했나 싶어진다.

그렇게 보는대로 사는 걸 맞추려고 했던 것 같아 부끄럽다.

 

맞추려다보니, 늘 내 힘에 부쳤고,

나름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도 돌아서면 거짓말을 한 듯하고

거짓 모습을 보인 듯해서 뒷머리가 당겼었다.

가면이라도 쓰고 산 것처럼... 얼굴 근육이 아팠다.

아니, 내 얼굴이 아니라 내 양심이 쑤시듯 아팠던 것 같다.

 

이식...  받기 전 그리고 후,

한 십 년 가까이, 그 단어는 꼬리표처럼 붙어다녔고,

지금도 붙어서 너불거리고 있다.

예전엔, 내가 당뇨환자임을 반드시 언급해야 했는데,

이젠 그건 슬그머니 들어가고 그 자릴 이식이 대신하고 있다.

 

작은 병원, 큰 병원, 약국... 할 것 없이 내 주 무대인

그런 의료기관에서는 신분을 밝히듯 밝혀야 하니까.

이 세상 떠나는 순간까지 난 그걸 밝혀야만 할 거다.

그래야 약도 주고 주사도 주고 치료도 해주니까.

 

받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받기만 하면 '끝'일 줄 알았던

그 이식이, 산 넘어 산인, 또 다른 오르막의 '시작'일 줄이야,

받기전엔 짐작조차 못했었다.

어제도, 담당 선생님께, 언제쯤 탈모가 멈출까요...했더니,

그저 말없이 웃으시기만 했다.

 

제가 대답하시기 곤란한 질문을 했군요...했더니,

예쁜 가발이라도 하나 사서 쓰라...고 하셨다.

가발은요, 뭘, 그냥 이렇게 모자 쓰고 다니면 되지요.

머리카락쯤이야, 사는데 뭐 그리 대수겠어요?

호기롭게 말은 했지만, 마음은... 좀 그랬었다, 솔직히... ^^

 

그래, 그게 뭐 대수인가.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는 그거지.

무슨 일을 겪었건, 어떤 상황이건, 상태가 어떠하건,

어차피 남들도 내일 일을 모르긴 마찬가지고,

마음 비우고 살려고 나만큼 애를 쓰는 것도 같은데...

 

사실 감사하기 쉽지 않다.

내가 가진 거, 할 수 있는 거, 크던 작던 누리는 거...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면 잘 헤아려지던 것도

캄캄한 공간 속에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럴 땐,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기보단 그냥 있는 게 낫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억지 감사는 받고싶지 않으실 거다.

평상심을 되찾고, 그래서 조금씩 여유를 갖게 되면,

언제 그랬냐 싶게, 감사거리들이 이어질 거다.

난, 열에 하나만 있어도, 웃을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귀한 은사를 받았으니까. ^^

곧, 그 은사를 발휘하게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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