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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I) / 김성수 목사

by IMmiji 2014. 2. 1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I)

 

(김성수 목사)

 

 

(사탄은 에베소 교회처럼 교회를 은혜와 감사에 근거하지 않은 겉치레뿐인 교리의 습득이나, 도덕적 윤리적 종교행위에 머무르게 해서 그 것이 신앙생활인 줄 오해하게 만들어서 평생 예배당에 다니고도 지옥에 가게 되는 그런 공격을 하기도 하지만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과 궁핍으로 교회를 좌절시키고 절망에 빠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종교가 타락을 하게 되면 그 종교를 이용해서 먹고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요즘 목사들이 넘쳐나는 것처럼)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기관들이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종교단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섬기는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종교단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게 되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광야 같은 세상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하나님을 알아가며 거룩을 훈련하고 연습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계 2:8-11) “8 "서머나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감옥에다 집어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11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서머나 교회에게 보내진 편지에 대해 공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으신 대로 서머나 교회는 핍박과 궁핍으로 점철 된 교회입니다. 사탄은 에베소 교회처럼 교회를 은혜와 감사에 근거하지 않은 겉치레뿐인 교리의 습득이나, 도덕적 윤리적 종교행위에 머무르게 해서 그 것이 신앙생활인 줄 오해하게 만들어서 평생 예배당에 다니고도 지옥에 가게 되는 그런 공격을 하기도 하지만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과 궁핍으로 교회를 좌절시키고 절망에 빠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교회가 사탄의 그러한 공격을 간파하고 이겨 낼 수 있는 방법을 우리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 해서 알려 주십니다. 그러한 환난과 궁핍을 잘 이겨내고 주님께 칭찬을 받은 서머나 교회에 대해 오늘 함께 공부를 함으로써 우리의 싸움에 대한 준비 또한 잘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는 어떤 나라를 정복하면 그 정복지의 문화나 사상, 종교 등을 최대한 존중해 주면서 거기에 헬레니즘을 섞는 혼합정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로마 인 들이 유대 땅을 정복했을 때 유대인들의 종교인 유대교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그러한 로마의 정책 때문에 처음에 유대인들은 황제에게 직접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냥 황제의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황제에게 존경을 표하는 의미에서 의식을 행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 밑에서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시고 기독교인들이 생기자 로마는 그 것도 유대교의 일종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초기에는 로마에 의한 박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네로 황제가 정권을 잡고 로마를 불태우고 나서 그 것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 때부터 로마는 기독교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유대인들까지도 기독교인들을 신성모독으로 몰아세워서(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했으므로) 자기들끼리 잡아다가 가두고 패고 하는 것을 로마가 보면서 로마는 기독교인들을 사악한 미신에 사로잡힌 미친 광신자들로 몰아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타기 투스의 연대기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기독교 인 들이 네로의 정원에서 찢기고 불태워져 밤을 밝히는 연료로 사용되고 있을 때 그 정원에서는 그 것을 보고 즐기는 자들을 위해 서커스가 공연되었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박해가 기독교 인 들에게 닥쳤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당시 상인들의 조합이었던 길드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상인들의 조합에도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길드 조직은 상인들의 연합 집단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업의 번창과 무역의 흥왕(興旺)을 위해서 제사를 자주 드렸습니다. 사업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돼지머리 놓고 고사지내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게다가 일 년에 몇 번씩 Trade Guild Festival이라는 것을 열어서 열심히 우상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그 돈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들은 길드 조직으로부터 외면을 당했고 장사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했습니다. 더더욱 기독교인들이 미움을 받은 것은 기독교인들이 시이저 황제를 섬기는 신전에 내야 하는 돈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의 경제를 움직이는 돈의 절반 정도가 신전을 운영하는데 쓰여 졌다는 것을 아십니까? 종교가 타락을 하게 되면 그 종교를 이용해서 먹고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요즘 목사들이 넘쳐나는 것처럼)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기관들이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종교단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섬기는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종교단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게 되지요. 요즘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과분한 교회 건물 사놓고 그 건물 payment 하느라고 교인들 목 조르는 단체가 그런 꼴이지요. 자기 세를 과시하기 위해 필요도 없는 부 목사들 거느리고 그 월급들 주느라 교인들 껍데기 벗기는 그런 종교 단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당시도 그 신전을 유지하고 운영해 나가는데 엄청난 돈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필요한 돈을 거두어 들였는데 기독교인들은 돈을 안 내는 겁니다. 기독교인들은 시이저를 신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돈을 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움을 받지요. 특히 서머나는 로마에 가장 충성을 했던 도시였습니다, AD26년에 로마가 티베리우스 신전을 세우기 위해 11개 도시를 놓고 심사를 해서 가장 충성스러운 도시를 뽑아 신전을 세웠는데 그 도시가 서머나 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감히 그 충성스런 도시에서 황제를 섬기지 않겠다고 나서니 얼마나 미움을 받았겠습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해서 서머나 교회 사람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 것입니다.

 

AD81-96년까지 도미티안 황제가 로마를 다스릴 때는 더 심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도미티안은 자신을 신으로 생각했고 신처럼 숭배 받기를 원했기 때문에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지 않는 자들을 잔인하게 사형에 처하거나 유배를 시켰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때 유배를 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받아 적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난과 핍박 속에 있던 서머나 교회의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편지를 시작하십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처음이요 나중이라는 구절은 전에 공부한 대로 모든 역사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관해 가시며 하나님께서 경륜해 가고 계신 것이라는 말이라 했지요? 왜 서머나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렇게 시작하시겠습니까? 이 말씀은 ‘사탄이 지금 너희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 너희를 좌절시키고 낙담시키고 있지만 그 모든 것도 나의 계획 아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힘을 내라, 내가 너희를 괴롭히기 위해서 사탄에게 너희를 붙인 것이 아니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반드시 너희를 이기는 자리로 끌고 가고 말 것이다. 그러니 힘내고 이겨내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교회를 환난과 궁핍으로 공격을 할 때 왜 하나님께서 말려주지 않으십니까? 처음이요 나중이시라면서, 역사의 주관자이시라면서 왜 안 말려 주시지요? 우리에게 필요하니까 안 말려 주시는 것입니다.

 

(계 2:9)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예수님께서 네 환난과 궁핍을 아신다고 합니다. 분명 장사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핍박도 받고 있는 것을 아시면서 말려 주시기는커녕 ‘사실 너희는 부자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부자라니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여러분, 성도의 ‘부’가 뭔지 아십니까? 성도의‘부’는 절대 이 땅에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유’로 측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부’라고 하지 않습니다.

 

(눅 12:21)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이야기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한 부자가 밭에 소출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다가 창고를 더 크게 지어서 쌓아 두기로 하고 자기 스스로 ‘내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많이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는 자는 진짜 부자가 아니다’ 보세요,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에게 하나님이 ‘부요치 못한 자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계 3:17)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부자인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너는 가련하고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니에요. 그들은 부자였어요. 그런데 왜 그들보고 가난하다고 말씀하십니까? 성경이 말하는 ‘부’는 그런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부’는 뭡니까?

 

(히 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이 무엇이라고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이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재물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당하는 환난이 우리의 재물입니다. 예수께 순종하기 위해 물질적으로 손해 보는 것이 우리의 재물입니다. 그들이 부자입니다. 이 역설이 이해가 가십니까? 이 땅에서 나타나는 하늘의 부요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사느라 이 땅에서는 조금 손해보고, 핍박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로 살아내는 그러한 사람을 부요한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만이 진정 모든 풍요의 원형인 하늘의 것을 영원히 누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 때문에 가난해 지고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는 서머나 교회에게 ‘너희가 실상은 부요한 자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부자는 되고 싶지 않으시죠?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이 맞으시다 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가진 소유로 ‘그는 가난하다, 그는 부자다’라고 말씀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진 게 없다고 창피해 할 필요도 없고 돈 좀 있다고 잴 이유도 없는 겁니다. 진짜 부자는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은 참 그리스도인들을 진짜 부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입니다. 그 분을 유산으로 받은 자들은 그 하나님의 모든 것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부자다, 부요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땅에서는 환난 속에 던져지고 궁핍 속에 던져 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은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공격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힘들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네가 예수로 인해 환난을 당하고 예수로 인해 궁핍한 것을 보니 너는 진짜 부자 맞구나’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히 10:32-35)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예수를 믿은 후에)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더 좋고 더 영원한 재산)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진짜 귀중하고 값진 재산을 갖고 있는 자는 그 값진 것을 위하여 작은 것들을 잃게 될 때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를 유산으로 받은 자는 먹던 아이스크림 정도 빼앗기는 것은 기쁘게 내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유산으로 받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것을 모르는 자들은? 환난과 궁핍이 닥치면 땅을 치고 통곡을 하지요.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이 없는데 그것마저 빼앗기니까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환난과 궁핍이 닥쳤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면 그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금방 탄로 납니다. 가짜들은 절대 못 견딥니다.

 

(고전 3:21-23)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교회야 잊지 말아라,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약 2:5)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세상에서는 가난한 자 같아 보여도 그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는 진짜 부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 면 지금 있는 것이나 앞으로 올 것 모두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부요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비록 환난과 궁핍의 모습으로 보여 진다 해도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배워 가는 자들을, 그 속에서 거룩을 배워 가는 자들을 ‘부요한 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고난을 이야기하십니다. 지금도 환난과 궁핍 속에 있는데 그걸 말려주시기는커녕 거기다 보태서 앞으로 또 환난을 주신 답니다.

 

(계 2:10)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 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마귀가 너희를 시험할 텐데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십일’이라는 것은 그 시간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단 1:12-14)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다니엘이 바벨론 왕의 진미를 먹지 않겠다고 환관 장에게 이야기하고 열흘을 시험을 받습니다. 이 시험기간인 ‘열흘’은 정해진 기간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환난의 분량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셨기 때문에 그 분량을 다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시험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환난을 통해서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아야 할 훈련을 다 받지 못하고 회피해 버리시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그 것과 같은 크기의 환난이 반드시 여러분에게 닥칩니다. ‘십일’이라는 완전수의 기간을 여러분은 반드시 채우셔야 합니다. 왜? 필요하니까. 그러나 그 시간은 잠시입니다. 십일이라는 말의 의미는 ‘끝이 있다. 짧은 시간이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 환난의 시간, 궁핍의 시간은 우리가 영원히 누릴 하늘의 삶과 비교하면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그 잠깐의 고통이 영원을 준비하는 훈련의 시간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고후 4:17) “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벧전 1:6-7)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여정 동안 분명히 마귀가 여러분을 옥에다 던져 넣는 시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세요. 그 마귀는 지금 옥에 갇혀 있습니다.

 

(계 20:7) “7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옥에 갇혀있는 자가 우리를 옥에 가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옥에 갇혀있는 마귀가 우리를 옥에 넣는다는 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우리 교회의 거룩이라는 필요에 의해 하나님이 마귀를 한 방법으로 쓰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죽는 것 같은 고통이 있으실 겁니다.

 

(계 2:10)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 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렇게 사탄이 너희를 공격하더라도 너희는 ‘죽도록 충성하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죽도록’‘아크리 따나투’는 ‘죽게 되더라도’입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죽는 것만큼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 소망만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절대 예수님께서 그 환난과 궁핍을 없애주시겠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죽더라도 다 견뎌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시험기간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진짜 죽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생의 시작입니다. 그 영생의 삶을 오매불망 바라고 계신 분들이라면 왜 그 죽음이 두려우시겠습니까? 그 죽음이 두렵지 않은데 뭐가 두렵습니까? 예수 때문에 고난 받는 자, 그들은 진정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잘 믿는 것 같다가 환난과 궁핍이 찾아오면 금방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환난과 고통을 리트머스 시험지로 때때로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넌 진짜니? 가짜니?’ 한번 보라는 것입니다. 가짜들은 건강하고 일이 잘 풀릴 때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척하지만 환난과 궁핍이 오면 금방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을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럽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믿으면 너희에게 반드시 환난과 핍박이 온다.’라고 말씀 하셨잖아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삶에 때때로 환난과 궁핍과 고난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 때 무너지지 마시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고생을 시키셨습니까? 그 고난의 기간을 통해서 요셉을, 하나님의 사람 요셉으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시 105:16-19) “16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이 말은 히브리어‘네페쉬 보 바르젤’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내 영혼이 쇠도끼 같은 것으로 뚫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말을 썼을까요? 여러분, 이만큼 힘드세요? 우리는 우리의 거룩을 위해 반드시 그 힘든 시간들을 통과해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그렇게 사탄을 방법으로 써서까지 우리를 채찍질하십니다. 그 때 여러분은 잘 참아 내셔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도 똑같은 권면을 합니다.

 

(약 1:12-18)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복 있는 자여, 그대는 시험을 견뎌 내는 자입니다)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 사도는 영생의 면류관을 위해서 시험을 이기라고 합니다. 여기서 시험‘페이라스모스’는 역경이라는 뜻도 있지만 훈련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 시험은 복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퍼부으시는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변함없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조금 잘하면 선물주시고 우리가 조금 못하면 벌을 주시고 그러시겠습니까? 변함없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다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환난과 궁핍까지도 다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주신다고요? 우리를 첫 열매를 만드시기 위해서요. 유대인들에게 첫 열매라는 것은 제일 좋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를 제일 좋은 특 상품으로 만드시기 위해 좋은 것들을 주신단 말입니다. 우리가 좀 전에 찬양한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의 가사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보네, 주 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자비로운 주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기쁨과 평화와 안식뿐만 아니라 수고와 아픔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좋은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광야 같은 세상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하나님을 알아가며 거룩을 훈련하고 연습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일곱 교회에 준 약속을 보세요. 어디 세상 적인 약속이 있습니까? ‘이기는 자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해주겠다. 의의 흰옷을 입게 해 주겠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해 주겠다.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 주겠다‘입니다. 어디 ’병 낫게 해주겠다. 부자 되게 해주겠다. 만사형통 하게 해 주겠다‘ 이런 말이 있습니까? 도대체 그런 기독교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은 때때로 여러분에게 닥치는 환난과 궁핍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지어져 가시면 되는 것입니다. 힘드실 거예요. 마치 죽을 것처럼 힘드실 때, 그럴 때 8절 말씀처럼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세요. 우리는 죽어야 다시 살 수 있습니다. 그 환난의 시간, 궁핍의 시간은 여러분에게 죽음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것이 끝이 아니라 그 죽음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삶을 위한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우리는 다시 삽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고 다시 살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기쁘게 죽읍시다.

 

서머나라는 도시는 기원전 6세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기원전 3세기에 다시 새롭게 세워진 도시입니다. 그래서 서머나 사람들은 파괴되었다가 다시 새롭게 선, 죽었다가 살아난 ‘재건’의 개념이 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 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금방 그 의미가 와 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다시 새롭게 선 그 도시처럼 우리도 완전히 새롭게 되기 위해 이렇게 죽어야 하는구나. 그렇다면 우리 기쁘게 가자’ 서머나 교회의 폴리캅이 바로 이 계시록의 편지를 읽고 화형대에서도 그렇게 당당했던 것입니다. AD156년이면 요한 계시록이 쓰여 진지 60여 년 후입니다. 그는 서머나 교회에 도착한 이 요한 계시록을 읽으며 그 죽음 앞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서머나 총독이었던 스타티우스는 어려서부터 폴리캅과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폴리캅을 살리기 위해서 원형 경기장 안에서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를 한번만 부인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그 때 폴리캅이 그 유명한 말을 하지요. 우리 주님은 86년 동안 한 번도 나를 모른다 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찌 우리 주님을 모른다 할 수 있겠는가? 성난 군중들이 폴리캅을 사자의 먹이로 주라고 외쳤습니다. 폴리캅의 친구 스타티우스는 어떻게 해서든 그의 죽음을 막아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성난 군중들이 그를 장작더미 위에라도 올리라고 아우성을 쳐서 결국 폴리캅은 화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폴리캅이 총독에게 ‘너는 지금 잠깐이면 타다가 꺼질 불로 나를 위협하지만 죄인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너는 어찌 피하려 하는가?’ 하고 오히려 그 총독을 불쌍히 여겼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화형대에다 묶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폴리캅이 그들을 저지했습니다. ‘난 괜찮다. 나를 이대로 두어라. 나에게 이 화형을 견딜힘을 주실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들이 나를 묶지 않아도 이 장작더미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잔에 참여하게 하시어 내 몸과 영혼이 성령의 썩지 않는 축복 속에서 영생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저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로 인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영원한 대제사장의 이름으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이 이제부터 영원히 있을 지어다, 아멘’ 이렇게 기도하고는 ‘뭘 하고 있는가? 어서 속히 너의 할 일을 하라’ 하고 오히려 서둘러서 죽었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통해 2000년 전에 요한에게 폴리캅에게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에게 임했던 감동이 여러분께도 동일하게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환난과 궁핍을 이겨낸 자들에게 무엇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계 2:11)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둘째 사망이 뭡니까?

 

(계 20:11-14)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계 21:7-9)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불타는 지옥, 그것이 바로 둘째 사망입니다. 그 지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아시지요? 거기에 안 가도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려져서 둘째 사망, 지옥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을 두려워 하셔야 합니다. 사탄은 이렇게 환난과 궁핍을 통해서 교회를 시험할 것입니다. 그 때 거기서 헤어나지 못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한 두려움과 염려와 좌절에 빠져버린다면 여러분은 사단에게 지는 것입니다. 이기세요. 그 모든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 지금 허락하고 계신 좋은 것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출처 : 우림과둠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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