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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이기는 자는 (김성수 목사)

by IMmiji 2014. 2. 16.

 

 

이기는 자는

 

(김성수 목사)

 

 

(이 편지들은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독립된 서신도 아닐뿐더러 역사를 살아가는 각 세대의 교회들에게 그 때 그 때 윤리적 교훈을 제시하거나 교회의 잘 못을 지적하는 경고의 편지를 보내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전통을 이어 받은 신약의 선지자 요한을 통해서 전체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에게 구속사에 관한 선지 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신 것입니다. 전체 교회사를 통해 교회에 일어날 일들을 선지 적으로 기술한 것입니다.)

 

 

(계 2:1-7) “1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말씀하신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3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내고, 낙심한 적이 없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6 그런데 네게는 잘 하는 일이 있다. 너는 니골라 당이 하는 일을 미워한다. 나도 그것을 미워한다. 7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1)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서 먹게 하겠다.”

 

 

드디어 2장으로 넘어왔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구조를 공부할 때 살펴본 대로 2장과 3장은 일곱 교회에게 주는 편지의 부분입니다. 그 하나하나의 편지를 분석하고 공부하기 전에 오늘은 2장3장 부분의 전체 적인 맥을 짚어 드리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요한을 통해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십니다. 일곱 교회는 전체 교회를 상징한다고 했지요? 하나님은 전체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고 계신 것입니다.

 

에스겔서25장부터 32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 두로, 시돈, 애굽)일곱 족속에게 심판의 예언을 보내십니다. 역시 일곱 족속입니다. 이것은 전체 이방인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시록 2장3장이 전체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에스겔서25장에서32장까지의 내용은 구원에서 제외된 구속사 안에서의 이방인들에게 보내시는 편지인 것입니다. 비교해서 보시면 재미있으실 겁니다.

 

이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부분을 세대주의자들은 그들이 나누어 놓은 각 세대의 교회에게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이 편지들은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독립된 서신도 아닐뿐더러 역사를 살아가는 각 세대의 교회들에게 그 때 그 때 윤리적 교훈을 제시하거나 교회의 잘 못을 지적하는 경고의 편지를 보내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전통을 이어 받은 신약의 선지자 요한을 통해서 전체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에게 구속사에 관한 선지 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신 것입니다. 전체 교회사를 통해 교회에 일어날 일들을 선지 적으로 기술한 것입니다.

 

모든 편지는 전부‘누구누구가 가라사대’로 시작을 합니다. 그 ‘누구누구가 가라사대’로 번역이 된 헬라어 ‘타데 레게이’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스라엘에게 선포할 때 쓰인 히브리어 ‘아마르 아도나이’와 같은 말입니다. 그 말은 예레미야서를 비롯한 선지 서에서 250번이나 쓰이는 말입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선지 적 메시지가 선포되었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문학적 유형을 인용을 해서 이 계시록의 일곱 편지가 단순한 서신이 아니라 선지 적 말씀 선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용례가 쓰인 곳을 한 군데만 찾아보겠습니다.

 

(암 1:6-8)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붙였음이라 7 내가 가사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8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거민과 아스글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빌어서 전체 교회에게 ‘장차 사탄은 너희를 어떻게 미혹할 것이고 너희는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게 될 것’을 알려 주시고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시며 종말론 적 약속들을 제시하시면서 너희는 꼭 그 것을 이겨내야 한다.’라는 내용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종말적 약속들은 각 편지의 마지막마다 ‘이기는 자에게는‘ 으로 시작해서 마치 후렴구처럼 등장을 합니다. 그러니까 일곱 편지의 모든 내용은 오늘날 여러분에게도 꼭 같이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곱 편지들은 각 편지마다 서신이 갖는 특징인 서두 인사말과 결론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편지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라 요한 계시록 전체에 기술되고 있는 선지 적 메시지의 배경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일곱 편지는 모두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먼저 (1)수신자를 밝힙니다.

 

(계 2:1)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수신자가 누구입니까? 에베소 교회의 사자, 교회의 사자는 일곱별을 공부할 때 살펴보았습니다. 교회의 사자가 누구입니까? 교회의 대표라고 했지요? 성경의 대표의 원리를 좇아 우리는 그 교회의 사자는 바로 교회 전체를 가리킨다고 했지요? 그리고 (2)송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적 속성을 표현합니다.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이러한 그리스도의 각기 다른 이름은 각 교회들에게 주어질 메시지들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요한이 의도적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 교회에게 편지하시는 분은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5절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리라’는 책망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예수님을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분’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계 2:12)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그 내용은 16절의 경고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계 2:16)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그리고 이 일곱 편지가 가지고 있는 구조의 세 번째 부분은 (3)수신자들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지식입니다. 각 교회에 대해서 정확하게 그 상태를 아시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계심을 자각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어제도 오늘도 지은 그 죄 가운데 예수께서 함께 계셨다는 것을 정말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궁핍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4)거기에 대한 책망과 경고 혹은 칭찬을 하십니다.

 

(계 2:4)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리고 다섯 번째로 (5)예수께서 속히 임하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계 2:5)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리고 여섯 번째로 (6)그 이야기를 청종하라는 청종에 대한 명령을 하십니다.

 

(계 2:7)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그리고 일곱 번째로(7) 승리자에 대한 보상 약속으로 마칩니다. 이 일곱 편지들의 각 말미에 후렴구처럼 등장하는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일곱 가지 보상 약속은 전체 교회에게 주어지는 공통적인 내용입니다.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하겠다,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게 하겠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이런 모든 약속은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인 것입니다. 이렇게 일곱 가지 구조를 가지고 일곱 편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이렇게 일곱 편지의 전체 내용은 우리에게 우주적 영적 전쟁에 참여하기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무엇을 이기라는 것입니까? 그냥 막연히 ‘환난, 핍박, 고난’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겨야 할 것은 그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숙한 자로, 거룩한 자로 지어져 가는 길을 막는 우리의 육신과도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계 3:17)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하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 풍부했고 핍박을 받았다는 흔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무엇과 싸워서 이기라는 것입니까? 배부르고 등 따뜻함에서 오는 영적 헤이 함과 안일함 등으로 성숙과 거룩을 향해 가는 길을 막는 모든 것과 싸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김의 대상은 단순히 11장의 무저갱에서 나오는 짐승과 12장의 하늘로부터 쫓겨난 큰 용, 옛 뱀, 마귀, 사단, 온 천하를 꾀는 자 그리고13장의 바다와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만들어져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모든 것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을 교만하게 하는 부와 명예와도 싸우셔야 하고 때로는 여러분을 안일하게 하는 여러분의 행복과도 싸우셔야 합니다. 이 역설이 여러분에게 꼭 이해가 되길 바랍니다.

 

이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 나타난 모든 것들이 종말에 일어날 일입니다. 계시록을 잘 못 해석한 사람들이 종말은 아직 우리에게 닥치지 않은 멀고 먼 장래의 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싸워야 할 그 영적 전투는 아직 우리에게 닥치지 않은 것으로 안일하게 생각 합니다. 아닙니다.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날부터가 종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종말을 살고 계시고 지금 싸우셔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적그리스도는 여러분을 격렬하게 공격하고 있고 여러분의 거룩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마 24:3-13)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파괴가 언제 일어날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 때, 종말의 때에 대해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종말에 일어날 일과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하나로 대답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AD70년에 파괴되었습니다. 그 성전은 에돔 사람이었던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어준 것입니다. BC19년에 착공을 하고 AD63년에 완공을 한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크고 화려한 성전이었습니다. AD66년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하여 폭동을 일으켰을 때 베스파시안 장군이 아들 타이터스를 데리고 팔레스타인에 입성을 했고 베스파시안이 그 와중에 로마의 황제가 되어 로마로 돌아가고 아들 타이터스 장군이 AD70년에 완전히 파괴해 버린 그 성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성전 파괴와 종말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종말의 의미는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과 죄인들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셨고 그 일은 아울러 죄인들의 심판이기도 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셨을 때 애굽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된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의 상징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두 가지를 하나로 설명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조금 쉽게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여러 번 살펴본 다니엘서 7장에는 네 짐승에 대한 환상이 나옵니다. 사자, 곰, 표범, 열 뿔 달린 짐승이 나옵니다. 그 네 짐승에 대한 환상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바벨론 페르시아 알렉산더 제국과 로마 제국에 대한 계시임과 동시에 종말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 환상은 앞서 나왔던 신상의 환상과 내용이 같은 것입니다. 그 신상은 머리는 정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었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었고 종아리는 철이었던 환상이었지요? 그것도 역시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나라들에 대한 내용이었고 그 것으로 상징된 역사의 종말에 대한 계시였습니다. 신상의 환상에서는 뜨인 돌이 그 신상을 무너뜨렸고 이 네 짐승의 환상에서는 인자 같은 이가 그 네 짐승을 물리치고 영원한 나라와 권세를 손에 쥐고 계십니다.

 

(단 7:13-14)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 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분명 마지막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 멸망한 나라들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의 풍조와 정신들 즉 마귀의 세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내용은 그 마귀 세력이 멸망하고 그로 말미암아 영원한 나라와 권세를 쥐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 10:22-23) “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전도를 하러 다니다가 핍박을 받을 텐데 핍박을 받거든 다른 동네로 피해서 다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너희가 전도를 하러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기 전에 ‘인자가 오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분명 다니엘서를 배경으로 하는 심판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그 심판이 벌써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마 16:27-28)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예수께서 제자들 중에 살아서 심판자이신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실 것을 볼 자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그 때가 나와 있지요? 언제 입니까?

 

(마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벌써 인자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심판자로 서 계십니다. 심판의 때 종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심판이라고 하느냐? 여러분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 뭡니까? 구원입니다. 그 전에는 그들이 어디에 붙들려 있습니까? 마귀의 세력에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을 붙들고 있는 세력을 꽁꽁 묶어서 결박해야 그 노예들을 구원할 것 아닙니까?

 

(마 12:29)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십자가의 사건으로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말은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마귀가 결박을 당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마귀의 세력은 이미 그 때 심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그림들을 그리고 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가셔서 최후의 심판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 것으로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하신 십자가의 영향력이 오늘도 이렇게 우리에게 미치고 있는 것처럼 그 때 내려진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은 지금도 계속해서 내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 4:1-3)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우리는 종말론 적 시각에서 적그리스도라는 존재를, 세상 끝날 마지막 심판 직전에 이 세상의 모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모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떤 존재로 자꾸 생각하고 있습니다. 3절 보시면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모든 정신, 풍조 등을 통틀어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부터 있어왔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는 개인이나 집단, 정신, 풍조를 모두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때는 네로를 적그리스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는 커다란 정치세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반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뿐 아니라 교회 시대 전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그 분의 십자가를 모독하고 그 분과의 연합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복음을 왜곡하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한 삶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을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적그리스도를 아직 오지 않은 마지막 아메겟돈 전쟁을 준비하는 어떤 인격체로만 생각을 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적그리스도는 지금 여러분이 싸워야 내야 할 여러분 안의 육신이며 세상 적인 풍조이며 정신이며 실존하는 마귀의 세력 모두를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히 3:12-13) “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여러분은 오늘 바로 지금 그 적 그리스도의 세력과 싸워서 이기셔야 하는 것입니다. 심판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예수를 믿지 않고 버려진 것이 심판이다)그 심판 때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세상과의 싸움도 지금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바로 지금 싸워서 이기셔야 하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늘 늘어놓는 핑계가 ‘내일부터 하지 뭐’입니다. 아닙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셔야 합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셔야 합니다.

 

옛날에 돌쇠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공부도 아주 못 했을 뿐 아니라 질투심도 많았습니다. 그는 자기 반의 반장을 제일 미워했습니다. 반장은 그 반에서 공부도 제일 잘했고 모든 일에 성실한 아이였습니다. 어느 날 전국 수학 경시 대회를 치르기 전 학교에서 사전에 아주 어려운 문제를 다섯 문제 출제를 해서 사전 모의고사를 치렀습니다. 돌쇠는 시험지를 척 보자마자 자기가 풀지 못할 문제인 것을 알았습니다. 시험시작 1분 만에 돌쇠는 시험지를 내고 나갔습니다. 반장은 한 시간 내내 풀다가 결국 한 문제도 못 풀고 나왔습니다. 돌쇠는 그 한 시간 동안 매점에서 빵도 사먹고 오락도 하고 놀았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온 반장에게 돌쇠가 가서 물었습니다. ‘다 풀었냐?’‘아니, 한 문제도 못 풀었다’ 돌쇠가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난 척 보니까 알겠던데, 내가 절대 풀지 못할 문제라는 걸..’‘너는 참 헛 똑똑 이구나, 네가 나보다 뭐가 더 잘 낫다는 거야?

 

어떠십니까? 정말 돌쇠가 현명한 것입니까? 아예 처음부터 ‘난 안 돼’하고 포기하고 매점 가서 빵이나 사먹고 오락이나 하면서 노는 돌쇠의 행위가 정말 현명한 것입니까? 여러분이 실패할 것이고 또 실수 할 것이 두려워서 오늘의 싸움을 외면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싸우실 싸움은 여러분이 오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느냐의 싸움입니다. 그 싸움을 내일로 미루어 놓고 오늘을 대강 사시면 안 됩니다. 지금이 종말의 때요 지금이 심판의 때면 지금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이겨라’하고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분명 여러분은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고 ‘난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라고 망발을 하셔서는 안 됩니다.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막 살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각오로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약 2:12)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게 이기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고 마치죠.

 

(계 2:7)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여러분의 오늘을 이기십시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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