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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보좌 앞의 일곱 영 (김성수 목사)

by IMmiji 2014. 2. 11.

 

 

보좌 앞의 일곱 영

 

(김성수 목사)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의 뒤에 나오는 일곱 영을 홀로 온전하신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미루어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성전 재건”이라는 것은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지으시는,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창조하시는 즉, 교회를 탄생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유지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어,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네’ ‘저들은 뭔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라는 평가를 들어내야 합니다.)

 

 

(계 1:4-8) “4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그분이 내려 주시고,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 내려 주시고, 5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의 첫 열매이시요(또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씻어') 주셨고, 6 우리로 나라를 이루셔서, 자기의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전에도 계셔서 그 언약을 성실하게 이행하셨던 그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누릴 그 복을 가지고 역동적으로 우리에게 오고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이제도, 지금도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를 감격케 했습니다. 역동적으로 지금 오고 계신다는 것은 이미 완성된 미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 완성된 미래에서 오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렇게 이미 완성된 미래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신분이 얼마나 안전하고 확실한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보좌 앞의 일곱 영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보좌 앞의 일곱 영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은혜와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일곱 영은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일곱 영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계속해서 공부하겠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일곱이라는 숫자에 전체, 충만, 완전, 완성이라는 특별한 개념을 부여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전체 교회를 굳이 일곱 교회라고 ‘일곱’이라는 숫자를 동원해서 묘사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의 뒤에 나오는 일곱 영을 홀로 온전하신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미루어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앞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성부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 뒤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을 보아서도 우리는 금방 보좌 앞의 일곱 영은 성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일곱’이라는 숫자는 덮어 두세요. 그러면 어떻게 그 일곱 영이 성령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일곱 영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계 5:6)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일곱 영은 일곱 눈이라고 합니다. 일곱 눈은 구약의 어디에서 보셨지요? 스가랴 4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슥 4:2-10)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10절에 보시면 ‘이 일곱 눈은 온 세상을 두루 살피는 여호와의 눈이다’라고 나옵니다. 여러분이 조금 전에 읽으셨던 요한 계시록 5장6절에는 ‘일곱 눈은 온 세상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둘을 잘 연관 시켜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읽으신 스가랴서4장의 내용은 스가랴가 본 환상입니다. 스가랴에는 총7개의 환상이 나오는데 그 중 다섯 번째 환상입니다. 이 환상은 하늘의 성전 즉,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고 있는 환상입니다. 천상의 하나님 나라, 성전을 묘사하면서 그 성전이 지어져 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떻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까? 등대에 일곱 촛대가 있고 그 양 옆으로 두 그루의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등대로 감람나무에서 계속 기름이 흘러들어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이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천사는 ‘그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을 해주지 않고, 네가 보고 있는 그 모습은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전을 재건하는 스룹바벨의 이야기로 끌고 갑니다. 그러니까 이 모습은 성령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참 성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시기 쉬운 말로 하면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이 나오는데 스룹바벨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었지요?. 그리고 BC586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성전 재건을 위해 이스라엘을 본국으로 돌려보낼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여호야긴의 손자입니다. 그는 왕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성전 재건을 하는데 엄청난 방해가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BC520년경부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페르시아의 다리오가 애굽의 충성을 확인하기 위해 군대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불똥이 또 자기들에게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북이스라엘(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방해를 해 오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가랴가 ‘정말 성전이 재건 될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스가랴에게 ‘스룹바벨이 재건을 시작한 성전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고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전은 결국 BC515년에 완성됩니다.

 

성경에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지요? (스가랴나 학개 에스라 느헤미야 다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성전 재건이라는 것은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지으시는,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창조하시는 즉, 교회를 탄생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성전을 무너뜨려라. 내가 사흘 만에 새로 짓겠다’고 하셨지요? 그러므로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으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묘사가 스가랴서 4장의 다섯 번째 환상인 일곱 촛대와 두 감람나무인 것입니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이 환상을 보겠습니다. 10절에서 분명 이 일곱 촛대를 가리켜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이라고 합니다. 성령입니다. 그런데 계시록1장20절에는 일곱 촛대를 다르게 묘사를 합니다.

 

(계 1:20)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합니다. 일곱 교회는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바로 여러분을 상징하는 것이 일곱 촛대입니다. 그런데 스가랴서에서는 일곱 촛대는 성령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일곱 촛대는 성령으로 표현도 되고 교회로도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와 성령은 어떤 연관이 있길래 이렇게 표현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탄생시키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교회인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 참 교회의 모습이지요?

 

(요 15:26) 26 내가 아버지께 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 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지금 스가랴서의 환상은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기름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그 기름은 성령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오심으로 탄생이 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성령의 조명과 인도와 충만을 받아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땅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부어지는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교회는 영원히 빛을 발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가 맞습니다. 그러나 왜 성경이 일곱 촛대를 또 성령으로 묘사를 하는지 아세요? 교회는 성령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유지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촛대에 불이 붙어서 그것이 촛대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불이 붙어야 비로소 촛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령은 불가분 떨어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곱 촛대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탄생되고 빛을 발하는 교회라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누누이 설명해 드린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christ)을 떠올리시면 조금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출 25:31-40) “31 순금을 두들겨서 등잔대를 만들어라. 등잔대의 밑받침과 줄기와 등잔과 꽃받침과 꽃을 하나로 이어놓아라. 32 등잔대의 줄기 양쪽에서 곁가지 여섯 개가 나오게 하였는데, 등잔대 한쪽에서 곁가지 세 개, 또 다른 한쪽에서도 곁가지 세 개를 나오게 하여라. 33 등잔대의 각 곁가지는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세 개를 연결하여 만들고, 그 맞은쪽 곁가지도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세 개를 연결하여 만들어라. 등잔대의 줄기에서 나온 곁가지 여섯 개를 모두 이와 같이 만들어라. 34 등잔대 줄기는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네 개를 쌓아 놓은 모양으로 만들어라. 35 그리고 등잔대의 맨 위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밑에서 세 번째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고, 그 아래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밑에서 두 번째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고, 그리고 맨 아래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맨 아래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여, 여섯 곁가지를 줄기와 연결시켜서 한 덩이를 만들어라. 이렇게 등잔대의 줄기에서 좌우로 곁가지가 나오게 하여라. 36 등잔대 줄기의 꽃받침에 연결된 곁가지들은 모두 순금을 두들겨 만들되, 전체를 하나로 이어놓아라. 37 등잔 일곱 개를 만들어서, 그것을 등잔대 위에 올려 놓아, 앞을 밝게 비추도록 하여라. 38 등잔불 집게와 불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어라. 39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어라. 40 이 모든 것을,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양 그대로 만들도록 하여라.”

 

여러분께서 성경을 통해 익히 확인하신 것처럼 등대를 비롯한 성막 전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성막에 놓일 촛대를 만드는데 촛대를 정금으로 만듭니다. 촛대를 정금으로 만들라는 것은 당시 금은 빛을 상징하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촛대는 지성소 앞의 성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이지요. 그 촛대에 불을 밝혀 1년365일 24시간 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절대 불이 꺼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교회는 그렇게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빛으로 존재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레 24:1-4) “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올리브를 찧어서 짜낸 깨끗한 기름을 가져다가 등불을 켜게 하되, 그 등불을 늘 켜 두어라. 3 아론을 시켜 회막 안 증거궤 앞에 쳐 있는 휘장 바깥에 그 등불을 켜 두어,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 계속 켜 두게 하여라.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길이 지켜야 할 규례이다. 4 아론은 주 앞에서, 순금 등잔대 위에 그 등불을 늘 켜 두어야 한다.”

 

여기서도 감람유를 끊임없이 촛대에 부어서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제사장들은 바로 그런 일을 했던 것입니다.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흘러 불이 꺼지지 않는 스가랴의 환상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옛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감람나무 기름을 부지런히 날라야 했지요. 성막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그 성막 안의 촛대라는 것은, 그 하나님 나라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그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 빛을 발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인데 그 무리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성령의 기름으로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원히 빛을 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시 구약을 줄줄이 꿰고 있던 유대인들은 ‘보좌 앞의 일곱 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스가랴서의 일곱 촛대를 생각했을 것이고 그 일곱 촛대에 부어지는 성령을 상징하는 금 기름으로 촛대에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스가랴의 환상을 떠올리면서 천사가 설명을 해 준 그 환상의 의미를 되새겼을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본연의 삶을 재확인했을 것입니다. ‘맞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는 교회다’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지’ 하고 결단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게 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정말 여러분의 삶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나오고 있습니까? 그 불은 이미 2000년 전 오순 절 날에 성령이 교회에 오심으로 켜졌습니다. 여러분의 심지에 불이 붙어있습니까? 빛이 나오고 있나요?

 

(고후 3:17-18)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여기서 ‘주의 영광을 보다’라는 구절의 ‘보다’는 ‘카톱트리조마이’입니다. 이 말은 ‘반영하다, 반사하다, 거울에서처럼 보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 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톱트리조마이’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계속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빛으로 반사해 내는 촛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 5:14-16)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요일 1:5-7) “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서 살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엡 5:8-9)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에게 빛을 받은 자로서 빛을 발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빛을 발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합니다. 소 요리 문답1번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이 빛을 발하며 사는 것입니다. 무엇이 빛을 발하는 삶이고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까? 부자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이렇게 간증하고 다니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그럼 예수를 믿지 않는 빌게이츠는 누구한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일까요? 하바드와 MIT의 수많은 불교 신자들과 무신론자들은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빛을 발하는 교회의 삶은 무엇입니까? 보좌 앞의 촛대가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여 빛을 발하듯이 빛으로 오신 분이 살다 가신 그 빛의 삶을 사는 것이 빛을 발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요 8:12) “12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 12:46)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빛이셨습니다. 교회는 그 빛을 그대로 흉내 내어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어떻게 살다 가셨나요? 삶으로 하나님을 설명하시고 가셨습니다.

 

(요 14:9)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한다는 말이냐?”

 

우리도 똑같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입으로 하나님을 증거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어,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네’ ‘저들은 뭔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라는 평가를 들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증인으로, 빛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떻게 만사형통, 일사천리, 여유만만 이겠습니까? 거기에는 핍박과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 때, 그렇게 빛으로 살다가 힘이 들 때, 먼저 살다간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하는 겁니다.

 

이 요한 계시록을 받아서 읽던 초대 교회 사람들은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힘겨운 핍박과 고난에 겁을 먹고 , 자신감을 잃고 있었던 그들이, 이 요한 계시록을 받아서 읽다가 이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것은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되는 것임을 깨닫고 ‘우리는 이렇게 약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 내시겠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평강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지금 견디기 힘들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까? 그래서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갈 것 같은 좌절에 빠져 계신 분들 혹시 계십니까? 우리의 삶은 이미 성령님께서 take over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이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십니다. 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옥으로 데리고 가실까요? 이제 우리는 성령 하나님과 연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옥에 가면 하나님도 지옥에 따라오셔야 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그렇게 안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닥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들은 다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데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우리는 보좌 앞의 일곱 영,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으로 향하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그 분이 계속해서 우리를 조명하고 계시고 힘을 주고 계시고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을 응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초대 교회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보좌 앞의 일곱 영이라는 말만 듣고도 그렇게 평강을 얻었다면 여러분도 동일한 평강 안에 거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그 엄청난 방해에도 기어코 새 성전을 완성을 했듯이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속히 완성이 될 것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고 계신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힘내십시오. 다시 한 번 꼭 마음에 새기세요. 하나님은 완성된 하늘나라의 복을 가지고 우리에게 역동적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성령님으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두려워 마세요. 평강을 찾으십시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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