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II)
(김성수 목사)
(요한 계시록은 반복적이고 종합적이며 상징적인 개념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하고 시간적으로, 연대기 적으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인의 재앙, 나팔 재앙, 대접 재앙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 장면들은 동시에 믿는 자들에게 경고와 책망과 회개의 권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거짓 가르침, 기복주의 신앙이나 신비주의 같은 것을 동원하여 인간의 죄 성을 충족시켜주고 이 세상만을 바라보게 만들어 평생 예배당 다니면서 예수 믿고도 지옥가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계 1:1-8) “1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계시는 곧 일어나야 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천사를 보내셔서, 자기의 종 요한에게 이것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습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4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그분이 내려 주시고,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 내려 주시고, 5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의 첫 열매이시요(또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씻어') 주셨고, 6 우리로 나라를 이루셔서, 자기의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하는 성경 전체의 결론 부분으로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는 지상 적 관점의 교회에게 가시적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 승리의 모습인 천상 적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이 땅의 고난 받는 교회에게 그 고난의 정체를 밝혀 줌으로써 힘을 실어주는 응원의 책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반복적이고 종합적이며 상징적인 개념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하고 시간적으로, 연대기 적으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오늘도 역시 서론 부분으로 요한 계시록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를 나누어 보고 그 문학적 장르를 살펴봄으로써 요한 계시록을 어떤 관점으로 읽어야 하는지를 공부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본문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백성, 교회에게 주는 책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교회는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있어왔습니다. 아담은 교회인가요? 아벨은 어떻습니까? 셋은요? 노아, 에녹 다 교회입니다. 그 모든 교회들에게 적용이 되는 것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록된 요한 계시록을 받아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나님 품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정확한 신앙생활의 지침서를 받아들고도 이렇게 헤매고 있습니다. 신약의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선물을 받았으며 얼마나 존귀하게 취급이 되고 있는지 아시겠지요? 교회가 아닌 언약 밖의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수신자는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경고와 책망과 회개의 권고도 역시 교회의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는 동시에 / 경고와 책망과 회개의 권고를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인의 재앙, 나팔 재앙, 대접 재앙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 장면들은 동시에 믿는 자들에게 경고와 책망과 회개의 권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 구원받은 자로서 그렇게 살아서야 되겠느냐? “차든지 덥든지 하라” 내가 문 밖에서 이렇게 두드린다. 문을 열어라” 요한 계시록은 이렇게 우리를 책망하시고 회개의 권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닥치는 그러한 자연재해라든지 기근, 전쟁 같은 예비적인 심판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의 교회들은 최종적인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해일의 피해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신 저 자연의 법칙이 조금만 어긋나도 저렇게 큰 재앙이 닥치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신 이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법칙을 놓아버리시면 이 지구는 순식간에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재해로 인해 그렇게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있는 시체들을 보면서 우리가 바로 저렇게 한 번에 쓸어버려야 할 티끌이요 먼지요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음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전투하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이렇게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전쟁과 기근과 자연재해의 이유까지도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있으며 그 것을 보면서 우리 신자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신자들은 그러한 재앙들을 보면서 “아직 하나님의 은혜의 때로구나“ 하는 것을 알고 감사드리며 하나님께로 발길을 돌리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나팔을 불었을 때의 일을 한 번 보고 넘어가지요.
(계 11:13) “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쌍둥이 빌딩이 폭파되었을 때, 동 서남아시아에 대 재앙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달리던 길을 멈추고 인간과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떻습니까? 그들에 관해서도 성경이 친절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9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똑같이 여섯 번째 나팔로 살아남은 자들입니다.
(계 9:20-21) “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이렇게 요한계시록은 교회 시대를 통해 이 땅에 쏟아 부으시는 재앙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책망과 회개의 권고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예비적 심판을 하고 계신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사탄이 어떻게 세상을 미혹하고 있는지도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13장에 보면 용과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나옵니다.
(계 13:1-3)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僭濫)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죽었다가 살아난 것 같은 자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것 같은 자, 누구를 흉내 내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있습니다.
(계 13:13-14) “13 또 그 짐승은 큰 기적들을 행하였는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도 하였습니다 14 그리고 그 첫째 짐승을 대신해서 행하도록 허락받은 그 기적들을 미끼로 해서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미혹하였습니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칼에 맞아서 상처를 입고서도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말하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죽었다가 살아난 것 같은 자를 섬기게 하는 자가 땅에서 올라 온 짐승입니다. 이 자는 누구를 흉내 내고 있는 것입니까? 성령하나님을 흉내 내고 있지요? 마귀의 세력은 이렇게 삼위일체를 정확하게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사탄은 거짓선지자, 거짓 교사, 거짓 교회들을 세상에 많이 세워서 예수를 믿는 것처럼 착각을 하도록 꾸밉니다. 그러나 거짓 가르침, 기복주의 신앙이나 신비주의 같은 것을 동원하여 인간의 죄 성을 충족시켜주고 이 세상만을 바라보게 만들어 평생 예배당 다니면서 예수 믿고도 지옥가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왜 무너뜨려요? 사탄도 머리가 있는데, 교회라고 간판을 붙인 걸 많이 세워주고 그 곳을 세속적인 오락 장소나 친목계나 무당 짓거리 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내서 소위 부흥이라는 것을 하게 만들고 커지게 만들면 사람들이 다 속을 것 아닙니까? “저기가 진짜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부흥을 하니?” 그렇게 참 교회에 대한 정의가 혼란스러워지게 되면 이 세상에서 전투하며 올곧게 가는 진짜 교회들은 점점 힘을 잃게 되겠지요? 이러한 마귀의 전략은 Grace community church의 존 맥아더 목사님께서 쓰신 ‘사단은 이제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라는 책을 보면 아주 잘 나타나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탄이 그렇게 방해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참 교회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요한 계시록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계 12:13-17)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교회인 여자를 양육하신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양육을 받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지키시는가에 관한 내용이 15절입니다. 15절을 보시면 뱀이 입에서 강물을 뿜어내지요? 성경에서 물 하면 무엇을 상징합니까, 생수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뱀이 뿜어내는 물이 있다는 것을 조심하세요. 이 시대는 말씀의 홍수입니다. 그러나 그 것이 모두 참 진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거짓 말씀에, 그것이 진리인 줄 알고 세상은 떠내려갑니다. 그런데 16절을 보시면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용이 뿜어낸 물을 삼켜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셔서 그들은 절대 거짓 복음에 속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시면 성경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교회는 마귀가 아무리 미혹하려 해도 하나님께서 지키셔서 그런 기복이나 신비주의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참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괴롭히기 위해, 용이 바다 모래 위에 섭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교회를 미혹하는 세력을 히브리 사람들이 완전수 7과 3을 써서 하나님을 나타내던 777과 비교하여, 비슷하게 흉내는 내기는 하는데 하나님의 힘에 못 미치는 가짜를 666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한 계시록만 잘 공부해 놓아도 거짓 복음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요한 계시록의 문학적 장르를 살펴보겠습니다. 왜 요한 계시록의 장르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가 하면 책은 그 장르에 맞게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문학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시가 있는가 하면 역사서가 있고 편지가 있는가 하면 지혜문서나 묵시 문학도 있습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시처럼 읽지 않고 편지를 읽으면서 소설 읽듯이 읽지 않습니다. 그 책의 장르를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읽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요한 계시록은 크게 세 가지 문학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먼저 묵시문학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예언적 요소가 들어가 있으며 서간문 즉, 편지의 형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계시록1장1절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여기서 계시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아포칼립시스”라는 단어는 “계시” 즉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다, 알려주다“라는 뜻이 있는가 하면 당시 유대 사회에 유행하던 묵시문학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여 졌던 말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단어를 ”계시“다 ”묵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주장들을 하고 있는데 저는 ”아포칼립시스“라는 단어를 계시든지 묵시든지 어떻게 번역을 해도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계시 안에 묵시라는 장르가 있는 것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묵시라는 형태를 가진 계시“라고 번역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계시록을 읽어보면 계시록이 당시 고대 사회에 유행하던 묵시 문학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묵시문학의 특징은 일정한 전개과정을 가진 이야기 형태를 의미하는 서사적 골격(narrative framework)을 가진 초월성을 내포한 문학을 말합니다. 요한 계시록은 서사적 골격(narrative framework)이 있습니다. 서론이 있고 결론이 있고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간적 초월과 시간적 초월이 이야기의 근간을 이룹니다. 먼저 요한 계시록은 공간적 초월성을 강조합니다.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하늘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시간적 초월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종말적 구원의 복을 현재 누리고 있는 것으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가 누리게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종말적 축복은 가시적으로 우리에게 닥치지 않았습니다만 현재 우리 교회는 그러한 축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묵시문학은 초월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환상을 사용하고 그 환상을 표현하기 위해 상징적인 것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마치 에니메이션처럼 눈 앞에서 회화적 묘사와 화려한 상징으로 강한 인상을 주며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 계시록을 읽으면서 천사와 짐승과 숫자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번개를 보고 뇌성을 듣습니다. 지진과 전투도 목격합니다. 보석이 등장하고 한 여인이 무서운 용과 마주선 것도 보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흰말을 탄 사람을 보기도 하고 “할렐루야” 합창이 울려 퍼지는 것도 듣습니다. 그러나 묵시문학이라는 것은 그런 초월이나 상징을 통해서 어떤 대 원칙을 설명하는 것이지 특정한 사건들을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시 문학을 대할 때 그 환상이 묘사하고 있는 그림을 분해하고자 시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그 전체의 환상을 큰 틀로 보아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만 들으면 되는 것입니다. 짐승, 음녀, 인, 나팔, 대접들을 퍼즐 맞추듯 짜 맞추려 시도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그렇게 짜 맞추다보면 그 환상 전체가 주는 메시지를 놓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드리지요.
(계 17:1-5)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僭濫)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하더라 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여러분은 이러한 여자의 환상을 볼 때 그 여자가 탄 붉은 빛 짐승이 무엇이고 그 짐승의 몸에 있는 이름은 무엇이고 일곱 머리는 뭐고 열 뿔은 무엇이며 그 여자가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옷은 무엇이며 금과 보석과 진주와 금잔은 무엇인지 그런 것을 파헤치려다가 그 환상이 이야기하려는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묵시적 환상이 나올 때는 먼저 그 전체가 가리키는 것을 보고 그 다음에 분석을 하라는 것이지요. 이 환상은 5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바벨론, 즉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로마의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와 핍박을 상징하고 현대의 사람들에게는 물질주의, 쾌락주의로 잠입해 있는 마귀의 세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알아들을 수 있다면 사실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이라든지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이라든지 그런 것은 2차 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묵시 문학적 요소를 대할 때는 여러분이 이러한 관점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두 번째로 성경은 이 요한 계시록이 예언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계 1:3)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우리가 ‘예언‘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이 ’앞일을 미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언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예언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항상 앞일만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 행하셨던 하나님의 사역을 해석해서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 삶에 의미가 있는지를 적용함으로써 범죄 한 이스라엘을 각성시키는 과거적 예언을 하기도 했고 미래에 관한 일이라 할지라도 과거와 철저하게 관련되어 전개될 것을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가 이사야서40-66장까지에 걸쳐 바벨론 포로 귀환을 예언하는데 출애굽 사건을 근거로 하여 ’그것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65장에 나오는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의 회복은 첫 창조와 노아의 언약을 근거로 기대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 예견(豫見)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해석하여 현재에 경험되고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구속 사건과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것을 예언이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미 일어났던 출애굽 사건을 근거로 구속 사건을 예견했던 것처럼 요한은 요한 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근거로 현재에 경험되고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구속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을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 계시록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으로 말미암는 구속의 이야기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언의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엉뚱한 예언(豫言) 찾아다니는 사람들 많지요? 마치 새해가 되면 사주 팔자들고 점쟁이들 찾아가는 것처럼 이 땅에서의 미래를 점치러 가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해가 신유(辛酉)년입니다. 닭의 해지요. 주역을 공부한 사람은 아실 겁니다. 12지 중에 닭과 삼합이 되는 동물들이 있어요. 뱀과 소입니다. ‘사유축’ 삼합이니까 뱀띠 소띠들 올해 좋겠네요. 이런 것들 원하시지요? 이건 제가 동양 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주역을 근거로 던진 말입니다. 이것과 앞일을 알고 싶어 용한 목사 찾아가 즐겨 예언을 받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말들과 무엇이 다른가요?
사주가 뭔지 아세요? 년 월 일 시를 사주(四柱)라 합니다. 네 가지 큰 기둥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갑(甲)을(乙) 병(丙)정(丁)등의 십간(十干)과 자(子)축(丑)인(寅)묘(卯)등의 십이 간지(干支)를 엮어서 두 자씩 연월일시(年月日時)를 표기합니다. 그러니까 여덟 자가 되지요? 그것을 팔자(八字)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태어난 생년월일은 변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모든 인간은 각기 정해진 운명을 타고난다고 하는 것을 통계를 내어 정리한 것이 주역이요 토정비결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언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그런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여러분의 미래는 여기 성경에 이미 이렇게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 땅에서의 어떤 상황과 처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나를 거룩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것이니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예언(豫言)을 좇아다니며 이 땅의 미래를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직도 여러분의 가치의 비중을 이 땅에 더 두고 계시다는 말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그런 예언을 해주고 다니는 사람들은 또 뭡니까? 정신 차립시다. 기독교가 뭔지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의 또 다른 문학적 특징은 서신이라는 것입니다. 서신이라는 것은 무 시간 적인 상황에서 기록되지 않는 것입니다. 편지라는 것은 보통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한된 일차적 독자인 수신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에게, 에베소 교회에게‘ 해 놓고 엉뚱한 소리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요한 계시록의 수신자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였습니다. 그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는 하나같이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한 계시록이 주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문제의 핵심은 그들은 영적 전투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영적 전투에서 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일곱 교회에게 주어지는 편지의 마지막마다 마치 후렴구처럼 ’이기는 자에게,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곱 교회에게 주어진 편지를 보면서 당시 초대 교회들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그 일곱 교회를 밀 까부르듯이 까부르려했던 사탄의 세력이 지금 이 편지의 동일한 수신자인 이 시대를 비롯한 전체 하나님의 교회에 동일한 세력으로 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편지라는 양식을 동원해서 좀 더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요한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것처럼 선지 적 전통의 입장에서 예언의 말씀을 대언 하고 있으며, 묵시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천상(天上) 적 실체를 보여주어 현실을 정확하게 통찰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서신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추상적인 대상과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구체적인 대상과 문제에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은 묵시문학적 요소와 예언적 요소와 서신 적 요소가 함께 섞여 기록되어진 것입니다. 이제 이 요한 계시록의 구조를 간단하게 나누고 마치겠습니다. 성경의 구조를 나눈다는 것은 학자들이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쉽게 성경을 설명할까’를 고민해서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마다 구조가 다 틀립니다. 10명의 책을 보면 10명이 다 틀립니다. 그래서 저도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요한 계시록 설교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맞출까? 그 수위에 따라서 구조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 계시록을 공부해 보니까 너무 자세히 파고들면 전체적인 그림을 놓치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겉만 훑고 지나가기에는 중요한 내용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우리 교인들이 주석 없이 요한 계시록을 읽으시면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고 감격하실 수 있는 정도까지만 가자’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그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들어가 있는 삽입들은 다 커다란 덩어리에 묶어 버렸습니다. 그 삽입들은 나중에 본문에 들어가서 자세히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요한 계시록의 큰 그림을 먼저 쉽게 그리실 수 있게 저는 구조를 이렇게 나누었습니다.
먼저 계시록1:1-8절까지를 서론으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22장6절에서21절까지를 결론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 서론과 결론 사이의 내용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가 일곱 교회를 설명하는 2장과 3장입니다. 두 번째가 일곱 인을 설명하는 4-7장까지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시기 쉽게 4장과5장도 거기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7장1-17절까지 삽입이 들어가 있는데, 그런 것은 일단 다 무시하세요.
세 번째가 일곱 나팔을 설명하는 8-11장까지고요. 네 번째가 요한 계시록의 주제 장인 12-14장입니다. 거기에는 여자, 남자 아이, 용, 666, 144,000등이 나오지요. 요한 계시록은 이 12장에서14장까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대칭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다섯 번째가 일곱 대접을 설명하는 15장에서 16장까지입니다. 여섯 번째가 마지막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17장에서 21장8절까지이고요. 일곱 번째가 영광스러운 천국성취를 보여주는 21장9절에서 22장5절까지입니다.
서론과 결론 사이의 본론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곱 부분은 또 일곱 개로 나누어집니다. 일곱 교회,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그리고 그 일곱 개로 나누어진 부분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교회시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오늘 집에 가셔서 그 구조를 염두에 두시고 다시 한 번 계시록을 읽어 오십시오. 그러면 조금 더 머릿속에서 정리가 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이렇게 우리 교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그 사랑을 근거로 한 권고와 책망이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왜요? 이기라고요. (이겨라, 이겨라) 그리고 이길 수 있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계 12:11) “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복음) 인하여 저(사탄)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믿음과 그 말씀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요한 계시록, 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여러분과 제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고 더욱더 힘차게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게 되는 용기와 격려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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