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선택(IV)
(김성수 목사)
(엡 2:10)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우리의 악하고 어두운 감정의 정체와 하나님과 이웃과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는 그 사랑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과 이웃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정말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길임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바른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지요? 오늘도 “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속에서 바른 선택, 바른 행함이 나와야 하며 나올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고 전체적으로 10절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사탄, 마귀, 악령, 귀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나세요? 뭔가 막연하시지요? 원시적인 아이디어 같지 않으세요? 그러나 여러분이 확실하게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탄, 마귀, 귀신, 악령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는 24시간 그들과의 영적 전투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영적 전쟁 spiritual warfare 라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은 우리에게 대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대적도 없는데 무슨 전쟁을 합니까? 실제로 우리에게는 대적이 있습니다.
(엡 6:11)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약 4:7)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벧전 5:8-9)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10 바짝 정신을 차리고 철저하게 경계하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대적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에는 세 개의 영적 존재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마귀 그리고 인간입니다. 하나님 마귀 인간은 모두 인격적이며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는 그래도 관심이 있는데 마귀에 대해서는 너무나 알지 못합니다. 손자가 쓴 유명한 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요? 우리는 마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분명 마귀는 존재합니다. 그리고 마귀의 세력은 위계질서가 잘 잡혀 있고 전략과 전술을 동원해서 세상을 다스립니다.
(엡 6:12)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막 3:23-26) “23 예수께서 저희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단이 어찌 사단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
마귀는 절대 자기들끼리 분쟁하지 않고 통일성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거기서 예수님께서 그 귀신 들린 사람에게 “네 이름이 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랬더니 그 귀신이 “내 이름은 군대”라고 단수로 이야기합니다. “군대” “레기온”은 보통 로마시대 때는 6,000명 정도의 연대와 사단 병력 중간 정도 되는 것을 가리켰습니다. 신약에서도 아주 많은 수를 가리키는 데 쓰였습니다. 그리고는 곧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라고 복수로 이야기합니다.
(막 5:9)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마귀들도 그들을 대표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수천 마리의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간 후에도 돼지들이 이리저리 발광하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달려가 지들이 무슨 삼천 궁녀라고 바다로 들어가 떼죽음을 당합니다. 그것은 귀신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리더의 명령에 따라 통제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마귀에 대해서 개괄적인 것을 좀 알아보고, 왜 그 마귀의 존재가 우리의 행함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마귀는 원래 천사였지요? 물론 성경에 어떻게 그 마귀가 생겨났는지 그 기원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구절이 이사야 14장과 에스겔 서 28장, 그리고 신약의 유다서 정도입니다.
(사 14:12-17)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16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경동시키며 17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뇨 하리로다”
(겔 28:12-19)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 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유 1:6)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그렇게 하늘의 천사였던 천사 장 루시퍼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타락을 했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리는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인간들에게 내려와서 그들에게 주어진 세상의 통치권을 고스란히 빼앗아 버렸습니다.
(창 1: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서 “천”은 히브리어“솨마임”입니다. “하늘들”이라는 말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늘들인가? 우리가 삼층 천 이라고 할 때 하늘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배웠죠? 우리 눈에 보이는 저 하늘, 그리고 우리 눈으로 확인 할 수 없는 저 우주, 그리고 하나님이 계신 진짜 하나님 나라,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분한다고 했지요? 그리고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지요? 그런데 그 중 땅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신이 다스리시지만 agent를 세워 대신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게 아담과 하와입니다. 일제(日帝)시대 때 히로히토가 일본 천황이었지만 조선은 이토 히로부미가 대권을 위임받아 다스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조선은 일본 천황 만세를 외쳐야 하는 그의 통치 아래 있는 나라였지만 실제적인 통치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 것처럼 그렇게 인간은 이 땅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통치권을 가진 인간이 그 통치권을 소유한 채로 사탄의 수하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아주 불법적인 방법으로 그 땅의 통치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눅 4:5-6)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이렇게 마귀는 세상의 권세를 넘겨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 세상은 그의 통치 아래 들어가 그가 시키는 대로 아주 즐겁게 죄를 탐닉하게 되었습니다.
(엡 2:1-3)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여기 보시면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누군가가 장악하고 죄를 사주하고 있다고 나오지요? 그렇게 마귀는 현재를 살아가는 믿지 않는 죄인들의 왕이요 그들을 장악하고 사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이 세상 임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2:31) “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그리고 조금 전에 우리가 읽었던 에베소서 2장 2절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는 말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하늘 아래 영역을 지배하는 자” 여기서 하늘은 sky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아래를 다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라는 방법으로 그 마귀의 결정적인 권세인 사망을 부수시고 승리를 하시고 그 통치권을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행 2:36)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요일 3:8)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 막강한 사탄의 사망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꺾였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효력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통치권에서 풀려나서 이제 자유로운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인들은 사탄을 왕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귀신들린 자“라고 하면 엑소시스트나 오멘 같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입에 거품 물고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고 눈에 흰자만 남아서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고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린 자 (demon possession)이라는 것은 예수와 관계없는 모든 죄인들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 이외의 모든 인간들은 (demon possession)입니다. ”귀신들린 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마귀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운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예수를 알지 못했을 때 귀신들린 자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꼭 귀신이 그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아도 마귀의 통제권 아래 있으면 그것을 (demon possession)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 8:44)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잘 보세요.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는 거짓말, 속임수입니다. 그런데 그 마귀가 통치하고 있는 마귀의 나라에서 몇 명을 건져내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골 1:13)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나라의 개념은 “통치권”이라고 했지요? 누구의 통치 아래 있느냐? 이제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온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여전히 마귀가 권세를 휘두르고 있는 이 땅에 존재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탄은 자기의 백성이었던 어떤 무리를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단을 묶어버리시고 그의 세간을 늑탈 하시는 것입니다. 성수야, 경호야, 석진아 이렇게 부르시니까 그 사탄의 세간들이 막 하나님 나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탄이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사탄이 결박당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냥 순순히 빼앗기고만 있겠습니까? 얼마 전까지 자기 세간이었던 것들을 그냥 보내겠습니까? 방해를 하겠지요?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울로 두르고 계시기 때문에 직접 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거짓으로, 속임수를 써서 겁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가리켜 예수님께서 “거짓의 아비”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 믿는 자들에게 붙어서 우리로 하여금 정말 엉터리 신앙생활을 하게끔 속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즘 주일에 살펴보고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주님께서 보내시는 편지도 역시 사탄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는지 경고하신 것 아닙니까? 아주 훌륭한 교회처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교회로 만들어 자만하게 하고 성경공부도 많이 하게 해서 교만하게 하고 교회를 부자로 만들고 사람들을 끌어 모아 줘서 그게 정말 부흥인지 잘 못 오해하게 하고 그렇게 아주 기가 막히게 속이는 것입니다.
물론 거라사 광인처럼 무덤가에서 난리를 피우는 그런 모습으로도 나타나지만 사탄도 머리가 있는데 그렇게 정체를 백일 하게 드러내놓고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아주 드뭅니다. 그런 귀신은 아이큐가 아주 낮은 귀신일겁니다. 사탄은 아주 달콤한 것으로 속입니다. 그럼 그렇게 위험한데 왜 하나님이 그 사탄을 그냥 놔 두시는가? 왜 그런다고 했습니까? 우리의 거룩을 만들어 가는데 사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탄도 마귀도 귀신도 여전히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놓치시면 안 됩니다.
(왕상 22:20-22) “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22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하나님께서 아합을 이제 땅에서 불러들이려고 하십니다. 그 때 누구를 씁니까? 사탄을 씁니다. 그래서 사탄이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 거짓 영을 불어넣어 아합을 속입니다. 아합은 미가야의 말을 듣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의 말만 듣고 올라가 죽습니다. 사탄 마귀도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쓰이는 하나님의 종에 불과 한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 서로 미워하게 하고 시기 질투하게 하고 오해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잡힌 사람들은 그러한 시험을 통과하고 더 굳건한 사랑과 용서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용서를 배우기 위해서는 용서하지 못하게 속이는 사탄과 싸우면서 우리가 용서의 소중함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 2:10-11) “10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 것은 사탄에게 속는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그러한 진리를 깨닫고 사단의 속임수를 깨고 용서를 할 수 있는 자로 만들어 내시기 위해 사탄을 이용하고 계신 것뿐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고는 우리에게 거짓 죄책감으로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도 그놈의 죄책감 때문에 “난 가짜일거야” 이렇게 우울해 하고 괴로워합니다. 실제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를 짓고 그 죄의 삯인 사망으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사망과 방불한 고통을 겪습니다. 괴롭습니다. 사탄은 그렇게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기서 십자가를 떠올립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사탄의 꼬임으로 죄를 지어놓고 결국 그 죄책감으로 인해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에서 삯이라는 말이 ”옵소니온“이라고 했지요? 로마 용병들에게 주는 월급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절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왜요? 우리는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공격이 거세면 거셀수록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더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명확히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거짓 죄책감에 의해 자신의 영혼이 병들어 가게 만들지 않습니다.
(계 12:10)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 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 하던 자가 쫓겨났고”
이제 사탄은 우리를 참소 하지 못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습관을 따라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 죄를 짓고도 이 성경의 진리를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오히려 감사 속에서 차츰 차츰 그 속임수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를 통제성향과 자기 방어, 집착과 중독, 습관, 경향 등으로 하나님께 쏟아야 할 사랑의 에너지를 다른 것들에 쏟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러한 사탄의 속임수에 의한 집착과 중독의 해악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기에 더욱 더 하나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하나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제 그러한 사탄 마귀의 속임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 세력을 쫓아낼 수 있는 자들입니다.
(막 16:17)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여러분, 이 구절을 요즘 흔히 축귀의 은사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가라” 이렇게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그 안에 성령이 계신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을 가지고 뿜어내는 선포는 힘이 있지요. 그러나 무조건 “예수 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 이건 안 됩니다.
(행 19:12-16)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 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 하면 우리가 사탄의 속임수에서 빠져나갈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베레아 에서는 감기 귀신, 치질 귀신, 섭섭 귀신 온갖 귀신을 그렇게 쫓아내더라고요. 심지어 귀신은 인격적인 존재라 욕을 하고 모욕을 주면 모욕감을 느끼고 나간다고 욕을 하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귀신이 어머, 어떻게 나한테 그런 심한 말을...” 이러면서 나가나요? 믿는 자가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은 우리는 이제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말씀을 이해 할 수 있는 자가 되었고 우리 안에 성령이 계셔서 우리에게 계속 의에 대한 행함과 소원을 주셔서 우리가 속고 있는 것들을 분별할 수 있게 하셔서 더 이상 속지 않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을 잡고 휘두를 수 있는 foot holder가 뭐겠습니까? 무엇을 타고 넘어 들어오겠습니까? 바로 죄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지을 때 그 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의 코를 꿰어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아무 죄도 안 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탄이 어떻게 우리와 관계를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사탄의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바른 선택을 훈련하고 연습하여 죄로부터 점점 멀어지셔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사탄을 멸하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이런 의미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전적으로 죄를 향해서만 달리던 자들이었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제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들 속에 죄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향한 소원과 행함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속임으로 그들을 통치하려 드는 사탄을 발 디딜 수 없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있는 죄 된 욕망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억제시키고 바른 길을 조명하심으로 사탄이 타고 넘어 들어 올 foot holder를 자꾸 부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성령의 음성에 늘 귀를 기울이셔야 하고 바른 선택을 하도록 노력하셔야 하고 늘 기도하며 회개에 힘쓰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자가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의 진의입니다.
여러분 왜 음란 비디오, 포르노 사이트 같은 것이 왜 중독성이 있는지 아세요? foot holder를 내 주기 때문입니다. 도박, 마약 같이 중독성이 있는 것들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잘 참다가 한번 무너지면 와르르 무너지는지 아세요? 마귀에게 foot holder를 내 주기 때문입니다. 그 foot holder를 타고 침투하는 마귀의 세력에 하릴 없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고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깨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리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진리를 아는 만큼 속임수에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 진리의 말씀이 적혀있는 성경을 많이 공부하셔야 합니다. 그 진리를 확실하게 붙들고 있으면 여러분은 사탄의 속임수를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속지요? 몰라서 속습니다.
예를 들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하는 탐욕이 왜 일어납니까? 사탄이 물질주의 효율성, 합리주의 이런 것들로 우리의 가치관을 엉터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왕으로 만들어 줄 물질과 권력이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자들은 그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탐욕이라는 속임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진리를 많이 공부하시고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교회를 택하실 때 priority를 말씀을 잘 가르치는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무슨 아이들 교육시설, 재미있는 프로그램, 구성진 목소리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곳, 목사가 청렴결백한 곳, 생활수준이 훌륭한 교인들, 이런 것 좇아 다니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곳을 택하셔야 합니다. 신자라는 사람들이 행위가 나오지 않는 것은 말씀을 소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약 1:22-24)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그 것이 행함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그 말씀을 대충 대충 가볍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23절에 말씀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본 자와 같다고 하시는데 그 말씀은 당시는 동경(구리거울)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의 윤곽 정도만 보였지 자세하게 얼굴이 안 보였습니다. 그 구절은 말씀을 자세하게 연구하고 바르게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 선한 행위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셔야 합니다. 이 온유함“프라우테스”는 “짐승을 길들이다“라는 뜻도 있지만 ”약을 제대로 처방해서 정량을 먹고 그 약효가 제대로 나타나서 치료가 된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 이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바로 나의 환부를 다 수술해 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말씀을 대하셔야 합니다. 그게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런 확신이 있는 사람이 어찌 말씀을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성경에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해 알게 되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공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저속하고 사악하며 신실하지 못하며 불가능하며 추한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겨 지게 되는 것입니다.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올라가는 사람이 부끄럽다고 옷을 입고 올라가면 어떻게 됩니까? 수술이 시작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적나라한 죄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게 되어 수술 준비를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더러운 죄인들을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세 시제가 있는 것 잊지 마세요. 여러분은 구원받았지만 지금 구원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조각해 가고 계신 것입니다. 환자를 치료하고 계십니다.
그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삼강오륜이나 도덕경 같은 좋은 책들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책들이 여러분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살아서 능력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우리를 바꿉니다. 말씀이 우리의 이성에 들어와서 깊은 사고를 하게 되고 그 깊은 사고와 함께 선택이 이루어지면 행위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행위는 우리 안의 인격의, 마음의 가시적인 나타남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 인격을 송두리째 좌우에 날선 검으로 수술해 버릴 수 있는 성경 말씀 말고는 절대 우리의 바른 선택, 바른 행위가 나올 수 없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을 행하고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의지를 발동해서 바른 선택을 하시기를 노력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 사탄은 맥을 못 추게 됩니다. 여러분, 죄는 사탄과 우리의 죄 성의 합작품입니다. 아주 선하고 착하기만 한 사람들을 사탄이 억지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우리의 죄 성을 사탄이 유혹해서 우리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약 1:13-16)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잠19:3) “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사탄이 죄를 짓기 싫은 우리를 억지로 끌어다가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의 타락한 죄 성을 자극해서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인 양 속이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죄 성은 그 속임수에 넘어가 자발적으로 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께서 유기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탄이 그렇게 끌고 가도록 놔두십니다. 결국 죄인들은 사탄의 유혹과 자신들의 죄 성의 합작품으로 죄를 지어 결국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 안에 욕심이 있다는 것은 “난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죄의 근원입니다. 그 욕심이 인간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사탄은 그것을 자극해서 열 달 뒤에 아기가 태어나듯이 죄를 낳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를 낳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도 분명 하나님의 작정을 따라 사탄의 유혹에 빠져 예수님을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책임을 모면할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사탄이 foot holder로 쓸 수 있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창 45:4-8)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 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 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창 50:18-21) 18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하나님은 사탄이 요셉의 형들의 악함을 자극해서 요셉을 죽일 음모를 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도모를 선으로 바꾸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요셉의 이 말을 듣고 형들이 “거봐 우리한테 고맙다고 해”그러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형들은 그들의 욕심과 사악함에 의해 사탄에게 foot holder를 내 준 것이고 그 세상 주관자는 그것을 이용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탄과 형들을 하나님의 작정에 불러들여 사용하신 것뿐입니다.
(행 4:26-28)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을 행하려고 성에 모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 의도가 전혀 없던 자들을 모아서 십자가에 못 박게 시키신 것이 아니라 원래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작정에 사용하신 것입니다.
(행 2:23) 23 이 예수가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무법자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아노모스”는 “사악한”이란 뜻입니다. 그들은 원래 사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 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착한 유다가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려고 엉뚱하게 마귀 짓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원래 처음부터 악한 자였습니다.
(요 6:70) “7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서 하나는 악마다."
그 사악한 유다가 하나님의 작정에 그의 사악함과 함께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그 자신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마 27:3-4) “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그래서 아더 핑크는 하나님의 작정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사람들이 지은 죄의 필수적인 원인이 아니라 죄악 된 행위들에 대한 미리 결정되고 규정된 한계들이며 안내 점 들”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사탄에게 여러분을 타고 넘을 수 있는 foot holder를 주지 마세요. 이야기가 나온 김에 비슷한 질문을 하나 더 해결하고 가자고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제외한 다른 인간들은 유기하시기로 결정하셨다면 왜 그들이 지옥에 가야 하는가? 인간은 타락한 이후에 선을 향해서는 완전하게 무능해 졌습니다. 그러면 그 무능은 누구 책임입니까?
(창 37:4) “4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 마디도 다정스럽게 할 수 없었다.”
요셉의 형들이 왜 요셉에게 다정한 말을 할 수 없었습니까? 그들에게 자연적인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까? 원래 친절한 말을 할 수 없게 태어난 자들입니까? “요셉을 미워했기 때문에 다정한 말을 할 수 없었다.”라고 성경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덕적 무능력은 자신의 죄 때문이지 결코 다른 이유를 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앞을 볼 수 없는 바디메오와 자신들의 죄와 탐욕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보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둘 다 소경이었지만 바리새인들은 핑계 댈 수 없는 죄 책이 부과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해 놓고 나는 원래 도둑놈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러니 용서해 달라고 하면 그게 용서가 되는 것입니까? 남을 흠씬 패놓고 나는 우리 부모에게서 그런 기질을 물려 받아서 그래, 그러면 용서가 됩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자연적 능력은 여전히 있으나 죄로 말미암아 도덕적 능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인간들은 아담의 죄가 자기에게 전가되었다고 자꾸 생각하니까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성경의 대표의 원리라는 것은 연합의 측면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표로 아담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아담이었습니다.” 아담은 원래 죄를 지을 수도 짓지 않을 수도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죄를 지어 버렸기 때문에 책임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그렇게 타락을 했고 자발적으로 악을 좋아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순진한 양들을 낳기도 전에 모조리 지옥에 넣기로 작정하셨다는 의미로 해석을 하시면 안 됩니다. 왜 구약에서 계속해서 “율법을 지켜라, 안 지키면 죽는다.“라고 강조하십니까? 바로 우리의 실존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며 영원의 문제를 숙고할 수 있는 이성적 피조물이며 인간이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와 맺고 있는 관계와 그 창조주에 대하여 이행해야할 명확한 의무를 규정한 하나님이 주신 기록된 계시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 29:29) “29 이 세상에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숨기시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일도 많다. 그것은 주님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뜻이 담긴 율법을 밝히 나타내 주셨으니, 이것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와 우리의 자손은 길이길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분명 하나님은 작정을 하십니다. 수단과 방법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이행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작정에 반드시 우리의 행위가 수단과 방법으로 동원이 되는 것을 놓치지 마세요.
(행 27:22) “22 그러나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이 배만 잃을 뿐,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31 바울은 백부장과 병사들에게 "만일 이 사람들이 배에 그대로 남아 있지 않으면, 당신들은 무사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왕하 20:6-7) “6 내가 너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키고, 너와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여서,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내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 종 다윗을 보아서라도, 내가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7 그리고 이사야가 왕의 신하들에게, 무화과 반죽을 가져 오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그것을 가져 와서 왕의 상처 위에 붙이니, 왕의 병이 나았다.”
(요일 2:27-28) “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meno 거하게 될 것이다, 직설법 미래) 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menete 직설법 현재)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도 분명 거하게 될 것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해놓고 바로 다음 구절에서 우리보고 “거하라”고 요구합니다. 여러분, 개혁주의 신앙을 오해하셔서 무기력한 숙명론으로 빠지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으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세요. 이왕 기도하실 거 아예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게 기도해 주시면 안 됩니까?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부인을 통해서 베드로에게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자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베드로는 두려움과 염려라는 사탄의 속임수에 속은 것입니다. 속게 놔두십니다. 그러나 그 것은 베드로에게는 유익한 교육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육을 마치자 예수님은 이제 베드로가 사도로서 굳게 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가 바른 선택을 하며 궁극에는 하나님과 이웃을 자신의 몸을 던져 사랑할 수 있게 이끌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옛 습관을 자꾸 죽이세요. 우리 육신은 변하지 않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어야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꾸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배워서 자기 힘으로 해내려 하지 마시고 자꾸 죽으세요. 끊으세요. 그러면 내 안에 이미 들어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그게 성화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이용해서 우리의 옛 사람을 드러내어 보여 주시고 그 것이 바로 우리가 끊어 내야 할 것이란 것도 아울러 보여 주십니다. 그 때 아프지만 끊어 내십시오. 그게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른 선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와 인류를 거기를 향해 끌고 가십니다. 어떻게 해서든 역사는 그리로 흘러 갈 것입니다. 그 안에서 죄인들은 자기의 죄 성을 따라 마귀의 유혹에 이끌려 마음껏 죄를 지을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용인 하에 그들의 훈련을 위해 마귀에게 미혹을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모든 유혹과 시험을 거치면서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안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면류관을 씌워 주시면서 “잘 했다 내 아들아. 잘했다 내 딸아” 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그 신실하신 도움의 손길을 깨달아 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면류관을 벗어 던지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릴 것입니다. 거기에 진리를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노력과 분투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싸우십시오. 분투하세요.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예수 님 곁에서 함께 죽은 강도는 그런 행위도 없지 않았습니까?’ 정말 꼭 행위가 있어야 한다면 그 강도는 뭡니까? 여러분 성경을 읽으실 때는 그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파악하시고 읽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쪽 편 강도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두 강도가 다 예수님을 저주하며 욕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왜 누가만 예수 님 곁의 강도가 구원을 받았음을 기록했을까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한 책입니다. 누가가 그 책을 썼을 때 어떤 주제로 쓴 것입니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이방인 전도에 대한 사상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외된 이들과 죄인들, 사마리아인들, 여성에 대해서도 커다란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구원의 “은혜”에 대해 강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죽는 날까지 죄만 짓다 간 강도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는 것을 누가는 강조한 것입니다. 절대 그리스도인들의 행함을 약화시키는 구절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로마서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는 야고보서가 함께 있습니다.
(롬 4:1-3)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약 2:21-24)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바울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예를 아브라함으로 듭니다. 야고보도 믿음 뿐 아니라 행함이 있어야 하는 성도의 삶의 예로 아브라함을 듭니다. 분명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두 저자가 공히 아브라함의 예를 듭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우리가 여러 번에 걸쳐서 살펴보았으니까 그냥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목적지도 정해주십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고 그를 의롭다 여기십니다.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많은 후사를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이 믿으니 그를 의롭다 칭하십니다. 그러나 22장에 가보면,
(창 22:16-17)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똑같은 축복을 22장에서는 네가 이같이 “행하였기 때문에“ 내가 네게 복을 준다.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분명 믿음으로 거저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시지만 아브라함처럼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100세에 낳은 이삭이라는 집착을 끊어버리는 자’로 만들고야 마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 로마서만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생애에 야고보서만 있나요? 둘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잘 한 일과 못한 일 모두를 선용하셔서 모리아 산의 아브라함으로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대목인지 아세요? 우리가 우리 힘으로 그 구원을 유지해야 했더라면 우리 중에 단 한 명도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주도권을 하나님께서 쥐고 계세요. 사랑의 주도권을 하나님께서 쥐고 계십니다.
우리가 때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자유로운 사랑을 우리에게 퍼붓고 계세요. 그래서 우리는 안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시고야 마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노력하라 분투하라 요구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죄에 눌려 고통당하지 말고 조금 더 기쁘고 자유롭고 행복하시기를 원하시기에 여러분에게 그러한 선한 행위를 향해 달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달려가세요. 힘을 냅시다. 히브리서11장을 보세요. 거기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누구하나 제대로 된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브라함, 사라, 모세 다 하나님이 끌어 가셔놓고 그들에게 공로를 다 돌리시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역사와 인생을 경륜하시는 원리인 것입니다. 감사합시다.
(벧전 5:9)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바짝 정신을 차리고 철저하게 경계하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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