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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헤메라
(하루 동안)
(김성수 목사)
(계 18:4-13) “4 나는 하늘에서 또 다른 음성이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 백성아, 그 도시에서 떠나거라. 너희는 그 도시의 죄에 가담하지 말고, 그 도시가 당하는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라. 5 그 도시의 죄는 하늘에까지 닿았고, 하나님은 그 도시의 불의한 행위를 기억하신다. 6 너희는 그 도시가 준만큼 그 도시에 돌려주고, 그 도시의 행실대로 갑절로 갚아 주어라. 너희는 그 도시가 섞은 잔에 갑절로 섞어 주어라. 7 그 도시가 그렇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사치하였으니, 그만큼 그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주어라. 그 도시는 마음속으로 '나는 여왕의 자리에 앉아 있고, 과부가 아니니, 절대로 슬픔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한다. 8 그러므로 그 도시에 재난 곧 죽음과 슬픔과 굶주림이 하루 사이에 닥칠 것이요, 그 도시는 불에 타 버릴 것이다. 그 도시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9 그 도시와 더불어 음행을 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 세상의 왕들은, 그 도시를 태우는 불의 연기를 보고, 그 도시를 두고 울며, 가슴을 칠 것입니다. 10 그들은 그 도시가 당하는 고문이 두려워서, 멀리 서서, "화를 입었다. 화를 입었다. 큰 도시야! 이 강한 도시 바빌론아! 너에게 심판이 한 순간에 닥쳤구나" 하고 말할 것입니다. 11 그리고 세상의 상인들도 그 도시를 두고 울며, 슬퍼할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의 상품을 살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12 그 상품이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요, 고운 모시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나무와 각종 상아 기구와, 값진 나무나 구리나 쇠나 대리석으로 만든 온갖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몰약과 유향이요, 포도주와 올리브기름과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병거와 노예와 사람의 목숨입니다.”
우리는 지금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관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17장에서 내내 음녀 바벨론에 대한 심판과 멸망에 대해 경고를 한 요한은 18장에서도 역시 그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기술해 나가고 있습니다. 17장과 18장은 똑같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지요? 17장은 정치적 종교적인 세력으로서의 바벨론의 멸망을, 18장은 경제적 세력으로서의 바벨론의 멸망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장에는 당시에 쓰이던 경제 용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공부한 바에 따르면 그 힘과 권세와 재물로 대표되는 화려한 바벨론이 종국에는 귀신이 모이는 곳,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 각종 새들이 모이는 곳으로 참혹하게 변해 버릴 것입니다. 거기서 '모이는 곳' '퓔라케'는 '감옥, 형무소'라는 뜻이라고 했지요? 결국 힘을 추구하는 이 세상 세력들은 더러운 영과 귀신이 모이는 감옥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바벨론은 겉으로는 화려한 붉은 옷과 금과 보석과 진주로 치장을 하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지만 그 이면은 그렇게 처참하고 황량한 사망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세상의 달콤함에 푹 젖어서 자기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미성숙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 백성들아, 거기서 나와라' 'come out of her my people'이라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그게 4절이었습니다. '거기서 나오라'는 부정과거 명령형입니다. 헬라어의 부정과거 명령형은 단호하고 시급하게 순종해야 하는 명령을 하달할 때 쓰는 시제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미적미적 미루거나 오래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듣는 즉시 나와야 하는 시급한 명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공부한 대로 구약과 신약 여러 곳에서 '나의 백성들아, 세상에서 나오라,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 48:20) “20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선파하여 들리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믿음의 여정을 어디서부터 시작했습니까? '갈대아 우르에서 나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굳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야했을까요? 4,000년 전 이미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갈대아 우르에서는 구원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대아가 다른 말로 '바벨론'이지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갈대아, 바벨론에서 나와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의 삶을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믿음의 조상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나일 강 유역의 삼각주 땅인 풍요의 땅 애굽에서 끌고 나와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셨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그 힘과 쾌락의 도시 바벨론의 원리대로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 7:16) 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붙이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고 진멸하고 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의 모든 민족을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모두 진멸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 이외의 세상이 추구하는, 힘의 원리와 자기 배를 위한 우상숭배의 삶은, '너희들의 삶 속에서 씨를 말려 버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 2:6-9) “6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 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이방인들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버리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방인들과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그들의 세상정신과 삶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철저하게 막으십니다. 그래서 ‘너희는 가나안을 진멸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 조심해야 할 이방 땅이 어떤 땅인지 보세요.)
(7-9절) “7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8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9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하나님은 끝까지 이 세상의 삶의 원리를 고수하는 자들을 가리켜 '이방인들과 언약을 맺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으리라고 천명을 하시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그 곳에 있는 모든 족속들을 어린아이도 남기지 말고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정도로 철저하게 우리의 삶을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분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거기서 나오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양들이 오로지 자기 목자의 음성만을 알아듣고 그 음성만을 좇아가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참 목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거기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오는 것을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회개'라고 하지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기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 나옵니다. 이런 것이지요.
(에스라 9:5-6) “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기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이렇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고 그 길에서 돌이켜 나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배만을 위해 살던 그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자신을 비우고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이웃과 하나님을 목숨 걸고 사랑하는 이타적인 삶으로 돌이키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세상 적으로 볼 때 엄청난 손해가 감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하는 의지와 선택이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돌이켜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 이외의 모든 자들과 그들을 움켜쥐고 있는 마귀의 세력 전체가 바로 큰 성 바벨론인 것입니다. 왜 그 전체를 바벨론에 포함시키는지는 제가 전에 설명해 드렸지요?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 날에 그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실 것입니다.
(렘 51:7-9) “7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8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 이로 인하여 울라 그 창상을 인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 9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즉 버리고 각기 고토로 돌아가자 그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음이로다”
(‘내가 기다리고 기다렸음에도 너희가 돌이키지 아니했으므로 이제 우리가 너희를 버리리라‘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바로 이 구절이 오늘 본문 5절에 인용이 된 것입니다.
(계 18:5)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여기서 '사무쳤으며'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동사 '콜라오'는(piled up) '쌓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세상의 힘의 원리에 따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죄로 쌓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동일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롬 2:5)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여러분이 이 죄를 ‘쌓는다’ ‘콜라오’ ‘pile up’이라는 말을 들으시면 무엇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나십니까? 구약의 어디에서 세상 사람들이 죄를 하늘까지 쌓아올린 사건이 있었지요? 바벨탑 사건입니다. 인간들은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하늘에 올라가자’고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면서 벽돌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혼란의 탑 바벨론을 한 번에 다 무너뜨려 버리셨습니다. 그 바벨탑에서 바벨론이라는 단어가 기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나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무섭지요? 오늘날 세상 사람들도 똑같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며,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벧후 3:3-14)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하나님의 백성들)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감출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긴 있는 거야?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악한 세상을 가만히 놔두는 거야? 그 하나님은 힘도 없고 무력한 하나님이거나, 아니면 전혀 우리 인간 세상에 관심이 없는 그런 무관심한 하나님일거야. 우리도 그 정도의 힘은 있잖아. 그러니까 오지도 않을 그런 무관심하고 무력한 하나님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우리의 힘을 축적하여 우리 스스로 행복과 쾌락을 만들어 즐기자’라고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멸망해 버릴 바벨론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힘이 없어 무력하게 지켜보고 계신 것도 아니고 관심이 없어 침묵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막 읽은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두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동안에 자행되는 세상의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기억하고 계신다고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계 18:5)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하나님은 지금 무관심하게 다른 곳에 신경 쓰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이 세상에 세밀하게 간섭하시며 죄인들의 죄를 낱낱이 기억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 온 자들의 죄는 그들이 얼마만큼의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모두 기억에서 지워버리시겠다고 반대의 약속도 하고 계십니다.
(히 10:16-17) “16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렘 31:33-34)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게 바로 우리 성도들의 특권인 것입니다. 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실수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게 백일하에 다 밝혀진다면 전 정말 부끄러워서 천국에서도 얼굴 못 들고 다닐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도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렇게 하나님은 ‘바벨론의 불의함을 모두 기억하시는 반면에’ 회개하고 돌아 온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는 하나도 기억하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좀 전에 읽었던 베드로 후서와 연결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그 죄를 하나도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그 감격스러운 복음을 알아듣게 된 새 언약의 백성들은 어떻게 산다고요? 우리는 그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하나님 앞에 설 때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자로 서기 위해, 열심히 피 흘리기까지 수고를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분명하게 처벌할 것임을 6절에서 이렇게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본문 6절을 보세요.
(계 18:6)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갑절’이라고 번역이 된 ‘디플루스’라는 단어는 ‘두 배’라는 뜻이 아니라 똑같이 닮은 두 사람을 가리킬 때, 혹은 ‘완전하게‘의 의미로 쓰던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in full‘이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러니까 ’갑절로 갚아 주리라‘는 말은 ’정확하고 확실한 처벌을 하리라‘는 강한 의지가 담긴 말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가 행한 그대로 갚으신다는 말입니다.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과를 배나 갚을 것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지요? 그 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반드시 정확하게 처벌하실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한 보응의 논리는 성경 여러 곳에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갈 6:7-8)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마 7:1-2)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렘 50:29) “29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라 무릇 활을 당기는 자여 그 사면으로 진을 치고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라 그 일한 대로 갚고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니라”
이렇게 큰 성 바벨론은 그가 이 땅에서 그 사치의 세력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며 조롱한 만큼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큰 성 바벨론이 저지르는 죄의 내용이 뭐 길래 하나님은 이토록 철저하게 그들의 멸망을 약속하고 계신 것일까? 본문 7절에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계 18:7)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첫 번째 죄목이 뭡니까? ‘자기를 영화롭게 한 것’입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뭡니까?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자기를 올려놓는 것입니다. 소 요리 문답 1번 질문이 뭡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입니다. 답이 뭐였지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 부모님들이 어떨 때 가장 영광스러워 하십니까? 자식이 남들 앞에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설 때 우리 부모님들은 가장 영광스러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장성한 분량으로 잘 자라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낼 때 가장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로서 사랑과 온유와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절제를 뿜어내는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은 가장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저기 봐 내 자식 보여? 야, 저 녀석 이제 다 컸네.’ 이게 바로 아비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런데 큰 성 바벨론의 미혹에 빠진 멸망할 자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의 영광, 자기의 자랑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들의 죄목은 ‘사치’입니다. 이 ‘사치’라는 단어 ‘스트레니아오’는 ‘쾌락을 즐기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살펴 본 ‘자신을 영화롭게 하다’라는 말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스트레니아오’인 것입니다. 본문 12절과 13절을 보시면 그들이 얼마나 사치를 부리며 살았는지 조목조목 그 내용이 나옵니다.
(계 18:12-13)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바벨론의 세력들이 거래하던 물품의 목록입니다. 이 목록들은 크게 일곱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일 첫 번째가 보석류입니다. ‘금, 은(당시 로마는 고급 소파나 욕탕, 식기를 만들기 위해 스페인에서 수입 해다 썼다) 보석(금 은 이외의 벽옥, 황옥, 홍보석, 녹 보석 등 로마는 인도와 홍해 페르시아 만에서 보석을 수입 해다가 치장했다), 진주(당시 고대시대에는 진주가 보석의 여왕이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것으로 취급) 두 번째가 세마포, 자주옷감, 비단, 붉은 옷감 같은 고급 옷감들입니다. (이런 옷감들은 왕족들과 귀족들이 그들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중국과 이집트, 스페인 등지에서 수입 해다가 썼다) 세 번째가 고급 가구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향 목이라는 것이 나오지요? 향 목은 북 아프리카에서 나오는 시트러스 나무를 말합니다. (당시 로마는 그 나무로 테이블을 만들었는데 당시 로마의 여자들이 진주를 그들의 부와 사치의 표징으로 사용했다면 남자들은 이 비싼 향 목으로 테이블을 제작해서 집에 들여놓는 것으로 부와 사치의 표징으로 삼았다) 그리고 상아를 이용해서 그 테이블의 다리나 우상을 제작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당시에 로마에서 얼마나 그 상아를 많이 썼으면 아프리카의 코끼리의 상아가 모자라서 인도에서까지 수입 해다가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유’라는 것은 ‘구리’입니다. 당시에 구리는 값비싼 예술품이나 집의 장식품을 만들 때 쓰던 것입니다. 그리고 ‘옥석’은 대리석을 말합니다. 요즘도 대리석은 부와 사치의 상징이지요.
네 번째가 고급 향료들입니다. 계피, 향료, 유향 이 나오지요? 이것들은 몸에 뿌리는 향수들이기도 하지만 잔치 때 포도주에 섞어 마시는 향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가 고급 음식들이지요. 포도주, 감람유, 고운 밀가루가 나옵니다. 고운 밀가루는 당시 로마의 부자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수입 해다가 먹은 음식입니다. 여섯 번째가 가축과 농기구입니다. 소, 양, 말, 수레가 나옵니다. 수레는 부자들의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입니다. 여기서 ‘종들’ ‘소마토이’는 원래 ‘몸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소마토이’ 바로 이어져 나오는 ‘사람의 영혼들’과 동격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번역을 해 보면 ‘몸들, 심지어 사람의 영혼들’이라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1만 명에 가까운 노예들이 항상 사고 팔리는 노예시장이 있었습니다. 왜 그 사치의 세력이 거래하는 물품의 맨 마지막에 ‘사람들’이 등장하는지 아십니까?
큰 성 바벨론이 사람들을 금과 보석과 진주와 붉은 옷을 가지고 사치로 미혹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목적은 결국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까지도 팔아서 사치를 조장하는 사악한 악의 세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누가, 어떤 나라가, 어떤 제도가 진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합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가 그렇게 살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이웃과 하나님을 목숨 걸고 사랑하는 것’을 사명으로 갖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누구인지 모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마귀의 세력은 겉으로는 사람을 위하는 척, 사람들에게 참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줄 것처럼 속이지만 결국 그들에게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벨론이 거래하는 사치의 목록에 ‘사람의 영혼들’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만큼은 나의 인생에 주어진 나의 가족과 믿음의 형제들과 자매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단은 그러한 형제자매들조차도 나의 유익과 나의 배를 위해, 오늘 본문의 말씀 대로하자면 사치를 위해 미워하게 만들고 갈라서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단의 계략에 절대 속지 마시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물질과 이익과 편리를 조금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을 얻으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며 그들을 위해 나를 비우는 연습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절대 멸망해 버릴 사치의 세력에게 속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보세요? 그리고 말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그 바벨론이 ‘나는 여황이요 과부가 아니라 나는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않으리라’하고 교만을 떱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바벨론의 세력에게 애통과 슬픔으로 갚으시겠다고 천명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아닌 자기 힘을, 자기 주먹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이러한 ‘교만’입니다. 그들은 ‘안상무신, 안하무인’입니다. 항상 ‘나’가 세상의 중심에 있지요. 8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루 동안에 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그렇게 호탕하게 교만을 떨 때 하나님께서 돌연히, 갑작스럽게 그들을 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계 18:8)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여기서 쓰인 ‘하루 동안’ ‘미아 헤메라’는 ‘하루’라는 시간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7절에 동일한 의미의 단어가 쓰였는데 그 구절을 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계 18:17) “17 그러한 부가 일 시간에 망하였도다”
여기서 쓰인 일 시간에가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도적처럼 갑자기 들이닥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재앙으로 그들을 치신다고 하시나요? 사망과 애통과 흉년으로 치시겠답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불살라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지금 그들은 풍요와 쾌락과 이기심으로 자신들을 즐겁게 하라고 부추기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흉년과 사망과 애통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고 거기에 넘어간 자들도 역시 그들과 함께 불살라지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동안’ ‘미아 헤메라’ ‘일순간’에 닥칠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지요? 아까 베드로후서 3장에서 그 준비하는 삶이 무엇을 하는 삶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설 때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자로 서기 위해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의 삶 속에서 열매로 맺어 가는 삶’ 그게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영원할 것 같지만 ‘미아 헤메라’ 우리가 전혀 기대치 않던 날에 일순간에 멸망해 버릴 것입니다. 지금 같아선 ‘난 영원히 가난할 것 같지요? 지금 같아선 난 영원히 못난이로 남을 것 같지요? 지금 같아선 난 영원히 무식하고 못 배운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 것 같지요?’ 아니요. 그 날은, 바벨론의 멸망의 날은 ‘미아 헤메라’ 일순간에 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치의 세력에게 놀아나지 마시고 잘 참아내십시오. 잘 견디십시오. 여러분이 진짜 승리자입니다.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절에서 8절까지를 결론으로 읽고 마치겠습니다.
(살전 5:1-8)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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