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게 하라(III)
/ (1) 시편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김성수 목사)
(엡 3:17)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so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through faith. And I pray that you, being rooted and established in love,
우리는 바울의 기도 중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의 부분을 계속해서 살피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게 하는 방법으로 믿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고 또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점점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말씀에 의해서 라는 것을 이미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오늘부터 몇 주간은 시가 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설명을 해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성경 전체의 맥을 설명해 드리면서 이 시가서가 성경의 가장 중심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 말씀드렸지요? 물론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 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지만 그 중에서 이 시가서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봄으로 해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더욱 더 깊이 각인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작년에 모세 오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두 달간에 걸쳐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음에 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이 제일 어려워하시고 잘 못 읽으시는 부분이 이 시가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시가서도 단순한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권고나 책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 즉, 복음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 드리고 다음 절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성경은 모두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 39권 신약27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중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우리가 토라(모세오경)이라고 부릅니다. 모세가 애굽을 나온 후 광야에서 쓰기 시작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 상, 열왕기 하, 역대 상, 역대 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여기까지를 역사서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전쟁을 치르고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고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하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서를 ‘시가서’라고 합니다. 혹은 지혜 문학이라고 도 부릅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서를 대 선지 서라고 합니다. 다른 선지서보다 책의 양이 많아서 대 선지 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16명의 선지자가 나오는데 그 중 그 네 사람이 쓴 책을 대 선지 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렇게 12선지자의 선지 서를 소선지 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400년 암흑기를 거쳐 예수님께서 오시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4복음서가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 중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내용이 많이 겹쳐있고 기록한 관점이 같다고 해서 공관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 중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이 되었고 그 마가복음에는 없고 마태복음, 누가 복음에만 있는 자료를 우리가 Q자료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의 뼈대 위에다 Q자료의 내용과 마태의 견해를 보탠 것이 마태복음이고 역시 마가복음의 뼈대 위에다 Q자료를 얹고 그 위에 누가의 견해를 보탠 것이 누가 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구조가 전혀 다릅니다. 요한복음은 대단히 헬라 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복음서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예수님의 동생), 베드로 전후서, 요한 1,2,3서 그리고 유다서(예수님의 동생), 요한 계시록으로 66권이 마무리됩니다. 이 전체가 한 가지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한 분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쓰신 한 권의 책입니다. 어떤 주제입니까?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구속의 역사가 기록이 된 책입니다. 그 구원이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그러니까 성경은 전체가 그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창 2:8-10)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여기에서 이리로 가는 것입니다.
(계 22:1-5) “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그래서 성경 신학에는 “종말은 태초의 완성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가 목적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처음부터 요한계시록 22장의 그 새 하늘과 새 땅이었습니다. 어떻게 그 불가능하고 패역한 인간들을 하나님의 속성이 하나도 손상됨이 없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만들어 가시는가를 하나님의 교회에게 설명하시는 책이 바로 성경책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시가서도 그 관점으로 해석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시가서 공부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밝히 확인하게 되는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편은 총 150편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1,000년간에 걸쳐 기록이 된 방대한 분량의 책입니다. 제가 요즘 스펄전 목사님의 시편 강해를 보면서 틈틈이 시편을 읽고 있는데 거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읽을 때가 많습니다. 시편 안에 얼마나 풍성하고 엄청난 하나님의 경륜이 숨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가장 최초로 쓰인 시편은 모세의 시편 90편입니다. 그리고 가장 나중에 쓰인 시편이 포로 귀환시대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쓰인 시편 126편입니다. 총 150편의 시편 중에 75편이 다윗의 시편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3편, 고라의 자손이 11편을 썼고 아삽이 12편, 헤만이 1편, 에단이 1편, 모세가 1편 이렇게 작시를 했고 나머지 46편은 익명입니다. 누가 지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밝혀지지 않은 시편2편이나 95편 같은 것은 신약의 사도행전이나 히브리서를 보면 다윗의 저작인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히 4:7) “7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어떤 날을 정하시고, 이미 인용한 말씀대로, 오랜 뒤에 다윗을 통하여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시 95:8) “8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행 4:25)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시 2:1) “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그러니까 거의 반 이상이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면서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하는 모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교가 됩니다. 그런 고난과 핍박 속에서 결국 하나님께서 아들을 왕으로 삼으시고 그 왕을 통해 그의 백성들이 건짐을 받는 그런 내용이 시편 전편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시편 전체는 메시아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게 될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그들의 삶(이를테면 신앙생활)에 관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 책입니다. 다윗의 한탄하는 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 내시어 그 고난 속에서 영광으로 자기의 아들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승귀 시키시는 것을 우리는 시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시온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시온이 어디입니까?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시편은 궁극 적으로 천국을 소망하고 천국을 기다리는 내용인 것입니다. 시편(2,45,72,110,118)편을 보면 메시야와 그의 통치와 심판에 대해 명확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 다섯 편을 messianic psal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눅 24:44) “4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시편을 잘 보시면 다윗의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이며 우리의 기도이기도 한 것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어진 그리스도인의 삶은 당연히 이 땅을 살다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백과 기도를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는 것을 밝히 알 수 있습니다. 시편은 총 다섯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1권 (1-41)
2권 (42-72)
3권 (73-89)
4권 (90-106)
5권 (107-150)입니다.
보통 1권은 다윗의 사후에 솔로몬에 의해 수집이 된 것이라고 학자들이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2권은 고라 자손에 의해서, 3권은 히스기야 시대의 아삽에 의해서, 그리고 4권과 5권은 에스라, 느헤미야에 의해서 수집이 되었고 최종적인 완성은 에스라 시대입니다. 이 다섯 권의 책은 모두 끝날 때마다 송영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편인 150편은 시편 전체의 송영에 해당합니다. 송영(doxology)은 공식 행사의 처음과 끝에 하나님의 영광을 짧게 찬양함으로써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음악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가 결국은 승리로 끝이 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역시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송영을 부르는 것으로 결국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1권2권에서는 탄식과 한탄의 시가 많은 반면 마지막 5권은 거의 다 찬양의 시입니다. 그것은 시편의 구조 자체가 고난에서 영광으로 이르는 삶, 우리 예수님의 삶,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애가에서 찬송과 감사로 흐릅니다. 보시겠어요? 제가 간단하게 시편의 몇 구절을 들어서 그 전체 내용을 맛을 보여 드리고 조금 자세하게 다루어 드리겠습니다.
(시 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런데 그 복 있는 자는 왕의 아들에게 입 맞추고 왕의 아들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입니다.
(시 2:12) “1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그런데 그 복 있는 자의 삶이 만사형통, 승승장구, 의기양양이 아니라 고난과 수난의 삶입니다.
(시 22:1-2)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러나 참 복을 받은 자는 그렇게 고난과 수난으로 끝이 나지 않습니다.
(시 34:19)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30:3)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하나께서는 그 음부까지 내려갔던 하나님의 백성들, 의인들의 영혼을 끌어내셔서 결국 부활과 승귀로 이끄십니다. 이 세상에서 보면 악인이 잘되는 것 같고 의인들이 지지리 궁상처럼 보이지만 결국 어떻게 됩니까?
(시 150:1) “1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자들의 결국입니다. 성소에서, 하나님계신 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찬양을 하게 되는 자들, 그것이 우리의 참 복입니다. 우리는 시편을 통해서도 우리의 참 복은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계신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아니 그것은 성경 전체가 피력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게 예수님의 삶이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그럼 이제 권별로 자세하게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시편은 마구잡이로 모아놓은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시편의 순서가 전부 하나님의 편집입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록이 된 것이기 때문에 기승전결이 있습니다.
1권을 보면 전부 다윗의 시입니다.(1-41) 시편 1권은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하는 시편들입니다. 여자의 후손 메시야를 보내서 그 백성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구약에서는 그 메시아를 예표 하는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래서 1권은 모두 다윗의 시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다윗과 함께 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1권을 죽 읽어보시면 다윗이 고생 끝에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메시야가 어떻게 오실 것인지를 우리에게 암시해 줍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은 복 있는 자, 즉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시 1:1)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1권의 마지막인 41편을 볼까요?
(시 41:2-12) “1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어떤 말로 시작합니까? 1편의 시작과 똑같이 Blessed is the man 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1권은 하나님께서 그 복 있는 자,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세우실 것을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복 있는 자로 시작해서 복 있는 자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 복 있는 자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인지는 조금 있다가 시편 1,2편을 보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저를 그 원수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저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 이름이 언제나 멸망할꼬 하며 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 중심에 간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광포하오며 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8 이르기를 악한 병이 저에게 들었으니 이제 저가 눕고 다시 일지 못하리라 하오며 9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10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일으키사 나로 저희에게 보복하게 하소서 11 나의 원수가 승리치 못하므로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12 주께서 나를 나의 완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영히 주의 앞에 세우시나이다“
2권은 (42-72)하나님의 언약이 끊어지지 않고 아들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2권의 마지막은 솔로몬의 시편으로 끝납니다.
(시 72:1-2) “1 하나님, 왕에게 주의 판단력을 주시고 왕의 아들에게 주의 의를 내려 주셔서, 2 왕이 주의 백성을 의로 판결할 수 있게 하시고, 불쌍한 백성을 공의로 판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시편 72편은 시편2편의 하나님의 언약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실 그 솔로몬은 왕의 아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상징이지요. 볼까요? 1편에서 복 있는 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는 2편에서 그 아들로 참 왕을 삼으시겠다는 언약을 하십니다.
(시 2:7-12) 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그 언약이 72편의 왕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솔로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72편을 죽 읽어보시면 시편 1편의 복 있는 자의 삶의 내용이 똑같이 등장합니다. 솔로몬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참 복이 있으신 분이라는 것이죠.
(시 1:3)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72:16) “16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하고 그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공동번역] “방방곡곡엔 알곡이 주렁주렁, 레바논산처럼 산꼭대기까지 열매가 무르익고, 땅에는 이삭이 햇풀처럼 피어나게 되리라.”
3권은(73-89) 이제 그 복 있는 자가 고난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나라가 갈립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남 유대가 다 망하고 성전도 파괴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리고 왕도 끊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질문이 생깁니다.“하나님의 언약이 지금도 계속 유효한 것인가? 우리의 불순종으로 끊긴 것은 아닌가?” 그래서 3권의 마지막을 보면 모두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유효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지경에 처해 질 수 있는 것입니까?”
(시 89:38-51) “38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노하사 물리쳐 버리셨으며 39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 40 저의 모든 울타리를 파괴하시며 그 보장을 훼파하셨으므로 41 길로 지나는 자들에게 다 탈취를 당하며 그 이웃에게 욕을 당하나이다 42 주께서 저의 대적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저희 모든 원수로 기쁘게 하셨으며 43 저의 칼날을 둔하게 하사 저로 전장에 서지 못하게 하셨으며 44 저의 영광을 그치게 하시고 그 위를 땅에 엎으셨으며 45 그 소년의 날을 단촉케 하시고 저를 수치로 덮으셨나이다(셀라) 46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47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48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셀라) 49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50 주는 주의 종들의 받은 훼방을 기억하소서 유력한 모든 민족의 훼방이 내 품에 있사오니 51 여호와여 이 훼방은 주의 원수가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행동을 훼방한 것이로소이다"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합니까? 왜 하나님이 훼방 받고 계십니까? 이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4권으로 넘어가면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해 주십니다.(90-106) 3권의 마지막인 89편에서 90편으로 넘어가는데 모세의 시편으로 시작이 됩니다. 모세 때는 어떤 때이지요? 왕이 없던 시대지요? “너희에게 지금 왕이 없고 너희가 광야와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너희를 지키고 계신다. 모세 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지만 그 때에도 하나님은 너희를 이끄셨다.” 모세와 함께 출애굽을 해서 너희가 광야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그 때도 나는 너희의 왕이었다는 내용을 4권에서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4권의 시작인 시편90편이 모세의 시편으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시 90:1) "1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그리고 시편91편이 이렇게 이어집니다.
(시 91:1-16)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너희가 고통을 받음으로 나의 언약을 의심하느냐? 지금도 나의 언약은 시퍼렇게 살아있고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4권입니다. 그래서 4권의 시편에 보면 여호와가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권5권을 보시면(107-150) 그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들어있는 언약백성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삶은 바로 메시야를 고대하면서 예배하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시 107:1-3)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이 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 3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시 108:1-5) “1 (다윗의 찬송 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2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3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4 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 미치나이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찬송을 하고 예배를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확신 속에서 메시야를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 110:1-2) "1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한 언약의 백성들은 아직 그 아들을 보지 못했지만 확신 속에서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시 111:1) "1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시 112:1)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13:1)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어떤 자들이 이런 할렐루야 찬양을 부를 수 있습니까?
(시 120:1) "1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시 121:1) "1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 122:1) "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자기들의 목표 지점이 이 땅이 아니라 성소, 성전 하나님 계신 곳이라는 것을 아는 자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할렐루야 찬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확실하게 자리 잡게 되자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질문과 문제가 다 해결이 됩니다. 왜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나님이 버린 것처럼 고난을 받고 있는지 왜 때로 하나님이 우리를 떠난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든 문제와 질문의 해답이 다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찬송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드십니까? 성전으로 올라가십시오. 여러분, 외로우세요? 두려우십니까? 성전으로 올라가세요.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는 자리로 가세요.
(시 150:1-6) "1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이렇게 시편은 예수님의 애가요, 예수님의 기도요, 예수님의 찬송입니다. 애가에서 찬송, 이 땅의 나그네 삶에서 천국 백성의 삶으로, 고난에서 영광으로 가는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삶입니다. 그럼 시편 전체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시편 1,2편을 살펴보면서 전체적인 복습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전체의 요약이라는 것은 전체 성경의 요약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시편1,2편은 연결이 되기 때문에 같은 한 시편으로 보는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시편 1편을 보시면,
(시 1:1-6)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복 있는 사람과 악인에 대해 묘사를 합니다. "blessed is the man" 이 “모든 시편의 첫 번째 구절”을 우리가 볼 때 우리는 “진짜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궁금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시편 전체에서 아니 성경 전체에서 누가 진짜 복이 있는 자인가를 분별해 내셔야 합니다. 이 땅에서 만사형통하고 승승장구하는 삶이 진짜 복이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복의 내용은 다른 것인가? 꼭 분별하셔야 합니다.
개역 성경은“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번역을 해 놓았지만 원래 감탄문입니다. “오, 복 되도다” “그 사람“ 영어로도 Blessed is the man입니다. 관사가 붙어 있지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어떤 특별한 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되는 자들입니다. 잘 보시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walk) 그리고 거기에 서지 않고(stand) 그리고 그 악인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sit)라고 우리가 죄에 어떤 순서로 빠지게 되는지를 점층법을 써서 표현합니다. 죄를 좇다가 그 앞에 서고 결국엔 그 자리에 주저 않아 버리는 그런 악인의 삶을 살지 않는 자들을 복 있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 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시 1:2)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 말씀이 그 삶에 이루어지는 자들입니다.
(시 112:1,10)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
(시 119:1) "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히브리말로 “하가” “묵상 하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라고 했지요? 그 묵상한 바가 자기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까지가 묵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시편 119편 1절 말씀처럼 “복 있는 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그 행위가 깨끗하며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되는 자입니다. 여기서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되리라는 말은 ”짜라흐 아싸“라는 말인데 ”거기서 나는 모든 것이 성숙해 지리로다.”라는 뜻입니다. 마소라 사본이나 고대 역본들을 보면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 있는 자 들은 악인의 길은 쳐다보지도 않는 자이며 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대로 살아내는 자이며 그의 행사, 그의 하는 일들이 다 성숙한 자들이라는 것이죠. 그런 의인이 우리 인간 중에 있습니까?
(롬 3:10-12)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그러면 그 복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복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러면 그 복 받은 분이 살다 가신 모습대로 살면 복을 받은 자들이겠지요? 예수님이 부자이셨습니까? 예수님이 명예가 있으셨나요? 예수님이 멋진 집이 있으셨습니까? 그 분은 머리 둘 곳도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사람들에게 늘 멸시 당하고 배반당하고 수난 당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복 받은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복” 하고는 완전히 다르지요? 그런데 그 복 있는 자를 열방이 비웃고 그에 대해 분노합니다.
(시 2:1-3) "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십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시 2:4-9) "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비웃는 모습으로 오히려 그에게 분노하게 되는 형국으로 오시게 될 것이지만 그 분이 진짜 하나님이 보내신 참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을 믿고 그분께 피하는 자들이 복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 시편 2편입니다.
(시 2:12) "12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개역 성경에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영어로도"him"목적격이고 히브리어로도 목적격입니다. 그러니까 그 앞의 단어를 받는 말입니다. 그 아들을 받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그 아들을 의지하고 그 아들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분께 피하고 그 분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역시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그런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보세요. 시편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기도이며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임과 동시에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이며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의 기도라는 것은 그리스도로 대표되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이며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 “복 있는 자”이신 메시야가 오셔서 살다 가신 모습 그대로 우리도 그렇게 살다 갈 것이며 그 삶이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고 조롱하는 삶이 될 것이지만 그 삶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복 있는 자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시편 1,2편이며 전체 시편의 내용이며 전체 성경의 내용인 것입니다. 이렇게 시편 전체는 진짜 복 있는 사람은 오히려 고난을 당하고 조롱당하고 약한 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진술합니다. 저에게 늘 위로가 되는 시편을 여러분과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시 73:1-28) "1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2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3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5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6 그들에게는 오만이 목걸이요, 폭력이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7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뜨고 다니며, 마음에 기대한 것보다 더 얻으며, 8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9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10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11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12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13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14 하나님, 주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15 "나도 그들처럼 말하면서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도 주의 백성 가운데 한 사람처럼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16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17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8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19 그들이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고, 공포에 떨면서 자취를 감추며, 마침내 끝장을 맞이합니다. 20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21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22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23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마침내 나를 주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25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26 내 몸과 마음이 다 사그라져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 27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절을 버리는 사람은, 주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께서 이루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
죽을 때도 편히 죽고 얼굴에 기름기가 주르르 흐르는 그 사람들을 복되다고 합니까? 악인들의 모습이 오히려 그렇다는 것입니다. 진짜 복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28절)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자신을 의탁하는 자들이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조금 전에 읽었던 시편 2편의 결론과 같지요? 여러분은 성경 전체에서 이 원리를 찾아내셔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지 않는 자들이 더 잘 되는 것 같고 더 형통해 보여도 하나님을 모르고 승승장구하는 자들은 복 있는 자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에는 시편의 복 있는 자의 모습을 똑같이 이렇게 묘사하고 있지요?
(마 5:3-12)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이게 복 있는 자들의 삶입니다. 그 삶을 그대로 살다 가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렇게 시편 전체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언약과 그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삶에 대해 체계 있고 차근차근하게 설명해 놓은 복음이 적혀 있는 책인 것입니다. 어떠세요. 이제 시편을 막 읽고 싶은 충동이 좀 드세요? 여러분, 성경을 통해 이렇게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조금 씩 조금씩 확인을 하게 되면 우리 입에서 찬송이 그치지 않게 됩니다. 시편의 제 5권에서 “우리의 목적지가 이 땅의 상황이 아닌 저 하나님 계신 성소라는 것을 아는 자들은 원수가 겹겹이 싸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할렐루야 찬양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의 목적지를 잘 확인하십시오.
우리 주의 환경을 영어로 무어라고 합니까? circumstance 그 단어는 라틴어 “키르쿰”과 “스타레”의 합성어입니다. 키르쿰은 “나의 밖에 있는 주위”를 뜻하는 것이고 “스타레”는 “서다”라는 뜻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여전히 나의 밖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골로새서 1장 27절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 이니라”라는 말씀처럼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왜 밖의 환경을 자꾸 바라보십니까? 우리 기독교는 나의 환경을 바꾸어 평안을 얻어내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나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게 되는 만사형통의 종교가 아닙니다. 환경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로 말미암아 내가 변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 잡혀갔습니다. 요셉은 그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피하려다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을 만나 꿈 해몽을 해 주고 술 맡은 관원에게서 나가면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지만 이내 그 술 맡은 관원이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 요셉의 처지를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시 105:17-18) "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다”는 구절 “네페쉬 보 바르젤”은 “내 영혼이 쇠꼬챙이로 뚫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삶을 형통한 삶이라고 합니다.
(창 39:20-23)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성경이 말하는 형통한 삶이라는 것은 환경과는 아무 상관없는 단어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형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거룩을 위해 여러분에게 질병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형통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그리스도인 됨을 위해 여러분의 사업을 망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형통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환경을 바라보시지 말고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확인하세요. 평안은 뭡니까? 어디서 그 말이 처음 나오지요? 사사기의 기드온 사건에서 처음 나옵니다. 당시 미디안이 추수 때만 되면 쳐 들어와서 곡식을 몽땅 빼앗아 가는 바람에 기드온이 몰래 먹느라고 집 안의 포도주 틀에다가 밀을 탈곡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그랬더니 기드온이 대뜸 따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의 이 상황이 이게 말이 됩니까?”
(삿 6:12-13)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하라는 요구를 합니다. 그랬더니 나에게 지금 명령하시는 분이 주이신 것을 나에게 증명하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사자가 제물을 반석 위에 놓고 국물을 부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 막대기를 그 제물에 갖다 대서 그 제물을 불사르려 합니다. 그런데 그 막대기에서 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석에서 불이 나와 그 제물을 태워 버립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명해 줍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을 뵈었으니 이제 자기는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면 죽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너는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안 죽지요? 그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그 곳을 기드온이 여호와 샬롬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평안은 나의 상황이 나아져서 아무 어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환경은 그대로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는 죄에서 구원을 받아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 자라는 것을 깨닫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도 이제 죽지 않는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을 평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환경을 바라보시지 말고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인생에 일어난 놀라운 일을 깨달아 아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성경 전편에 걸쳐서 자상하게 설명하고 계신 그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찬송할 수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골 3:15-17)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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