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막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김성수 목사)
(요 7:1-2) “1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지난주까지 요한복음 6장을 다 마치고 이제 7장으로 넘어왔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10장까지는 하나로 묶어서 이해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7장에서 10장까지의 내용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민속메시아 관에 대한 반론 적 기술로서 참 메시아 상(像)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6장의 내용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있는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도움을 주는 세상의 떡으로서가 아닌 하늘의 생명인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장시간에 걸쳐 확인을 했습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의 접근이기는 하지만 7장부터 10장까지의 내용 또한 세상의 떡이 아닌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설명의 반복인 것입니다.
7장과 8장은 초막절을 배경으로 해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세상의 힘을 주러 오신 메시아가 아니라 초막절이 상징하고 있는 구원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동원하여 설명을 하고 있고 9장에서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시는 이적을 통하여 예수께서 이루시는 초막절 속에 담겨 있는 구원의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을 한 뒤 10장에서는 유대인들이 원하는 세상의 힘을 약속하는 거짓 목자와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예수님께서 친히 설명을 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6장에서 예수님을 유월절의 기능을 대치하는 새로운 유월절로 제시를 한 뒤 7장과 8장에서는 예수님을 초막절의 완성으로 제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6장이 유월절로 시작이 되어 유월절이라는 절기가 담고 있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전체를 그리고 있는 반면 7장과 8장은 초막절이라는 절기의 진행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공부할 내용의 전체적인 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시작 부분인 7장 2절을 보세요.
(요 7:2)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초막절이 시작되면서 이야기도 시작이 됩니다. 14절로 가보겠습니다.
(요 7:14)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 가사 가르치시니”
초막절의 중간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요 7:37)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님께서 초막절이라는 절기의 끝 날에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7장은 이렇게 초막절에서 시작하여 초막절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그 뒤로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잡으려고 하는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그 하속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다음 그 이야기는 다소 엉뚱한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갑자기 7장 53절부터 8장 11절까지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의 이야기가 괄호 안에 묶여 삽입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장 12절부터 다시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괄호 안에 들어있는 7장 53절부터 8장 11절까지의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는 AD400년 이전의 사본(寫本)에는 들어있지 않은 내용입니다. 그래서 괄호로 묶어 둔 것입니다. 그 괄호 안의 내용을 빼고 7장 52절과 8장 12절을 연결시키면 오히려 내용이 잘 정리가 됩니다. 그러니까 8장도 초막절 마지막 날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8장 마지막 절을 볼까요?
(요 8:59) “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이렇게 7장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초막절 마지막 날 예루살렘 성전 강화(講話)가 8장에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7장과 8장은 유대인들의 절기인 초막절과 깊은 관계가 있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요한복음 7장과 8장을 좀 더 확실하고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의 삼 대 절기의 하나인 초막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여러 가지 절기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아주 중요한 삼 대 절기가 유월절과 오순절이라고도 하는 칠칠절(보리가 추수되는 시기라 맥추(麥秋)절이라고도 함) 그리고 수장절이라고도 부르는 초막절(장막절)입니다. 유대 남성들은 이 세 절기 때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신 16:16) “16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우리가 오늘 자세하게 공부를 하겠지만 그 절기들은 모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출애굽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를 지키도록 하신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출애굽이 바로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어지고 완성되었다는 것을 기념하게 함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재차 확인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이루신 그 출애굽 사건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고 감사해야할 사건인지를 각인시키시기 위함이고 세 번째 이유는 그 출애굽 사건이 상징적으로 함의(含意)하고 있는 영적 출애굽이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임을 대망(大望)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이스라엘에게 절기를 지키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절기들을 단순히 율법 준수의 수준에서 지켜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율법 준수를 자신들의 의의 근거로 제시를 하며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스라엘의 절기에 관해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에 관해 개괄적인 사전 지식을 쌓고 다음 시간부터 본문을 한 절 한 절 주해(註解)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일을 기화(奇貨)로 출애굽을 하게 되지요? 유월(踰越, pass over)절에 애굽의 장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일을 기화로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출애굽의 서막(序幕)인 유월절이 시작된 달을 일 년 중의 첫 달로 삼으라고 이스라엘의 달력을 아예 바꿔 버리십니다.
(출 12:1-2) “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유월절은 원래 3월에서 4월 사이에 있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그 달을 첫째 달로 삼으라 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속사에 맞추시고 계신 것입니다. 유월절은 구원의 시작 부분이므로 첫 번째 달이 되는 것입니다.
(레 23:4-5) “4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5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렇게 그 뒤부터 이스라엘의 정월(正月)은 유월절이 있는 달이 된 것입니다. 그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양을 잡아서 머리와 내장까지 완전히 다 먹어버려야 합니다. 다 먹지 못하고 남은 것은 아침이 오기 전까지 모두 태워서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온전한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양을 통째로 전부 먹어야 하는 것은 복음의 통전(通典)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과 함께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어야 합니다.
(출 12:8~10)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무교병은 죄와 죄의 증상들인 고통 속에서의 탈출이 얼마나 긴박하고 급박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주식은 누룩이 들어가 잘 부풀려진 유교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유월절에 먹으라 했던 무교병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것은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일이 누룩을 넣어 빵을 부풀릴 시간도 없이 급박(急迫)하고 긴급(緊急)한 일이었음을 보여주는 시청각자료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무교병은 죄를 상징하는 누룩이 빠진 떡으로 죄에서 건져진 하나님 백성들이 먹는 신령한 떡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다른 말로 긴박한 하나님의 구출작전에 의해 죄에서 건져진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죄와 관계없는 삶을 추구해야 함을 고지(告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어야 했던 무교병은 죄인들에게 있어서의 구원의 긴박성과 긴급성을 가리킴과 동시에 구원을 얻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함께 내포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쓴 나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겪은 고난과 수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돌아오는 유월절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양과 함께 먹으면서 애굽의 고난과 애굽의 수치를 떠 올리며 그 속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러한 죄 된 세상 속에서 빠져 나오는 일이 얼마나 긴박하고 긴급한 일이었는지도 다시금 곱씹을 수 있었으며 그러한 긴박하고 긴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죄 없는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반추하며 감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무교병과 쓴 나물은 항상 죄 없이 죽은 어린 양고기와 함께 먹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세 가지 음식이 의미하는 바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인지가 금방 연결이 되시지요? 쓴 나물과 같은 죄의 고통 속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무교병과 같은 죄 없는 순결한 백성으로 재창조되기 위해서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양의 죽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필연성이 그 유월절이라는 절기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신약으로 가서 구약의 그 유월절이라는 그림이 어떻게 해설이 되고 있는지 찾아보지요.
(고전 5:7-8)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요 1:29)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유월절 어린양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의 쓴 나물을 모두 짊어지고 먹혀버림으로 그들이 순결한 누룩 없는 떡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쓴 나물 같은 세상 속에서 건져진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누룩 없는 자로 새롭게 창조가 되었으므로 누룩 없는 자답게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야 한다고 권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린양의 죽음으로 인해 쓴 나물의 상태에서 무교병의 상태로 재창조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남은 생애동안 죄 없는 순결한 참 무교병, 즉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먹음으로 해서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되어져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유월절이 구원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먹으라고 하실 때 마치 어디론가 급히 떠날 사람들처럼 지팡이를 잡고 서서 서둘러 먹게 하신 것입니다.
(출 12:11)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하나님은 이미 구원이 확보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급히 먹고 어디로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합니까?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사십년 간 통과하여 지나가야 했던 광야에서 했던 유일한 일은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이 되어 가나안으로 입성한 것뿐 입니다. 옛 사람 육십 만 명이 광야에서 모두 죽고 새 사람 육십 만 명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을 기억하시지요?(출12:37, 민1:45-46) 따라서 성도가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얻은 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까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양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유월절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구원입니다.
이렇게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로 말미암아 망해버린 쓴 나물 같은 세상에서 건져져서 하나님 백성다운 자로 성숙되어져 가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영광을 입고 하나님 나라로 입성하는 것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구원을 선물해 주러 오신 우리 주님은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문지를 때마다 나타나 소원이나 들어주는 그런 저급한 만화 속의 괴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나오는 마술사 지니와 같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예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6장에서 바로 그 생명의 떡이신 유월절 어린양이 자신이며 그 누룩 없는 생명의 떡을 먹은 자들은 이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누룩 없는 무교병으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야 함을 주지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6장이 유월절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 유월절로부터 오십일 째 되는 날이 오순(五旬)절입니다.
(레 23:15-16) “15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유월절 다음날부터 칠일동안은 무교절입니다. 그 무교절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그 무교절 중간에 첫 이삭 드리는 날이 있습니다. 그 첫 이삭 드리는 날은 유월절 이후 첫 안식일 다음 날입니다. 신약의 표현대로 하자면 안식 후 첫날이지요.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첫 이삭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유월절에 어린양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묻혀 죽고 안식 후 첫날 부활하여 하나님 백성의 첫 열매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 첫 이삭 드리는 날로부터 일곱 주를 세어 일곱 번째 안식일 이튿날까지가 오십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때를 오순절로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오십이라는 숫자는 일곱 날 곱하기 일곱 주에서 나온 숫자라서 칠칠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그 오순절 날은 보리가 추수되는 때이기도 해서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피로 죽음을 면하게 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라면 오순절은 출애굽 광야 사건에서 어떤 것을 기념하는 절기일까요?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 오순절입니다.(메레디스 클라인) 하나님의 완전수 칠이 일곱 번 반복되는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보아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의해 세상에 성령이 부어지고 하나님 백성들이 추수되기 시작하는 구속사 속에서의 현실을 오순절 속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며 당신의 백성은 당신께서 요구하시는 법을 잘 지켜야 하며 그 법을 잘 지켜낼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얻을 수 있음을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법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내려왔을 때 이미 그 징조가 나타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것을 가리켜 ‘여호와’라 부르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때 모세는 십계명 돌 판을 던져서 깨 버립니다. 그 십계명 돌 판의 파괴는 거룩한 하늘의 것과 죄악 된 세상의 것이 함께 동거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첫 번째 십계명 돌 판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쓰신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출 32:16) “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그렇게 첫 번째 돌 판은 거룩한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 거룩한 것이 우상이라는 죄악 앞에 서자 심판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 삼천 명의 죽음으로 현실화 되어 나타납니다.
(출 32:26-28) “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이렇게 타락한 죄인들은 절대 하나님의 법을 지켜 낼 수 없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불가능하고 무능력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실 계획을 창세전에 이미 세워놓고 계셨습니다. 오순절에 모세에게 주셨던 율법을 이제 직접 그 백성들의 마음속에 새겨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렘 31:31~33)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 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렇게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이 뚫고 들어와 하나님 백성으로 추수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입니까? 바로 신약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입니다. 잘 연결해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셔서 우리 성도들이 쓴 나물과 같은 세상에서 건져졌습니다. 그렇게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첫 이삭 드리는 날인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심으로 첫 이삭이 되셔서 하나님 백성들의 탄생을 예고 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오십일 후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았던 그 때에, 환언하면 본격적으로 보리가 추수되는 맥추절에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의해 하나님의 택한 자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지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추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성령을 부으셔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직접 새겨 버리심으로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법을 지키던 지키지 못하던 하나님의 법을 품고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칭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게 되자 실제로 큰 추수가 일어났습니다.
(행 2:39~41)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시고 베드로가 그 자리에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요엘서에서 예언된 성령 강림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성취된 것이라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그리스도 되심을 설교했습니다. 그 때 삼천 명이 추수가 되었습니다. 오순절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이 죄악 된 세상에 임했을 때에 삼천 명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타락한 인간들이 절대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법이 하나님 백성들 마음속에 새겨지자 똑같은 죄인들 사이에서 추수가 일어났습니다. 역시 삼천 명입니다. 이렇게 오순절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한 하나님 백성들의 영적인 출애굽을 함의하고 있던 절기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세 번째 절기인 초막절은 가을 추수가 끝나고 알곡들을 창고에 저장해 놓고 그러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초막절을 수장(收藏)절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막절은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가 출애굽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초막절 기간 동안 초막을 짓고 일주일간 텐트 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장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레 23:39~43) “39 너희가 토지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 지니라 42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 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 가지 예식을 반드시 행해야 했습니다. 맨 먼저 그들은 이 초막절 기간에 일주일 동안 장막을 짓고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43절에서 본 바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을 때 그들이 광야에서 장막에 거했던 것을 대대로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장막을 짓고 그 곳에 살게 하신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장막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들이 생활했던 장막도 물론 하나님의 지키심의 상징이었지만 이스라엘의 대표적 장막이었던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지키심과 돌보심의 상징이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장막을 치고 초막절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키심과 보호하심에 의해 자신들이 구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풍성한 수확까지도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의 결실이라는 것을 감사하며 보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은 초막절 기간 동안 실로암 못에서 물을 떠다가 성전 제단에 물을 부어 제단으로부터 물이 흐르게 해야 했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을 반석의 생수로 먹이신 하나님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출 17:5-7) 세 번째로 이스라엘은 초막절 기간 동안 성전에 큰 촛대를 세우고 항상 불을 켜 두어야 했습니다. 그것도 역시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앞길을 비추어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의 행위였습니다.(출 13:21-22) 초막절이 담고 있는 그러한 상징적 행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된 것들입니다. 우리가 1장을 공부하면서 확인한 것처럼 요한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예수님께서 장막을 치신 것으로 표현을 합니다.
(요 1:14) “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여기서 ‘거하시매’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스케노오’는 ‘장막을 치다, 천막을 치다’라는 의미라고 했지요? 우리를 쓴 나물과 같은 세상에서 건져 내셔서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참 장막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이 세상 어떤 것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게 지켜지게 된 것입니다.(롬 8:35-39)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온전히 감싸 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 21:3-4)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바로 이러한 천국현실을 초막절이라는 절기가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초막절에 성전 제단에서 흘려보내야 했던 실로암 연못의 물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반석의 물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기갈(飢渴)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부어질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에서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생수를 뿜어내었던 반석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고전 10:4)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스가랴서에도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슥 14:7-8) "7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에스겔서에 보면 성전에서 흘러넘치는 물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좀 더 확실하게 나옵니다.
(겔 47:1-2, 8-12) "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 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잘 보시면 성전에서 흘러넘치는 물이 만물을 소성케 하며 흐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성전이라 하신 것을 우리가 요한복음 2장 공부할 때 배웠습니다.(요 2:21) 그러니까 만물을 소성케 하고 기갈로 죽어야 할 자들을 살려내는 생수를 흘려보내는 반석과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초막절에 성전의 제단에서 흘려보내지는 실로암의 물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어 지게 되는 생명의 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초막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요한복음 7장에서 주님이 ‘목마른 자들아, 내게로 와서 마셔라’하고 자신이 초막절의 완성 자이심을 공공연히 밝히신 것입니다.
(요 7:37-39)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그 상황을 잘 그려보세요.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초막절을 지키느라 부지런히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떠다가 성전 제단에 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앞에 서서 내가 바로 이 물이 상징하고 있는 생수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은 역시 그의 묵시록에서 이 그림도 어떻게 하늘에 완성이 되어 있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계 22:1-2) "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스가랴서와 에스겔서에 예언된 바로 그 이야기가 하나님 나라에 이렇게 이미 완성이 되어 있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이 된 것이죠. 초막절에 성전을 밝히던 촛불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었습니다. 출애굽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밝히고 인도하던 불기둥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불의 정체 또한 선지 서에서 미리 예언되고 있습니다.
(사 9:1-2) "1 전에 고통 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 빛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 42:6~7)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소경의 눈을 밝히는 빛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초막절에 성전 가득한 촛불 앞에서 자신을 가리켜 ‘내가 빛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 8:12)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리고 9장에서는 그러한 생명의 빛으로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구원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그 빛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어떻게 완성이 되어 있는지 볼까요?
(계 21:22~23) "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 22:5)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이렇게 초막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는 하나님 나라를 그 상징으로 담고 있었던 절기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초막절은 창세기 1장에서부터 이미 그림자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창 1:1-3)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제가 창세기 강해 때 설명해 드렸듯이 2절의 ‘운행하다’ ‘라하프’라는 단어는 ‘암탉이 알을 품다’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 단어를 헬라어로 바꾸면 ‘스케노오’입니다. 그 말은 ‘장막을 치다’라는 단어라고 했지요? 지금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이미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 전체를 품어 안으시고 창조를 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3절을 보시면 거기에 빛이 등장합니다. 그 빛은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빛이 아니라 빛이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 전체를 총칭하여 일컫는 단어라 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원리에 의해 하나님 백성의 재창조가 완성이 될 것임을 첫 창조가 미리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장막이 되셔서, 빛이 되셔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동산의 모습이 창세기 2장에 나옵니다.
(창 2:10-15) “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이 모습을 조금 전에 어디서 보셨어요? 요한 계시록 22장에서 보셨지요? 요한 계시록 22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의 그림자가 바로 에덴이었던 것입니다. 장막과 빛으로 생수의 강이 흐르고 보석들(성도)이 빛나는 하나님 백성이 거하는 하나님 나라가(계21:9-21, 22:1-5) 창세기에서 그림자로 보여 지고 있고 초막절에서 힌트 되고 있는 것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그 초막절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는 것이며 그 완성된 초막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미 완성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유월절에서부터 출발해서 초막절까지 내려왔습니다. 절기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의 영적 구원의 모형으로 허락하신 출애굽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일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며 그 출애굽이 상징으로 담고 있는 진짜 영적 출애굽을 대망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절기 속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읽어내지 못하고 그저 율법적으로 그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 자신들의 자랑을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행위를 근거로 하나님은 자기들에게 마땅히 이 세상의 복을 내려 주어야 한다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유월절에 오병이어로 수만 명을 먹이시는 것을 시작으로 유월절의 참 의미를 설명해 주셨던 것이고 초막절에 자신이 빛이고 자신이 생수의 근원이라고 밝히심으로 진짜 초막절의 주인이 누구이며 그 초막절을 누가 완성하는 지를 밝히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9장에서 빛이시며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이 날 때부터 소경인 자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어둠 속에 버려져 있던 자들이 주님의 은혜로 빛으로 나오게 되는 구원을 그림으로 설명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왜 7장과 8장의 배경으로 초막절이 등장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시지요?
정리를 하겠습니다. 유월절은 어린양의 공로로 우리가 쓴 나물 같은 세상에서 건져진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고 오순절은 하나님의 법이 하나님 백성들의 마음속에 새겨져 교회가 탄생하게 되는 성령 강림을 미리 힌트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막절은 이제 완성이 될 하나님 나라의 영화로운 모습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절기들을 통하여 칭의(稱義)에서 영화(榮華)까지의 구원의 서정을 모두 살펴 본 것입니다. 그렇게 이 세 절기가 함의하고 있던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절기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부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절기나 월삭인 안식일은 모두 그림자이고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확실하게 밝힌 것입니다.(골 2:16-17)
그런데 유대인들은 초막절을 지키면서 초막절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는 예수를 죽일 궁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세상 적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는 메시아를 죽이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된다는 것을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7장과 8장의 처음과 끝이 어떻게 시작하고 끝나는지 보고 마치겠습니다.
(요7:1, 8:59) “1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8: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세상은 참 복인 영생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원하는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복을 약속해 주지 않는 메시아를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7장에서 10장까지의 내용을 차근차근 공부하면서 바로 그 내용을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절기가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이해가 가시나요? 다음 주부터는 본문의 내용으로 들어가서 한 절 한 절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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