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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이미 완성된 천상의 교회(II) (김성수 목사)

by IMmiji 2013. 6. 15.

 

 

이미 완성된 천상의 교회(II)

 

(김성수 목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모든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그리고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완성될 하나님 나라가 이미 하늘에서 완성이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본문의 하늘에 있는 바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이 올라오는, 마지막에 없어져버리는 그 바다와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폭풍이 여러분을 흔들려고 할 때 여러분은 함께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가만히 있어’ ‘흔들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는 분들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계 4:1-11) “1 그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내가 들은 그 음성, 곧 나팔 소리와 같이 나에게 들린 그 음성이 "이리로 올라오너라. 이 뒤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 나는 곧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보좌가 하나 놓여 있고, 그 보좌에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3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모습이 벽옥이나 홍옥과 같았습니다. 그 보좌의 둘레에는 비취옥과 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4 또 그 보좌 둘레에는 보좌 스물네 개가 있었는데, 그 보좌에는 장로 스물네 명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5 그 보좌로부터 번개가 치고, 음성과 천둥이 울려 나오고, 그 보좌 앞에는 일곱 개의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일곱 횃불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6 보좌 앞은 마치 유리 바다와 같았으며, 수정을 깔아 놓은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 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7 첫째 생물은 사자와 같이 생기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와 같이 생기고,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과 같이 생기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와 같이 생겼습니다. 8 이 네 생물은 각각 날개 여섯 개씩 가졌는데, 날개 둘레와 그 안쪽에는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다. 또 장차 오실 분이시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9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계셔서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께,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리고 있을 때에, 10 스물네 장로는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서,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계신 분께 경배드리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내놓으면서 11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만물은 주님의 뜻을 따라 생겨났고, 또 창조 되었습니다" 하고 외쳤다.”

 

지난주에 우리는 1절부터 4절까지의 내용을 공부하면서 하늘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천상의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포이츠레쓰 교수님의 'The returning kimg'이라는 책에 보면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본 요한을 공항의 관제탑으로 올라간 사람과 비교해서 설명을 하십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공항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많은 비행기들과 수화물들, 그리고 장비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데 그것들이 결국에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비행기들도 사고 없이 순서대로 착륙하고 이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질서와 성취는 관제탑에 올라가서 공항의 전체적인 계획과 관제사들의 일사불란한 지시들을 보면 금방 '아, 여기서 내려지는 모든 명령에 따라 공항은 저렇게 움직여지는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된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요한은 하늘에 올라가서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의 원형을 본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요한이 성령 안에서 하늘로 올라가서 보았던 그 천상의 하나님 나라에서의 교회의 모습을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이 성령 안에서 본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영광의 모습으로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 주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정결케 된 흰옷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은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가 보좌에 앉아 있었지요? 그리고 그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일곱 영, 성령이 계셨습니다. 거기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그 보좌에서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옵니다. '번개와 음성과 뇌성'하면 떠오르는 구약의 장면이 있지요?

 

(출 19:16-18) “16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섰더니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시내 산에서의 하나님의 현현의 장면입니다. “번개와 뇌성과 나팔소리 같은 음성과 불 가운데” 여호와께서 강림하십니다. 그런데 그러한 여호와의 앞에 거룩하지 못한 것들은 절대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출 19:19-22) “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20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22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그러한 하나님의 면전에 하나님의 교회가 보좌에 함께 앉아있습니다. 여러분의 신분이 어떠한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번개와 뇌성과 나팔 소리 같은 음성과 불, 이러한 하나님의 현현 앞에서는 죄는 심판과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나팔의 재앙이 일어날 때, 일곱 대접의 재앙이 일어날 때도 똑같이 번개와 뇌성과 음성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재앙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은혜로 부르시는 부르심이 되지만 죄인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심판인 것입니다. 확인하고 넘어가지요.

 

(계 8:5)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일곱 번째 나팔을 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볼까요?

 

(계 11:19)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일곱 번째 대접을 쏟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계 16:18) “18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그러니까 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지금 인을 떼시고 나팔을 부시고 대접을 쏟으시는 모습들을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질병과 험악한 범죄들 속에서 볼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것들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지금 심판의 그림자요 모형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실제 심판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님의 진노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모든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그리고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완성될 하나님 나라가 이미 하늘에서 완성이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까 그 모든 것들은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들이 땅으로 쏟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미 이루어진 심판과 구원은 절대 실패할 수 없고 중도에 포기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역사는 성경대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십시오. 하늘의 하나님 나라에서 요한이 보았던 그 완성된 현실이 지금 이 역사 속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죄와 악이 심판을 받고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간섭으로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등장합니다.

 

(계 21:1)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분명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처음 땅과 바다가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완성된 하늘나라의 유리바다는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바다'하면 심판과 저주, 악, 죄 등을 상징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그 바다가 물러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징하는 뭍이 드러나는 것을 '새 창조, 구원'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의 유리 바다는 사단, 옛 뱀이 올라오는 그 바다와는 다른 바다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 앞에 유리 같고, 수정 같은 것이 펼쳐져 있는 장면이 구약의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출 24:9-10)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공동번역] “10 그들은 거기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뵈었다. 그가 딛고 계시는 곳은 마치 사파이아를 깔아 놓은 것 같았는데 맑기가 하늘빛 같았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항상 청명한 바다 같은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성막’에서 하나님의 보좌, 성소로 들어가는 길에 무엇이 놓여있지요?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물두멍이 있지요? 그 보좌 앞의 물두멍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볼까요?

 

(출 38:8) “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유리바다(sea of glass)와 거울로 만든 물두멍,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지요? 그러면 솔로몬 성전의 물을 담는 기구를 만드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왕상 7:23-24) “23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고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만하며 24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박이 있는데 매 규빗에 열개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물두멍처럼 물을 담는 기구를 '바다를 부어 만들었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번에는 에스겔서 1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겔 1:22) “22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그 생물들의 머리 위에는 창공 모양의 덮개와 같은 것이 있는데, 수정과 같은 빛을 내서, 보기에 심히 두려웠으며, 그 생물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 에스겔서에서도 네 생물이 나오고 그 생물들의 머리 위로 창공 즉, 하늘 모양의 덮개 같은 것이 있는데 수정과 같은 빛이 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다시 볼까요?

 

(계 4:6)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 하더라”

 

수정, 유리바다, 네 생물 같은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창세기 1장으로 가보지요.

 

(창 1:6-7) “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의 창조 사건은 복음의 원형이라고 말씀드렸지요?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물뿐이었던 곳에 빛이 들어와 어둠을 몰아내고, 하늘 아래의 물이 사라지고 하늘 위의 물만 남게 되고, 물이 물러가고 뭍이 드러나는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재창조의 사역이라는 것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넷째 날부터는 그 공허함을 채우시고 일곱 째 날에는 드디어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구속사요 복음 아닙니까?

 

그 둘째 날 바로 궁창(하늘이지요)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궁창 아래의 물은 바다라고 부르지요? 그럼 궁창 위의 물, 하늘 위의 물은 무어라고 부릅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니까 실재할 것 아닙니까?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의 하늘에 있는 바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이 올라오는, 마지막에 없어져 버리는 그 바다와는 다른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 보세요. 구원이라는 것, 새 창조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창 1:2)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이러했던 죄인들에게 찾아오셔서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수면을 가르시고 새롭게 창조를 해 내시는 것이 바로 재창조, 구원입니다. 폭풍의 바다 혼돈의 바다, 광란의 바다를 몰아내시고 수정같이 맑고 아름다운 유리 바다로 만드시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것을 누가 이루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복음을 표적으로도 보여주셨습니다.

 

(마 8:25-26)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바로 이 모습입니다. 폭풍의 바다를 이기시는 천지의 주재이신 왕의 모습이지요.

 

(시 29:10) “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주께서 범람하는 물결 위에 보좌를 잡으셨다. 주께서 영원토록 왕위를 굳히셨다. 구약에도 그러한 재창조의 모습이 나옵니다. 어디지요? 죽음의 바다, 저주의 바다를 가르시고 마른땅처럼 건너게 하시는 홍해를 가르시는 사건입니다. 바다가 물러가고 마른 땅, 새 하늘과 새 땅이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재창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물위를 걸으신 것입니다.

 

전에도 자세히 설명해 드렸지만 그렇게 예수님의 표적은 모두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음의 바다, 저주의 바다를 건넌 자들이 출애굽기 15장에서 무슨 노래를 부릅니까? 홍해 바닷가에서 그 유명한 모세의 노래를 부르지요? 아마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찬양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 계시록 15장에 똑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계 15:1-3)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 되시도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유리바다와 거기서 찬양하고 있는 교회인 24 장로의 모습은 성경에 그림자로 모형으로 수없이 나타났던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교회와 그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승리는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우리가 전가 받은 것이기에 오늘 본문 10절 11절에서 24장로들이 그 승리의 면류관을 하나님 앞에 벗어서 다시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계 4:10-11)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이러한 모습은 시편에서도 동일하게 나오지요?

 

(시 115:1) “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수정같이 맑고 아름다운 잔잔한 유리바다를 지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물두멍에서 꼭 몸을 씻고서야 성소로 들어갈 수 있었던 자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단번에 성소로 들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에 여러분에게 일어날 일이 아닙니다. 이미 일어났고 여러분은 요한이 성령 안에서 본 것처럼 그 유리 바다 가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이미 그 폭풍의 바다를 건너서 유리 바다 가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늘의 것을 마음껏 누리고 계신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바다는 없어졌습니다. 계시록21장에 다시 ‘바다가 있지 않겠고’는 바로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바다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전히 폭풍의 바다에서 두려워 떨며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여러분은 폭풍의 바다 위를 걸으시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그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 폭풍의 바다에 휩쓸려 다니시면 되시겠습니까?

 

(시 46:10)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세상의 폭풍이 여러분을 흔들려고 할 때 여러분은 함께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가만히 있어’‘흔들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는 분들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바다를 밟고 모세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실 수 있는 실력을 키우십시오. 그게 오늘 여러분이 성령 안에서 요한과 함께 보신 여러분의 실존입니다. 그리고 네 생물이 나옵니다.

 

(계 4:7)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구약의 다른 곳에 똑같이 네 생물이 등장하는 곳이 있지요? 에스겔 서 1장과 이사야서 6장입니다. 아까 우리가 네 생물 위의 수정 같은 창공이 있었던 것을 본 에스겔서 1장으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겔 1:4,5,10) “4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 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에스겔서 10장에서는 이 네 생물들이 바로 ‘그룹’이라고 설명해 줍니다.

 

(겔 10:14) “14 그룹들은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세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네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15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강 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이사야서 6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사 6:1-4) “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보좌 앞의 그 생물들은 바로 그룹, 스랍 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보좌 앞에 그룹, 스랍이 있는 것일까? 그룹이 처음 등장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창세기 3장이지요.

 

(창 3:24)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룹들이 무엇을 합니까? 에덴동산을 지키게 하십니다. 원래는 누가 했어야 할 일입니까? 아담이 했어야 할 일입니다.

 

(창 2:15)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서 ‘다스리며 지키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솨마르 아바드’라는 말입니다. ‘솨마르’는 ‘보호하다, 세심히 돌보다’라는 뜻이고 ‘아바드’는 ‘섬기다, 보살피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들은 구약에서 제사장들에게 반복되어 사용됩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의 제사장으로 임명이 된 것입니다. 제사장은 다른 이의 죄를 짊어지고 자신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용서를 받는 직분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지키고 깨끗케 해야 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아담은 하와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사죄를 하기는커녕 그 여자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에덴동산의 왕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로 임명이 된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직분에서 실패를 해 버렸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그 에덴에서 쫓겨나 버렸고 그룹들이 그 에덴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에덴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그리고 어디서 또 천사가 나옵니까?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야곱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또 어디서 나타납니까?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여호수아에게 군대 장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가나안은 어디를 상징합니까?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천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룹들은 창조와 재창조의 장면에는 꼭 등장합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던져져 있던 죄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뚫고 들어가셔서 새롭게 창조해 내시고 가나안으로 들여보내시는 그 재창조의 나라를 지키는 자들입니다. 출애굽기로 가셔서 성막을 좀 살펴보시면 조금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출 26:30-31) “30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 지니라 31 너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공교히 수놓아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재창조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 놓은 것입니다. 번제 단, 물두멍, 떡 상, 향단, 촛대가 모두 그러한 의미가 있다는 것은 이미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둘러싸는 성막의 천에 그룹을 새겨 넣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지성소 안의 법궤 위에도 그룹이 있습니다. 언약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막과 성전 전체의 축소판입니다. 그리고 법궤 자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재창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실패를 상징하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 항아리, 그리고 십계명 돌판’을 감싸 안은 법궤 위에 피가 뿌려짐으로 그 실패와 실수를 보지 않으시고 그 위에 뿌려진 피를 보시고 용서를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재창조와 관계된 하나님의 임재의 현장에는 언제나 그룹들이 등장합니다.

 

요한이 본 완성된 하늘나라에 보좌 앞에 네 생물, 그룹들이 있었고 그들이 이사야서 6장의 스랍들의 찬양과 똑같은 찬양을 하고 있었으며 11절에서 24장로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재창조가 완성이 되었으며 우리는 가시적인 이 땅의 교회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완성된 재창조의 진행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계 4:1)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은 이미 하늘에 완성되어 있는 천국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이 땅에서 역사와 인생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는 하나님의 “뜻과 의”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6장부터는 번개와 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 등장하며 하늘의 현실이 땅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입니다. 그 새 창조는 이미(already)이루어 졌지만 아직(not yet)이루어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 새 창조, 구원의 세 시제를 여러분이 꼭 잘 이해하고 계셔야 합니다.

 

이 계시록을 받아든 도미티안 황제의 치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환난과 핍박 속에서 하늘 위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대하면서, 그 보좌가 비어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영광의 모습으로 앉아 계신 것을 보면서 ‘이 모든 상황은 보좌에 앉아 우주를 통치하시며 경륜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이구나’ 하고 안심을 했을 것입니다. ‘도미티안이 아무리 자기를 주님이요 하나님이라고 부르도록 시키고 있지만 우리 하나님이야말로 진짜 주님이시오 진짜 창조주이시다. 로마가 아무리 지금 우리를 잡아먹을 것처럼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필요에 의해(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잠시 쓰고 계시는 목각인형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며, 우리나라는 망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용기와 확신을 얻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상황은 이미 완성이 되어있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보좌에 앉아 계신 여러분을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요 섭리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재창조의 현장에 언제든지 등장하고 있는 그룹들의 날개에 눈이 가득했던 것은 하나님의 불꽃같은 통찰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을 그렇게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절망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십시오.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오히려 여러분은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는 신자의 삶을 보여 주십시오.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절대 잊지 마세요.

 

 

 

 

출처 : 우림과둠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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