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알려진 비밀
(김성수 목사)
(엡 1:7-9)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군에 가면 대외비 1급 2급 3급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이라는 것이 한 부대의, 혹은 한 나라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비밀로 분류가 되고 취급이 되지만 우리 같이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관심 밖의 일입니다. 제가 예전에 군에 있을 때에 작전 참모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군대서 이번에 신형128mm 대전차 자주포를 만드는데 미리 그 화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해야 한다며 그 포탄의 무게와 발사 속도, 그리고 전차의 두께 같은 것을 수치로 주시면서 그 포의 위력을 계산해달라고 부탁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귓속말로 ‘쉿! 당분간 1급 비밀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그까짓 게 뭐 1급 비밀이라고 이렇게 귓속말로 하시나 하고 의아했었습니다. 그건 제가 군 부대에서 쓰는 전차나 포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1급 비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국가의 존폐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라는 것이 고작해야 어느 나라가 우라늄 몇 그램을 농축해서 몇 개년 계획으로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거나 북한이 핵을 몇 개를 보유하고 있나? 정도입니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끌고 가고 계시고 핵폭발이 필요하면 그렇게 하실 것이고 아니면 끝까지 막아 주실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면 꼭 알아야 할 비밀이 있습니다. 그리고 궁금해 해야 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의 비밀인 것입니다.
오늘은 8절과 9절의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그 중에서 9절의 ‘그 뜻의 비밀’을 중심으로 공부를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은혜'로 허락하셔서 그 뜻의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9절의 그 뜻의 비밀은 7절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의 비밀을 알리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알리신 것이 그냥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made known’ 알리시고 알게 하시기까지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고, 이해하게 하시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비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경에서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궁금하시지요? 우리 성도가 꼭 알아야 하는 비밀이 무엇인지.
(골 1:26-27)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2:2) “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딤전 3:16)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엡 3:2-6) “2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로 이 직분을 주신 것을, 여러분은 이미 들었을 줄 압니다. 3 하나님께서는 계시로 그 비밀을 나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미 간략하게 적은 바와 같습니다. 4 그것을 읽으면, 여러분은,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5 지나간 다른 세대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려 주지 않으셨는데, 지금은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성령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6 그 비밀이라는 것은,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함께 약속을 받은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비밀이라 말합니다. 너무 싱거운가요? ‘그게 뭐 비밀이야’ 하는 사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비밀을 알아듣는 사람이 참 드물다는 것을 복음을 전하다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비밀은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야(made known)만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알아듣는 사람이 드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시면서 사람들이 네가 전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그들이 알아 들을까봐 겁난다. 못 알아듣게 만들어라’ 하고 그 것이 비밀임을 알리십니다. 그런데 어떤 한 무리 남은 자들이 그 비밀을 알아듣게 될 것임을 암시하십니다.
(사 6:8-13) “8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9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1)'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칠십인 역에는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는 못하고,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도 알지는 못한다' 10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11 그 때에 내가 여쭈었다. "주님! 언제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이 없어서 집마다 빈 집이 될 때까지, 밭마다 모두 황무지가 될 때까지, 12 나 주가 사람들을 먼 나라로 흩어서 이 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렇게 하겠다. 13 주민의 십분의 일이 아직 그 곳에 남는다 해도, 그들도 다 불에 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남은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3:10-11)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이렇게 그 비밀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있던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살려 놓지 않으시면, 절대 우리의 노력으로 그 비밀을 알아차릴 수 없는 자 들입니다. 절대 죄와 허물로 죽어있던 사람들이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거듭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혼자 성경 읽다가 구원받았다는 사람들 간혹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이미 예정하신 자로서 성령께서 일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루소 같은 사람 보세요. 성경을 백 번을 읽고도 고작 쓴 책이 '나는 왜 그리스도인아 아닌가?'라는 책을 썼잖아요?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유명한 조지 휫필드의 친구였습니다. 조지 휫필드가 그 바쁜 와중에도 벤자민 프랭클린을 자주 만나 복음을 전했다지요? 그럼에도 그는 성경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비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머리 좋은 사람들이 성경의 비밀을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지요.
(마 11:26-27)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그 계시는 세상의 지혜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 2:6-16)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은 많이 배운 자라고 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고자 하시는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전혜린이라는 천재를 아십니까? 고등학교 때 그 분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보며 어떻게 이런 천재가 그렇게 세상을 빨리 포기했을까 생각 했었습니다. 그 분은 31살의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갔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차근차근 읽어보면 그 천재가 인생에 대한 답을 잘 못 알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조르주 상드의 시를 인용해가며 ’생이란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취하게 할 만큼 좋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죽음으로 우리의 인생은 승리할 것이라는 헤세의 ’데미안‘을 예찬하지요.
데미안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고,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 인을 만나고, 교회의 오르간 반주자인 피스토리우스를 만나고, 하면서 인간의 정신적 발전 단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쟁에서 데미안을 만났으나 데미안은 사라집니다. 헤세는 그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인생의 본질을 설명하려 애를 씁니다. 그런데 어떤 쪽에서 접근을 하느냐면 가인의 쪽에서 접근을 합니다. 헤세는 불교신자입니다. 그래서 그의 글을 보면 인간성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설득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합니다. 한 부분만 인용해 볼까요?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자아를 깨뜨려 자아를 해방해야 한다는 불교의 자력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수많은 청년들이 데미안을 품에 안고 전쟁터에서 죽어갔고 자살을 했습니다. 전혜린이라는 천재도 헤세처럼 생의 참 의미를 올바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건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대학 1학년 겨울 방학 즈음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학과 선배님들과 함께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열심히 공부를 했었습니다. 마치 공지영의 ‘고등어’에 나오는 노은림 이라는 사람처럼 말이지요. 마치 영화 미션에서 미개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폭포를 기어 올라갔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폭포 아래로 던져져서 죽은 친구를 묻고, 그 친구가 떨어진 폭포를 기어 올라가는 선교사의 마음으로 집요하게 공부하고 투쟁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장한 이 땅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그것이 우리 손에 잡힐 것만 같았습니다. 사회주의만이 만인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그것이 성경적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절대 그런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수 없으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삼자를 목숨 걸고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제로 투쟁의 현장에서 경험하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유토피아는 세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밝히시지 않으셨던 비밀을 저에게는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나카시마 아츠시’의 ‘산월기’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어떤 욕심 많은 시인이 실종이 되었습니다. 훗날에 친구가 그 시인을 찾아내었는데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호랑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까지는 내가 줄곧 왜 호랑이가 되었을까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왜 이전에 인간이었나 하고 생각하고 있질 않겠나? 나는 나 자신의 과거를 전부 잊어버리고 한 마리 호랑이로 미쳐 돌아다니며 오늘처럼 길에서 자네를 만나도 자네를 잡아먹고 아무런 죄의식도 가지지 못할 걸세, 아아, 얼마나 슬프고 비통한 일인가?’ 어떠세요? 바로 이런 게 인간입니다. 어제의 투사가 오늘 정권을 잡은 자가 되어 자기의 과거를 몽땅 잊어버리고 호랑이가 되어 약한 자들을 잡아먹는 것이 죄인 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생의 참 의미는 오직 하나님만이 계시해 주셔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의 참 의미를 시간 속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비밀을 알게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허황된 꿈을 쫓아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마 11:25)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롭고 슬기 있다고 자랑하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지 않으면 못 알아먹는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어린아이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자 하시면 그들은 바로 그 비밀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야 그 비밀을 비로소 이해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엡 1:8-9)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보세요. 인간의 지혜로는 절대 알아먹을 수 없는 것이 복음이라고 하지요?
(고전 1:18-22)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보시다시피 세상의 지혜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철학에 이해가 깊다고 해서 문학에 조예가 좀 깊다고 해서 절대 알지 못한단 말입니다.
(고전 3:18) “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성경은 참 지혜를 알기 위해서는 미련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주님 저는 진리에 관한한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부디 저를 도우소서.’ 라는 미련한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구원 얻을 수 있는 자들의 자격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는 어떤 자도 교만하게 자신의 지식을 뽐낼 수 없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마 18:3)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렇게 자기의 지혜 교만을 모두 내려놓고 빈손으로 그 앞에 겸허히 선자만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당신의 비밀을 알리시기 위해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지혜는 이렇게 신묘막측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는 그 지혜 (sopia) 뿐 아니라 총명도 하나님께 받습니다. 총명이란 ‘프로네시스’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understanding’이라는 단어로 그 말을 표현하기에는 조금 부족합니다. 프로네 시스는 ‘애정을 갖고 관심을 두고 생각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애정과 이해를 함께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한 ‘프로네시스’‘총명’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쓰인 곳을 몇 군데만 찾아드리지요.
(롬 8:5)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골 3:2)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마 16:23)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여기서 쓰인 단어들이 모두 ‘프로네시스’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두어 생각하게 한다.’는 뜻의 같은 단어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부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전혀 이 땅의 지혜로 그 비밀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과학으로 증명되어지는 것에 점수를 많이 주게 되어있습니다.
라에리안 교라는 것을 아십니까? 외계인을 신앙하는 종교입니다. 그들에게도 요한계시록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 때 그들의 경전을 모두 읽어 보았는데 그들은 모든 성경을 과학으로 풉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 같은 것들을 레이저 광선, 로케트, 개인 휴대 비행장치 등으로 풉니다. 그러니까 지식인들이 그들의 교리에 광분하는 것입니다. 이지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경은 현대의 물리학을 가지고 덤벼들어서 단 한 줄도 풀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과학’이라는 것이 잘못하면 하나님을 그 과학으로 제한 시켜 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세요. 과학은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번개가 치면 그게 하나님의 노여움인 줄 알고 사람들이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피뢰침이 발견이 되자 사람들은 번개를 우습게 여겼고, 번개가 칠 때마다 하나님을 떠 올렸던 그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홍수가 나면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죄를 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댐이 만들어 지고 물을 다스릴 수 있게 되자 또 하나님은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한 발짝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과학은 하나님의 비밀을 밝히는 데에 일조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밝혀지고 이해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밀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알 수 있도록 공개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도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제 성령이 오셔서 눈이 뜨여진 사람들은 알고자 노력하면 더욱 깊이 알 수 있게 되어졌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그 은혜를 어떻게 하면 더욱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까? 역시 방법은 은혜의 수단 ‘말씀 , 성례, 기도’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심오한 비밀의 깊숙한 것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게을리 읽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됩니까? 엉뚱한 열심을 부릴 수 있습니다.
(롬 10:2-3) “2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열심은 결국 열심을 내고도 자기 의를 쌓는 외식을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 한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열심히 그 비밀의 깊이를 알아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비밀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신앙의 깊이를 재는 척도입니다.
(엡 1:15-19) “15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말씀은 이미 하나님을 아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시고, 그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더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비밀이 열렸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강해지고 믿음이 커 가는 것입니다. ‘왜 나는 매일 이렇게 실패할까요?’저에게 그런 질문 하신 분들 여기도 많이 계시지요? 답해 드릴게요. 말씀 공부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 그렇습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도 하나님께서 일곱 개 소아시아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계 2:7)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열심히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다 해 주시지만 우리의 열심과 노력을 방법과 수단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그 비밀을 밝혀 낼 수 없으므로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그 비밀을 깨달을 수 있으므로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듣고 기도하고 듣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오류가 하나님을 불러 놓고 대답하시려고 하면 그냥 가버립니다. 그건 50점짜리 기도입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하니까 어떤 분은 환청처럼 들리는 그런 말씀을 기대하시는데 그런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공부해 놓으면 우리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떠 올려 주십니다. 그게 하나님이 성도에게 하시는 음성의 실체입니다. 부산의 어떤 큰 교회 목사님처럼 진짜 음성이 자꾸 귀에 들리면 얼른 정신 병원이나 이비인후과에 가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 하시지 않으십니다.
자 이렇게 말씀과 기도를 한꺼번에 배우고 할 수 있는,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 갈 수 있고, 그 분의 비밀을 더 밝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소홀히 할 수 있습니까? 예배를 빼먹고 골프 치러 가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하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도 가서 그것이 정말 옳은가 상고한 것처럼 배워야 하고 진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 배우는 것은 좋은데 교리는 필요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교리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골치 아프게 그런 것 배우지 말고 성경만 배우자고 합니다.
교리라는 것은 이천년을 내려오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리를 해 놓은 것을 교리라 합니다. 지도 같은 것입니다. ‘지도가 뭐 필요해, 나가서 직접 여행해 보면 알 수 있지’ 정말 나가면 자기가 지도 그릴 수 있습니까? 수천 년을 공부해서 연구해서 정리해 놓은 것을 지도 삼아 우리가 성경으로 들어가면 해석의 오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도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내가 성경을 기록하여 당신에게 보내는 이유는 당신이 이미 배운 것이 확실한 것임을 알게 해 주려는 것이다’ 고 하지 않습니까? 데오빌로도 누군가로부터 예수에 대해 전해 들었고 배웠습니다. 그것이 교리입니다. 그것을 성경을 통해 확실하게 견고하게 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리가 필요 없다는 것은 난 혼자 대동여지도를 그려보겠다는 것보다 더 심한 만용입니다.
성경만 가지고 자의적 해석을 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지방교회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수십 독 하고도 딴소리 합니다. 자기 혼자 오로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만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배우셔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비밀을 밝히시기로 하셨고 지혜와 총명도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노력이 필요 없다면 지혜와 총명은 뭐 하러 주십니까? 그렇지요? 노력하세요.
정리하겠습니다. 성경은 그 하나님의 깊은 비밀이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그 비밀을 차근차근 알려 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그 수많은 천재들이 모르고 죽어간 하늘의 비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감격스럽지 않으십니까? 성경은 바로 그 비밀인 예수에 관해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비즈니스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우리 아들이 대학에 붙을까 떨어질까?’ 이런 것 찾지 마세요. 그런 것은 한 줄도 없습니다.
우리는 자꾸 이 땅에서 무엇이 되어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겠다고 사기를 칩니다. 그게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까?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하지 않습니다. 사기 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대통령 만들어서, 장관 만들어서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자녀’를 만들고 싶으신 것이지 다른 것에 관심 없으십니다. 그 비밀을 전해들은 자로서 더욱 더 그 비밀을 깊이 공부하고 하나하나 까보면서 나에게 이런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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