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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선을 향한 타락의 작정 (김성수 목사)

by IMmiji 2013. 6. 15.

 

 

선을 향한 타락의 작정

 

(김성수 목사)

 

 

(창 3:1‐24) “1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4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5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8 ○그 남자와 그 아내는,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와 그 아내는 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9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부르시며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11 하나님이 물으시기를 "네가 벗은 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하시니, 12 그 남자는 핑계를 대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13 주 하나님이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쩌다가,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 14 ○주 하나님이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네가 저주를 받아, 사는 동안 평생토록 배로 기어다니고, 흙을 먹어야 할 것이다.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16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17 ○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18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너는 들에서 자라는 푸성귀를 먹을 것이다.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20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하였다. 그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21 주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다. 22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보아라,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 23 그래서 주 하나님은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쫓으시고, 그가 흙에서 나왔으므로, 흙을 갈게 하셨다. 24 그를 쫓아내신 다음에, 에덴 동산의 동쪽에 그룹들을 세우시고, 빙빙 도는 불칼을 두셔서,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지난주에는 창세기 3장 15절이 담고 있는 복음의 내용에 관해 자세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는 그 창세기 3장 15절속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한 패거리가 되어버린 여인과 뱀을 원수로 만드시겠다는 약속을 하심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하는 여자를 반드시 하나님의 편으로 만드시겠다는 은혜의 언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창세기 3장 15절의 언약 안에는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이루시는 분도 나타나 있었는데 그 분이 누구였지요? ‘여자의 후손’이십니다. 그 여자의 후손은 지난주에 공부했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혼인잔치를 치를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하는 교회의 필요에 의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기에, 여자인 교회가 예수를 낳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를 ‘여자의 후손’이라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적인 상징과 역사적인 현실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은 영적으로 역사적으로 모두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실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을 실제로 가나안 땅에 집어넣으십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의 의미가 교회가 낳게 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구이지만 그 분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여자에게서 나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하신 언약을 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를 추적해 보면 그저 ‘경이롭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 15절에서의 당신의 약속을 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 가시는지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속에 너무나도 확연하게 나타나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두 개가 나옵니다. 첫 번째가 마태복음 1장의 족보이고 그 다른 하나가 누가복음 3장의 족보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거쳐 예수님의 계부인 요셉으로 흐르는 족보이고,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에서 시작해서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로 그리고 솔로몬의 형 나단을 거쳐 아담과 하나님에게까지 이르는 족보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의 족보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담으로부터 여자의 후손을 낳은 여자를 탄생케 하시는 지 확연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이고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입니다.

 

성경은 이 두 사람의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담으로부터 죄를 지어 저주받은 남자와 관계없는 여자의 후손을 준비하시는 지에 관한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 성도들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잘 보시면 그 두 족보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과 솔로몬의 형인 나단에서 둘로 갈립니다. 마태복음의 요셉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은 솔로몬의 후예들이고 누가복음의 마리아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은 솔로몬의 형인 나단 왕자의 후예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시기 위해 어떻게 태초부터 역사를 끌고 가시는지 잘 보세요.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원래 법적으로는 솔로몬의 형인 나단이 왕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나단이 솔로몬의 형이니까요. 그러니까 나단의 후손은 법적인 왕통인 것입니다. 만일 솔로몬이 자식이 없이 왕위를 물러나게 되고 그 형인 나단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법적으로 나단의 자식이 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법적인 왕통입니다. 그러니까 나단의 후손인 마리아는 법적인 왕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실제적으로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이어 받았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의 후손은 법적인 왕통은 아니지만 실제적 왕통이 된 것입니다.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실제적 왕통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 할 뿐 아니라 사무엘 하7장의 다윗의 언약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다윗 왕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영원히 망하지 않는 다윗의 위를 이으실 진정한 왕으로 오셔야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법적인 왕통과 실제적 왕통의 후손들 사이에서 탄생케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요셉의 족보를 보시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수님을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시는 지 그 분의 지혜와 섭리가 놀랍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족보에는 왜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도 나타나 있습니다. 잘 보시면 그 마태복음의 족보 중간에 여고냐라는 왕이 나옵니다. 그 여고냐라는 왕은 패역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 자손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다윗의 위에 앉을 수 없게 됩니다.

 

(렘 22:28‐30) “28 이 사람 고니야(여고냐)는 깨져서 버려진 항아리인가? 아무도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는 질그릇인가? 어찌하여 그는 자신도 모르는 낯선 땅으로 가족과 함께 쫓겨나서, 멀리 끌려가게 되었는가? 29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주의 말씀을 들어라. 30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이 사람을 두고 '그는 자녀도 없고, 한평생 낙을 누리지도 못할 사람'이라고 기록하여라. 다윗의 왕위에 앉아서 유다를 다스릴 자손이, 그에게서는 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여고냐의 일곱 아들 중에 누구도 왕좌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대상 3:17‐18) “16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 아들 여고냐, 그 아들 시드기야요 17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은 그 아들 스알디엘과 18 말기람과 브다야와 세낫살과 여가먀와 호사마와 느다뱌요”

 

여고냐와 그 일곱 아들들은 모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렇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실제적 왕통인 솔로몬의 후손이기는 했지만 여고냐 때에 저주를 받아 왕이 될 수 없는 족보에서 탄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셉의 아들로 오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고냐 이후로는 그 족보에서 왕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잉태 되셔서 요셉의 양자가 되어야 실제적 왕통의 자격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그 족보의 후손들은 왕위에는 오를 수 없지만 실제적 왕통의 후손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족보의 육신 적 후사가 되시면 안 되지만 양자로서 실제적 왕통을 계승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주님의 왕통 계승이 중요한가? 그 이유는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사무엘 하 7장에서 우리 주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그 왕위를(물론 상징적 의미이지만)영원토록 지속하시는 분으로 약속이 되었기 때문에 그 분은 육신 적으로도 왕으로서의 자격을 반드시 갖추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셉의 육신 적 자손으로 오시게 되면 주님은 저주받은 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것이 되기 때문에 주님은 성령으로 잉태 되셔서 요셉의 양자가 되심으로 다윗의 실제적 왕통의 자격만을 부여받게 되시는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솔로몬의 형인 나단으로부터 이어지는 법적인 왕통의 계승자인 헬리와 마리아의 후손, 즉 여자의 후손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법적 왕통의 자격도 갖게 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은 법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사무엘 하 7장의 다윗의 언약을 만족시키신 분이셨고 영적으로도 창세기 3장 15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하나님의 언약을 만족시키신 진짜 왕이신 것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왕으로 오셔야 하는 주님께서 어떻게 저주받은 자들의 후손으로 오시지 않고도 인간으로 오실 수 있으며 어떻게 여자의 후손이 되실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제적, 법적 왕통을 계승하는 다윗의 왕위를 잇는 왕이 되시는지, 역사에 담겨진 하나님의 지혜가 놀랍지 않으세요?

 

보시다시피 창세기 3장 15절의 여인의 후손이라는 단어 속에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가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역사라는 것은, 그리고 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하나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성경은 마태복음의 족보를 통해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저주를 받은 인간의 혈통에서 오신 분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잉태되어 이 땅에 내려오셔야 하는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누가복음의 족보를 통해서는 ‘메시아는 인간을 내포하고 대신하셔야 하는 분이시기에 (내포적 대신, inclusive representative)사람으로 태어나셔야 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창세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해 놓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다른 말로 여자의 후손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인류 전체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 것이고 다시 그 여자의 후손을 이 땅에 보내셔서 영원한 심판을 하시기 위해 지금도 이 역사를 끌고 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인간의 역사는 탁월한 연출가이신 하나님에 의해 연출되고 있는 장대한 드라마인 것입니다. 그 드라마의 제목은 ‘내 자녀 구출작전’입니다. 이 인류의 역사가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하나님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이라는 증거는 오늘 본문 1절에도 나옵니다.

 

(창 3:1) “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제가 이번에 이 창세기 3장 1절을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다가 아주 특이한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그 단어는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이라는 어구에 나오는 ‘지으신’ ‘아싸’라는 단어입니다. 그 '아싸‘라는 단어는 ’만들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임무를 맡기다‘라는 뜻도 가진 단어입니다. 왜 굳이 인간을 타락시킨 ‘뱀’을 묘사하는데 그 ‘아싸’라는 단어를 함께 썼을까요? 그 단어는 ‘뱀‘이 ’여호와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인 것입니다. 달리 번역을 하면 그 뱀에게 여호와에 의해 어떤 임무가 맡겨졌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또 한 번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 속에서 지금 철저하게 하나님께 사용되고 있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사단이 타락할 것을 모르고 계셨을까요? 아니 사단이 타락을 할 때 창조주이신 그 분께서 피조물들의 반란을 일거에 진압을 하실 수가 없으셨을까요? 사단이 타락을 하고 반란군을 소집할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쿠데타가 무서워 구중궁궐에 숨어 계셨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스스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어떤 분이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원래는 하나님께서 사단을 하나님 나라의 찬양 대장으로 쓰시기 위해 창조하셨는데 사단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마귀가 된 것이라면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과 계획 하나 지켜내시지 못하는 이 빠진 호랑이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위해 만드신 것은 반드시 그 목적에 맞게 쓰십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서 사단은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어지기 위해 준비된 소품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이 되었을 때 가차 없이 용도폐기를 시켜 버리시는 것입니다.

 

(계 20:9‐10) “9 그들은 지면으로 올라와서, 성도들의 진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시를 둘러쌌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10 그들을 미혹하던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로 던져졌는데, 그 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히, 밤낮으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0 장에서 마귀를 유황 못에 던지실 수 있으신 분이 사단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바로 유황 못에 넣지 않으시고 인간까지 타락하게 만드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리고 이 역사 내내 인간들을 미혹하게 하고 괴롭히게 놔두시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쏟아 부어 겨우 생기, 즉 생명의 기운을 가지고 생명을 지각하고 알아보고 추구할 수 있는 존재 정도가 아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영원히 당신과 함께 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 내시기 위해 사단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사단의 타락과 인간의 타락을 허락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만일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계속해서 에덴동산에 살며 자손을 낳아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면 지금 이 세상이 천국이 되었을까요? 아마 오늘날의 세상은 모든 인간들이 언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타락하게 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안 따먹고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러한 불완전한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서 은혜로 만들어 내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목표로 헌 하늘과 헌 땅을 창조하시고 사단과 인간의 타락을 당신의 작정 속에 두셨던 것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을 때 하나님이 못 보셨을까요?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게 전지전능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할 때 그 것 하나 못 막으신다는 말입니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작정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놔두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인간이 타락을 함으로 해서 다시 계획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표지점은 바로 그 새 하늘과 새 땅이었던 것이고 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이끄시기 위해 잠시 잠깐 사단과 이 세상이 소품으로 쓰여 지고 있는 것입니다.

 

(딤전 5:21)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여기 보시면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러면 사단과 그 무리들은 어떤 천사들입니까? 택하심을 받지 못한 천사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단을 포함한 타락한 천사들을 의도적으로 택하심에서 제외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게 되면 어떠한 삶을 살다가 어떠한 결과를 맞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도구로 쓰시는 것입니다. 그 말은 다른 말로 그들은 타락하여 그들의 역할을 다 하도록 하나님께 택해진 자들이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택하셨고 그들에게 어떤 것을 설명하시고 설복시키시기 위해 인간의 타락을 허락하셨고 선택에서 제외된 수많은 죄인들을 죄의 자녀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잠 16:4) “4 주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으니, 악인은 재앙의 날에 쓰일 것이다.”

 

(요 6:70) “7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서 하나는 악마다."

 

하나님은 마귀 역할을 할 유다도 당신이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롬 9:21‐22) “21 토기장이에게는, 흙덩이 하나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22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보이시고 권능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시면 서도, 멸망 받게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들에 대하여 꾸준히 참으시면서 너그럽게 대해 주시고,”

 

그러니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작정과 의중을 벗어나 우발적으로 생겨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마귀나 죄인들을 그렇게 쓰시다가 공(空)으로 무(無)로 혹은 허(虛)로 없애버리시면 되지 왜 불쌍하게 굳이 지옥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들을 그 곳에 넣으시는가? ‘그런 생각이 안 드세요? 그게 바로 인본주의에 빠져있는 죄인들의 죄 성에서 나오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은 그 인간을 홀대하는 하나님마저도 불의 한 분으로 몰아 부칠 수 있는 존귀한 존재라는 다분히 인본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질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에게서 하나님께서 불어 넣어주신 ‘생기‘’니스마트하임‘이 빠져 버리면 무엇이 됩니까? 짐승입니다. 그렇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 있을 때에만 ’아담‘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 상태를 ‘죽었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엡 2:1) “1 여러분도 전에는 범죄와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골 2:13) “13 또 여러분은 범죄와 육신의 무할례로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아담에게 저주를 하시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시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명력이 떠나간 인간의 상태는 그냥 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그냥 시체에 불과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흙을 지옥 불에 던지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으신 가요? 시체들을 지옥에 던지시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으세요? 여러분, 여러분 중에 ‘하나님은 왜 짐승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지 않으실까?’ 로 고민해 보신 적 있으세요? 우리는 창세기 2장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생기를 받지 못한 인간은 그냥 짐승에 불과하며 흙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배웠잖아요.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고앉아 버린 첫 번째 아담의 후손입니다. 인간들은 여전히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인본주의 사상에 젖어 있기 때문에 이 소중한 인간을 자기에게 순종시키려하고 심지어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지옥에까지 넣어 버린다고 하는 그 하나님이 못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 속에서 그 것을 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스스로 왕이 되어 살려고 하는 천사들과 인간들을 지옥에 넣어 버리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서운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유다에게 ‘네가 나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인류의 역사와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지금부터 제가 잘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은 창세전에 당신과 함께 영원히 함께 할 당신의 백성들을 만드시기로 계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짐승들이나 로봇처럼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존재가 아닌 자신의 인격과 의지를 발동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의뢰하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찬양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친구들로 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특별하게 다른 뛰어난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언제든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스스로 계획하시고 스스로 판단하시고 스스로 실행에 옮기시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인간은 언제든지 자기를 왕으로 삼고 자기 스스로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하고 계획을 하고 싶은 욕망을 품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행위를 ‘선’의 반대말인 ‘악’이라 규정하셨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실제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에게 일어난 일은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된 것’뿐이었습니다. 본문 22절을 보세요.

 

(창 3:22)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이게 그렇게 큰 잘못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된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이 길래 하나님께서 저주를 하시고 에덴에서 쫓아내신 것일까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시는 것을 선하다 하고 하나님께서 악하다 하시면 그게 악한 것이라고 따르면 되는 피조물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도록 지어진 절대 의존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이 탁월하고 뛰어난 존재가 기어코 ‘나도 하나님처럼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싶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하나님처럼 자기들이 선과 악을 규정하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게 인간들이 만들어 낸 도덕이요 윤리인 것이지요. 이제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그 분의 명령은 그들 앞에서 무색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자기 자신들이 스스로 선과 악을 규정하고 판단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죄’이며 ‘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인간이 그렇게 하나님처럼 살기 위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이 우주의 중심에 앉으려고 할 때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지 이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보여주시고 결국은 그 삶이 어떻게 결론이 나게 되는 것인지를 묵시를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쟁과 분열과 갈라짐의 역사를 보면서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 되려는 인간들의 삶이 얼마나 악하며 고통스러운 삶인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요즘 사람들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몇몇 사람들의 이름들을 거명하면서 분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자주 봅니다. 조승희, 김승연, 송 아무개 이런 이름들이 요즘 신문 1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이름들입니다.

 

조승희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무차별 총격으로 32명의 학우와 교수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 앞에는 ‘희대의 살인마’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닙니다. 그가 왜 그러한 살인을 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의 살해 동기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앞 다투어 그 동기들을 마구 추측을 해서 ‘여자 친구와의 불화, 우울증, 외톨이적 성격‘등을 그 이유로 내어놓았습니다. 심리학적 분석에 의하면 사람들은 그렇게 원인을 분석한 후 그 원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혹은 그 것을 받아들이고 내재(內在)화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십니까? 왜 사람들이 그렇게 조승희의 살해 동기 원인 분석에 매달리는지? 사람들이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의 원인 분석을 열심히 하는 목적은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과 나라는 인물을 차별 화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원인 분석을 해 놓으면 나와 그 사건을 일으킨 자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입증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서 안심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작업을 통해서 ‘나는 살인마도 아니고 우울증 환자도 아니고, 스토커도 아니고, 외톨박이도 아니다. 따라서 나는 그와는 완전히 다른, 이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건강하고 상식적인 인물이다’라는 확인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를 미워하는 것조차 ‘살인’을 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 서면 우리는 모두 다 조승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생 33명만 죽이셨나요? 저는 330명도 넘습니다. 저는 그 많은 사람들을 제 마음속에서 난도질해서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신의 부끄러움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가리려 합니다. 심지어 망각이라는 도구까지 동원해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지를 애써서 가립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건을 저지른 사람을 그렇게 천하에 둘도 없는 악당으로 설정해 놓고 그와 나와의 구별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바로 ‘타락한 인간의 자기 부끄러움 가리기’라는 추악한 죄인 것입니다. 그러한 ‘나는 너와는 다르다’라는 구별행위 자체가 바로 살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채 오늘도 타락한 죄인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는 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제주도에서 한 여자 초등학생 아이를 성추행하고 살해를 한 송 아무개의 이름 앞에도 무서운 수식어가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천인공노할 인간’ 그 때도 역시 사람들은 그 송 아무개와 자신을 분리하고 구별해서 자신을 안전하게 구성한 후에 그 송 아무개를 잔인하게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다름을 증명하려는 열심을 부렸습니다. 사람들의 그러한 ‘자기 가리기’의 열심 속에서 송 아무개라는 사람은 그저 돌연변이 취급을 받습니다. ‘백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악한 인간’ 그러나 마음속에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을 한 자라는 주님을 말씀 앞에서 우리는 또 다시 모조리 송 아무개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즘 신문의 톱뉴스는 자기 아들의 복수를 대신 해 주겠다고 아들을 때린 사람들을 불러 그 아들에게 맞은 만큼 때리게 했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자본이 곧 권력이라는 자본주의의 실상이 고스란히 증명이 된 사건입니다. 제가 그 사건을 대하면서 만일 제게도 그 사람만큼의 재산과 힘이 있는데 제 아들이 불량배에게 맞아서 눈이 찢어져서 왔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아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저는 제 아들을 때린 사람의 눈을 뽑아 버렸을 것입니다. 저의 DNA 속에도 돈 있고 힘이 있다면 그러고도 남을 본성이 아주 똑같이 입력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가리켜 ‘나보다 못난 놈’ 혹은 ‘나와는 전혀 다른 악당’이라는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면 언제든지 조승희가 될 수 있는 존재이며 언제든지 송 아무개가 될 수 있는 존재이고 언제든지 김승연이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뭐 대단한 사건인양 호들갑들을 떠는 모습이 제 눈에는 너무나 유치한 연극들로만 보입니다.

 

자신들도 윤리와 도덕이라는 방패 뒤에서 마음속으로 늘 살인하고 강간하고 복수를 하고 있으면서, 그렇게 자기들 속에서 매일 매일 쉬지 않고 일어나는 일상이면서 마치 자신은 그러한 저급한 인간들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느라 짐짓 놀라는 표정들을 짓는 것을 보면 가증스럽기도 하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저주받은 아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승희, 김승연, 송 아무개, 김성수……. ‘이 모든 사람들은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세포들인 것입니다. 조승희가 바로 타락한 나이고 김승연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나이고, 송 아무개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한 나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악하고 더러울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지요.

 

이렇게 우리는 이 타락의 역사와 그 역사가 토해 내는 사건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떠나 사는 자들의 삶이 얼마나 악하며 고통스러우며 더러운 것인지를 경험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지옥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하나님의 묵시를 통해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만을 위해 자신들의 노력으로 사는 삶이 결국 지옥이며, 동시에 지옥으로 향하는 삶임을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된 천사들과 인간들, 사단 마귀와 죄인들이 영원한 지옥에서 불타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질서를 떠나게 되면 그 삶이 어떻게 되는가를 경고하시는 하나의 장치이며 그러한 경고 장치를 위해 사단과 죄인들이라는 소품이 동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들을 섬기게 될 택함 받은 천사들 이외에 다른 모든 도덕 적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고와 설득과 설명이라는 필요에 의해 하나님께 쓰여 지는 소품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만 쫓아다니시면서 그들만을 챙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묵시를 깊이 알면 알수록 타락한 인생의 결과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이며 그 속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인식하고 조금씩 조금 씩 이 타락한 세상에서 발을 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속에서 사단과 인간의 타락을 의도하셨고 그러한 인간의 타락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폭로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은혜로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이 원하시는 당신의 자녀로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작정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뱀' '아싸'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죄의 조성 자라든가 악의 조성 자로 보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선과 악에 대한 개념 정리를 잘 해 두지 못하면 하나님을 죄와 악의 조성 자로 몰아 부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과 악에 대한 개념 정리를 잘 해 두어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고요.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을 하기도 전에 이미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에게 주셨다는 것은 인간이 타락을 하기 전에 선과 악의 개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되기 전부터 선과 악의 개념이 있었다는 것은 선과 악이라는 것은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행위이기 이전에 보다 근본적인 정의에 의해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미 아시지요? ‘선’이라는 것은 여러 번 설명해 드렸다시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의도하신 것이 그 분이 세워 놓으신 질서 속에서 잘 실행되어지고 유지되어지는 상태를 ‘선’(토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피조물들과 그들을 붙들고 있는 질서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에 완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의도대로 되어지는 것이 ‘선‘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에서 벗어나는 것을 ’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선과 악의 기준이요 판단 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의도하시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단이 타락을 하고 죄의 원흉의 역할을 하게 하신 것이나 그 사단이 인간을 미혹하여 인간을 타락시킨 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분의 백성답게 만드시기 위한 의도에서 계획되어진 것이라면 그게 선입니까 악입니까? 하나님은 ‘선’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계획하시는 모든 것은 ‘선’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는 어떠한 것도 ‘악’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님께는 해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부족들을 어린아이도 남겨두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세상의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그러한 명령이 ‘선’입니까? ‘악‘입니까? 살인 교사는 분명 악이지요? 하나님께서 직접 비를 내리셔서 기식하는 모든 인간과 짐승들을 다 죽여 버리신 것이 선입니까? 악입니까? 인간들의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집단 학살은 분명 ‘악‘입니다. 거짓말은 ‘선’입니까? ‘악’입니까?

 

(삼상 16:1‐2) "1 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울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내가 이미 그를 버렸는데, 너는 언제까지 사울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냐? 너는 어서 뿔 병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길을 떠나,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거라. 내가 이미 그의 아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한 명 골라 놓았다." 2 사무엘이 여쭈었다. "내가 어떻게 길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이 이 소식을 들으면, 나를 죽일 것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암송아지를 한 마리 끌고 가서, 주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다고 말하여라."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위시키시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시기 위해 사무엘을 보내십니다. 그 때 사무엘이 사울이 자신을 죽이면 어떡하느냐고 묻자 하나님께서 ‘제사를 지내러 왔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하십니다. 보세요. 이런 것들을 우리 인간의 선과 악의 개념 정의에 넣어 버리면 하나님은 악을 조장하실 뿐 아니라 악을 행하시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이 ‘선’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판단으로 하나님을 악하다, 선하다 규정하기 시작한 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들의 눈이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을 보세요.

 

(창 3:7)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본문에는 분명 인간들이 타락을 하자 눈이 밝아졌다고 하지요?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눈이 밝아져서 자신들의 판단으로 선악을 규정하게 된 인간들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요 9:39‐41) "39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와 함께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4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눈이 밝아져서 본다고 하는 자들, 다른 말로 자기가 선악의 판단 자가 되어 잘난 척을 하는 모든 인간들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렇게 눈이 밝아져 스스로가 선악의 주인이 된 자들을 오히려 ‘소경’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결과 얻어진 눈의 밝아짐은 ‘영적 소경’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적 소경들은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작정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윤리와 도덕에 비추어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매한 자들이 감히 하나님께 ‘악의 조성 자’라느니 ‘죄를 조장하시는 분’이라느니 ‘포악한 하나님’이라는 겁 없는 소리들을 해 대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이시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은 ‘선’입니다.

 

(눅 18:19)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아가또스)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이렇게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과 의도에 적확하게 부합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은 ‘선’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분이 살인을 지시하신 것도 선이고, 홍수로 모든 기식하는 것들을 다 몰살시키신 것도 선이고, 거짓말을 하도록 시키신 것도 선이며,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이스라엘을 학대하게 하신 것도 선이고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도록 그냥 허락하신 것도 선입니다. 그러니까 다시는 하나님이 악을 조성하셨다느니 죄를 유도하셨다느니 이런 어리석은 말은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사단까지도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임을 당신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역사와 시간 속에서 이해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인격과 오성 속에서 하나님께 항복하고 순종하며 의뢰하는 삶을 살도록 설복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설득의 작업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사단과 불신자들이 역사 속에 엑스트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 계시록을 미리 공부했기 때문에 그 사단과 불순종의 무리들이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되었는지는 자명하게 알고 있지요? 바로 그 결과를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 오늘 본문의 사단의 유혹과 인간의 타락이라는 한 꼭지에서 역사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이외에 다른 것들은 안중에도 없으십니다. 그 백성들을 당신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만드시기 위해 지금도 이 역사를 경륜해 가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뭡니까? 선한 일인 것입니다. 사업이 망하셨습니까? 선한 일입니다. 자녀가 속을 썩이나요? 선한 일입니다. 질병에 시달리고 계십니까?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선한 결과를 이루어 내시기 위해 여러분의 삶에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선한 것’입니다.

 

(롬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빌 1:6) "6 너희 속에 착한 일(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그러니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마시고 기죽지 마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잘 이겨내십시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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