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완성된 천상의 교회(I)
(김성수 목사)
(계 4:1-6) “1 그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내가 들은 그 음성, 곧 나팔 소리와 같이 나에게 들린 그 음성이 "이리로 올라오너라. 이 뒤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 나는 곧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보좌가 하나 놓여 있고, 그 보좌에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3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모습이 벽옥이나 홍옥과 같았습니다. 그 보좌의 둘레에는 비취옥과 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4 또 그 보좌 둘레에는 보좌 스물네 개가 있었는데, 그 보좌에는 장로 스물네 명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5 그 보좌로부터 번개가 치고, 음성과 천둥이 울려 나오고, 그 보좌 앞에는 일곱 개의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일곱 횃불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6 보좌 앞은 마치 유리 바다와 같았으며, 수정을 깔아 놓은 듯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 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이제 4장으로 넘어갑니다. 4장과 5장은 요한 계시록을 푸는데 아주 중요한 장입니다. 4장은 ‘메타 타우타’ ‘이일 후에’로 시작이 됩니다. 여기서 ‘이일’이라는 것은 1장10절부터 3장까지에 기록된 첫 번째 환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환상을 본 이후에 사도 요한이 이제 하늘로 올라가서 두 번째 환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4장과 5장을 잘 보시면 3장까지에서 쓰였던 단어들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고 있는 것을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계시록 3:4,5,18절에 흰옷이 등장하는데 4:4절에도 24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있습니다.
3:21절에 보면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보좌’가 등장하는데 4:4절에도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3:8절에 ‘열린 문’이 나오지요? 4:1절에도 열린 문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4장과 5장은 3장까지의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 3장까지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 점진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요한 계시록은 반복적이며, 점진적이며, 점층적인 방법으로 기술이 되어 있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살펴 본 것처럼 1장에서3장까지는 ‘이기는 자에게 어떤 복이 주어질 것이며 어떠한 것이 약속이 되어 있는가?’가 기록이 되어 있고 4장에서 5장까지에는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에게 어떠한 것을 내용이 전개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1장에서3장까지는 이 땅의 ‘지상 적 교회’를 그리고 있다면 4장 5장은 이미 완성된 천상의 교회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를 세상이 어떻게 공격을 한다 해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무리 무시무시한 심판을 내리신다고 해도 교회는 완전한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계 21:2)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마지막에 교회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어디서 내려옵니까?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 말은 교회는 지금 하늘에서 완성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이 지금 아무리 어려운 난관에 봉착해 있고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그게 여러분을 실패케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천상의 보좌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완성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이 4장 5장을 공부하시면서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러운 신분을 재확인하여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4장과 5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4장에는 주로 성부 하나님에 대한 강조가 많이 나오고 5장에서는 ‘어린양 예수, 성자’에 대한 강조가 많이 나옵니다. 4장의 주된 내용은 ‘하나님은 창조주시다‘라는 것이고 5장의 주된 내용은 ’예수님은 구속주시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5장을 잘 보시면 4장의 성부 하나님께 올려지는 영광의 찬양이 5장의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 그대로 올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 4:10-11)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5:11-12)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그리고 4장5절에서는 보좌 앞에 일곱 영(성령)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데 5장6절에는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게 묘사가 됩니다.
(계 4:5)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계 5:6)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보세요, 4장5절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 나오지요? 성령입니다. 그런데 5장6절에는 그 일곱 영을 어린양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계시록4,5장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4장과 5장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위대한 박애주의자다. 그러니까 그 분의 삶을 본받아 인간답게 살자’라고 주장하는 과격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을 일축해 버릴 수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차근차근 4장1절부터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함께 큰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계 4:1)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 일 후에’ ‘메타 타우타’ 이 단어를 보면 지금 4장은 첫 번째 환상과 연결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하늘의 열린 문에서 음성이 들렸는데 그 음성은 처음 요한에게 말했던 그 음성 즉,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예수님의 음성이 요한을 하늘로 불러올립니다. 이 구절을 세대 주의자들은 ‘휴거’를 설명하는 구절이라고 주장합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우리가 공부한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전체 교회시대를 일곱으로 나누어 각 시대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에베소 교회는 사도시대를 가리킨다고 하고, 두 번째 서머나 교회는 속사도 시대를, 세 번째 버가모 교회는 로마 국교시대를 가리키고, 네 번째 두아디라 교회는 중세 암흑시대라고 보고, 다섯 번째 사데 교회는 종교개혁시대로 봅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시대로 보고, 일곱 번째 라오디게아 교회는 평신도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종말시대로 봅니다. 이렇게 지상의 교회시대를 설명하고 4장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4장은 지상의 교회시대가 끝나고 교회가 휴거 되는 것을 교회의 대표인 요한을 하늘로 끌어 올리는 것으로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휴거’라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휴거’라는 단어는 성경에 없습니다. ‘어네스트 앵글리‘라는 세대주의자가 ’휴거‘라는 소설을 발표해서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sensation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중학교를 막 졸업하고 그 소설을 읽고서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소설들과 세대주의자들의 추측이 오늘날 성경을 이렇게 곡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휴거의 근거로 삼는 구절이 데살로니가 전서 4장입니다.
(살전 4:16-17)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가 알고 있는 휴거의 장면이지요? 정말 이 장면이 예수님의 1차 공중 재림 시에 교회가 들려 올라가는 장면일까요? 세대 주의자들의 주장의 핵심은 이렇게 교회가 1차 공중 재림 시에 휴거가 됨으로써 계시록 6장부터 나오는 인의 재앙, 나팔재앙, 대접재앙 같은 대 환난의 시기를 교회는 절대 겪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은 조금 다릅니다.
(마 24:3-13)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교회를 상징하는 12사도에게 세상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이지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휴거 될 거니까 너희는 환난과는 아무 상관없다’이렇게 말씀하고 계신가요? ‘너희가 환난에 던져지고 미움을 받고 죽기까지 하겠으나 끝까지 견뎌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21:10-12, 16-17, 27-36)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12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16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17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엄청난 환난에 던져지게 될 것을 예수님께서 예고하십니다. 그러한 때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항상 기도하며 깨어서 예수 님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경고 입니다. ‘너희들은 휴거 될 테니 걱정 말아라‘가 아닙니다.
(계 7:13-17) “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흰옷을 입은 자들이 어디서 나온다고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세대 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제 4장 이후에는 ‘교회’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6장 이후의 모든 재앙은 하나님의 교회와는 아무 상관없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들의 주장대로 4장이 교회의 휴거라면 그 휴거 이후인 12장으로 한번 가보지요.
(계 12:17)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그 환난 중에 용이 누구와 싸웁니까? 여자의 남은 자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웁니다. 바로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계 13:6-7)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짐승이 누구와 싸웁니까? 성도들과 싸웁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세대주의자들은 “이삭줍기”라는 표현을 써서 설명을 합니다. 휴거 때 미처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주워 올리는 장면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실수투성이의 하나님을 여러분은 믿고 싶으십니까?
우리는 지금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7년 대 환난 기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네스트 앵글리의 ‘휴거’라는 소설로 성경을 재해석하지 마세요. 너무 두려워 떨지 마세요. 성도들은 교회 시대 즉, 환난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거룩한 자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사탄 마귀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시면 안돼요. 사탄과 마귀의 세력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백성답게 만드시기 위해 수단과 방법으로 놔두신 것이지 못 이겨서 쩔쩔매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마귀 세력의 공격도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휴거’가 있다면 그 휴거는 마지막 우리 주님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교회가 모두 건져 올려지고 나머지 세상은 심판에 던져지는 그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자기들도 설명을 못합니다. 세대주의 안에서도 가장 뛰어난 신학자라는 월버드 같은 사람도 설명을 못 합니다. 그들은 단지 6장부터의 환난을 피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러면 왜 요한은 하늘로 올라갔는가? 그것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회에 들어가는 전형적인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이사야도 계시를 받기 위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지요? 아모스도 에스겔도 마찬가지입니다.
(암 3:7) “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1절을 다시 한 번 보세요.
(계 4:1)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똑같지요? 하나님은 요한을 올라오게 하시고 교회에게 계시하실 중요한 사건들을 요한에게 먼저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것을 보고 기록하여 교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 역할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무슨 휴거 같은 것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여 올라가서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먼저 2절을 보시면
(계 4:2)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라고 적혀 있지요? 그 말은 전에도 한번 공부했다시피 ‘엔 프뉴마’‘성령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그가 성령 안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보좌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 보좌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흰옷을 입고 면류관을 쓴 24장로가 그 보좌 주위의 다른 보좌에 앉아있었고 보좌 앞에 일곱 영, 성령이 계셨으며 유리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뒤에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조금 어려우시죠? 아닙니다. 어려우실 것 하나 없습니다. 하나하나 설명을 해드리지요. 먼저 하나님에 관한 묘사입니다.
(계 4:3)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 보석 같더라”
벽옥과 홍보석 그리고 녹 보석으로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이 보석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곳이 있지요?
(계 21:9-11, 18-20)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교회가 내려오는데 그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입었다고 표현을 하지요? 그리고 그들을 묘사하는데 오늘 본문 4장3절의 보석을 포함한 12보석으로 표현을 합니다. 구약에도 똑같은 보석이 등장하는 곳이 있지요? 교회를 상징하는 대 제사장의 에봇 위에 거는 정사각형의 흉패에 박힌 보석들입니다.
(출 28:17-21) “17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테에 물릴지니 21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매 보석에 열 두 지파의 한 이름씩 인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우리 교회는 , 바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입은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천지를 창조하신 만유의 주재 하나님의 영광을 고스란히 입고 계신 존귀한 분들이라는 말입니다.
(계 4:4)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보좌에 앉아있는 24장로가 나옵니다. 흰옷을 입고 면류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천사들입니까? 교회입니다. 24장로는 하나님의 백성,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까 계시록 21장에서 읽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신부 교회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거기에 12지파의 이름과 12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지요? 그 둘을 합한 수 24장로가 바로 교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엡 2:5-6)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살려 내셔서 어디에 앉히셨습니까? 하늘에 앉히셨답니다. 그러니까 보좌에 앉은 흰옷을 입고 면류관을 쓴 24장로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 보지요. 요한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하늘에 올라가서 무언가를 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입은 교회가 함께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앉아 있습니다. 이미 완성된 교회를 주님은 요한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밧모 섬에서 환난을 당하고 있던 요한에게나 , 핍박 속에 던져져 있던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미성숙하고 실수투성이였고 바르지 못한 교리 속에서 헤매다 책망을 들었던 이 요한 계시록을 받아 읽었던 사람들에게 그 완성된 교회의 모습은 엄청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핍박과 고난, 실패와 좌절 속에 있던 지상의 교회들이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 완성된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서 ‘아, 우리는 벌써 천상에서 완성이 되어 있는 자들이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고스란히 입고 있는 엄청난 신분으로 이미 완성이 되어 있는 자들이구나, 이 땅에서의 환경이나 상황들이 우리를 공격해 오지만,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이 모양이지만 하늘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그렇게 이미 완성이 되어 있구나, 이렇게 알았으니 절대 용기를 잃지 말고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한번 싸워보자’ 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성경에 나오는 가장 worst한 교회가 어디입니까? 고린도 교회지요. 그들은 어줍지 않은 성령의 외적은사에 광분했고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했고, 자기들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안전하다고 무 율법주의로 흘러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아주 문란한 삶을 살았고 이방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방 종교와의 혼합(syncretism)으로 교리도 바로 서지 못했었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열심히 살아 내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지혜 없는 자’라고 몰아세웠던 엉터리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서를 읽어보면 전편에 걸쳐 책망과 권고의 말씀이 태반입니다. 그런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이 어떻게 편지를 시작합니까?
(고전 1:2,3,8)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고린도 전서는 열여섯 장 내내 고린도 교회의 엉터리 같은 신앙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고린도 전서는 그렇게 엉터리들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일단 잡혀 있으면 그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열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점도 없고 흠도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실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천상에서 완성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대로 입은 보석 같은 귀한 분들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시궁창에 뒹구는 모습으로 사시겠습니까? 그래도 여전히 좌절하고 자포자기하고 절망적으로 사시겠습니까? 존귀하신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고 계신 여러분,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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