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다 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 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
<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
『다보탑을 줍다』(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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