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녀의 가진 금잔
(김성수 목사)
(계 17:1-6)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우리는 지난주에 이 17장과 18장 그리고 19장 10절까지의 내용이 일곱 대접 심판 후에 오는 또 다른 어떤 사건이 아닌, ‘한 때 두 때 반 때, 삼 년 반, 마흔 두 달, 1260일‘ 바로 말세의 기간 동안에 일어날 심판과 구원의 반복적인 기록임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부분은 그 말세 때 일어날 일들 중에 마귀의 세력의 심판에 중점을 두고 기록이 된 부분입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나누어 드린 handout을 잘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17장과 18장에는 각기 다른 관점으로 정치적, 종교적 세력으로서의 관점에서 본 마귀 세력의 멸망과 경제적, 물질적인 관점에서 본 마귀 세력의 멸망이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는 지금 정치적 종교적 세력으로서의 마귀의 세력의 멸망에 관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그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가 바벨론과 동일한 세력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를 뜯어먹으며 자멸해 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절대 멸망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은 고트족이나 반달족이 로마보다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의 도덕적 부패가 로마를 멸망케 한 것이라는 것은 어느 역사가나 동일하게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구(舊) 소련의 붕괴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르바초프의 용단이 구(舊) 소련을 해체시킨 것이 아니라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타락이 극에 달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윤락녀들이 러시아 여자들입니다. 이렇게 역사 적으로 보더라도 악은 스스로를 괴멸시키고 멸망의 불구덩이 속으로 자신들을 몰아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멀고 귀가 멀어 그 잠시의 쾌락 속에 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저희 집 사람하고 어떤 교회를 방문했었는데 그 교회 목사님께서 당신 사무실에다가 쥐를 잡는 끈끈이를 놓고 계셨습니다. 쥐를 잡는 끈끈이 가운데에 아주 맛있는 치즈 덩어리를 미끼로 붙여 놓고 여기 저기 여러 개를 놓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 놓아둔 끈끈이에 커다란 쥐가 한 마리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쥐는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치즈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쥐가 끈끈이에 붙었다는 것은 이제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그 쥐는 그 끈끈이에 붙어 있는 치즈를 먹느라고 자신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마치 톨스토이가 어떤 불경에서 본 내용을 자기의 책인 참회록에 적어 놓은 세상에 관한 묘사와 흡사하지요?
어떤 사람이 무시무시한 사자에게 쫓겨 우물 속으로 몸을 숨겼는데 설상가상으로 그 우물 아래에서는 커다란 용이 입을 딱 벌리고 그 사람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겨우 그 우물 벽에 붙어있는 나뭇가지를 붙들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를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면서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그 나무는 끊어질 것이고 그는 커다란 용의 입 속으로 떨어져 버릴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경황에 그 나뭇가지에 조금 흐르고 있는 꿀을 핥아먹느라고 자신의 상황을 잊고 사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그게 바로 우상이주는 달콤한 세상 것들을 즐기느라 자신들의 멸망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죄인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왜 성경이 문둥병을 앓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한센 병의 가장 큰 위험은 그 분들이 몸에 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눈이 시리거나 아파야 합니다. 그래야 눈물이 나고 이물질이 밖으로 나오게 되지요. 그런데 눈에 말뚝이 박혀도 그 분들은 아픈 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시력이 점점 나빠지게 되지요. 손가락 마디가 썩어 들어가는 데도 고통이 없습니다. 고통이 없으니까 약을 써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방치하다 보면 어느 날 손가락이 하나 떨어져 나가고 없는 것입니다. 코가 떨어져 나가도 고통이 없습니다. 고통이 없는 것이 복입니까? 고통이 없는 것은 저주입니다. 고통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가 없습니다. 끈끈이에 붙은 쥐는 자신의 위험을 직시하고 그 치즈를 버리고 빨리 탈출을 시도했어야 지요. 우물 속에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그 사람은 꿀을 핥아먹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그 우물에서 나갈 방도를 찾았어야 지요.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바로 그 끈끈이에 붙은 쥐와 같은 존재들이며 우물 속 나뭇가지에 매달려 꿀을 핥아먹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 은혜가 베풀어져서 그들이 얼마나 큰 위험에 봉착해 있는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눈을 뜬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이제 그 맛있는 치즈와 꿀에서 눈을 돌려 탈출의 몸부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은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렁설렁 눈곱도 안 뗀 그런 게으른 모습으로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을 뜨게 된 자들, 위험을 직시하게 된 성도들은 이 땅의 치즈와 꿀에서 하늘의 보물로 시선이 옮겨집니다.
(마 6:19-24)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 질 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눈을 뜨지 못하고 어두움에 속해 있는 음녀의 세력들은 어떻게 산다고요? 이 땅에 재물을 쌓는 것을 일생일대의 최고의 목표로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치즈와 꿀이 그들 인생의 최고의 목표인 것입니다. 반면에 눈을 뜬 자들은 어떻게 삽니까? 하늘에 보물을 쌓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다는 의미는 전에 한 번 설명해 드렸지요? 하늘에 있는 보물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홍보석, 녹 보석, 벽옥, 수정이 누구였어요? 바로 교회인 여러분이지요? 그러니까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늘의 보물이신 여러분 자신의 성품과 인격을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로서의 성품과 인격으로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치즈와 꿀에서 관심을 돌려, 은혜를 깨닫고 구원을 받은 자로서, 그 은혜를 허락하신 분이 요구하시는 삶을 열심히 경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랑’이라고 했지요. 우리는 이 땅에서 ‘사랑하는 자’가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유일한 목표지점입니다.
(요일 2:10-11)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눈이 멀어 어두운데 있는 자들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라고 하지요. 이렇게 눈이 멀어 세상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과 거리가 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중에 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계속해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험담을 하고 남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하는 사람들은 지금 전부 사기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세상을 사랑하느라 눈이 멀어서 하늘의 보물에 계속 똥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기실 눈을 뜬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사랑’이라는 열매로 그들의 삶에 맺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3절을 보겠습니다.
(계 17:3)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성령께서 요한을 광야로 데리고 가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광야는 교회를 상징하는 ‘여자’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1260일을 거하면서 양육 받는 곳입니다.
(계 12:6,14)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그 음녀가 광야에 있다는 것은 그 마귀의 세력, 음녀는 바로 지금 이 곳에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그 사실을 간과합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예언해 놓은 책이 아니라 현재를 싸우고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지금 치르고 있는 전쟁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싸우라’는 병서인 것입니다. 여러분 에베소서에 나오는 전신 갑주가 언제 필요한 것이었습니까? 구원의 투구, 의의 흉배, 믿음의 방패, 진리의 띠, 복음의 신, 성령의 검이 언제 필요한 것입니까? 우리가 요즘 공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들아 아내를 목숨 걸고 사랑하라, 자녀들아 부모에게 순종하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들아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종들아 상전들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상전들아 종들을 형제처럼 여기라’‘이게 바로 성령 충만한 삶이고 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무기가 바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란다’ 이게 에베소서 6장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광야의 삶 속에서 우리가 음녀와 싸워 이기고 있다는 증거가 어디서 나타나는 것입니까? 나의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랑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내가 음녀와 싸워서 이기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에베소서의 표현대로 하자면 나를 죽여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그 복종의 삶이 내게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음녀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를 미혹하는 그 음녀는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실존하는 세력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일 매일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언제 그 음녀의 미혹에 넘어가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을 보시면 그 음녀가 짐승을 타고 있는데 그 짐승은 붉은 빛 짐승입니다. 그런데 그 짐승은 몸에 참람(僭濫) 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는 짐승입니다. 이 짐승은 우리가 13장에서 보았던 바로 그 짐승입니다.
(계 13:1)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똑같지요? 이 짐승은 우리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 짐승은 12장에 등장하는 용과도 일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계 12:3)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이 용은 마귀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짐승도 역시 마귀의 사주를 받고 있는 적그리스도, 마귀의 세력이요 그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 역시 그 짐승과 같은 운명 공동체이며 본질 적으로는 같은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짐승도 붉은 색이고 큰 용도 붉은 색입니다. 그리고 음녀도 붉은 빛과 자주 빛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 붉은 색은 성경에서 ‘죄의 색’그리고 ‘사치와 영광의 색’으로 등장합니다.
(사 1:18)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렇게 붉은 색은 죄의 색깔입니다. 그와 동시에 붉은 색과 자주색은 부자들만 입던 사치와 영광의 색이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에서 만난 자주 장사 루디아는 바로 그 붉은 색 옷감을 취급하는 부유한 무역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붉은 색은 죄의 색임과 동시에 세상의 힘, 영광, 부, 사치, 허영의 색인 것입니다. 그래서 18장에 나오는 멸망하는 바벨론도 역시 같은 붉은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계 18:16) “16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보세요. 여기서도 바벨론이 보석으로 꾸미고 붉은 옷과 자주 옷을 입고 있다고 나오지요? 용도 붉은 용이었고 짐승도 붉은 빛이고, 음녀도 붉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세력은 항상 힘과 부와 사치로 사람들의 정신을 미혹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너무나 그럴듯하고 매력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4절에 보면 좀 더 확실하게 그 마귀의 세력이 어떻게 세상을 미혹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계 17:4)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아까 18장에서 찾아 본 바벨론과 동일한 내용이지요? 보시다시피 큰 성 바벨론과 음녀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것들로 꾸미고 있는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와 사치와 힘으로 세상을 미혹하고 있는 음녀, 바벨론은 손에 금잔을 쥐고 있는데 그 금 잔 안에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증한 물건이 무엇인지 신명기로 가서 확인해 보지요.
(신 18:9-12) “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10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12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9절에 ‘가증한 행위’ 12절에 ‘가증한 일’ 은 히브리어로 ‘토에바’입니다. 이 토에바는 ‘우상숭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70인 역에서 헬라어로 ‘브델리그마’로 번역이 되었고 그 단어가 오늘 본문에 쓰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헬라어 ‘브델리그마’역시 ‘우상 숭배, 혐오스러운 것’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그 음녀가 들고 있는 금잔에 ‘브델뤼그마’‘가증한 물건이 들어 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마귀의 세력은 ’사치와 허영, 세상의 힘’같은 달콤하고 멋져 보이는 것들로 세상을 미혹하고 있는데 거기에 넘어 가서 그 사치와 허영과 세상의 힘을 좇아가는 것은 곧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명기에 보시면 ’가증한 일, 가증한 것을 본받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가증한 것의 내용으로 복술 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 자나 신접 자나 박수를 예로 듭니다. 전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우상 숭배를 부추기는 자들입니다. 그게 ’가증한 것‘’토에바‘ 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것’으로 번역이 된 ‘아카달토스’도 역시 ‘우상 숭배, 악마 적인 것’을 가리키는 형용사입니다.
(고후 6:16-17)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엡 5:5) “5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여기서도 ‘더러운 자’로 번역이 된 단어가 바로 ‘아카달토스’입니다. 여기 보면 그 더러운 자(아카달토스)를 곧 ‘우상 숭배자’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그 음녀가 가지고 있는 금잔에 들어있는 ‘가증한 것과 더러운 것’은 모두 ‘우상 숭배’ 요한 계시록의 표현대로 하자면 ‘음행’인 것입니다. 이 말은 음녀와 바벨론, 마귀의 세력은 부귀와 영화와 힘과 화려함을 가지고 세상을 미혹하고 있고 거기에 미혹 당해서 그 땅의 것들을 좇느라 하나님과 신앙을 놓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 숭배’‘음행’을 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입고 있는 옷을 보세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영광과 사치와 부의 색깔인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걸치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한껏 멋을 내고 금잔을 들고 있는 그 자태는 가히 매혹적이지요. 예수를 믿고 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준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지요? 아니라니까요. 그게 바로 음녀요 바벨론이라니까요. 바다에서 올라 온 적그리스도의 미혹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 화려한 옷차림의 음녀와 반대로 순결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딤전 2:9)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이해하기 쉽게 표준 새 번역으로 읽어볼까요.
[표준새번역] “9 이와 같이 여자들도 소박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 자기를 단장하십시오. 머리를 지나치게 꾸미지 말며, 금붙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지 말고, 10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에게 어울리게, 착한 행실로 치장하기를 바랍니다.”
음녀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지요? ‘교회야, 너희들은 음녀처럼 세상의 화려함과 사치에 동요하지 말고 너희는 염치와 정절로(소박하고 정숙하게) 너희 속사람의 아름다움을 가꾸어라’ 이게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벧전 3:3-4) “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표준새번역] “3 여러분은 머리를 치장하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4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화려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에 숨은 사람, 즉 속 사람을 온유와 사랑과 화평과 절제와 인내로 가꾸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음녀가 가지고 있는 금잔에 속지 마세요. 그 속에는 가증한 것들만 가득 들어 있을 뿐입니다. 일찍이 예레미야도 똑같은 경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렘 51:7) “7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음녀가 가지고 있는 그 금잔은 온 세계를 취하게 만들어서 미친 짓을 하게 만드는 세력인 바벨론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음녀와 짐승의 수중에 들어 있는 세상은 전부 진노의 포도주에 취해 미친 마음을 품고 미친 짓을 하다가 결국에는 멸망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전 9:3) “3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미친 마음을 품고 미친 짓을 하다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 것을 사랑하라고 음행을 조장하는 음녀의 입술을 조심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며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거짓 가르침을 내 뱉는 짐승의 소리를 분별해 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5절을 보겠습니다.
(계 17:5) “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그 여인, 음녀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뜻은 비밀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비밀’‘미스테리온’은 말 그대로 ‘mystery’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mystery는 secret와 다른 것입니다. secret이 감추기 위한 비밀이라면 mystery는 ‘알려지기 위한 신비’인 것입니다. 그 말은 그 음녀의 이마에 쓰인 ‘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이름은 뭔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바벨론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전에 자세하게 공부를 했으니까 넘어가겠습니다. 그 이마에 더러운 이름을 가진 음녀는 우리가 13장에서 공부한 666이라는 짐승의 이름을 이마에 받은 땅에 속한 자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계 13:16-18)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즉 이마나 손에 짐승의 이름을 받은 저주받은 자들의 어미라 불리는 그 세력, 음녀는 금 잔 속에 ‘더러운 것과 가증한 것’을 숨기고 그 잔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세상을 취하게 만들어 미친 짓을 하다가 죽게 만드는 무서운 세력인 것입니다. 거기에 놀아나는 사람들을 666의 표를 받은 자들이라 부르는 것이고 그 미혹에 꿋꿋이 맞서서 이겨내는 사람들을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을 받은 자’ ‘14만 4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계 22:3-4)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지금 여러분의 이마에는 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 입니까? 자신 있으세요? 여러분은 금과 보석과 진주와 붉은 옷으로 미혹하는 음녀의 화려한 유혹을 잘 이겨내고 계신가요? 혹시 금과 보석과 진주가 부족해서 낙심하고 계시지는 않으세요? 그렇게 사악한 음녀의 미혹을 이겨낸 어떤 우리의 신앙의 선배가 드린 기도문으로 오늘 설교의 결론을 대신하겠습니다. 이 기도는 마땅히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이 이러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실력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는 출세를 위해 당신에게 힘을 구했으나 주님은 내게 순종을 배우라고 나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 당신에게 건강을 청했으나 주님은 보다 큰 당신의 선을 이루시기 위해 저에게 병고를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당신에게 부귀를 구했으나 주님은 저에게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자 당신께 명예를 구했으나 당신은 나를 비참하게 만드시어 제가 당신만을 필요로 하게 만드셨습니다. 주님 저는 홀로 있기가 외로워서 당신의 우정을 청했으나 당신은 나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에게 내 삶을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원했으나 주님은 나로 하여금 다른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내가 당신께 구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으나 그러나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나에게 주시고자 원하시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요한 계시록을 사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위대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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