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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게 하라 (김성수 목사)

by IMmiji 2013. 8. 17.

 

 

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게 하라

 

(김성수 목사)

 

 

(엡 3:14-21) “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도 바울의 기도 중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의 의미를 공부했습니다. 속사람의 강건함은 나를 죽여서 남을 살리는,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원리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발휘한 모든 지혜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지혜, 바로 십자가의 도를 우리는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기도 내용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의 부분에 대해 공부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라“ 이 말씀은 쉬운 것 같지만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 분명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기를 기도하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그 안에 안 계신 신자도 있습니까? 우리는 수많은 설교와 또 개인 적인 성경 묵상을 통해서 “예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실감해 보신 분계십니까? “아, 내 안에는 예수님이 계셔” 그냥 막연히 추측들하고 계시지요? “계실거야” “계신 걸 거야” “계실걸?”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맞다 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신다고 명확하게 진술을 합니다.

 

(요 14:20)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런데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사실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도 모르고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사실을 별로 인식하지도 못하며 인식할 수도 없고 인식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소망도 없고 힘도 없고 엉터리처럼 사는 것입니다. 왜 세상은 점점 이렇게 추악하게 타락해 가는지 아세요? 세상 사람들과 신자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소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소망이 없는 자들의 특징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타락입니다. 1986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젤이라는 사람이 쓴 “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엘리 위젤은 홀로코스트로 유명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의 책에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수천 명의 유대인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찬 빛이 완전히 차단된 기차 안에서 이제 곧 죽을 것을 감지한 소망을 잃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창피한 것도 모르고 성 관계를 갖더라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자들의 특징은 부끄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점점 추악하게 타락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마저 소망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어야 할 하나님 나라에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신자라는 사람들도 여전히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여전히 부도덕한 짓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인 할 수 있는지 공부를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정말 천국에 가고 싶으십니까? 조나단 에드워드나 허드슨 테일러, 마틴 로이드 존스, 존 오웬, 제임스 보이스 이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분들의 저서에서 ‘그토록 소망하고 가고 싶었던“그 천국에 그분들처럼 간절하게 가고 싶으신가요?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얘야, 이제 그만 올라와라”하면 훌훌 털고 기쁘게 가실 수 있으세요? 솔직히 별로 관심 없으시지요? 그럼, 천국이라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뭐든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고 보석으로 된 집에서 천년만년 영원히 사는 곳을 천국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천국은 “죽으면 마지못해 가는 곳”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천국은 우리가 들어가는 곳이라고도 표현을 하지만 천국은 우리에게 ”임하는 것“”우리에게 오는 것“이라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

 

(막 9:1) “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신학이 공간적 이원론의 헬라철학의 영향 아래 정립이 되어져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 천국을 공간적인 개념으로 이해를 합니다. 게다가 우리 한 민족은 작은 땅 덩어리에 대대로 땅에 대한 한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토지나 건물에 상당히 애착을 가집니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이 무슨 구호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무슨 이민 공청회 같은데서 이민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왜 호주나 캐나다 미국 이런 곳으로 이민을 가려고 하냐고 물으면 “살기 좋은 땅이니까”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이민 오면 처음 하는 것이 뭡니까? 자기 집을 사는 것이죠. 그래서 천국도 그런 영토나 공간의 개념으로 자꾸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실 때 그 성경이 기록되었던 당시의 문화나 관습 같은 것들을 잘 이해하시고 읽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은 일차적으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읽혀졌던 것이기 때문에 당시 이 성경을 기록하였고 읽었던 사람들의 문화와 관습을 알지 못하고는 우리가 오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라”하면 먼저 영토를 떠올리시죠? 우리 민족은 국가의 삼 요소 “국민, 주권, 영토”중에 유독 영토에 관심이 많아요. 그렇지만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국가, 나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통치권입니다. 그들은 “나라”하면 통치권을 생각하지 땅 덩어리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눅 19:11-12) “11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12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하시는 장면입니다. “므나의 비유”“달란트의 비유”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그 시작을 어떻게 하시는가하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다“라고 시작을 합니다. 당시 로마는 식민지를 다스릴 때에 그 지역 사정에 밝은 현지 사람들을 분봉 왕으로 삼아 통치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영 신통한 사람이 없을 때 총독을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분봉 왕은 반드시 로마의 원로원에 가서 통치권, 왕위를 받아 와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습니다. 헤롯도 에돔 사람이었지만 로마의 원로원에 가서 왕위를 받아 와서 분봉 왕이 된 것이지요? 당시의 그런 상황들을 들어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헤롯이 로마의 원로원에 왕위를 받으러 갈 때, 통치권을 받으러 갈 때 영토와 국민은 있었습니다. 단지 로마의 황제와 원로원으로부터 통치권을 받기 위해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왕위를 무어라고 표현하는지 보세요. 12절을 영어로 보지요. He said therefore, A certain nobleman went into a far country to receive for himself a kingdom, and to return.

 

뭐라고 합니까? 통치권, 왕위를 kingdom “나라”라고 표현을 합니다. 헬라어로도 “바실레이아” “왕국”입니다. 이렇게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라는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권의 개념입니다. “누가 다스리느냐?“입니다.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는 저 멀리 있는 언젠가 우리가 갈 황금 보석으로 꾸며진 나라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을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와 있는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 나라“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교회가 하나님 나라는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나타내고 전하는 자들이 교회이지요.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의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이 교회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면에서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국, 하나님 나라를 통치권, 다스림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면 마태복음 5장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가 무슨 뜻인지 clear해 집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먹을 것, 입을 것으로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을 무슨 뜻으로 아셨습니까? 나라를 구하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너희의 삶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기를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눅 15:18)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탕자가 자기의 잘 못을 뉘우치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하지 않고 “하늘(heaven)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을 하나님 나라라고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하나님의 통치권을 이 땅에 그대로 가지고 오셨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일을 다 마치시고 왕으로 등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지고 오신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신학용어로는 그분을 ”오토 바실레이아“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인류의 역사가 두 동강 나는 어떤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시점을 “주의 날, 주의 해“라고 불렀습니다.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이 전 세계의 중심이 되어서 세상을 다스릴 것이고 다윗의 왕국이 회복이 되는 영광스러운 세 세대가 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성경에 그 날이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욜 2:31-32)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그리고 그 날이 오기 전에 어떤 사인이 있을 것이고 그 사인이 바로 엘리야가 오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말 4:5)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엘리야가 다시 오게 되면 여호와의 날이 곧 오게 된다는 것을 이스라엘이 성경에서 이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야와 메시야를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주변 국가들로부터 침략을 받고 그들의 나라로 끌려가 식민지로 살면서 온갖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의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도하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엘리야의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왕하 1:7-8) “7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고한 그 사람의 모양이 어떠하더냐 8 저희가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왕이 가로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아합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아하시야가 다락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신하들을 보내서 자기의 병이 나을지 안 나을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어 보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엘리야를 만나지요. 엘리야가 묻습니다. “어디 가느냐?” “우리 왕이 다락에서 떨어졌는데 그 병이 나을지 안 나을지 바알세붑에게 물어보고 오라고 해서 가는 길입니다“ 하니까 엘리야가 대노합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바알에게 물어보러 가느냐?“”너희 왕이 그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으리라“하고 저주를 합니다. 신하들이 왕에게 와서 그대로 고합니다. 그때 아하시야가 그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으니까 신하들이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라.”고 말합니다. 성경 각주에 보면 “털이 많은” 아래에“털옷을 입은“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스라엘에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띤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며 세례를 주었습니다.

 

(막 1:6) “6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들이 기다리던 엘리야가 나타난 것이지요. 그래서 종교지도자들까지도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 것입니다. 그 요한이 오고 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십니다. 순서상으로 보면 유대인들이 그린 그림이 딱 맞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처음에는 대단한 환호를 받으신 것입니다.

 

(막 1:14-15)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눅 10:9)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여기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에서 ”가까이 왔다“”엥기켄“이라는 말은 ”엥기조“라는 말의 직설법 완료형 동사입니다. ”이미 근접하게 와 있다”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마가복음 14장에도 동일하게 쓰였습니다.

 

(막 14:42-43)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43 말씀하실 때에 곧 열 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 그 단어가 바로 ”엥기켄”“이미 와 있다”는 말입니다. 그 말씀을 하실 때에 유다가 왔습니다. 말씀하신 것과 거의 동시에 온 것입니다.Just as he was speaking 헬라어로는 “유떼오스“인데 “immediately"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신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오심을 가리켜 ”회개하라 천국이 와 있다“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눅 17:20-21)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합니까? 라고 물어보니까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천국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 라는 해석을 많이들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천국은 너희들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거기서 ”너희 안에“는 ”엔또스 휘몬“입니다. 이 ”엔또스“라는 전치사는 뒤에 단수가 오면 ”in 이나 within"의 의미로 쓰이고 뒤에 복수가 오면 “among"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휘몬“이 ”너희들“이라는 복수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이 구절을 번역하면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둘러 싸여있는 예수 님 자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눅 4:16-21)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께서 읽으신 이 말씀은 이사야서 61장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 예언을 읽으시고 그 하나님 나라가 지금 너희 앞에 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그 주의해, 주의 날이 “오늘 너희에게 성취되어 있다“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Today this script-xure is fulfilled in your hearing. 이렇게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하나님의 통치”의 개념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19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주의 해를 전파하러 오셨다는 구절이 있지요? 거기서 나오는 주의 은혜의 해는 “year of the Lord""jubilee” “희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희년을 선포하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되고 난 50년째를 희년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대 안식년입니다. 안식일과 안식년, 그리고 희년은 같은 메시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 나라, 천국을 한 단어로 표현을 하라면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안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칠일 째 안식을 하심으로 재창조의 완성은 안식으로 결론이 날 것을 미리 예고해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을 “주의 해, 희년”이 선포되는 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출 20: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시면서 제 칠일은 안식일이니 제 칠일에는 반드시 안식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레 25:2-28)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3 너는 육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4 제 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5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9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23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4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6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27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여기는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 칠일 뿐 아니라 7년 째 되는 날도 안식년으로 땅을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땅을 쉬게 하라는 것은 그 땅을 가는 자들의 쉼도 함께 의미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희년에는 모든 빚이 다 탕감이 되고 생활이 어려워 땅을 판자들은 다 되돌려 받게 되는 해 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토지 매매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땅은 하나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활이 정말 어려워서 땅을 팔았을 때는 중간에 돈이 마련되면 다시 찾아 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그런 능력이 없을 때에 가까운 친족 중에 한 사람이 돈을 주고 그 땅을 찾아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 것을 고엘 제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땅을 물러 주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공고를 하지요? 누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면 이 사람의 땅을 무르라. 한 사람이 나섰지요? “당신이 그 기업을 무르겠는가?” 했을 때 그가 거절합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고 룻과 혼인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으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빚을 진 사람이 자기가 상환을 능력이 없을 때 누군가 나서서 그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 이스라엘의 법이었고 누구도 그 빚을 상환할 능력이 없을 때는 하나님께서 희년을 주심으로 모든 빚을 탕감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자기들끼리는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는 죄인들을 위해 그 빚을 탕감해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셔서 “내가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러 왔다”“내가 희년을 선포하러 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6절을 잘 보세요. 누군가 대신 토지를 무른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거기에 무슨 단어를 씁니까? redeem"구속“이라는 말이지요?

 

(26절)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희년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모형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정리를 해 보자고요. 주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주의 해, 은혜의 해, 희년“을 선포하러 오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가 탕감이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빚을 완전히 다 탕감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재창조해 내셔서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기꺼이 순종하고 그 통치를 기뻐하는 곳, 그 곳을 바로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 후에 안식을 하셨던 것처럼 이제 영원히 지속 될 완전한 재창조가 이루어진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에 그 재창조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들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 재창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축하하고 자랑하는 날인 것입니다.

 

우리가 “안식”하면 자꾸 아무 일도 안 하고 쉬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안식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창조 사역의 결과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유와 기쁨과 해방을 마음껏 누리는 것을 '안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최선의 상태를 안식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 안식이 이루어진 곳을 천국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있는 곳,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95장에서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함께 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이렇게 외치다 갔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나니까 그 분이 있는 곳이 다 하늘나라더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하라는 대로 하고 그 분이 하지 말라는 것 안하고 사는 삶이 정말 평안한 자유의 삶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빨리 나그네 인생길을 마치고 하나님 나라로(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너무 너무 그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빌 1:23)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표준새번역]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고후 5:8)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표준새번역] “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살전 4:16-17)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면 잘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 분의 다스림을 즐겁게 받는 곳을 천국이라고 한다면 오늘 날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천국, 하나님 나라에 관심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지도 않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잘 모른다는 이야기죠?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그 분과 함께 있는 것을 미치도록 사모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오늘 날 기독교의 문제는 예수를 너무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모를 뿐 아니라 관심도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 17:3)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는 영생을 , 천국을,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없습니다.

 

(사 45:22) “22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우리 주님을 바라보는 길만이 우리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즐겁게 그 다스림에 순종을 하는 곳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그 천국을 살 수 있습니까? 못 삽니까? 살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옛 몸을 함께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거울처럼 동경처럼 밖에 그 하나님 나라를 맛보지 못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거울은 구리거울, 동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kingdom of heaven이라는 영화에 보면 그 거울이 나오지요? 일그러진 얼굴) 자세히 못 본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맛을 볼 수는 있는 것입니다. 코스코 같은 데 가면 피자나 햄버거나 소시지 같은 것을 조금씩 잘라주면서 맛을 보게 하지요? 왜 그렇게 하지요? 이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정말 맛있으면 온 것 하나 다 사 가지고 가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샘플이 기가 막히게 맛있으면 당연히 그 걸 사 가지고 갑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그 천국을 조금씩은 맛보고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주어질 온전한 그 곳이 그립고 사무치게 가고 싶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별로 천국에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지금 제일 드시고 싶은 것을 하나씩 떠 올려 보세요. 다 떠 올리셨습니까? 뭡니까? 저도 한 가지 떠 올렸습니다. 다 떠올리셨으면 여러분이 지금 제일 드시고 싶은 음식이라고 떠 올리신 그 것이 전에 드셔 본 것입니까? 아니면 소문으로만 들은 것입니까? 보통 자기가 경험한 것 중 최고의 것을 인간은 소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먹어 보지 못한 것을 간절히 먹고 싶어 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에 가면 곰 발바닥 요리가 맛있다더라. 한번 먹어보고 싶다“ 그건 먹어보고 싶은 것입니다. 안 먹어도 상관없어요.

 

오늘 날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천국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것은 지금 우리의 인생에서 그 하나님 나라를 맛보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날 예배당 안에서 그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잘 못 가르쳐 지고 있거나 충분하게 가르쳐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예수와 함께 있으며, 그 분의 통치를 받는 것이 사무치게 기다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저도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 많이 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 예수가 누구입니까? 무엇을 하신 분입니까?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중국에 가서 중학생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신통하게도 그들도 예수가 ”인간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수업시간에 배웠답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는 것 정도는 공산주의 국가 교과서에도 나오는 지식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더욱더 풍성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자들은 그 예수님을 아는 만큼 그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강하게 소망할 것이고 그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라면 그들은 이 땅의 것에 그렇게 연연해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고통 많은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천국을 경험하며 대망하며 사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그 천국이 자기 마음속에 있고 이제 그런 맛보기 정도가 아닌 완전한 실체로 주님과 함께 거할 날이 곧 올 텐데 세상 것에 그렇게 연연해하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은 이러한 고백을 하며 살았습니다.

 

(고후 4:8-9)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빌 3:8-9)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 께로서 난 의라”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런 고백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동일한 신앙 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예수님에 대해서 열심히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를 알 수 있는가? 먼저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뭡니까? 성령에 의해서지요?

 

(요 15:26) “26 내가 아버지께 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 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요 16:13-14)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이렇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님에 대해 배우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를 맛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성령의 은혜는 어떤 방법과 방편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까? 가만히 있는데 억지로 쑤셔 넣는 일은 없습니다.

 

(고후 3:17-18)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표준새번역]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계시하시고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게 하시는 성령의 일은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바라 볼 때 일어납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지요? 성경을 통해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주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면 이제 clear해 졌지요? 우리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길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는 자들에게 일어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어떻게 바라봅니까?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성경을 모르고는 절대 천국을 사모할 수도 없고 가고 싶을 수도 없고 이 땅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가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속에 거하시기를 이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보시면 3장 4장 내내 안식을 설명하다가 뜬금없이 마지막 4장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골수와 관절을 쪼갠다.”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히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이 말은 하나님 나라,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매일 그 말씀에 부딪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체험을 한다고 해도 그 체험은 여러분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한다 해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러한 자들에게 역사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아무리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해도 아무리 방언하고 예언해도 여러분은 절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 수 없고 예수를 알 수 없으면 그 분이 계신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루 종일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데 몇 시간이나 할애를 하시는지 돌아보십시오. 비디오는 하루에 몇 개씩 볼 시간이 있어도 성경 한 장 읽는 데는 전혀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이 오늘날 신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절대 변하지 않아요. 제가 이렇게 힘을 주어 강조해도 여전히 내일도 그렇게 사실 분들이 많을 것을 압니다. 기독교 신문에 보니까 교회 안에 가라지들 말고 “나는 진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중 68%가 일주일에 성경을 한 번도 안 펴본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0%중에서 일주일에 5분 이상 성경을 읽는다고 대답한 사람이 24%였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신자라는 사람들, 거듭났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기 위해 일주일에 5분의 시간도 안 낸다는 것입니다. 하긴 한국의 모 신학대학에서 1,000명의 목사님들에게 무기명 설문 조사를 했는데 하루에 성경을 30분 이상 읽는 목사님이 1,000명중에 딱 두 명 이었다고 하니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신자라는 사람들이 소망이 없느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성경을 전혀 궁금해 하지 않고 그것을 공부하는 데 열심을 내지 않기 때문에 일단 예수를 모르고 그러니까 그 분이 계신 곳에 별로 가고 싶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 분의 통치가 달갑지 않은 것입니다. 진짜 믿어도 되나? 내가 원하는 그런 다스림이 있는 곳일까? 이렇게 의심만 가득한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이 하신 일에 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을 읽지도 않고 설령 읽더라도 자기의 유익을 위한 쪽으로 해석하고, 큐티 하고 하는 것은 영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요 5:39-40)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경은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모형을 보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그 완전한 형상이 갖추어지게 된 것을 우리에게 완성품으로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저 하늘에서 그 실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눅 24:26-27,44-46)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벧전 1:10-12)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공동번역] “10 이 구원은 여러분에게 내릴 은총을 두고 예언한 예언자들이 열심히 찾고 연구하던 것입니다. 11 예언자들이 그 일이 언제 어떤 모양으로 일어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을 때에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성령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12 그들은 자기들이 찾은 진리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교회를) 위한 것이었음을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진리는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들에 의해서 여러분에게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천사들도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 구약의 선지자들이 기록해 놓은 내용들이 다 무엇이라고 합니까? “복음”“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후 3:13-16)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이렇게 구약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기록 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전부는 예수 그리스도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고 그 말씀을 통해 역사 하시는 성령에 의해서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읽으실 거예요? 안 읽으실 거예요? 그럼 다음 시간에는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누구이신지에 대해 잘 정리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을 토대로 부디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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