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낳은 교회, 예수를 낳을 교회
(김성수 목사)
(계 12:1-6)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오늘은 성경 구절을 많이 찾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따라오셔야지 중간에 딴 생각하시다가 잠깐 길을 잃으시면 목적지까지 못 갑니다. 오늘은 예화 같은 것도 없이 성경 구절로 예화를 대신할 겁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해 드린 대로 이제 12장부터는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뭐라고 했지요?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전부 사망으로 던져져야 하지만 그 중의 얼마를 하나님께서 건지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겠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자, 그 언약은 어떻게 성취가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은 성취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한 절 한 절 보겠습니다. 1절을 보시면 해를 입은 여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아이를 배어 아이를 낳게 됩니다. 5절에 보시면 그 여인이 낳은 아이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나오지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전에 시편 2편을 공부하면서 확인했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이 여인은 누구입니까? 태양을 입고 달을 발아래 두고 열두 별 면류관을 쓴 이 여자가 누구일까요. 먼저 그 여인을 묘사하고 있는 해 달 별이 누구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지를 성경에서 찾아 볼 필요가 있겠지요?
(시 89:36-37) “36 그 후손이 장구하고 그 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37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의 위가 하늘의 해처럼, 그리고 달처럼 영원히 견고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인물이지요.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영광을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시 8:3,6)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해 달 별을 발아래 두고 다스리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를 낳는 여인이 해를 입고 달을 발아래 두고 별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갖고 계신 천상(天上) 적 영광을 소유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해 달 별을 다스리는 천상(天上) 적 영광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그대로 소유한 존재가 누구입니까? 예수? 예수가 예수를 낳을 수는 없잖아요? 그럼 누구입니까? 영적 이스라엘, 교회죠. 그래서 그 여자가 교회를 상징하는 12지파, 12사도, 12별로 된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보충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계시록 12장 1절과 2절에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복음이) 다 요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두절을 잘 이해하시면 나머지 12,13,14장은 아주 쉽게 풀 수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을 ‘해산하기 위해 진통하는 여인’으로 표현한 곳이 많습니다.
(사 26:17) “17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
(사 66:7-9) “7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8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보세요, 이렇게 구약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을 아이를 밴 여인으로 묘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아이를 낳기 위하여 신음하고 구로합니다. 이 여인(이스라엘)이 밴 아이는 창세기 3장 15장에서부터 언급이 됩니다.
(창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가 원시 복음이라고 부르는 구절이지요? 타락한 여자와 뱀이 한편이 되어서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선악과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편이 되어 있는 뱀과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그 여자와 뱀을 원수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둘 중의 하나는 내편을 만드시겠다는 언약인 것입니다. 누구일까요? 누가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일까요? 여인일까요? 뱀일까요? 당연히 여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 여인이 하나님의 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여인이 낳는 후손이 필요합니다. 그 후손이, 그 여인이 낳는 아이가 그 여인을 다시 하나님 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언약은 요셉의 꿈으로 이어집니다.
(창 37:9)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오늘 본문과 비슷한 단어들이 많이 나오죠? 해 달 별, 그 아이는 해와 달과 별을 발아래 둔 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야곱의 유언으로 이어지지요?
(창 49:8,10)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메시야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해와 달과 별들이 절을 하는 요셉의 꿈은 유다의 후손으로 올 다윗 왕과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꿈이었습니다. 그 유언은 어디로 이어집니까? 사무엘 하 7장의 다윗의 언약으로 이어집니다.
(삼하 7:12-16)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그 다윗의 아들은 누굽니까? 솔로몬이죠. 솔로몬, 샬롬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던 인물이지요?
(미 5:2-6)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3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하며 니므롯 땅의 어귀를 황무케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 내리라”
그러니까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아이를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여인이 해산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인 여러분이 보셨다시피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던 이스라엘입니다. 그 영적 이스라엘, 교회를 건져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해산하는 여인과 아이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 16:20-21)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근심하여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여기서 여자가 누구입니까? 근심하고 있는 12제자를 말합니다. 12제자는 교회를 상징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고 말씀하십니다. 12제자, 교회가 아이를 낳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교회가 낳는 아이라고 표현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자면, 우리 인간들은 타락을 하고 모두가 사망으로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지키심이 철회되고 자기들 힘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며 살아야만 하는 인간들의 삶은 그야말로 가시덤불과 엉겅퀴 같은 고통의 삶이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탐욕과 경쟁과 다툼과 전쟁, 이러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합니다. 그것은 마치 해산의 고통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 중에 남은 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사망 속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필요에 의해 예수가 오신 것이죠. 그래서 여인이 아이를 낳았다, 교회가 예수를 낳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도 교회를 ‘신부’라고 표현을 하지요? 그 신부와 아이를 해산하는 여인은 같은 존재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이 해산하는 여인을 문자 그대로 ‘마리아’로 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마리아로 보게 되면 오늘 본문 6절이 풀리지 않습니다.
(계 12:6)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 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260일 동안 마리아가 어디로 도망갔던 적이 있나요?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마리아가 등장하지 않는 부분에서 마리아가 3년 반 동안 어떤 섬으로 도망가 있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을 잘 보시면 여자가 1260일 동안 광야로 도망가서 양육을 받은 것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입니다.
(계 12:5)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아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려 간 이후에 여자가 1260일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양육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마리아가 어떤 섬으로 피신을 가 있었다는 가르침이나 마리아가 선교를 떠났었다는 주장은 얼토당토 한 주장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키신 것의 의미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아이를 낳은 여인이 마리아라고 주장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주변에는 항상 마리아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아십니까?
(요 19:25)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이모 즉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가 등장하지요?
(마 27:55-56)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를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등장하는 이름은 딱 하나 ‘마리아’라는 이름들뿐입니다. 거기에 있었던 다른 많은 여자들의 이름은 쓰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헬라어 ‘마리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메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히브리어 ‘메리’는 ‘쓰다’‘bitterness’ 혹은 ‘심히 악한’‘패역한’ 이런 뜻입니다. 그 ‘메리’라는 단어가 쓰인 곳을 한 군데만 찾아보고 넘어가지요.
(겔 2:7)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 할지어다”
여기서 ‘패역한’이 바로 ‘메리’입니다. 아람어로는 ‘마라’라고 하지요. 전부 같은 의미입니다. 여러분 ‘마라’라는 이름이 사람에게 처음 쓰인 곳이 어디지요? 룻기입니다.
(룻 1:20)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서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과 함께 모압 땅으로 갔던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달랑 며느리 하나 남겨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었으므로 이제 나오미의 후사는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가능성, 기대, 희망 이런 것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입니다. 나오미는 그러한 상태에 있는 자신을 가리켜 ‘마라’라고 부르게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라’의 상태에서 보아스라는 인물이 등장을 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모든 빚을 갚아주고 기업을 무릅니다. 그리고 그의 며느리 룻과 결혼해서 그 후사를 나오미의 족보로 돌립니다. 나오미는 ‘마라’‘소망 없는 자, 쓰디쓴 인생의 소유자’에서 보아스의 은혜로, 다시 ‘나오미’‘은혜로운 자, 사랑스러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룻기입니다. ‘마라’가 은혜를 입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또 유명한 ‘마라’의 사건이 있지요? 출애굽기 15장의 ‘마라의 쓴 물’사건입니다.
(출 15:22-25) “22 모세는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인도하여 내어,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사흘 동안 걸어서 광야로 들어갔으나, 물을 찾지 못하였다. 23 마침내 그들이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다. 24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신단 말이오" 하고 불평하였다. 25 모세가 주께 부르짖으니, 주께서 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다. 그가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하였다. 주께서 그들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여 주시고, 그들을 시험하신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 한 뒤 마라에 이르렀을 때 그 곳 물이 써서 이스라엘이 목이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룻기에서의 나오미의 처지와 방불한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무 가지를 꺾어 그 마라의 쓴 물에 던지게 하십니다. 그랬더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해 버린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주변에 왜 마리아라는 이름만 등장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달리신 나무 가지 주변에 수많은 ‘마라’‘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가능하고, 패역 하고, 소망 없는 자들입니다. 목말라 죽게 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 고통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해산하는 여인들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 신음 가운데, 그 쓴 물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나무 가지가 던져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쓴 물들이 단 물로 변해 버리는 사건,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마리아’입니다. 보세요. 그 쓴 물이었던 마리아들이 어떻게 되는지...
(마 28:1-8) “1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고통 속에, 절망 속에, 좌절 속에 있던 마리아들에게 기쁨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들은 곧 큰 기쁨에 빠지게 되었고 그 큰 기쁨 속에 다른 이들에게 그 기쁨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렸습니다. 마라의 쓴 물이 십자가라는 나무 가지에 의해 단 물이 된 것입니다. 이제 곧 사망으로 떨어지게 될 수많은 마리아들을 위해 예수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게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사건인 것입니다. 이사야도 후사가 끊긴 나오미, 마라에게 은혜가 부어져서 다시 소망이 생기게 되는 그 마리아와 나무 가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예언하지요.
(사 54:1) “1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 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 그러니까 그 십자가와 부활의 주변에 있는 마리아들은 전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해산하는 고통 속에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마라’‘마리아’들이 바로 예수를 낳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주위에는 단 하나의 이름 ‘마리아’만 등장하는 것입니다.”
(사 7:14)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마리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은 이 복음의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2장 1절과 2절에 요약해서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고통 속에, 절망 속에, 어두움 속에 신음하던 우리에게 나무 가지가 던져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분을 낳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슬픔에 찬 마리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기쁨에 찬 마리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분이 이제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시면 그 표적이 어디에서 일어났다고 합니까?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요한은 하늘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복음의 이야기는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땅에서 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이제 이 가시적인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로서의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 고난이, 산고가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낳게 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하늘에서 이미 완성된 그 복음의 진리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조금씩만 참으세요. 그리고 기죽지 마십시오. 이제 곧 영원한 여러분의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 때까지만 잘 참아내십시오.
‘하나님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요.’ 아니요, 여러분 ‘네가 밟는 땅을 너에게 주리라’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여든 다섯의 나이에 칼을 뽑아들고 네피림의 후손이 살고 있던 헤브론으로 쳐들어간 갈렙을 기억하십니까? 45년 동안 갈렙의 눈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갈렙은 믿었습니다. 45년간의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도 그는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가나안 땅이 눈앞에 왔을 때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 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필경 내가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그들은 나의 밥입니다’라고 외쳤던 노 장군 갈렙을 기억하십시오.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당하시는 모든 상황들은 전부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힘을 내십시오. 우리 마지막으로 이사야서 9장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사 9:1-7) “1 전에 고통 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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