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의 전투인가?
(김성수 목사)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리는 모든 환난과 고난은 전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확실하게 알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요한은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세상보다 더 잘 되어서 세상 사람을 내 발 밑에 깔고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와 같은 거룩한 자로 만들어지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리차드 백스터 같은 사람은 ‘당신들의 삶 속에 거룩을 향한 싸움이 없다면 당신들은 다 가짜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셨습니다.(리차드 백스터의 ‘회심’중에서) 그 분들은 그러한 전쟁을 열심히 치러 내신 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더욱더 많이 깊이 맛보고 가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 속에서 안식을 향한 싸움을 반드시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힘써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전투를 매일 매일 치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계 8:6-9) “6 그 때에 나팔을 하나씩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 준비를 하였습니다.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우박과 불이 피에 섞여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푸른 풀이 다 타버렸습니다.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에 사는, 생명이 있는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서졌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마지막 일곱 번째 인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팔 재앙의 서론 부분을 공부했지요? 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그 안에 담긴 성도들의 기도와 향을 합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그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 향로에 불을 담아 땅에 쏟으시는 장면을 통해 이 땅에,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쏟아지는 환난과 고난과 재앙은 모두 우리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도는 궁극 적으로 어디로 수렴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까? ‘우리의 거룩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수렴되어져야 하는 것이 성도들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재앙과 환난의 내용은 전부 우리의 거룩과 악한 세력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주에도 잠깐 언급을 해 드렸지만 이스라엘이 나팔을 언제 불었느냐 하면 군사를 모을 때, 진군 명령을 내릴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전투하는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이스라엘의 나팔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을 해 드리면서 나팔 재앙의 서론 부분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나팔의 개념을 잘 정리를 해 놓으면 이 나팔 재앙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군사를 모을 때 진군 명령을 내릴 때 나팔을 불었을 뿐만 아니라 대적을 완전히 몰살시켜 버릴 때에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수 6:4-5)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 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이 나팔 재앙에서 일곱 천사가 나팔을 들고 불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과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붙들고 불 준비를 하는 모습이 흡사하지 않으세요? 일곱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 어떻게 됩니까? 철옹성인 여리고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나팔 재앙은 그렇게 악의 완전한 소멸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언제 나팔을 불었는가하면, 기쁨을 동반한 예배에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민 10:10) “10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그러니까 이 나팔재앙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되어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영원히 예배하는 그 때를 향한 나팔도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같은 내용이지요. 그리고 왕이 등극을 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왕상 1:39) “39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양각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 만세를 부르니라”
그러니까 이 나팔 재앙은 우리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이 되셔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실 그 날을 위한 나팔인 것입니다. 역시 같은 내용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나팔입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 나팔을 불었을 때, 우리 주님의 대관식의 장면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계 11:15-17)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새해인 7월1일에 (티쉬리 월 1일)나팔을 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날을 나팔 절 혹은 신년 절로 지킵니다. 모든 어두운 것들, 묵은 것들이 물러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나팔입니다.
(레 23:24) “2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그렇게 이 나팔 재앙은 새로운 창조의 완성을 향한 나팔인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를 촉구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욜 2:12-15)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그러니까 이 나팔 재앙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나팔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되니까요.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경고할 때도 나팔을 불었습니다.
(습 1:14-17)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15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16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17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겔 33:2-4) “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은 3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 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팔을 불라고 하신 것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상징하는 의식이나 절기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나팔 재앙 즉, 우리의 인생에 닥치게 될 환난과 고난과 같은 재앙의 내용과 의미는 악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과 동시에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경고이며, 악한 세력과의 싸움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들의 거룩을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배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새 해에 나팔을 불었던 것처럼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새로운 시작인 새 하늘과 새 땅, 하늘의 새해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팔 재앙으로 묘사가 되고 있는 그러한 삶의 질곡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이 나팔재앙을 통해 읽어내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일곱 재앙의 내용을 잘 읽어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이 일곱 재앙은 출애굽 당시에 애굽에 내려졌던 열 가지 재앙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일곱 나팔의 첫 번째 재앙인 우박은 애굽의 몇 번째 재앙입니까? 일곱 번째 우박 재앙이지요? 일곱 나팔의 두 번째 재앙으로 물이 피가 되지요? 그리고 세 번째 나팔 재앙으로 물이 쑥이 되어 못 먹게 됩니다. 출애굽 때의 몇 번째 재앙입니까? 첫 번째 재앙이지요? 나일 강이 피가 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만든 사건도 생각이 나시지요?
그리고 네 번째 나팔로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집니다. 몇 번째 출애굽 재앙입니까? 아홉 번째 재앙입니다. 깜깜한 암흑이 애굽을 덮지요? 그리고 다섯 번째 나팔의 황 충(메뚜기) 재앙은 출애굽 몇 번째 재앙입니까? 일곱 번째 재앙이지요? 그리고 일곱 대접의 첫 번째 재앙인 개구리 재앙은 애굽에 내렸던 몇 번째 재앙입니까? 두 번째 재앙입니다. 요한은 지금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애굽에 내리셨던 재앙의 내용을 인용해서 교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의 열 가지 재앙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출애굽의 재앙은 하나님께서 당시 악을 상징하고 있던 애굽의 바로에게 전쟁을 선포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져내시는 것을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일곱 재앙들이 바로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재앙들을 통해서 애굽의 바로를 무릎 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참 왕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그러한 재앙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신 4:34-35) “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리는 모든 환난과 고난은 전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확실하게 알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요한은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그냥 처음부터 장남들을 다 죽여 버릴 수도 있었는데 굳이 아홉 가지 재앙을 다 겪게 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팔 재앙의 내용이 좀 더 확실해 졌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첫 번째 나팔은 무엇이고 두 번째 나팔은 무엇이고 세 번째 나팔은 무엇인가 거기에 궁금증을 갖기 전에 먼저 이러한 재앙들이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내리는가, 그리고 그 재앙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define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재앙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되지만 왜 그 재앙이 임하는가는 정확히 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우리 삶에 닥치는 환난이나 고난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재앙의 이유가 뭡니까? 환난의 이유가 뭐예요?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 나팔 재앙의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원리를 잘 기억해 두세요. 하나님은 유일하신 천지의 주관자이십니다. 그 누구도 그 앞에 적으로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악과 싸우신다는 표현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악과 싸우십니다. 그러나 악이 하나님의 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두 팔 걷어 부치시고 싸우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악에 빠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그 악의 요소들을 제거해 나가시는 것을 ‘하나님이 악과 싸우신다.’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승리자이십니다. 하나님께 패배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이미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지금 싸우고 계신답니다. 그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도와 우리의 순결함, 순전함, 거룩함을 만들어 내시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결국에는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함께 싸우자고 부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싸워야 할 싸움은 믿지 않는 자들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전투를 한다는 것은 교회 봉사 열심히 하고, 선교 열심히 하고, 또 훌륭한 사람 되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하는 그런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이미 유다 안에 마귀가 들어갔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마귀의 발을 닦아주십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절대 세상보다 더 잘 되어서 세상 사람을 내 발 밑에 깔고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와 같은 거룩한 자로 만들어지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수 1:2-9)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노예 출신들인 오합지졸 이스라엘 백성들과 철기로 된 무기와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과의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애굽은 지리학상 성이 필요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에 와서야 성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막강한 성을 공략할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은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가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니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하시면서 전쟁 준비를 시키십니다. 어떻게 전쟁 준비를 시키십니까?
‘율법을 지키고 율법 책을 묵상하라’고 하십니다. ‘군사를 훈련시키고 군량미를 비축하고 무기를 만들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율법을 지키고 율법 책을 묵상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율법은 ‘토라’입니다. 토라는 단순히 율법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모세오경을 가리켜서도 토라라고 합니다. 지금 여호수아서에서 토라를 지키고 토라를 묵상하라고 하는 것은 그 앞의 성경인 ‘모세 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다른 말로 여호수아서 앞의 모든 성경을 묵상하고 지켜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쟁은 그것입니다. 대적을 박살내기 위해 실력과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의 발을 씻길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따라 살도록 힘써 행하는 전쟁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정말 강한 존재입니다. 가나안의 거인들, 철 병거를 가진 군사들처럼 강한 존재입니다. 성벽 위로 마차 두 대가 동시에 달릴 수 있는 정도의 철옹성 같은 성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면 마치 메뚜기 같을 정도로 우리의 대적은 강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대적은 하나님이 맡으십니다. 왜 여리고 성에 망치질 한번 못하게 하십니까? 왜 수십만의 미디안 군사 앞에 모여 선 삼만 이천 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을 다 흩으시고 기드온과 삼백 명만 남기십니까? 그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게 되는 거룩한 자로 지어져 가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곱 재앙들은 전부 그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결국 승리하실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치시는 하나님의 전쟁을 보고 배우면서 실제로 체험하면서 우리는 한 발 한발 성숙하게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 어디입니까? 가나안이지요? 그런데 왜 안식의 상징인, 하나님 나라의 상징인 가나안에 계속해서 전쟁이 있습니까? 가나안 땅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니까 당연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전쟁을 통해서 조금 씩 조금씩 얻어가게 만드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구원과 안식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땅은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어졌어요. 그런데 전쟁을 통해서 갖게 만드세요.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점점 확실하게 알아가게 되고 그 분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천국을 조금 씩 조금씩 경험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 나에게 주어진 천국의 안식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를 비롯한 수많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한 천국의 안식을 이 땅에서 직접 체험하고 가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던 사람들입니다.
리차드 백스터 같은 사람은 ‘당신들의 삶 속에 거룩을 향한 싸움이 없다면 당신들은 다 가짜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셨습니다.(리차드 백스터의 ‘회심’중에서) 그 분들은 그러한 전쟁을 열심히 치러 내신 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더욱더 많이 깊이 맛보고 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쟁을 겪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 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하나도 기쁘지 않고 감격스럽지도 않고 평안이 없는지 아세요? 홍해를 건너긴 건넜는데 자기 안에 있는 대적들과의 싸움을 하지 않고 매일 그 적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가나안은 우리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싸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히 4:8-13) “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뒤에, 다른 날이 있을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9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10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 그도 자기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을 씁시다. 아무도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 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냅니다. 13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 속에서 안식을 향한 싸움을 반드시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힘써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전투를 매일 매일 치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평면적인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역동적입니다. 다이나믹이 있습니다. 구원은 역사성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신분적이며 운명적이며 영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존은 지금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재앙은 이렇게 구원을 받아 가는, 거룩해져 가는, 성숙을 위해 열심히 전투를 해야 하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고 초대 교회 때 그 엄청난 박해 속에서 이 일곱 재앙의 이야기를 읽고 가슴 벅차하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감격이 오늘 동일하게 이곳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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