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신분과 영적인 실존
(김성수 목사)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다는 것은 그 재앙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진공 상태로 보호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재앙을 함께 당하지만 그 재앙의 궁극 적인 결과인 사망으로 가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 파에서 나온 십사만 사천입니다. 이 구절도 많은 오해와 곡해를 불러일으킨 구절이지요? 그런데 이 지상에서의 교회의 삶은 힘들고 고단한 것입니다. 악한 세력들이 하나님을 대적해서 악을 양산하고 있고 그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자신들을, 그리고 우주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도 그 옛 사람이었을 때의 습관, 경향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든 악한 것들을 들어서 재앙으로 환난으로 사용하십니다. 결국 악한 세력들과 죄인들은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되고 파괴되고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똑같이 그 악한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이 주는 재앙들을 똑같이 겪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 재앙이 우리의 신자 됨을 훈육하고 가르치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인 치셨고 우리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계 7:1-17) “1 그 뒤에 나는, 천사 넷이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네 바람을 붙잡아서, 땅이나 바다나 모든 나무에 바람이 불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 그리고 나는, 다른 천사 하나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땅과 바다를 해하는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는,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아라." 4 내가 들은 바로는 도장을 받은 사람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마에 도장을 받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5 도장을 받은 자는, 유다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르우벤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갓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6 아셀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납달리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므낫세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7 시므온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레위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잇사갈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8 스불론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요셉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베냐민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도장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9 그 뒤에 내가 보니,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은 큰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11 모든 천사들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을 둘러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12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 하도록 있습니다. 아멘!" 하고 말하였습니다. 13 그 때에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흰 두루마기를 입은 이 사람들은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나는 "장로님께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그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장막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16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태양이나 그 밖의 어떤 열도 그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17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첫 번째 인부터 여섯 번째 인의 내용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네 말 탄자로부터 비롯되는 전쟁, 기근, 질병, 자연재해 등의 재앙이 교회 시대를 통해 세상에 임하게 되는데 그 재앙에 교회인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대로 노출이 됩니다. 세상은 전부 그렇게 재앙을 통해 최후의 종말을 향해서 마지막 사망을 향해서 파괴되어지고 멸망해 가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 재앙이 오히려 그들의 신자 됨을 훈육하고 가르치는 복이 된다는 것을 배웠지요? 그러나 그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면에서 우리 신자들은 모두‘순교자로 불린다는 것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세상 모든 인간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 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서 산과 바위에게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려라.’ 고 외칠 정도로 그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은 무시무시한 것이라고 요한이 여섯 번째 인의 재앙에서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누가 그 진노에서 건짐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하고 수사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6장을 마칩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인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일곱 번째 인은 우리가 다음 주에 공부할 8장에 나옵니다. 그 여섯 번째 인과 일곱 번째 인 사이에 7장이 삽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7장에서 6장 말미에서 던진 질문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에 대한 대답을 확실하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무서운 것이다. 누구도 그 앞에서 견뎌 낼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그들은 그 앞에서 건짐을 받는다.’하고 교회에게 힘과 용기와 격려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4장에서 휴거되는 것이 아니라 이 일곱 재앙을 세상과 함께 겪어 내야 하기 때문에 때로 낙담하고 때로 절망에 빠지고 때로 힘에 부쳐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의 중간 중간에 우리 교회의 신분과 영적인 실존을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7장을 보시면 7장은 전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 시간에 7장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7장1절을 보시면 ‘이 일 후에’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이 일 후에‘라는 단어는 시간적인 순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이 본 환상의 순서입니다. 환상의 순서가 꼭 시간 적 순서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왜 제가 별로 중요할 것 같지 않은 이 구절을 굳이 설명을 해 드리는가하면 일부 세대주의자들이 이 단어를 가지고 7장을 여섯 번째 인의 재앙 다음에 하나님께서 잠깐 쉬는 시간을 주시고 그 사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을 치신다고 주장을 하기 때문에 제가 이 부분을 언급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시간적인 순서로 역사를 나열해 놓은 책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은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들을 대입해서 ’맞나 안 맞나‘를 풀어 보는 수수께끼 책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제가 수십 번 말씀 드렸습니다. 요한이 여섯 번째 인의 환상 후에 다른 환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것을 봅니다.
(계 7:1) “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이 네 천사가 붙들고 있는 네 바람이 무엇인가? 스가랴 서로 한번 가보지요.
(슥 6:1-5) “1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 산은 놋산이더라 2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3 셋째 병거는 백마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그 네 바람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6장에서 공부한 네 말 탄자들입니다. 이 땅에 재앙을 선포하는 네 말 탄자들을 누가 붙들고 있습니까? 네 천사가 붙들고 있습니다. 왜 붙들고 있습니까? 3절 보세요.
(계 7:3) “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 위해서 그 재앙을 선포하는 네 바람, 네 말 탄자들을 천사들이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인을 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에베소서 공부할 때 성령의 인에서 자세히 설명해 드렸죠? 당시 고대 시대에서 인을 친다는 것은 ‘이 물건, 이 가축, 이 노예는 내 것이다’라는 표시라고 했지요? 그리고 ‘이것들은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보호 한다’는 주인의 보호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렇게 인을 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내 것이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 한다’
(계 9:4) “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은 모든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다는 것은 그 재앙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진공 상태로 보호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재앙을 함께 당하지만 그 재앙의 궁극 적인 결과인 사망으로 가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그 재앙으로, 심판으로 죽어야 하는데 우리 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어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끌고 나오실 때에 양을 잡아 그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시지요? 죽음의 사자가 그 양의 피가 묻어있는 곳은 그냥 넘어 갑니다.(pass over) 그 집의 장자는 죽은 것으로 간주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은 그런 것입니다. 그 인을 받은 자들은 절대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계 14:1)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우리는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한 것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우리를 넘어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것이 하나님의 인이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을 쓸어버릴 일곱 재앙을 설명해 주시면서 ‘교회야, 내 아들딸들아, 너희들도 세상이 당할 재앙에 그대로 노출이 될 것이기 때문에 때때로 너희들의 삶이 고단하고 힘이 들 수가 있다. 그러나 너희는 절대 낙망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을 걸고 너희들을 지킬 것이다. 지금 그러한 상황들은 다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허락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잘 참아 내거라’하고 7장을 끼워 넣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네 바람을 붙들고 있는 네 천사들에게 ‘내 자녀들에게 인을 치기까지 그 바람을 절대 놓지 말라’는 소식을 전하는 천사가 어디서부터 올라옵니까? 해 돋는 곳, 동쪽으로부터 올라옵니다. 유대 종교 사상에서 동쪽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나타내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도 동방에 지으셨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고 에스겔 서 43장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 문을 통하여 들어 왔다는 구절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가나안도 동 쪽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단강 서편에 있는 가나안 땅을 굳이 요단 동편으로 가서 요단강을 쪼개고 그 강을 건너서 동쪽에서 들어가는 것은 다 그런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한군데만 찾아보고 갈까요?
(수 1:15) “15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똑같은 단어가 나오지요? ‘해 돋는 편‘ 그러니까 해 돋는 곳에서 올라온 그 천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소식을 전달하러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인침을 받게 되는가?
(계 7:4) “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 파에서 나온 십사만 사천입니다. 이 구절도 많은 오해와 곡해를 불러일으킨 구절이지요? 하나님의 인을 받는 자들은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선택 된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문자 적 해석을 많이 들 합니다. 왜냐하면 5절부터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거명 하면서 각 지 파에서 만 이천 명씩 뽑아서 인을 받게 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 5절 이하에 열거되어 있는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인을 받는 사람들의 계수 장면은 민수기 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 장면을 인용한 것입니다.
(민 1:1-3, 45-46) “1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이 년이 되던 해 둘째 달 초하루에(시브월, 양력 사월 중순 이후), 주께서 시내 광야의 2)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각 가문별, 가족별로 인구를 조사하여라. 남자의 경우는 그 머리 수대로 하나하나 모두 올려 명단을 만들어라. 3 너는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스무 살이 넘어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남자들을, 모두 각 부대별로 세어라. 45 이스라엘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스무 살이 넘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각 집안별로 등록되었다. 46 등록된 이들은 모두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다.”
하나님께서 싸움에 나갈 만한 군사를 계수 하라고 하시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는 항상 이십 세 이상의 남자, 즉 전투에 임할 수 있는 나이의 남자들만을 계수 했습니다. 그렇게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장정이 6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이었습니다. 요한은 이 장면을 인용해서 무언가를 웅변적으로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육십만을 십사만 사천으로 바꾸어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조금 이상합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와 많이 다릅니다. 우선 5절 이하에 거명 된 열두 지파에는 단 지파가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 대신에 요셉지파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레위 지파는 계수에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전투에 나갈 수 없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레위 지파도 들어 있습니다. 왜 이런 파격과 혼돈(混沌), 이러한 불규칙한 나열이 5절 이하에 도입이 되었는가? 한번 보자고요. 먼저 요한은 민수기의 계수 장면을 자신의 책에 인용해서, 그 인을 받는 자들은 이 땅에서 전투를 해야 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라는 표현을 씀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언약의 성취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 질 것이라고’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진짜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영적 이스라엘,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인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강조하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군사를 계수 하던 민수기의 장면을 인용해서 그렇게 인을 받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군사로, 전투하는 자들로 그들의 인생을 경주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2는 3X4입니다. 3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4는 동서남북 온 우주를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이 12라는 숫자는 삼위 일체 되신 하나님께서 온 우주 가운데 역사 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 수입니다. 그런데 이 온 우주는 결국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에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역사 하셔서 하나님 자녀들의 자녀 됨을 만들어 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자녀들이 영원히 하나님과 거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하나님은 온 우주에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온 우주는 바로 여러분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12라는 숫자로 표현을 합니다. 12지파 12사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12 문과 12 기초 석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를 상징하는 숫자들입니다. 그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 두 사도의 숫자를 곱해서 12X12=144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1장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높이를 144규빗이라고 한 것이지요.
(계 21:17) “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그리고 거기에다가 당시 고대시대에서 가장 큰 숫자였던 1,000을 곱해서 그 교회의 숫자가 아주 많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1000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하나님 백성들의 완전성과 무한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를 144,000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나열하면서 일부러 단 지파를 빠트리고 요셉 지파와 레위 지파를 집어넣고 하는 구약의 열 두 지파와 혼돈(混沌)이 되는 불규칙한 나열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되는 자들은 민족적 이스라엘이 아닌 영적 이스라엘, 바로 교회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왜 단지파가 빠졌는지, 왜 레위 지파가 들어갔는지, 왜 에브라임이 빠지고 요셉지파가 들어갔는지 그런 것에는 관심을 두지 마세요. 저도 그 부분을 밝혀 보겠다고 아주 많은 시간을 썼는데 결국 시간만 낭비했습니다.
그냥 요한이 이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런 불규칙한 나열을 한 것이라고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단지 구약의 표현들을 인용해서 그 구약의 표현들이 주었던 메시지만을 차용한 것 뿐입니다. 당시의 독자들은 구약에 능통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구약의 내용들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용한 것뿐입니다. 바로 이 내용이죠?
(롬 9:6-8) “6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폐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7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다만 "이삭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을 너의 자손이라고 부르겠다" 하셨습니다.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참 자손으로 여겨 주심을 받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미 BC720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면서 이스라엘의 지파는 사실 상 다 뭉개졌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피가 섞여서 그냥 ‘사마리아 인’이라는 이름으로 뭉개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AD70년에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지파는 사실 상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에서 12,000씩 뽑아서 하나님이 인을 치신다는 것은 넌센스지요.
계시록의 144,000은 영적 이스라엘, 교회입니다. 이렇게 요한은 7장 서두에서 이 지상에서 전투하는 교회, 그러나 하나님의 인을 받아서 안전하게 보호받게 되는 교회를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9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그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가 천상에 어떻게 완성이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들 힘들겠지만 천상에 이미 완성이 되어 있는 너희의 이 실존을 보고 참고 인내하며 잘 견뎌’하고 여러분들의 천상의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9절에 그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 이스라엘의 자손, 144,000명이 어떻게 묘사가 되어 있는지 보세요.
(계 7:9) “9 그 뒤에 내가 보니,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44,000명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표현을 하지요? 아까 144X1,000에서 1,000이 무엇을 나타내는 숫자라고 했지요? 완전성과 무한성을 나타내는 숫자라고 했지요? 이렇게 144,000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 중에서 인을 받은 아주 많은 무리, 교회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144,000은 여러분이 공부하셨다시피 이 땅에서의 전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환난을 통과해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9절 이하의 천상의 교회는 이미 거기를 통과하고 나온 자들입니다.
(계 7:13-14) “13 그 때에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흰 두루마기를 입은 이 사람들은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나는 "장로님께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어디서 나온 자들입니까?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come out of the great tribulation’ 거기서 쓰인 단어가 헬라어 ‘에크’입니다. 그 말은 ‘out from tribulation’이 아니라 ‘out of tribulation’이라는 뜻입니다. 환난을 겪지 않고 휴거 된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환난을 겪었으나 하나님의 인을 받아, 하나님께서 보호하심으로 거뜬히 그 환난을 통과해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공부하고 있는 요한 계시록 7장 1절에서 8절까지에 나와 있는 인을 받는 144,000과 9절부터 17절까지의 허다한 무리는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인 144,000이 인을 받는 것은 재앙이 시작되기 이전입니다. 네 바람이 활동을 하기 전에 인을 받지 않습니까? 그런데 허다한 무리가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장면은 재앙을 통과한 이후입니다.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7장8절까지와 9절 이하의 내용 사이에 요한 계시록 6장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여러분은 이미 창세전에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과 역사 속에서 소위 일곱 재앙이라는 것을 통과하며 하나님을 배우고 여러분에게 왜 구원이 필요했는지를 배우며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되어져서 9절 이하의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입성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처음과 끝입니다.
그런데 이 지상에서의 교회의 삶은 힘들고 고단한 것입니다. 악한 세력들이 하나님을 대적해서 악을 양산하고 있고 그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자신들을, 그리고 우주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도 그 옛 사람이었을 때의 습관, 경향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든 악한 것들을 들어서 재앙으로 환난으로 사용하십니다. 결국 악한 세력들과 죄인들은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되고 파괴되고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똑같이 그 악한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이 주는 재앙들을 똑같이 겪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 재앙이 우리의 신자 됨을 훈육하고 가르치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인 치셨고 우리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변할 수 없는 미래의 현실이 이미 완성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9절 이하에서 보셨잖아요. 여러분의 영적인 실존.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롬 8:31-39) “31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의롭게 하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네, 여러분은 이렇게 안전합니다. 여러분을 낙담시키고 여러분을 초라하게 보이게 하는 것들은 전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여정 동안 이 재앙의 시기를 통과하는 동안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많이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을 낙담시키면 안 됩니다. 간암에 걸린 아빠를 위해 자신의 간을 떼어 준 중학생 소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빠를 위해 간을 잘라내기 위해 수술을 하고 회복을 하는데 너무 많이 고통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리더라는 것이죠. 아픈 건 어떻게 못 하겠더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곁에서 회복해 가고 있는 아빠를 보니까 배가 아프긴 아픈데 가슴은 기쁨으로 꽉 차더라는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통해 겪는 것들이 안 아프지 않습니다. 아픕니다. 그러나 이유가 있는 아픔이기 때문에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혼자 슬며시 웃을 수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을 보세요.
(계 7:15-16) “15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그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장막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16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태양이나 그 밖의 어떤 열도 그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15절에 보시면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밤 낮 하나님을 섬긴다고 합니다. 분명 그 곳에는 밤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영원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장막을 치신 답니다. 우리를 품어 안으신다는 말입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뭡니까? 일곱 재앙의 내용들이지요? 이 땅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만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낙담되고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세요.
지금 이 미칠 것 같은 현실은 잠시 스쳐 가는 나그네길일 뿐입니다. 이렇게 미칠 것 같은 죄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 지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후면 9절 이하에 있는 다시는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함을 입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리고 견뎌 내십시오. 마침내 맨 발로 뛰어 나오시며 ‘내 딸 왔느냐, 내 아들 왔느냐’ 하고 우리를 품에 안고 우리의 흘린 눈물을 닦아주실 우리 아버지를 만날 날이 곧 옵니다. 본문 17절을 보세요.
(계 7:17) “17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소망을 품은 자들은 이렇게 삽니다.
(엡 4:30-32)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매일 매일 여러분의 신분과 여러분의 영적인 실존을 확인하시고 그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사십시오.
'the words of trut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김성수 목사) (0) | 2013.07.07 |
---|---|
[스크랩] 노아의 방주와 물위를 걷는 자들 (김성수 목사) (0) | 2013.07.07 |
[스크랩]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김성수 목사) (0) | 2013.07.04 |
[스크랩] 여자의 믿음과 죽음의 신학(김성수 목사) (0) | 2013.07.03 |
[스크랩]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I) / (김성수 목사) (0) | 2013.07.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