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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재앙의 정체 (김성수 목사)

by IMmiji 2013. 6. 27.

 

 

재앙의 정체

 

(김성수 목사)

 

 

(신앙생활의 목표 지점이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 만사형통‘인 사람이 ’너희는 세상에서 늘 지는 모습으로 어린양의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는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고 그 삶이 너희를 정금 같이 순결하게 만드는 삶이며 그 길을 꼭 통과해야 너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기쁘겠습니까? 붉은 말과 그 말을 탄자가 나옵니다. 그 말 탄 자가 땅의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게 합니다. 전쟁을 의미합니다. 둘째 인의 내용은 바로 전쟁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 그 시간에 세상의 많은 사교장에서는 멋진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점점 그러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흉년으로 죽어가고 있고 죽어갈 것입니다. 짐승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을 죽이는 것처럼 보이리만치, 그 재앙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무서운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 권세 잡은 사탄이 움직이는 대로 그대로 따라 움직입니다.)

 

 

(계 6:1-8) “1. 나는 그 어린 양이 그 일곱 봉인 가운데 하나를 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우뢰 같은 소리로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2. 그리고 내가 보니, 흰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은 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그는 이기면서 나아가고, 이기려고 나아갔습니다. 3. ○그 어린 양이 둘째 봉인을 뗄 때에, 나는 둘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4. 그 때에 불빛과 같은 다른 말 한 마리가 뛰어나오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은 땅에서 평화를 걷어 버리고,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하는 권세를 받아 가졌고, 또 그는 큰 칼을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5. ○그 어린 양이 셋째 봉인을 뗄 때에, 나는 셋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니, 검은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은 손에 저울을 들고 있었습니다. 6. 그리고 네 생물 가운데서 나오는 듯한 음성이 들려 왔는데 "밀 한 되도 하루 품삯이요, 보리 석 되도 하루 품삯이다.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불순하게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7. ○그 어린 양이 넷째 봉인을 뗄 때에, 나는 이 넷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8. 그리고 내가 보니, 청황색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의 이름은 '사망'이고, 지옥이 그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칼과 기근과 죽음과 들짐승으로써 사분의 일에 이르는 땅의 주민들을 멸하는 권세를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곱 인의 내용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네 번째 인까지에 나오는 네 말 탄 자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는 그 말 탄 자가 누구인지를 궁금해 하기보다는 그 말 탄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이해하면 된다고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 그 말 탄 자들을 등장시키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은 심판과 저주와 재앙과 동시에 공존하게 되는 것임을, 그러니까 새 창조를 위해서는 반드시 역 창조가 선행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주지시켜 주시는 것임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재앙을 받지 않도록 건져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재앙으로 표현된 역 창조 속에서 새 창조를 향해 한 발 한 발 움직이도록 만드신다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 재앙의 내용들이 점점 강하게 이 땅에 보여 지게 될 때, 혹은 자기의 삶에 그러한 재앙이 나타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가까웠음을 알게 되는 것이고, 또 우리는 그 역 창조와 새 창조의 과정을 그대로 겪어내야 하며, 그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결국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은 죽고 다시 사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매번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열심히 우리를 죽여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사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인을 떼고 계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시며, 그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이 누구에 의해 지금 완성이 되어가고 있는가를 확인하시며 여러분의 구원은 그래서 확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에게 정말 위로가 되십니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만사형통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성도의 삶이 아니라 성도들은 매일 매일 어떤 방법으로든 죽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여러분에게 정말 위로가 되십니까?

 

이 요한 계시록은 분명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응원의 편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 편지를 읽으시면서 정말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고 용기가 나시냐는 말입니다. 이 요한 계시록은 초대교회의 기독교인 2세 3세들에게 주었던 책입니다. 최초의 수신자는 그들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1세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그 분의 말씀을 들었고 그 분의 부활을 목격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을 비롯한 그 1세대들은 확고한 신앙 위에 서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1세대들이 하나 둘씩 죽고 이제 2세대 3세대가 교회의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그 확고 불변하던 신앙은 점점 퇴색되어져 가게 되었고 박해도 점점 심해져서 도미티안 황제 때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바로 이 요한 계시록이 기록이 되었던 AD95년 96년경입니다. 이 요한 계시록은 그렇게 힘겹게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들이 ‘신앙생활이라는 게 정말 이렇게 힘든 건가? 내가 맞게 믿고 있는 건가?’하고 흔들리고 있던 교회들에게(2세 3세들에게) 그 하늘나라의 영광과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본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줌으로써 힘과 용기와 격려를 쏟아부어주시는 책이 바로 요한 계시록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참 신자라면 이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시면서 마땅히 그들과 동일한 힘을 얻으시고 격려를 얻으시고 용기를 얻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요한 계시록을 읽으시면서 기뻐서 어쩔 줄 모르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표지점 설정을 잘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요한 계시록이 전혀 힘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목표 지점이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 만사형통‘인 사람이 ’너희는 세상에서 늘 지는 모습으로 어린양의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는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고 그 삶이 너희를 정금 같이 순결하게 만드는 삶이며 그 길을 꼭 통과해야 너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기쁘겠습니까? 그러니까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거룩’이라고 설정이 되어 있는 사람과 자신들의 목적이 ‘이 땅에서의 자랑과 거들먹거림’으로 설정이 되어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1절부터 6절까지를 공부할 것입니다. 네 번째 인까지를 공부하겠습니다. 첫 번째 인은 맨 나중에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인부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3-4절)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칼을 받았더라”

 

우리 주님께서 둘째 인을 떼시니까 붉은 말과 그 말을 탄자가 나옵니다. 그 말 탄 자가 땅의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게 합니다. 전쟁을 의미합니다. 둘째 인의 내용은 바로 전쟁입니다. 우리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이 있습니까?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인종간의 전쟁, 종교 전쟁, 그리고 이웃과의 전쟁, 심지어 부모와 자식과의 전쟁 등 수많은 전쟁들이 오고 오는 역사 속에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전쟁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죽고 상처를 받고 절망하고 좌절을 겪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그 전쟁을 비껴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이 그러한 전쟁에 노출이 됩니다. 아니 세상이 겪는 전쟁에 노출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거기에 보태서 그리스도인들만이 겪어내야 하는 전쟁도 있습니다.

 

(마 10:34-37)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세상은 그러한 전쟁을 겪으면서 어두움과 절망과 좌절과 사망으로 던져지게 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전쟁을 겪으면서 십자가의 도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쟁이지만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죽여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쟁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면서 왜 내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꼭 필요할 수밖에 없는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게 신비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 지고 크고 작은 전쟁들은 더욱더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분명 그 전쟁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도다움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세 번째 인으로 넘어갑니다. 5절과 6절을 보세요.

 

(계 6:5-6) “5 세 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 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 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셋째 인을 떼시자 검은 말이 나오고 그 말 탄자가 손에 저울을 들고 나옵니다. 성경에서 저울이 등장하면 흉년과 기근을 상징합니다.

 

(겔 4:16-17) “16 주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내가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의지하는 빵을 끊어 버리겠다. 그들이 빵을 저울에 달아서 걱정에 싸인 채 먹고, 물을 되어서 벌벌 떨며 마실 것이다. 17 그들은 빵과 물이 부족하여 누구나 절망에 빠질 것이며, 마침내 자기들의 죄악 속에서 말라죽을 것이다."

 

(계 6:6)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 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한 데나리온에 밀이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가 석 되라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입니다. 보통 한 데나리온으로 밀을 12되 정도 살 수 있습니다. 보리는 그보다 3배 정도가 싼 식량이었기 때문에 36되 정도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근과 흉년으로 물가가 하도 올라서 한 데나리온으로 밀을 한 되밖에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6절에 나오는 밀과 보리 감람유와 포도주는 유대인들의 식량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밥과 김치 같은 의미입니다. 그 중에 감람유와 포도주는 부유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식품이었습니다. 실제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에 기근이 아주 심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아이를 잡아먹기도 했다는 요세푸스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밀과 보리를 더 심기 위해서 감람나무와 포도나무 밭을 갈아 엎어버리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치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아무리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도 부자들은 여전히 부자로 남아 있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온 세계가 바로 이러한 빈익빈 부익부의 상태로 급속히 변해가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이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위 1%에서 5%를 배부르게 하기 위해 나머지 95%가 죽을힘을 다해 생존에 힘을 쓰고 있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중산층은 점점 없어지고 대다수의 극빈자들과 자기 가진 것을 주체할 수 없는 부자들의 두 계층으로 세상은 점점 구분되어지고 있습니다. 뉴올리언즈에서 죽은 수 만 명의 흑인들이 대피하라는 경고를 듣고도 그렇게 죽은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망 갈 버스비가 없어서 죽었다고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는 그 시간에 세상의 많은 사교장에서는 멋진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점점 그러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흉년으로 죽어가고 있고 죽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근은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일어나는 기근은 아닙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기근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태평양에 밀을 가마니 채로 부어 수장시키는 한이 있어도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한 되의 밀을 내밀 줄 모르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욕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영적 기근과 영적 흉년을 보면서, 그리고 자신이 당하면서 이 땅에서의 허울 좋은 자신의 꿈과 비전을 하나하나 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해야 할 곳은 이 욕심 많고 죄 많은 땅이 아니구나. 진정한 행복과 평화와 참된 번영이 있는 그곳,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자’ 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밥은 굶지 않지만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지는 않지만 타락한 모든 인간은 상대적 궁핍과 기근에 놓여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낍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가 ‘당신은 얼마나 더 벌어야 만족하시겠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조금만 더’라는 대답을 했다고 하지요? 진정한 풍요와 만족이신 예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늘 그러한 ‘스스로의 기근’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참 풍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품고 있기에 만족합니다. 행복합니다. 부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기에 그 분의 것이 모두 나의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물질적 혹은 영적 기근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풍요가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인을 떼시자 온갖 종류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계 6:8)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청황색 말이 나옵니다. 그 청황색 ‘클로로스’라는 단어는 잿빛, 암갈색,pale 이라는 뜻입니다. 죽은 시체의 색깔입니다. 그런데 그 말 탄자의 이름이 ‘사망’입니다. 그 청황색 말 탄자는 ‘사망을 의인화 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 탄자들이 누구인지를 궁금해 하지 마시고 그게 어떤 메시지를 갖고 있는 것인지에 관심을 가지시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 말 탄자들은 하나님이 세상에 심판과 저주와 재앙으로 내리시는 것들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이 구원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새 창조를 향한 역 창조의 복된 사건들임을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 청황색 말을 탄 사망이 ‘죄의 삯인’ 사망이 무엇으로 사람들을 죽입니까?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 죽입니다. 거기서 사망으로 번역이 된 ‘따나토스’는 ‘온역, 전염병’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네 번째 인은 앞에서 묘사된 모든 인들이 가지고 있는 전쟁, 기근을 포함한 죄의 삯인 사망으로 죄인들을 몰고 가게 되는 모든 하나님의 심판의 방법들을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의 방법을 항상 칼과 기근과 온역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대상 21:12) “12 혹 삼년 기근일지, 혹 네가 석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지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 것을 결정하소서”

 

(렘 14:12)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 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겔 5:12) “12 너의 가운데서 삼분지 일은 온역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지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지 일은 내가 사방에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그러니까 지금 이 네 가지 인의 내용은 이 땅에 닥칠 어떤 재앙들의 시간 적인 배열이 아니라 말세에 부어질 총체적인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을 논리적인 순서로 점점 강하게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네 번째 인은 앞의 모든 재앙의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세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묻는 제자들에게 똑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마 24:3-13)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데 여기서는 지금까지 인의 재앙에서 살펴 본 말세에 일어날 심판의 내용에 무언가 하나가 더 보태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는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잘 보시면 네 번째 인을 떼었을 때 거기에 짐승이 등장합니다. 네 번째 인을 떼었을 때에 칼과 기근과 온역과 땅의 짐승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시지요? 그 땅의 짐승들이 바로 ‘세상을 미혹케 하는 마귀의 세력,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입니다. 8절에 열거가 된 사람들을 죽이는 칼과 기근과 온역과 땅의 짐승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다른 이름들입니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사망’을 가져오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 인을 누가 떼고 계세요? 주님이 떼고 계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을 떼시는데 전쟁과 기근과 온역이, 질병들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내용을 보시면 오해를 하시기가 쉽습니다. 말세 때가 되면 마치 하나님께서 전쟁과 기근, 질병 같은 재앙을 일으키셔서 세상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처럼 생각하실 수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 모든 재앙들은 타락한 인간과 마귀의 세력 즉, 악한 세상이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전쟁을 누가 일으킵니까? 하나님이 전쟁을 일으키시나요? 아닙니다. 전쟁도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기근도 역시 자기만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인간의 죄가 만들어 낸 것이지요. 인간들이 욕심을 부려 자연을 파괴하고 땅을 혹사시켜 기근이 생깁니다. 그리고 나누지 못하는 욕심이 풍요 속의 기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수많은 전염병들이 왜 생깁니까? 광우병이 왜 생겼지요? 식물을 먹도록 창조 된 소에게 발육을 촉진시킨다고 동물성 사료, 고기가루 뼈 가루를 사료에 타서 먹여서 일어난 것입니다. 에이즈가 왜 생겼습니까? 순리로 써야 할 것들을 역리로 써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스러운 선물인 부부관계가 짐승과의 관계로 동성과의 관계로 타락을 하면서 생겨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를 달콤한 죄로 유혹해서 그러한 죄 속에 빠지게 만들고 결국에는 사망이라는 삯을 지불해 주는 그 존재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 마귀의 세력입니다. ‘그럼 결국 그 재앙은 사탄 마귀가 주는 것인가?’ 아닙니다. 여러분, 왜 욘사마 배용준이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에 방문을 하면 국빈 대우를 받습니까? 배용준이 특별히 잘생겨서 그런가요? 그런데 왜 그가 그렇게 힘을 갖게 되었지요? 그를 따르고 추종하는 그의 팬들이 그를 욘사마 배용준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욘사마 배용준은 따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배용준은 그저 충무로 바닥에서 영화 전단지나 나누어주던 그런 평범한 청년일 뿐입니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추종자들이 배용준을 욘사마로 만들어 주듯이 사탄 마귀의 세력은 그를 추종하는 하나님을 떠난 수많은 인간들이 모두 거기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바로 거듭나기 전의 여러분 자신이 사탄 마귀의 세력 안에서 힘을 보태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자기 안의 새 사람과 공존하고 있는 옛 몸, 죄의 경향, 사륵스, 여러분의 죄 성,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세상을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 마귀의 세력 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타락한 인간은 마귀의 세력과 공범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저지르는 것들입니다. 아무리 마귀가 유혹을 해도 우리가 동조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악한 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재앙은 하나님이 만들어 내시는 재앙이 아니라 마귀의 세력을 포함한 타락한 인간들의 죄 성이 만들어 낸 것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수단과 방법으로 쓰시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인의 재앙, 나팔 재앙, 대접 재앙 이 모든 재앙의 서론인 첫 번째 인을 떼실 때에 흰 말을 탄 활을 든 자가 ‘이기고 또 이기는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첫 번째 인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방금 설명해 드린 것을 기초로 첫 번째 인을 이해하시면 조금 수월하실 것입니다. 흰말을 타고 활을 든 자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게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계 19:11-16)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백마를 타신 분이 면류관을 쓰시고 이한 검으로 만국을 치십니다. 마치 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록 6장의 첫 번째 인을 떼실 때 등장하는 흰 말 탄자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런데 요한 계시록 19장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쓰신 면류관은 ‘디아데 마타’라는 단어로 왕권을 상징하는 왕관인데 계시록 6장의 흰 말 탄자가 쓰고 있는 면류관은 ‘스테파노스’ 경기나 전쟁처럼 경쟁의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면류관입니다. 그리고 19장의 예수님은 검을 가지고 싸우시지만 6장의 흰 말 탄자는 활을 들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이 6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당시 로마에 퍼져 있던 소문을 인용해서 심판의 심각성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인들과 로마의 식민지에 있던 사람들은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전쟁을 했던 로마 동부전선에 포진하고 있던 파르티아 인들을 아주 두려워했습니다. 게다가 죽은 네로가 실상은 죽지 않고 파르티아로 가서 그들을 이끌고 다시 로마를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게 두렵고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것을 첫 번째 인에서 주지시키고 인의 재앙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재앙은 하나님이 만들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악한 세력에 의해, 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세력은 세상에서 이기고 또 이기는 모습으로, 승리자의 모습으로 보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계 11:7) “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짐승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을 죽이는 것처럼 보이리만치, 그 재앙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무서운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 권세 잡은 사탄이 움직이는 대로 그대로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함께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 최후의 멸망의 징조가 지금 이렇게 전쟁과 기근과 온역과 질병으로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세상의 행복과 영광을 주겠다고 인간들을 지금까지 끌고 왔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계속해서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언젠가는 모든 질병이 극복이 되고 유전자 복제로 생명체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상 낙원이 올 거야’ 그러나 활을 가진 거짓 면류관을 쓴 가짜 흰말을 타고 있는 그 세력은 지금은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거기에 동조하고 그가 약속하는 달콤한 세상 것들을 좇는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귀의 세력들도 역시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겔 39:1-5) “1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을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2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먼 북방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3 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4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 한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움키는 새와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리니 5 네가 빈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는 곡과 마곡의 전쟁입니다. 곡이 무엇을 들고 있습니까? 활을 들고 있습니다. 이 장면이 그대로 계시록 19장의 백마를 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렇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계 19:17-21) “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그 활을 가진 곡이 무너지게 되는 장면이 요한 계시록에 똑같이 묘사가 되는데 그가 바로 짐승이요 그 짐승의 세력인 거짓 선지자요 바로 하나님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문화권에서는 ‘활을 가진 자’는 ‘아폴로 신’을 상징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폴로 신을 숭배하던 가이우스 황제는 항상 활과 화살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을 ‘아폴로’라고 부르게 했다고 합니다. 아폴로는 우상이지요?

 

(계 9:11) “11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여기서 무저갱의 사자 사탄을 ‘아폴루오’ ‘파괴자’라고 부릅니다. ‘아폴로’의 언어학 적 유희인 것입니다. john murray와 Ladd의 책에서 그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 있고 재미있는 설명입니다. 어찌 되었든 마귀의 세력과 그 세력에 동조하는 그 사탄의 나라에 속한 자들이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 재앙을 만들어내고 하나님은 그것을 그냥 허락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재앙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재앙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익이며 복이다’ 이것이 바로 인의 재앙이 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복잡하지요? 그러나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그 인을 우리 주님이 떼고 계십니다. 그 복잡한 모든 사건들 위에 우리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모든 것은 우리 주님의 허락 하에만 일어납니다. 우리 주님이 역사와 인생의 주인이세요. 그러니까 안심하십시오. 세상이 우리를 죽이려 하면 죽읍시다. 우리 주님께서 무슨 이유가 있으셔서 그런 일을 허락하시겠지요? 여러분, 죽기를 각오한 자들을 누가 이깁니까? 세상에서 멋지게 당당하게 죽읍시다. 그러나 그 죽음은 부활을 전제한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기쁘게 죽으십시오. 그러면 삽니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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