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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왜 하나님의 백성인 나에게도 재앙이 임하는가? (김성수 목사)

by IMmiji 2013. 6. 26.

 

 

왜 하나님의 백성인 나에게도 재앙이 임하는가?

 

(김성수 목사)

 

 

(이 일곱 재앙의 부분은 우리 독자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점진적이며 반복적인 기법으로 종말에 일어나는 재앙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 인이 떨어질 때 일곱 나팔이 등장하고 일곱 번째 나팔을 불 때 일곱 대접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일곱 인이 일곱 나팔을 물고 있고 일곱 나팔이 일곱 대접을 물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일곱 인을 잘 이해하시면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은 쉽게 이해하실 수가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내 존재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붙들고 있는, 집착하고 있는 것들은 결국 저렇게 하릴없이 물에 잠기고 불타버릴 것들이구나, 이제 하나하나 놓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나를 맡기고 의지 해야겠다’ 하고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계기로 삼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계 6:1-11) “1 나는 그 어린 양이 그 일곱 봉인 가운데 하나를 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우뢰 같은 소리로 "오너라!"( 또는 '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2 그리고 내가 보니, 흰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은 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그는 이기면서 나아가고, 이기려고 나아갔습니다. 3 그 어린 양이 둘째 봉인을 뗄 때에, 나는 둘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4 그 때에 불빛과 같은 다른 말 한 마리가 뛰어나오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은 땅에서 평화를 걷어 버리고,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하는 권세를 받아 가졌고, 또 그는 큰 칼을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5 그 어린 양이 셋째 봉인을 뗄 때에, 나는 셋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니, 검은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은 손에 저울을 들고 있었습니다. 6 그리고 네 생물 가운데서 나오는 듯한 음성이 들려 왔는데 "밀 한 되도 하루 품삯이요, 보리 석 되도 하루 품삯이다.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불순하게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7 그 어린 양이 넷째 봉인을 뗄 때에, 나는 이 넷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8 그리고 내가 보니, 청황색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의 이름은 '사망'이고, 지옥이 그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칼과 기근과 죽음과 들짐승으로써 사분의 일에 이르는 땅의 주민들을 멸하는 권세를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9 그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뗄 때에, 나는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또 그들이 말한 증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10 그들은 큰소리로 "거룩하고 참되신 통치자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또 우리가 흘린 피의 원수를 갚아 주시겠습니까?"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11 그리고 그들은 흰 두루마기를 한 벌씩 받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그들과 같은 동료 종들과 그들의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그들과 같이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아직도 더 쉬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6장 일곱 인으로 들어갑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드시고 드디어 인을 하나하나 떼십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러분께서 이 일곱 재앙의 부분을 읽으실 때 단순히 역사적, 시간적 순서로 배열이 된 사건으로 보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이야기는 성경 전체의 계시의 내용이 그렇듯이 반복적이며 점진적이며, 점층적으로 기록이 된 것입니다. 잘 보시면 인의 재앙에서는 땅의 1/4이 재앙으로 피해를 입고 나팔 재앙에서는 1/3이, 대접 재앙에서는 전체가 멸망해 버리는 식으로 그 재앙의 색채와 인상이 점진적으로 더욱 짙어지고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치 바로가 꾼 ‘꿈’이야기 같은 것입니다. 창세기 41장에 보면 애굽의 바로가 꿈을 꾸고 드디어 그 꿈을 해몽하기 위해 요셉이 감옥에서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소와 살진 일곱 소가 꿈에 나타났는데 흉악하고 파리한 소 일곱 마리가 살진 소 일곱 마리를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바로 실한 이삭 일곱 개와 세약한 이삭 일곱이 나오는데 그 세약한 이삭이 실한 이삭을 삼킵니다. 이 꿈은 그 내용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곱 해 풍년이 들것이고 일곱 해 흉년이 들것이라는 것을 반복적이며 점진적으로 중복해서 묘사를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일곱 재앙의 부분은 우리 독자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점진적이며 반복적인 기법으로 종말에 일어나는 재앙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 인이 떨어질 때 일곱 나팔이 등장하고 일곱 번째 나팔을 불 때 일곱 대접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일곱 인이 일곱 나팔을 물고 있고 일곱 나팔이 일곱 대접을 물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일곱 인을 잘 이해하시면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은 쉽게 이해하실 수가 있습니다.

 

먼저 이 일곱 인에 대한 내용을 분석을 해보면 4+3의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말 탄 자 넷이 나오고 그 다음에 세 개의 인이 붙어 있습니다. 다섯 번째 인부터는 마치 TV화면이 바뀌는 것처럼 다른 장면들이 나옵니다. 나팔 재앙도 마찬가지고 대접 재앙도 마찬가지입니다. 4+3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일곱 인의 재앙 중 처음 네 재앙에는 모두 말 탄 자가 등장합니다. 처음에 백마를 탄자가 등장하고 두 번째 인에서 붉은 말, 세 번째 인에서 검은 말, 네 번째 인에서 청황색 말 탄 자가 등장합니다. 이 말 탄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견이 아주 분분합니다. ‘말 탄자는 예수다, 아니다. 적그리스도다. 천사다’ 여러 가지 의견이 많습니다만 제 견해로는 그 말 탄자들이 누구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말 탄자들이 등장함으로써 성경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이해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요한이 이 말 탄자들이 등장하는 부분을 구약의 어디에서 인용을 했는지를 찾아보면서 차근차근 오늘 본문의 내용을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슥 1:7-12) 7 다리오 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라 8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9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1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 12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여기서 말 탄 자들이 인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 탄 자들이 무엇을 하던 자들이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두루 다니도록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무엇을 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걸까요? 이 스가랴서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면 조금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스가랴 선지자는 BC520년경 사람입니다. BC931년에 이스라엘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대로 갈라지고 BC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BC586년에 남 유대가 바베론에게 망하고 그들이 포로로 끌려갔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이 페르시아라는 나라에게 망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귀향을 명령했습니다. 그들의 성전을 재건하도록 귀향을 시킨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의 총독이 스룹바벨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의 총독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마리아인으로 불리게 된 북 이스라엘 사람들과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신하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이 10년 만에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을 책망하고 독려하며 성전재건을 촉구한 선지자가 바로 스가랴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그러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재앙을 당하던 시기에 그 말 탄 자들이 세상에 보내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메시지를 가지고 땅에 두루 다니며 전 하던 메신저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제 사견입니다만 여러분이 그 말 탄 자가 어떤 존재인가를 천사냐, 선지자냐, 목사냐 이런 것을 궁금해 하시지 말고 그 말 탄 자들이 무엇을 전했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 말 탄자들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시려고 하시기보다는 ‘그 말 탄 자들은 하나님의 재앙의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라고 이해를 하시는 편이 훨씬 성경의 이해에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 재창조의 내용이 적힌 책을 여시는데 인을 떼시는 족족 재앙이 이 땅에 내리는지 여러분 궁금하지 않으세요? 복음이 적혀있는 책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재앙만 나옵니까? 그리고 왜 하나님의 백성들까지 그 재앙 속에 함께 던져져야 하지요? 그 문제를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겔 14:12-23) 12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3 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내게 범죄 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5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 땅에 통행하여 적막케 하며 황무케 하여 사람으로 그 짐승을 인하여 능히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 하자 16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무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7 가령 내가 칼로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하기를 칼아 이 땅에 통행하라 하여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18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9 가령 내가 그 땅에 온역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을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2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않겠느냐 22 그러나 그 가운데 면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 곧 자녀들이라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아오리니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 내린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23 너희가 그 행동과 소위를 볼 때에 그들로 인하여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무고히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나중에 공부를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계시록의 네 가지 인의 재앙의 내용과 같습니다. 칼과 기근과 온역 즉, 질병입니다. 그 재앙이 얼마나 엄중하고 철저한 것인지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일컬은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자식들마저도 거기서 건져지지 못할 것이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22절에 보시면 ‘거기서 나오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남은 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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