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참된 신앙을 갖기 원하는 사람들은,
흔히 "어떻게 하면 삶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한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듯 하나님과도 그런
밀접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
모범답안은, 1) 성경을 읽고 2) 교회에 나가고 3)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답에 만족하지 못하기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장애물'로 인해 사람들은 곧잘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포기한다.
하나님을 인간의 형상으로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이 바로 그 장애물인 것이다.
한편 예수님은 그리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신앙심이 있거나 없거나,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 모두를 사랑하셨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아주 특별한 관계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에수님과 바로 그분의 따뜻한 성품을 통해서이다.
친한 친구와 오해가 생겼거나 어떤 불쾌한 사태로 인해 친척들과 일시적으로
소원해졌을 경우, 크리스천은 우선 그 사람과 만나 용서를 구하고 관계가
회복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따라서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멀어져 있다고 느낀다면 똑같은 절차,
즉 겸손하고 신실하게 이야기해 나가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온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내가 '사라'라고 부를 한 여인에게 일어났던 일에 관한 것이다.
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과 재정 문제의 압박, 남편의 주벽 등에 시달리면서
사라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절실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기도를 했지만 어쩐지 자신의 기도가 상달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어느 날 사라는 집 근처의 시골길로 산책을 나갔는데 앞쪽으로 작은 교회가
한 채 보였다. 마침 문이 열려 있기에 교회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교회 안은 쓸쓸해 보였다. 강단은 칠을 다시 해야 했고, 벽은 온통 속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제단도 평범했다. 사실 그나마 교회다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있다면 제단 위에 있는 예수님 사진 뿐이었다.
사라의 시선이 그 그림에 머물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시던 때에 자신도 함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예수님께 음식을 대접하고 그 분의 발을 씻겨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특혜일까? 사라는 계속 그림을 보면서 예수님을 돕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러자 예수님이 점점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예수님의 임재하심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향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주님, 그 때로 돌아가 당신을 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라는 말을 시작했다.
'얘야, 어느 때보다도 네가 더 필요한 지금, 나를 섬기려무나.'
"하지만 제겐 너무 많은 문제가 있고... 제 믿음도 너무 약해서요... 아는 것도
너무 적고... 하지만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단다. 오로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여라. 망설이지 말고 너의 고민들을 내게 말하거라.'
"하지만 주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너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단다. 네 기쁨과 꿈들에 대해 내게 말해 주려무나.
나는 네 삶에 관한 모든 것을 나누길 원한단다.'
"어떻게 하면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까요?"
'내가 네 남편과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거란다. 나를 믿으면 어떤 문제도 혼자 짊어지지는 않으리라.'
갑자기 교회가 아름다운 빛을 발하였다.
낡은 벽과 퇴색한 가구들이 따스함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사라의 마음속엔
평안과 충족감이 가득했다.
이런 마음속의 대화에 대해 어떤 친구들은 사라가 자신의 상상 속에서 경험한
환상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라는 개의치 않았다.
그 사건은 사라 혼자만의 일이었고, 예수님은 분명 그녀와 함께 그 교회에
계셨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라가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주님과의 관계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사라는 가만히 앉아, 자기 곁에 찾아와 모든 것을
원만히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기도를 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사라는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시 34: 4)"
라는 성경 말씀에 대한 응답을 받은 것이다.
갈급함으로 나아가 그분을 찾았고, '단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길만을
생각하며'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겼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응답하셨다.
[이 글은, 40년 동안 가이드 포스트 독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독자들로부터 압도적은 지지를 받은, 1956년 11월에 실린 글이다.
How To Know God Better - Norman Vincent Peale<가이드 포스트지
설립자> 박사가 생전에 쓴, 1996년 8월호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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