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바라의 선택
관절염으로 손발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여인이 있었다.
바바라는 거의 손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늘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언제나 명랑했고,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얼마 전, 바바라에게 내가 얼마나 그녀를 존경하고 있는지 고백했다.
"내가 만일 당신이 매일 겪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질 거예요."
바바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비참하다는 느낌은 선택이다>'"
바바라에 의하면 신체의 고통은, 질병이나 재정적 위기, 깨어진 관계등과
마찬가지로 생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비참함은 의지에 따라 통제되거나 변경될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이며
사실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정말이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늘 고통을 되씹으며 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우울과 절망에 사로잡혀 살 수도 있고, 그것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마음 문을 잠가 둘 수도 있구요."
바바라의 간단한 주장에 내가 질문을 던졌다.
"선택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래요." 그녀도 동의했다.
"하지만 효험이 있는 간단한 방법을 개발해 냈지요.
나 자신이 측은해지고 낙심되고 우울해지려 하면, 난 즉시 마음의 모든 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이 불청객들을 몰아내죠.
그리고나서 주님께 그 허깨비들이 떠나간 공간을 평안과 빛과 사랑으로
채워주시길 간구한답니다. 그러면 주님은 곧 그렇게 해주시죠."
요즘은 나는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바바라가 들려 준 이야기를 기억하려 애쓴다.
'비참함은 선택일 뿐이다. 물러가라, 이 허깨비들아!!'
(2) 글렌의 구제론
거지나 구걸하는 사람이 거리에서 다가올 때 여러분은 성가시게 느끼는가?
솔직히 난 그렇다. 그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내 모습이 불쾌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행동해야 한단 말인가?
뉴욕에서의 어느 날 난 글렌 키틀러라는 사람과 함께 직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루이'라는 고양이을 데리고 뉴욕 근교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이 많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데 남루한 옷을 입은 창백한 여인이 다가와,
아이들이 굶고 있으니 돈을 좀 달라고 가련한 목소리로 구걸했다.
글렌은 잔돈을 얼마 꺼내어 그 여자에게 주었다.
다시 걸으면서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여자는 매일 저기서 똑같은 소리를 한다구요. 당신이 준 돈으로
아마 술을 사 마실 걸요."
그러자 글렌이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끔 그런 사람을 보내어
우리의 자비심을 시험해 본다고 생각해요"
좀 더 걸어갔을 때 그는 거의 자신에게 하듯 나지막히 말했다.
"받는 사람의 자격보다는 주는 행위 그 자체가 더 중요하죠."
그 말을 기억해야 할 때가 가끔 있다.
<여운이 남는 글이라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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