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시

첫눈 오는 날 만나자

by IMmiji 2024. 1. 9.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안도현 >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길을 간다  (0) 2024.01.20
1월에는  (0) 2024.01.11
처음처럼  (0) 2024.01.08
하나의 환희  (0) 2024.01.07
행복을 찾는 사람  (0) 2024.01.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