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학교에서 단체로 엑스레이 검사를 했다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보인다는 결과를 받았다.
담임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고
그날 저녁,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고,
아버님은 입을 다문 채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잠든 것처럼 누워있던 그 밤
두 분이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그래도 우린 집이라도 있으니,
집이라도 팔아서 심장 수술을 시켜야제
팔 집도 없었다면 수술도 못할 거 아니요..
다행으로 생각해야제.. “
그날 저녁, 나는 이미 심장병 환자,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환자로
이미 그림이 그려졌고
다음 날 심장 전문의 예약을 하고 기다리는 며칠간,
집안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심장 전문의를 찾아가서 받은 검사.
단순한 오진이었단다.
내 생애 첫 잔치는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잔치도 그런 잔치가 없었다.
남들이 보면
우리 집에서 사법고시 패스라도 했나... 했을 거다.
아들이 심장병 환자에서
정상인으로 둔갑을 한 날이었으니
엄마 아빠는 참 기뻤을 것 같다.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으면
지금의 삶은 갑자기 멋지고 행복한 삶이 된다.
난 2012년 파산자였다.
쫄딱 망해서 무일푼이었고, 돈 30만 원이 없었다.
그 해 2012년 겨울, 파산의 상황에서
“ 금단미인 ” 이름부터 지었다.
파산이라는 고통 때문에
파산을 이겨내었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더 멋지고 행복하다.
여기까지 올 때까지
내 삶은 롤러코스터 그 자체였고,
죽었다 살아났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다.
요즘 내가 웃고 있는 사진은
이겨낸 고통이 내 안에 녹아
디딤돌이 되어 있기에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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