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나는 시

가을에 만나는 시는

초췌한 일상을 예사롭지 않게 한다

 

가을에 만나는 시는

목숨에 몰두했던 시간을 팽개치게 한다

 

가을에 만나는 시는

열등생처럼 사랑했던 순간을 눈부시게 한다

 

가을에 만나는 시는

목이 메이도록 꺼억꺽 울게 한다

 

가을에 만나는 시는

겨우 아무는 상처에 핏물이 돌게 한다

 

가을에 만나는 시는

두려움의 흔적조차 제 빛을 발하게 한다

 

가을에 만나는 시는

단숨에 달려온 억겁의 그리움을 보듬게 한다

 

가을에 만나는 시는

가슴에 쏟아진 낙엽을 시어로 엮게 한다

 

가을에 만나는 시는

테러처럼 알 수 없는 열병을 앓게 한다

 

가을에 만나는 시는

비로소 내가 누구임을 깨닫게 한다 

 

 

< 가을에 만나는 시 / 이서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