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 남 편 - 문정희 ]
여러 달 전에, 블친의 방에서 이 시를 보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었는데,
어제 오후에, 다음 달 월간지를 미리 받고 살펴보는 중에 이 시를 봤다.
그때 블친 방에서 봤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와닿았다.
비록 내게 새끼들이 없어 그 새끼들을 가장 사랑해 준다는 이유로
밥을 짓거나 하진 않지만, 어찌되었든, 남편이란 존재가 버젓이 곁에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 느끼고 갖게 되는 연애 감정은 무엇이며,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 감정을 남편에게, 숨기기는 고사하고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어진다는 시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싶다.
그야말로 남편, 남자로서가 아니라,
아버지 같고 오빠 같은 그런 존재감으로 대하는 것일까...
결혼 십 여년이 되면, 그저 단순히 '가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더니,
가족은 스킨쉽하는 거 아니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지만 참...이다.
가장 밥을 많이 먹었고, 가장 전쟁을 많이 치룬 존재가 남편이라는
표현에는 공감의 한 표를 아낌없이 던지고 싶다는~~ ^^
여튼, 이 시에 어울리는 적합한 사진을 찾지 못해서,
이렇게 어정쩡한 것<권태기쯤에 든 부부 모습으로 해야 하는데...>을 올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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