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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wald Chambers

8월 8일 -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

by IMmiji 2013. 8. 8.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눅 1 : 35)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이 썩어질 몸 안에서 태어난다면,

주님의 거룩하신 순전하심과

단순하심과 하나님과 하나됨이

내 안에 드러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습니까?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처녀 마리아에게 실제 가능한 일이었다면

모든 성도들에게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해

내 안에 태어나십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의 권세를 행사하게 되고

아버지를 언제나 얼굴과 얼굴로 대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적으로

의아한 마음으로

나의 상식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왜 여기서 내가 좌절해야 하지?

내가 아버지의 일로

마음이 사로잡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상황과 상관없이

그 거룩하고 순결하신 영원한 아들께서는

아버지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도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합니까?

주님께서 내 안에서 주의 놀라우신 일들을

마음대로 하시도록 마음을 비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을 만큼

내 안에서 주님의 형상이

빚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조심스럽게 주님을 한 쪽으로

밀쳐내고 있습니까?

 

오, 최근의 그 모든 난리들!

모든 사람이 난리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난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기 위해 난리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

계실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조용하고 거룩한 교제를 나눌

공간과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니의 아들께서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내가 그분께 지휘하고 있습니까?

 

주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셨던 것처럼

지금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지나십니까?

 

가장 성숙한 성도들의 내면 세계를 알수록

무엇이 하나님의 목적인지

더 잘 보게 됩니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를 채우는" 것입니다.

"채운다"는 뜻은

언제나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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