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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 기도

by IMmiji 2012. 11. 28.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 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 속 깊이 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플라터너스 잎새처럼 고요히 바람에 흔들리기를

더 이상 새들이 날아오지 않아도 높게 높게 가지를 뻗어

별들이  쉬어가는 숲이 되기를

쉬어가는 별들마다 새가 되기를 

 

나는 왜 당신의 가난한 의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당신의 의자에만 앉으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는지

나는 왜 당신의 의자 한 번 고쳐주지 못하고

부서진 의자를 다시 부수고 말았는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 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 기도  / 정호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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