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 근처에 제법 큰 놀이터가 있다.
한 켠에 어르신들을 위한 정자도 있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을 위한 운동기구들이 가운데쯤 자리잡고 있다.
지나갈 때마다 놀이터에선 아이들이 놀고 있고 곁엔 엄마들이 있다.
한두 사람 운동기구에 올라 열심히 몸을 움직이곤 한다.
운동기구들 옆으로 통행로가 제법 넓게 자리잡고 있는데,
그 길 끄트머리쯤에 주택을 리모델링한 하얀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그 카페에서 지인들과 차를 몇번 마신 적이 있다.
그 집만 한국이 아닌 어느 지중해 섬마을에 있는 듯한 분위기다.
온통 하얀 색으로 된 집과 집 둘레에 심겨진 장미들도 독특하다.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장미는 없고 하양, 노랑, 분홍과 주홍빛 장미만 있다.
그 장미들이 이 시월에 한창이어서 오가며 눈요기를 잘 하고 있다.
폰카로 사진 찍기를 즐겨하던 때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많이 아프고부터 흥미를 잃고 말았다.
일단 나가서 걷는 것이 수월치 않았고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었다.
그 와중에 출동한 119대원의 발에 물주머니(핫팩)가 터져서
물바다가 됐을 때 내 폰의 카메라 기능이 정지됐다.
카메라가 없어도 별 아쉬움이 없었던 터라 그냥 지내다보니,
사진을 찍는 일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새로 폰을 사고나서도 카메라 기능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사진을 찍지 않은지 한 백만년은 된 듯했을 때..
그 카페를 지나던 이른 봄에 장미가 피어난 것을 보고 찍게 됐다.
그리고 장미가 필 계절이 아닌 이 시월에, 거기만 봄인 듯..
창 앞으로 벽 옆으로 마치 제철인 듯 피어있었다.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걸음을 옮겨 찍은 거였다.
다른 색 장미들은 조금씩 기운을 잃는 듯해서,
벽쪽으로 가서 거기 핀 주홍 장미를 몇 장 담았다.
피어있는 장미와 피어날 봉오리 두 개가 있어서 같이 찍었다.
지금도 피기엔 늦다고 할 수 있는데 필 거라고 봉오리가 맺혀있으니..
이르든 늦든 만물은 다 피어날 제 때가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맺혀지긴 했으나 피어난 적은 없는 듯이 살아왔는데.. 맺었으니 언제고 필 거라며 그늘에서도 당당히 제 자릴 지키고 있는 그 봉오리들을 보니, 나도 때가 되면 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주신 나만의 때가 있을테니까. 그날 날씨가 흐릿해서였던지 장미도 흐릿하게 나왔다. 해가 기울기 전이라 어두웠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런 걸 신경쓰는 건 나뿐이고 그 장미들은 아랑곳않고 잘 피어있었다.
내가 굉장히 신뢰하고 있는 한 사람이 오늘 아침 내가 보낸 장미 사진을 보고서, 잘 찍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장미든 하늘이든 보이는 그 무엇이든지.. 내 눈길이 가는 뭔가가 있다면 그 모습을 담아두고 싶다는 바람이 내 안에 다시금 생겨났다. 자신이 무엇을 봤는지 알 수 있을 거다. 사진에 진심이면 기능을 넘어선 무언가가 거기에 담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폰카와 1일인 셈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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