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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 stories

어쩔 수 없는 욕심

by IMmiji 2017. 5. 5.

























실은, 지난 주 목요일이 정기검진일이었다.

하지만 그 날 난 병원에 가지 못했다.

40여년 내 병력에서, 정기검진일을 지키지 못한 건,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이었다.

피치못할 어떤 일이 있을 때는 미리 예약일을 변경하고,

변경한 날에 어김없이 진료실에 나타났었다.

검진일이면, 굳이 알람을 해놓지 않아도,

맞춰놓은 시간 전에 잠이 깼고 미리 준비를 시작하는 게 나였다.

하지만 지난 검진일 아침에 난 알람벨을 듣지 못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폰을 열어보고 거기에 나타난 숫자에 난 기함을 했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렇게 깨어나지 못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깨어날 가능성은

더 희박해지고, 누군가 연락해서 내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라먀

찾아오든지, 119를 보내던 하는 게 일종의 절차였다.

그런데 난 그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잠에서 깬 거였다!)


8시 반이었다.

그 시간은, 이미 내가 병원 검사실에서 채혈과 소변검사를

다 마친 뒤에, 가지고 간 아침 약을 먹고서, 검사실을 나와

있어야 할 바로 그 시간이었던 거다!

병원 커피점에서 커피를 주문해서 커피가 나오면 받아들고, 

신장내과로 가서, 담당 선생님과 간호사한테 건네고는,

결과가 나올 시간이 되면 오겠다고 말하고 진료실을 떠나서,

내 커피를 들고 병원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랄 수 있는

원내 약국실 앞, 편한 의자가 죽 나열되어 있는...

그 곳에 있어야 했는데, 난 정신을 못 차린 채 내 집 내 방에

꿈쩍을 못하고 있었던 거다.

병원! 이란 생각에, 나도모르게 벌떡 일어났지만,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서둘러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세수를 하던 나는, 그제서야 입고

있던 옷이 다 젖었고, 깔고 자던 토퍼도 이불도 같은 상태란 걸

알게 되었다.  그 지경이 되게 한 자신과 상황에 화가나면서,

손에 들고 있던 걸 내팽개치듯이 던져버렸다.


웃기는 건, 그러면서도 끝까지 양치를 하고,

냉장고로 가서 혈당을 올릴 수 있는 음료를 하나 마시고,

그래도 안되겠다 싶어 하나를 더 마신 뒤에,

그대로 잠들어 버린 건데, 나중에서야, 내가 그냥 그대로

잠들어버린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그런 상태의 내가, 병원으로, 신장내과로 전화를 해서

아무래도 갈 수가 없겠다고 했다는 거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간호사가 5월 4일로

예약 변경을 해드릴까요? 라는 물음에, 네...라고 했고,

그때까지 약은 충분하겠냐는 물음에도, 네...라고 했다.

아무 생각이, 아니, 의식이, 없다는 증거였다.

약은, 정기검진일 바로 전날까지만 있었고,

검진일 아침 약은 없었는데도 있다고 했다니 참...

하지만 정신이 있었다고 해도 달리 도리는 없었다.

사이사이로 휴일이 끼여 있고, 어쩌다 병원이 문을 여는 날엔

담당 선생님이 진료를 보시지 않는 날이었다.


병원의 세 개 동 중 하나가 전체 리모델링을 하면서,

나처럼 신장내과도 그 리모델링한 건물로 이사를 했다며,

예약일을 알려줄 때 옮겨간 곳으로 찾아오라는 문자도

같이 보내주었다.

아무튼, 여늬 때처럼, 검사를 하고, 암센터 1층으로 옮겨간

커피점에 가서, 담당 선생님과 간호사, 그리고 내가 마실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올 때와는 달리,

커피점 2층에 있는, 암센터로 올라가 본관으로 연결되는

통로로 가서, 신장내과까지 빠르게 커피 배달을 했다.

커피 캐리어를 들고 나타난 나를 보고서, 놀란 눈의 간호사가

그 날은 괜찮았냐며 진심 걱정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수십 개의 눈들이 나를 향하는 바람에,

얼른 괜찮았다는 말을 남기고 커피를 건넸다.


원내 약국 맞은 편에 은행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당연 소란스러워졌다.

해서, 그간 병원 내의 아지트처럼 여겼던 그곳을 떠났다.

그러다 이번 검진일에 커피를 들고 암센터와 본관 사이의

그 통로를 지나면서, 새로운 아지트를 발견하게 된 것에,

내 기분은 엄청 업이 되었다. 

그 통로로 가면, 바깥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편하게 

커피를 사러 갈 수 있고, 암 센터와 장기이식 센터로 가는

발길이 많지 않아서, 무척 조용하다는 것과 터널 전체가 다,

바닥을 제외하고 유리로 되어있어서 환하다는 것도 좋았다.

바깥 경치가 훤히 보이고, 본관과 센터 두 곳 다 오픈되어 있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아주 쾌적한 상태라 것도 좋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든 문자를 하든 음악을 듣든 다 오케이였다.

맨 위의 사진 속 의자들 맞은 편에 네 개로 된 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렇게 의자들이 드문드문 놓여 있고,

통로가 두어 번 꺽이면서 이어져 있다.

그 다음 사진은, 내가 앉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찍은 거다.

보이는 오른편이 의대이고 왼편이 세 개의 건물 중에 제일 나중에

지은 동이 있다...  어찌보면, 그 통로가 중간 지점인 듯도 하다.

거기서 세 시간 가까이, 통화도 하고, 한참 연락하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일일이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연락을 하니, 답을 보내주고, 받은 글에 다시 답하고...

꼭 손으로 편지를 써야만 예의이고 정성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진심을 담아서 근황을 묻고, 격조했음을 미안해 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여긴다. 그마저도 하지 않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는...


요즘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건강은 괜찮은지를 묻는 이들에게,

괜찮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간만에 생각지도 않았던 인증샷(?)을

찍어 보내게 됐다.  그렇게 찍어 보낼 땐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생각도 못하다가, 오늘 그 모습을 보니, 더우기 확대한 듯 블방에

올려놓고 보니, 내가 봐도 내 모습이... 글쎄, 뭐랄지...

예전에 비해 많이 표정이 밝아진 듯하고, 피부빛도 한결 부드럽게

보이는 게... 투석을 오래 할 때 한꺼번에 뒤덮었던 기미와 주근깨,

그리고 심지어 누가 그걸 '검버섯'이라고까지 했을만큼 피부가 정말

엉망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많이 깨끗해진 것도 같아서 놀랐다.

투석하면서, 검어지고 살이찐 내 모습이 보기가 싫어 거울을 보지 않는

습관도 한동안 갖고 있었기에, 지금도 그 습관대로 밖에 나가지 않으면

종일 내 모습을 보지 않고 산다.

거울도 잘 보지 않고 살다가 이렇게 셀카까지 찍으니... 참 어색하다.


한 친구가 너무 이쁘게 봐주고 낯간지러운 말을 해주어서,

금방은 많이 쑥스럽기까지 했는데, 그 말이 내 안에 차츰 퍼지면서,

햇살처럼 따스함이 차오르고, 가라앉아 있던 기운을 붇돋워 주었다.

좋아보인다...는 말을 자꾸 들어야 몸도 마음도 좋아지게 되고,

이쁘다...는 말을 많이 들어야 여자는 그만큼 이뻐지는 것 같다.

상대가 누구든 나를 참하게 봐준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다.

여자가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들어야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엄마도 여자고, 할머니도 여자라는 사실을 얼마나 잊고 사는지,

엄마이기전에 할머니이기전에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모처럼 찍힌 내 모습을 보고 절감했다.

많이 들어본 말이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텐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너무 낯간지럽고 민망했지만, 그래도 들을 수 있어서 기분 좋았고,

더 듣고자는 바람이 생겼다. 어쩔 수 없는 욕심이라 생각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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