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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야기

전입 신고를 하고...

by IMmiji 2017. 4. 6.














     이사를 하고 사흘 동안은 정리를 하느라 나름 바빴다.

아무리 단촐하게 사는 살림이라고 해도,

여럿이 살든 혼자 살든 기본적인 살림은 마찬가지니까.

다들 내가 엄청 부지런한 성격에, 어질러져 있는 걸

두고 보지 못하는 줄 아는지,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라는 말을 끊임없이 하고, 살아가면서 천천히 정리를

해야 한다는 말도 도돌이표처럼 했다.

다들 내가 이사한다는 소식에,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는데,

많든 적든, 이사업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이사를 할 수

없는 존재이다보니, 부동산 중개인이 소개해 준 곳에

부탁을 했었다. 


몇 주전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셔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었다.

내 목소리를 듣고서는, 대뜸 '아가씨'라고 부르더니,

이사업체라며, 집으로 방문하겠다고, 주소를 문자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방문해서, 이삿짐을 봐야지,

대충 견적을 낼 수 있으니 보러 오겠다는 얘기였다.

집으로 찾아온 이삿짐 센터 업주는 연세가 있으신 분이었다.

문을 열어드리며, 보시다시피, 아가씨가 아니라 아줌마라고

하면서 웃었더니, 그래도 '사모님' 보다는 '아가씨'가 낫지 않냐고

농담을 하시길래, "당연하죠!" 라고 했다. ㅎㅎ


지난 번엔, 어디서 알아봐야 할지를 몰라 검색해서,

그 중 한 곳에 연락해서 정했는데, 이번엔 중개인의 소개를

받아서 하니, 지난 번의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좋았다.

내가 교회에서 막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자, 같이 일하는 분

중에 장로님도 계신다고, 정말 좋은 양반이라고 하셨다.

남자 세 분, 여자 한 분이 한 팀으로 일을 하시는 듯한데,

다들 그렇게 좋은 분들일 수 없었다.

다음에 이사할 일이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을만큼...

내가 차를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당신들이 짐을 싸는 동안,

차에 가서 기다리시라 하길래, 내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눈치를 채신 업주께서 자기 차에라도 있으시라며 배려를 해주셨다.

7시도 안된 시간에 오신터라 이른 봄아침은 쌀쌀하니 추웠다.

그래서 그 분의 배려가 더 따습고 고마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짐들이 대부분 박스 형태로 된 것이고,

이사하기 며칠 전부터 웬만한 내 짐은 미리 싸뒀었는데,

두 시간만에 이삿짐을 다 싸고 새로 이사할 집으로 오면서,

업주께서 지나치듯 내게 그러시는 거였다.

너무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살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이다.

밖으로 나가서 친구도 만들고, 만나서 같이 놀기도 하라고,

지금은 괜찮겠지만 나중엔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그러셨다.

첨엔 그 '철두철미'라는 것이, 무슨 말씀이신가 했다.

아마도 미리 싸둔 짐들을 보고 그러시는 건지,

아님, 이사 나오는 집을 청소했다고 그러시나...

하지만 언제 그런 걸 다 살펴보셨길래... 싶었다.


친구를 만들라는 말씀에도 내심 놀랐다.

견적 내러 오신 날 잠깐 보고 이사하는 날 보신 게 다인데,

내가 친구가 없다는 건 또 어떻게 아셨을까 싶어서...

그 연세가 되면, 외모만 봐도 어떤지 다 엿보이시는 건지...

아무튼, 내가 싸둔 짐은 풀지 말고 한 쪽에 그대로

다 쌓아두시면 된다고 했더니, 더 빨리 이사가 끝났다.

그리고 그 쌓아둔 짐은 지난 사흘 동안 혼자 정리를 했다.

빨리 하고 싶고, 한꺼번에 다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있을 만큼 손이 빠르지도 않고 힘도 없는 탓에,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조금씩 조금씩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짐정리가 거의 다 끝난 어제, 엄마가 오셔서 같이 점심을 먹고,

배웅해 드린다고 따라나간 것이, 이사온 후 첨 외출이었다.


집 앞에 어린이집과 초등학교가 있어서,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귀에 익숙한 음악 소리가나고,

쉬는 시간 동안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가 꼭 참새가 짹짹대는

듯해서 듣기만 해도 즐거워진다.

여동생 말처럼, 어린 아이들의 소리를 들어야 마음이 밝아지고,

생생한 기운도 채워진다는 게 맞나 보다.

베란다와 방에서 보이는 학교 운동장과 작은 공원처럼 꾸며진

곳이 마치 정원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내가 구하겠다고 해서, 이런 주변 환경과 집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고 사랑하심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어젠 비가 왔는데,

오늘은 많이 흐리긴 했지만 비가 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전입 신고를 하러 주민센터를 찾아나섰다.

검색해서 어디쯤일 거라고 짐작한 곳까지 걸어갔는데,

꽤 멀었고, 막상 갔더니, 거긴 주민센터가 아니었다.

여러 식당들이 모여 있는 큰 건물이었다. 

그래서 전화로 위치를 물으니 직원이 어디라고 설명하는데,

대로에 지나가는 차들로인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찾아가겠다고 하고서 걸어가는데 벚꽃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주민 센터 위치를 물으려고 꺼내 걸었던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옆이 호수 공원이라 해마다 봄이면 벚꽃 구경을 하러 오는

시민들로 미어질 지경이라고, 방송에서 그렇게 떠들었어도,

가까이 살면서 거기 한 번 가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전입 신고'를 하려고 가는 길에,

거길 가서 그렇게 걷고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우스웠다.

이렇게 볼일이 없으면 못 올 정도로 여유가 없었던가.

가려면 걸어서라도 그렇게 갈 수 있는데 말이다.

아무리 건강이 좋지 못했어도, 아무리 생활이 어려웠어도,

아무리 같이 가줄 사람이 없었어도...

그건 다 핑계에 불과하고 변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임을,

오늘에서야 나는, 인정하게 됐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민센터 뒷편에 있는 호수공원에 가서,

아름다운 벚꽃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오늘 걸었던 그 벚꽃 길로도 충분했으니까...


지난 번 그 집은 남향이었다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게

전혀 없는 집이었다면, 이 집은 북향이라는 게 좀 그래도,

나머지는 하나에서 열까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더 좋다.

같은 조건인데 그땐 왜 그런 곳을 거처로 삼았나 생각하니,

그땐 전세 대란이라 불릴 정도로 집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집을 구하러 다니고 계약하고... 를 처음 해보다보니,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게 다 어설펐었다.

그렇게 훈련을 쌓았다고, 이제 이렇게 한 단계 상향 조정을

해주시는 건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면 웃게 된다. ㅎㅎ

어찌되었든, 이사를 하는 건 너무 에너지 소모가 많고,

힘도 들고 비용도 만만찮고...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내 집 갖기에 일생을 다 보내다시피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라 여겨진다.

모쪼록 여기 이 집에서 한동안 옮기지 않고 살았음 좋겠다.


여기서 산다는 걸 공공연히 알리는 일이 바로 전입 신고가

아닐까 싶다.  그 신고를 하고 오니 심적으로도 안정이 되고,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해야 할 숙제를 하지 않은 것처럼 내내 찜찜하더니만... 

여태 전입 신고를 하러 간 주민 센터 중에 제일 좋았고,

전입 신고하러 간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 길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걸어간 길이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길이라고 해도 내 마음이 복잡하고,

불안하고 어두우면 그 길은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거다.

반대로, 그 길이 아름답지 않다고 해도, 내 마음이 가볍고,

평안하고 밝으면, 길은 더없이 아름답게 보일 거다.


그런 것처럼, 길이 아름다운만큼, 아니, 그에 못지않게,

내 마음이 가볍고 평안했기에, 갑절로 더 좋게 보였을 거라

여겨진다.  어느 한 쪽만으로는 완벽해지기 어렵듯이...

그리고 그 길을 내 두 발로 걸어서 갔기에 진심 감사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스스로 걸어가 스스로 처리를 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기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절로 감사의

기도가 터져나왔다.  주님, 더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이대로 있다가 부르심을 받고 싶습니다... 라고 간구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약하면 약한대로, 나이들면 나이드는

그대로... 감사하며 살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여기까지 나를 인도해 오신 주 성령의 인도하심이,

이 땅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이어지리라 믿으면서,

그렇게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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