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끝나갈 무렵의 어느 날,
늘 그러셨듯이, 엄만 이것 저것 챙기셔서,
이 딸을 보러 오셨었다.
무겁게 들고 다니지 마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려도,
엄마의 두 손엔 늘 무거운 짐이 들려 있다.
제대로 챙겨먹지 않을까봐, 반찬거리가 될 재료들을
봉지마다 넣은 걸 하나 둘... 자꾸만 꺼내놓으셨다.
그리곤 한 주일전에,
부모님의 쉰번째 결혼기념일을 축하드리는 뜻에서,
봉투에 얼마쯤 넣어드렸더니,
그 봉투(이유는, 아무리 찾아도 마땅한 봉투가 없어서... 였지만,
아마도 그 봉투가 고급져 보여서일 거라고 짐작한다. ^^)를
다시 가지고 오셔서 내게 건네셨다.
이건 왜 또 가지고 오셨냐니까,
명목은, '어린이(?)날이어서...' 몇 자 적으셨단다.
이 나이에 무슨 어린이날은... 이랬지만,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그리고 그보다 더 전에도...
엄만 어린이날이 되면, 늘 나한테 편지를 쓰시고,
그 안에 돈을 넣어주셨다.
뭐든 맛있는 것을 사먹으라고 말이다.
뭐가 먹고 싶냐는 물음에, 한 번도 뭐가 먹고 싶다고,
선뜻 말하지 않는 딸에게, 차라리 돈을 줘서 직접 먹고픈 걸
사먹으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어린이 날을 즈음하여 2016, 4, 28, 새벽
내겐 영원한 어린이 내 딸, ㅇㅇㅇ.
지금 현재 그 정도로만 내 옆에 있어 주길 바란다.
전화하면 엄마~~ 그 목소리 한결같이 들려 오면
바랄 것이 없어야.
현명하고, 지혜롭고, 똑똑한 내 딸.
나는 너애 엄마임이 자랑스럽다.
누구에게나 자랑한단다.
영어 잘하고, 시근 있다고, 또 음식도 잘 한다고.
온갖 말 다하고, 다 들어 준다고.
하나같이 부러워들 하드라.
얌체 같은 딸년에,
도둑 같은 딸, 숨기고, 속이고.
나는 복 터진 거지. 속 깊은 내 딸은 효녀라고.
제발 건강 유의해. 영원히 함께 가자.
맛나는 것 하나 사먹고, 기분 좋게 지내라.
부처님 오신 날에 내 딸의 건강 기원
연등을 미리 달았다. 해마다 해왔지만...
얌체같고 도둑같고 숨기고 속여도,
아무리 현명하고 지혜롭고 똑똑하더라도,
일생 아픈 딸보다야 백 번 더 효녀인 것을...
이런 딸을 두고서 무슨 복터진 거라 하시냐고...
어쩌면 울 엄만 원조 '딸바보' 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난,
여지껏 신앙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신앙으로는, 극과 극으로 갈라져 살아가는 것을...
연등을 수백 수천 개를 달며 딸 건강을 빌어도,
그건 내게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인 것을...
그저 엄마의 그 사랑이, 신앙을 넘어서,
그 무엇보다 앞서 나를 지키고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엄만 나보다 백 번 천 번 더 낫다.
엄만, 새벽마다 이 딸을 위해 기도를 하시고,
해마다 그렇게 딸의 건강을 기원하는 연등을 다시지만,
난 그런 엄마를 위해, 엄마의 영혼 구원을 위해,
언제부턴가 아무 기도도 하지 않으니까.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기도인데,
그 기도마저 하지 않고 하루 하루 살기에 급급해하니...
그야말로 불효녀 중에서도 일등이지 싶다.
해야 될 일등은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등은 이리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으니...
입이 백 개여도 아무 할 말이 없다.
이 나이에도,
어린이 날이라고, 엄마로부터 용돈을 받고,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애정넘치는 편지를 받으니,
복이터진 건 엄마가 아니라 바로 나다.
늘, 그런 엄마의 딸로 태어난 걸 감사하고 있다.
오신 길이라,
준비해 두었던 어버이날 선물을 나도 미리 드렸다.
요즘 할머니들 사이에 인기인, 꽃무늬 백팩을 선물했더니,
너무도 마음에 들어하시며 좋아라~ 하시고는,
가실 때, 어깨에 메고 발걸음도 가볍게 돌아가셨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짜 어린이는, 내가 아니라, 엄마라고 느꼈다.
어린이같은 가벼운 그 발걸음이 내내 이어지길 기도한다.
그래요, 엄마, 우리 영원히 함께 가요...
하지만 그 영원...에서 하루라도 나는 늦게 갈 거예요.
엄마 앞에 가는 불효까지는 저지르고 싶지 않으니까요...
오래 오래, 건강하게,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영원한 어린이인 이 딸은 엄마를 언제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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