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없는 나한테는,
친언니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고 챙겨주는
언니가 있는데, 성격탓인지, 내 처지때문인지,
한 번도 내가 먼저 언니한테 만나자고 한 적이 없었다.
그 언니뿐아니라 다른 누구한테도,
아니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내 오랜 친구한테는, 시간이 되는지,
되면 보자는 연락을 가뭄에 콩나듯 내가 먼저 한다.
것두 전화가 아니라 문자나 톡으로...
그 외의 모든 이들에게는 내가 먼저 보자는 연락을 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그건, 내 처지보다는, 성격탓이 더 큰 것 같다.
여튼, 어제도 언니가 먼저 나한테 연락해서,
내일(그러니까 오늘...) 시간되면 '꽃구경' 갈까? 하고 물어왔다.
사실, 먼저 연락도 하지 않는 주제에,
그렇게 보자고 연락이 오면 이런 이유 저런 핑계를 대며,
나중으로, 다음으로 미루곤 해서,
만나는 것조차 까다로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그건... 아픈 내가, 힘든 내가, 안쓰럽고 애틋해서,
만나면 맛있는 거라도 사먹이려 하고, 뭐든 주려고 해서,
그게 부담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그래서 나도모르게 피하게 되는 듯하다.
그래도 너무 그러는 건 아니다 싶어서...
어젠, 흔쾌히 그러자~~ 고 했다.
'꽃구경' 이라고 하니, 갑자기 나이든 게 확 와닿는다고,
그냥 바람이나 쐬는 것으로 하자고... 말이다. ㅎㅎ
공부...라고 할려니, 좀 쑥스럽고 민망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냥 영어가 섞인 수다모임이라 한다.
그룹 채팅방이 있어서, 아는 언니가 꽃구경을 가자는데,
어디가 좋겠냐고, 워낙 방콕에만 거주하다보니,
도무지 아는 데가 없다고 했더니,
수다모임 아줌마들이 여기저기 추천을 해왔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은 꽃들이 한창일 때고,
주말인지라 어딜 가든 엄청난 인파와 주차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도시를 벗어나지는 말자고 했다.
그렇다고 도시 안에 있는 공원은 괜찮냐... 그건 더 아니었다.
주차 자체가 어렵다는 보고가 속속 들어왔다.
그래서 언니한테 연락을 했다.
꽃구경...은, 그냥 오다가다 남의 집 담벼락에 드리워진
한두 송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고,
꽃은 그저 배경(물론, 아름다운 배경이긴 하지만)에 불과하다고,
그 배경보다는 주연인 사람이 우선이지 않겠냐고,
나는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고 좋으니,
그냥 사람이 많지 않은 조용한 곳에서,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마시며 밀린 이야기나 나누자고 했다.
사람으로 북적대는 곳은 정말 질색이라고 말이다.
내 말에 언니도 오케이를 했다.
그냥 집에만 있는 내게 실컷 꽃구경을 시키고팠던 게다...
오래전에, 대구 시티 투어 스탬프를 찍으러 다닐 때,
가본 곳 중에 한 곳이었던 의료선교박물관은,
백수십 년전에, 의료시설이 미비했던 이 도시에,
각종 의료기기들(들어가서 일일이 다 살펴봤을 때,
지금의 내 눈에는 과히 충격적이라 할 만큼 무식하게 크고,
무딘 날에, 둔탁함 그 자체인...)을 들여온 선교사들이 살던
가옥들(지금 봐도 크고 멋있다~)과 묘비들... 이 있는 그곳은,
처음 내 눈에는 마치 유럽의 어느 아름다운 동네에 간 듯했다.
크고 굵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고 꽃들이 가득했는데,
그 옆에 있는 종합병원이 점점 커지면서 부족한 주차시설로인해
조금씩 그 땅들이 잠식당해버려서 지금은 푸른 풀밭도
많이 줄었고, 없던 도로도 생겨서 그리로 차들이 다닌다.
한 마디로, 예전같지가 않다는... 쩝
하지만 오늘은, 그곳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다녀본 이래 가장 사람들로 많이 붐볐다.
적잖이 실망스러웠지만, 오죽하면 여기까지... 싶었다.
나도 그곳에 있으면서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건... ㅎㅎ
병원과 간호대학 그리고 의료선교 건물들...
그리고 그 옆에 마치 유럽의 웅장한 성처럼 생긴 교회가 있다.
우린 그 교회에 줄지어 놓아둔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 도시에 살면서도 반 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하는 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얘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난 해 봄에 학원을 개원한 언니는 주말이 아니면
시간이 나지 않고, 일요일엔 절에 가고,
난 주일에 교회로 가니... 만날 시간이 그만큼 힘들어졌다.
주변을 좀 걷자고 해서 슬렁슬렁 다니며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바쁜
사람들을 피해, 난 다른 꽃들을 만나면 그 아이들을~~
가족들도, 친구들도, 연인들도, 외국인들도... 많았다.
주차장 한 귀퉁이에 이젤을 펴놓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어느새 개나리는 반은 노란꽃 반은 연둣빛 이파리로,
자목련도 찍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찾아도,
내 그림방에서 찾을 수가 없어 결국 포기하고,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는 벚나무로 가서,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을 폰카에 담고,
풀밭 사이사이로 보이는 제비꽃과 민들레도 찍었는데,
민들레가 예쁘게 찍히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러다... 그 어떤 봄꽃보다 더 어여쁜 연초록의 무성한 잎들...
그 잎들을 줌인해서 폰 가득히 채우며 흐뭇해 했다~~
평소엔 내가 커피도 한 잔 못 사게 하던 언니였는데,
오늘따라 도로 곳곳이 정체가 되는 바람에,
버스를 타고 가는 나보다 운전해서 오는 언니가 더 늦는 바람에,
언니를 기다리며 얼른 내가 커피를 살 수 있었다.
왜 샀냐는 걸, 나도 한 번 언니한테 커피를 대접해 볼
기회를 줘야지 않냐며 웃었더니, 내가 그깟 캐리어도 못들까봐,
자신이 들겠다는 걸, 연세(^^)도 많으신 분이...라며
뺏기지 않으려 팔을 뒤로 뺐다. ㅎㅎ
내 농담에 언니도 더는 말리지 못하고 들고가게 했다.
내 보기에, 이런저런 마음 고생으로 언니가 더 마르고,
그새 깊은 주름까지 생겨 속상하더구만 참...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만나 얼굴을 보고,
나란히 벤치에 앉아 얘기하고 오니,
견우직녀 상봉하고 온 것처럼 반갑고 좋았다.
이십여 년 세월을 한결같이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서로 비슷한 성격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언니의 그 너그러운 마음씀씀이 덕분임을 알고 있다.
나처럼, 살갑지도 않고, 잘 만나주지도 않는 존재에게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너그럽지도 배려를 해주지도 않는데...
이런 내 성격을 잘 알면서도 고치려들지 않는 나는 뭔지...
다음엔 만나서 밥이라도 먹자며 아쉽게 헤어졌다.
밥은 안 먹어도 좋으니, 다음 번에 만났을 때는,
언니 얼굴이 좀 더 환하게 펴졌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갑자기 부는 바람에 눈처럼 꽃잎이 날릴 때 보였던,
그 환한 웃음이 내내 이어지기를... 서로에게 빌어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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