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쇼크가 오면,
우선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한없이 떨어지듯이,
마치 내 몸속의 피가 순식간에 다 빠져나가듯이,
기운이라곤 없는 상태가 되면서 숨어 있던 땀들이
샘이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지면서,
말이 어눌해지고,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그리고 잠이 밀물처럼 밀려오면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그대로... 잠들고 싶어진다.
적어도, 이식을 받기 전에는 정해진듯이 그랬었다, 증상이...
그렇지만, 이식 후에는, 혈당조절도 잘 되고, 컨디션도 훨씬
더 좋아질 거라는 내 기대를 무참히 밟고서 엉망이 됐었다.
한 번에서 네 번으로 인슐린을 늘려 맞아야 했고,
면역억제제로 인해 지금까지도 탈모는 계속되면서,
나로하여금 모자를 벗을 수 없게 한다.
처음보다 머리카락이 많이 낫다고, 길어졌다고들 하지만,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다시 빠지고, 난 늘 그랬듯이 테입을
들고 다니며 빠진 머리카락을 수거하기 바쁘다.
중요한 건, 인슐린을 네 번 맞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약으로인한 다른 부작용들이 아니다.
이젠, 나자신조차 인식할 수 없고 감지할 수 없는... 쇼크다.
지난 사십 여년 동안, 수없이 나를 덮친 쇼크에 익숙해진 몸이,
증상을 감지할 수 없는 머리 대신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나도모르게 잠에서 깨어 눈을 뜨게 되고,
방안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벌떡 일어나곤 한다.
그렇게 뭔가에 잡아당겨지듯 일어나지만 아무 느낌이 없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냉장고 앞에 가서 서 있다.
문을 열고서야, 내가 왜 거기 서 있는지,
대관절 뭘 하려던 것인지를 생각해내려고,
멍하니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는 내 모습을 인식한다.
왜 그러고 서 있는지를 알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쓸수록
내 머릿속은 더 비워져만 간다.
그런 나자신이 한심하다 못해 미칠 것만 같다.
아무 생각없이, 역시나 하던 대로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그 안에 들어있는 당분 있는 음료수들을 한 번에 두 개 세 개
다 꺼내서 방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가져와서는,
그걸 왜 가져왔는지를 몰라 또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느라 시간을 지체할수록 내 뇌는 점점 마비가 되어 가고...
머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내 몸은 경험으로 어찌할 지를 알고,
그것들을 하나씩 입으로 가져가 마신다.
그런 내 모습, 내 행동을, 유체이탈이라도 해서 보듯 뻔히 보면서,
마치 이상한 행동을 하는 다른 사람을 지켜보듯이 보다가...
결국엔 정신줄을 놓고 잠속으로 빠져버린다.
몸을 일으켜서 일어나지 못하고, 아무것도 섭취하지 못하고,
그냥 정신줄을 놓았으면, 그 다음엔 본향에 있는 내 집에서,
평안히 눈을 떴을텐데... 늘 아쉽다. ㅎㅎ
'그래도 살아있으니 다행'이라고, 내 쇼크에 대해 자주 들은,
친구는 이제 덤덤히 말을 건넨다.
그러게...하면서도, 속으로 곧잘 묻는다.
진정 다행일까, 아니면, 유감일까... 라고.
이식 후, 쇼크는 더 이상 내 몸뚱아리를 건드리지 않는 대신,
내 뇌를 건드린다. 건드려서 마비시키듯이...
그렇게 마셔대고 난 뒤에, 잠시 정신줄을 되찾아 일어나서
혈당 체크를 하면, 수치가 웃기지도 않는다. 5-60대니까.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땐 대체 얼마였을까 싶다...
이러다 한 방에 간다고, 중풍으로 수술한 게 도루묵이 되고프냐고,
무섭게 화를 내시던 담당 선생님 모습이 오버랩되곤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걸핏하면 그렇게 아슬아슬한 아침을 맞으면서,
아, 이러다 언제든 갈 수 있겠구나 싶어 나도모르게 자꾸만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기고 있다.
그럼에도 아슬한 순간에 눈이 떠지고, 먹을 것을 가지러 일어나고,
먹고 잠들고...를 되풀이 하면서도, 이렇게 살아있는 것을 보면,
아직은... 갈 때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거 아니고,
가기 싫다고 머무를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그 엄연한 사실 앞에서, 의외로 난 담담해지는 듯싶다.
점점 잦아지는 증상에 부딪히면서, 그렇게 갈 날에 대한 준비를,
이제는 구체적으로 해야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잃을 게 없고, 언제 삶이 끝날지 모르는 사람에겐,
딱히 겁날 게 없는 것 같다. 뭐든 괜찮다는 생각이 드니까...
지난 봄에, 절망적인 신경 검사 결과가 나온 이후로,
예전보다 두 배의 약을 먹고 있는데도,
감각은 급속도로 잃어가고, 더는 잃을 것도 없을 듯싶다...
마치 무릎 아래로는 의족을 하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라도 서 있을 수 있고, 스스로 걸을 수만 있다면... 싶다.
이미 잃어버린 감각은 살아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다니까,
더 이상 잃어버리지 않기만 기도할 뿐이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게도, 감각없는 발이, 특히나 더 감각없는
왼쪽 발이, 한번씩 전기 고문이라도 받듯이 찌릿해져서 힘겹다.
쉬지않고 지져대는 듯한 고통에 잠은 고사하고 가만히 참고
있을 수가 없어, 두드리고 비틀고 그 발로 바닥을 치곤 한다.
그 증상은 거의 언제나 밤에 생겨서 사람을 괴롭히는데,
어젯밤에는, 그 정도가 심해서, 날밤을 샜다.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설교를 듣다가 음악을 듣다가 티비를 켜서
멍하니 쳐다보다가... 별 짓을 다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날이 밝은 뒤에야 지쳐서 겨우 잠이 들었는데,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전화 벨소리에 깼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가 오는 일은 거의 없는데...
무거운 머리를 간신히 들고 일어나니, 휴대폰이 아니라
울리는 일이 없다시피한 집전화 소리였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가서 받으니 여동생이었다.
다짜고짜로, 괜찮냐고, 무슨 일 있냐고, 왜 폰은 안 받냐고...
한꺼번에 몰아치듯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왜 이러나 싶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내 친구<사귄지 오래되지 않은...>가,
언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카톡에도 반응이 없다고,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동생한테 전화를 했다는 거였다.
요즘 자주 내 쇼크 소식을 듣던 그 친구가, 나한테 일이 생기면
멀리 사는 자기가 어찌할 수 없으니, 여동생과 친구 폰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었는데, 늘 그러마 하면서도 알려주지 못했었다.
웃기게도, 며칠전에 그럴 일이 있어서 결국 알려줬었는데,
이렇게 바로 전화할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나 원 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내 폰이 죽어 있었다.
시간에 맞춰 약을 먹어야 해서 늘 알람을 켜놓는터라,
꺼놓는 일이 없는데, 지난 밤에도 3분지 2는 충분히 남아있는
배터리 양을 확인했는데, 왜, 어째서 그렇게 갔는지 모르겠다.
날이 샌 뒤에 잠들어서, 알람도 울리지 않고, 전화도 없었으면,
꼭 지켜야 하는 약시간도 모른채, 저혈당의 위험도 잊은 채
마냥 잠에서 못 깨어날 뻔했다.
본의아니게 걱정을 시켜 미안했지만, 그만큼 고맙기도 했다.
오랫만에 가정의학과에 가서, 지난 밤에 힘들었던 상황을 얘기하고,
팔과 다리에 주사로 약물을 주입하고, 첨으로 레이저도 쬐었다.
종아리 옆을 따라 주사를 놓으면서, 찌르기전에 의사 선생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듯이, "많이 아파요!" 했다.
다들 거길 찌르면 기절할 듯이 아파한다고...
그러고 찔렀는데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상하다는 듯이,
아프지 않냐고 나를 쳐다보며 묻길래,
"그렇게 찔러서 아프다면... 좋겠지요" 했다.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의사 선생이 웃으며 그랬다. "그럼, 나야 치료하기 좋죠~"
환자가 아프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뭐라고 하면 힘들텐데,
찔러도 감각이 없으니 그럴 일은 없지 않겠냐...는 나름의
분위기 전환 멘트였기에, 나도 고마운 마음으로 웃어주었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그 심각성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발에, 팔에 40분여간 레이저를 비추고나니,
병원에서만 한 시간 넘게 있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와서 그렇게 약물과 레이저로
치료를 받아보자고 하길래,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신경이 죽어가는 속도를 늦출 수만 있다면,
공상 과학 영화 속에나 나옴직한 무시무시한 무기처럼 생긴
레이저 기계를 자주 마주한다고 한들 뭔 대수겠는가.
어떻게든 버티고, 참아내서... 가급적이면 곱게 가고 싶을 뿐이다.
뇌로부터 발까지, 압사시키려는 듯 나를 조이고 있지만,
오랜 싸움에 지치고 질리기는 해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긴 싫다.
모처럼 사연을 보내온 친구가, '왜이리 힘든 일들이 한 사람에게만
계속되는지...' 라고 첫머리에 썼지만, 거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까닭없이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시는 분은 아니니까...
한참만에, 내가 사는 이야기라고 쓰면서,
어째 내용이 너무 무겁고 어두운 듯해서 마음이 좀... 그렇다.
밝고, 가볍고,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를 쓸 때까지 있으려 했는데...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듯하다.
어떻게 하면, 뭘 하면... 그럴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행복하고 싶다.
더는 불행하지 않은 걸로 만족하고 싶지 않다.
행복한 것과 불행하지 않은 것은 엄연히 다른 거니까.
지금 여기 있는 내 모습 이대로에서 시작하고 싶다, 행복하기를...
갑자기 초록이 무성한 가로숫길도 걷고 싶고,
갖가지 파란빛이 가득한 바다도 보고 싶다... ㅎㅎ
그렇게 하면, 그러면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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