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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24강. 하나님의 인(印) 맞은 자들

by IMmiji 2015. 5. 28.

24강. 하나님의 인(印) 맞은 자들 (계 7:1-17)

 

계 7:1-17=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印) 맞은 자의 수(數)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印)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印)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블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印)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 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하나님은 사도요한을 천상으로 올라오게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모습과 이 땅에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 가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보니까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손에 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일곱 인으로 봉인이 되어 있는 겁니다.

봉인이 되어 있다는 것은 그 책의 내용을 하나님 이외에 열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분이 누구인가 보았더니 어린 양입니다.

어린 양이 인을 뗀다는 것은 어린 양이 곧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이 세상에서 어린 양으로 나타났을까요?

이는 어린 양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어린 양은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이라고,,,

어떤 제물인가요?

이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는 대속제물입니다.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일컬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너희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알려 줄까요?

이는 이 예수가 너희들이 죄로 인하여 제사를 지내는 흠 없는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세례요한을 일컬어 구약의 선지자와 율법의 마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세례요한의 외침은 곧 구약의 마지막 외침이 됩니다.

구약의 결론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의 결론이 어린 양을 보라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여기 이 어린 양이 바로 창세전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질 준비된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드려지는 제사의 제물의 실체가 바로 이 예수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율법으로 드려지는 짐승의 제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제는 이 예수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이제는 율법으로 드려지는 짐승의 제사로 죄사함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예수의 죽음으로 죄사함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증거는 율법으로 드려지는 모든 제사는 예수에게로 모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번제 제물이고,

예수가 속죄 제물이고,

예수가 화목 제물이고,

예수가 속건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로 속죄가 주어지고,

예수로 용서가 주어지고.

예수로 하나님과도 화목이 이루어지고 형제간에도 화목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이제 예수 안에서 만유가 통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만유의 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통치권을 예수님에게 위임하십니다.

 

이것이 어린 양이 책을 취하고 인을 떼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어린 양이 인봉된 것을 하나씩 해제해 갑니다.

그러자 네 말들이 뜁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네 말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째 인을 뗍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소가 천상(天上)으로 바뀝니다.

천상을 보니까 이미 구원을 받은 믿음에 선진들이 하나님에게 세상을 심판해 달라고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상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너희들처럼 죽임을 당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수(數)가 차면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여섯째 인을 뗍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소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교차하여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섯째 인을 떼니까 땅에서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일어나고 어린 양의 진노가 쏟아집니다.

그러자 땅에서 왕 노릇하던 자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들이 누구인가 하면 적그리스도 세력들이에요.

 

여섯째 인까지 떼어 졌습니다.

그럼 이제 일곱째 인이 떼어질 차례입니다.

그런데 일곱째 인이 떼어지지 않고 다른 장면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도 요한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다른 장면을 보여 주신 겁니다.

 

본문을 봅시다.

 

계 7:1-3=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무슨 그림인가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큰 환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그림입니다.

사도 요한이 자세히 보니까 네 천사가 땅에 네 모퉁이에 서서 땅에 불어 닥칠 네 바람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네 바람은 세상에서 일어날 큰 환난입니다. 

그런데 다른 천사가 땅에 환란을 일으킬 천사들에게 큰 소리로 잠시 스톱! 그러는 겁니다.

환란을 일으킬 네 천사가 왜? 라고 묻자!

응! 그건!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겁니다.

환란을 잠시 보류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환란 전에 하나님이 자기 것을 표시해 두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도합 144.000명의 이마에 인을 칩니다.

인을 치고 난 후 땅에 환난을 일으킬 네 천사들에게 이들은 내 것이니 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印)을 친다는 것은 자기 소유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뭐라고 인을 쳤을까요?

요한계시록 14장을 가면 알 수가 있어요.

 

요한계시록 14장을 봅시다.

 

계 14:1-5=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서 있습니다.

거기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있는데 144.000명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마에 이름이 적혀 있는 것입니다.

누구 이름인가 보니까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인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오늘 본문인 7장에서 이스라엘의 12 지파 중에서 각각 12.000명씩 인침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14장에서 이들을 뭐라고 하는가요?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지요.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들이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이들은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바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기 백성들을 구속하는 일을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12 지파 중에서 각각 12.000명씩 도합 144.000명을 인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 땅에 환란을 일으킵니다.

그 이유는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을 갈라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환란을 일으키기 전에 먼저 자기 백성들은 이마에 표시를 해 놓고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는 환란 속에서 보호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럼 이 땅에서 일어나는 환란의 성격을 알 수가 있어집니다.

어떤 환란인가 하면 인 맞은 자와 인 맞지 아니한 자들을 갈라내는 심판인 것입니다.

쉬운 말로 적군과 아군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이마에 인 맞은 자들은 아군이고,

인 맞지 아니한 자는 적군이 되는 겁니다.

아군이란?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고,

적군이란?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우리 동네에 수변 공원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서바이벌 게임장이 있습니다.

주말이 되면 직장인이나 혹은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서 전쟁놀이를 해요.

서로 편을 나누어서 표시를 합니다.

적군과 아군으로 나누어서 총을 겨누고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지금 그러는 거예요.

세상에 큰 환란을 일으키기 전에 어린 양의 편과 적그리스도의 편에 선 자들을 구분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의 이마에만 표시를 해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환란을 일으키는 천사에게 이마에 인 맞은 자들은 해하지 말고 이마에 표시가 없는 자들만 해하라고 합니다.

표시가 없는 자들은 자연히 적그리스도 세력이 되는 겁니다.

 

이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오늘 본문도 교회 안에 일이에요.

그래서 각 지파 중에서 12.000명씩 인을 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파 중에서” 라는 말을 간과하지 마세요.

“지파 중에서” 라는 말은 지파 모두가 아니란 말입니다.

지파 속에서 구원 받을 자들을 빼내신다는 말입니다.

이게 엄청 중요해요.

 

지금 식으로 말하면 교회 안에서 빼낸다는 말이에요.

교회 안에서 빼낸다는 말은 교회 안에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다는 말입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있어요.

 

이게 창세기 1장 2절의 모습이에요.

지금 교회 안에 빛에 속한 자와 어둠에 속한 자들이 있어요.

이걸 흑암이고 혼돈과 공허한 상태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빛을 불러냅니다.

이게 바로 각 지파 중에서 12.000명씩 빼내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신앙의 싸움을 집안에서 형제들 싸움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교회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걸 놓치지 마세요.

교회 안에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있어요.

땅에 속한 자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걸 갈라내기 위하여 환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보세요.

이게 무슨 교회인가요?

절간이지.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들을 들어보세요.

인본주의로 가득해요.

전부 땅에 말이에요.

땅에서 복 받고 잘 살아야 한다고 하고 있어요.

이건 마귀가 예수님에게 와서 하는 말이에요.

 

누가복음 4장을 봅시다.

 

눅 4:1-12=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10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예수님에게 뭐라고 하던가요?

네가 하나님 아들 아니냐!

하나님 아들이 그렇게 가난하고 형편없으면 되겠느냐!

천하만국의 권세와 부귀영화를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그러니 내게 절을 해라!

그러면 내가 천한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다 주겠다고 하잖아요.

 

마귀의 논리를 보세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성공하고 복 받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이치에 합당한 말씀인가요?

 

맞잖아요.

인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복 주는 하나님이에요.

세상에서 행복하고 잘 살게 해 주는 그런 하나님이에요.

모든 인간들은 이런 하나님 관을 가지고 있어요.

 

그동안 마귀의 이런 제안을 거절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 마귀가 예수님 앞에 와서도 당당하게 말하는 겁니다.

너 부자 돼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봐라 나 이런 복을 받았다 라고 자랑하라는 겁니다.

내가 부자 되게 해 주겠다고 하잖아요.

나에게 절만 하면 세상에서 성공하게 해 주겠다고 하잖아요.

 

지금 이 마귀의 소리를 목사들이 하고 있어요.

교회에서,,

이걸 설교라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교인들이 이런 설교를 좋아하며 원하고 있어요.

이런 목사들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따르고 있어요.

뱀 새끼들인데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뱀 새끼들을 색출하려고 교회에다가 환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어떤 환난이야 하면 적 그리스도 세력들을 일으켜서 말씀에 기근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게 네 말들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6장의 네 말들을 7장에서는 네 바람으로 말하고 있어요.

 

이를 스가랴서에서는 네 병거라고 하면서 그 네 병거를 네 바람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스가랴 6장을 봅시다.

 

슥 6:1-8=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 산은 놋산이더라 2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3 세째 병거는 백마들이, 네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6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의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7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8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

 

스가랴가 성령의 감동으로 하늘나라를 보았습니다.

하늘나라에 홍마와 흑마와 백마와 어룽진 말의 네 병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네 바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주의 명령을 받고 이 세상으로 나아가서 어떤 일들을 행하는 천사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지요.

어떻게 하는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겁니까?

적그리스도 세력들을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이에요.

그걸 요한계시록에서는 네 말들이 재앙을 일으키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서 네 가지 말들이 일으키는 재앙들을 타락한 구약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는 것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네 말들이 일으키는 재앙들은 구약에서 이미 보여준 것이라고 살펴보았잖아요.

 

네 말들이 뛰자 이 세상에서 갖가지 재앙들이 일어납니다.

네 말들이 일으키는 환난이 뭐라고 했나요?

 

흰 말은 적그리스도이고

붉은 말은 전쟁이고,

검은 말은 기근이고,

청황색 말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교회 안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면 진짜와 가짜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요.

그럼 말씀이 사라지게 되고 결국 죽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네 말들이 뛰고 있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성도들은 알아요.

이 시대가 환난의 시기라고,,

그래서 영에 속한 자들은 탄식하면서 말씀을 찾아서 다니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이마에 인 맞은 성도들이에요.

 

이건 구약에 이미 경험한 일이에요.

구약을 보면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어요.

구약 교회가 타락하여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갈 때에 나타났어요.

 

에스겔 9장을 봅시다.

 

겔 9:1-11=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 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5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11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에스겔이 활동하는 시기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갔던 시기에요.

이 때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1장부터 8장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건 이 시대로 말하면 교회의 타락을 말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교회를 심판을 단행합니다.

어떻게 단행하는지 보세요.

먼저 예루살렘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에게 살육하는 기계를 가지라고 하지요.

이는 오늘 본문식으로 말하면 바다와 땅을 해하는 네 바람을 가진 네 천사들을 말해요.

 

그런데 그 중에서 가는 베옷을 입은 한 서기관이 먹물을 들고 나오지요.

하나님이 그 서기관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성읍을 순행하면서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가증한 일들을 보고서 탄식하면서 울고 애통하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고 합니다.

 

이건 교회의 타락을 보고 상한 심령으로 애통하는 성도들을 말해요.

교회 안에 비진리가 증거되는 것을 보고 아파하는 성도들을 말해요.

모두가 다 타락하는데 그 중에서 그 타락상을 보고서 탄식하고 운다는 것은 그 중에서 뽑힌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각 지파 중에서 12.000명이 뽑힌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이해가 되나요.

왜 탄식합니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에요.

 

모르면 탄식하지 않아요.

교회 안에서 비진리가 증거 되는 것을 보고 탄식한다는 것은 그들과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게 각 지파 중에서 뽑힌 12.000명이에요.

 

종말에 구원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요.

진짜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울어요.

이건 아니잖아! 라고 하나님께 탄원을 해요.

 

이러한 탄식이 나온다는 것은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서 우는 겁니다.

이건 마치 예수님이 강도의 굴혈이 된 예루살렘을 보고 우신 것과 같아요.

지금도 그 안에 예수가 있는 성도는 강도의 굴혈이 된 교회를 보고서 울어요.

교회 안에 뱀의 말들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탄식을 해요.

이들이 바로 인 맞은 자들이에요.

 

먹물을 찬 서기관이 예루살렘 성읍을 순행하면서 가증한 일로 탄식하면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지요.

그리고는 살육하는 기계를 맡은 자들을 보냅니다.

어디로 보내는가요?

성전으로 보내지요.

 

6절을 보세요.

 

6절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성전 안에서 늙은 자로부터 시작하여서 어린 아이까지 다 죽이라고 하지요.

늙은 자라는 말은 교회 지도자들을 말해요.

속된 말로 교회 오래 다니고 목사 장로들을 말해요.

그리고 처녀와 부녀와 어린 아이들은 그들의 말을 따르는 교인들을 말해요.

이는 마귀의 종들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말해요.

육적 신자들을 말해요.

 

5절을 보세요.

 

5절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살육하는 기계를 가진 자들에게 명하지요.

아껴보지도 말고 긍휼을 베풀지도 말라고 하지요.

이건 인정을 베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서운 말이에요.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세요.

하지만 질투의 하나님이기도 하세요.

 

하나님의 긍휼의 이면에는 진노가 있어요.

사랑의 이면에는 미움이 있어요.

긍휼을 외면하는 자에게는 진노가 임해요.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는 더디 자라도 행여 하면서 돌보고 키워요.

그러나 추수 할 때는 돌보지 않아요.

열매 없는 가지는 사정없이 잘라버려요.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할 때는 긍휼로 대하세요.

그러나 추수할 때는 긍휼을 거두시고 진노를 퍼부어요.

지금 그 모습을 에스겔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어디에서 일어난다고 했나요?

성전이에요.

교회란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들을 보세요.

이들이 어디 가서 외치나요.

성전이지요.

그들이 외칠 때 입에서 불이 나오지요.

이건 심판을 말해요.

 

종말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에요.

이제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뱀 새끼들이 교인들로 하여금 땅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땅에 것으로 말이에요.

복 받고 잘 살아야 한다는 말로 미혹한단 말입니다.

그 말에 미혹당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어요.

 

그래서 두 증인들에게 불 같은 말씀을 주어서 그들의 죄를 고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예수님이 세상 영광을 꿈꾸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지옥으로 가라고 하셨던 것과 같아요.

 

여러분! 긍휼은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들에게 필요해요.

잘난 척 하는 자들에겐 긍휼은 필요가 없어요.

교만한 자들에게는 긍휼이 필요치 않고 모가지를 댕강 댕강 쳐내는 칼이 제격이에요.

 

그래서 제가 누가 복음을 몰라서 그러면 참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기다려 주어야 해요.

하지만 복음 안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안하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선생 노릇하는 자들에게는 인정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나 사람들에게 거치는 자들은 사정없이 나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 자체로 참과 거짓들을 갈라내는 능력이 있어요.

복음에 합당한 자들에겐 복음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게 하시고,

복음에 합당치 못한 자들에게는 복음에 반하는 모습으로 살게 만들어요.

 

복음에 합당한 모습이란? 죄인의 자리에서 긍휼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에요.

이러한 사람들에겐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나요.

복음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찬송하며 교회 안에서 섬기는 일을 해요.

 

복음에 합당치 않는 모습이란? 의인의 자리에 앉아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해요.

교만하고 남을 무시하고 잘난 척 해요.

입만 열면 정죄하는 법이 나오고 자기만 옳고 남은 다 틀렸다는 식으로 말해요.

 

마음에 온기(溫氣)가 나오지 않고 냉기(冷氣)가 나와요.

그 속에 뱀이 들어 있기 때문에 냉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뱀 새끼들은 차가워요.

 

하지만 그 속에 예수가 있는 사람들은 온기를 뿜어내요.

따뜻함이 묻어나온단 말입니다.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나와요.

이게 인 맞은 성도들이에요.

 

다시 에스겔을 봅시다.

 

먼저 예루살렘에 먹물을 들고 가서 이마에 표를 하지요.

표를 해 놓고는 나중에 심판을 행하지요.

이 때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모두가 살아남습니다.

 

그러니까 이마에 표를 하는 것은 죽음에서 살아나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그럼 그 표를 받은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환란을 통과 하여야 하겠지요.

환란을 통과하지 않으려면 표를 할 필요가 없어요.

 

환란을 통과하게 하시려고 표를 하는 것입니다.

표를 받은 사람들은 환란을 통과하면서 자신들이 환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양의 피 때문임을 알게 되어요.

그래서 환란에서 나오자 말자 어린 양에게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중 계시로 보아야 해요.

 

영적으로도 해석하여야 하고 육적으로도 해석하여야 합니다.

1차적으로 교회 안에 심판을 말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 속에 세상의 심판도 담겨져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과 세상 종말에 일어날 사건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끝장내는 일로 보아야 해요.

끝장내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인치는 것으로 보아야 해요.

 

이것도 구약에서 예표적으로 보여 주셨어요.

 

이스라엘의 출애굽 때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영적인 의미로는 예수의 피로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 받는 것이고,

역사적인 의미로는 장차 이 세상이 멸망 할 때 성도들이 구원 받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출애굽기 12장을 봅시다.

 

출 12:1-14=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합니다.

이건 아브라함 언약에 의한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실 때 네 후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종살이 하다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이라곤 한 명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약속을 하나님이 자기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홀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십니다.

 

하나님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생명을 죽임으로서 그 약속을 이루어내겠다는 뜻입니다.

이게 출애굽 할 때에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살아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어린 양의 죽음으로 출애굽을 한 큰 민족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민족이 어떻게 생겨나는가 봅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그 때가 되었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약속을 하고 난 후 400년이 지난 상태입니다.

이제 그 때가 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으로 보냅니다.

그리곤 하나님의 백성들을 내어 놓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바로가 거부합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데 자기 종들을 내 놓으라 말라 하느냐고 호통을 칩니다.

 

이에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10가지 재앙을 내립니다.

바로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센 땅에서 하나님이 애굽 왕 바로를 혼내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들을 지키는 하나님이 바로 왕을 혼내는 신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서 바로를 혼내고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밤 애굽을 떠날 테니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밤에 하나님이 애굽 전역에 죽음의 천사들을 보내서 큰 심판을 단행하시는데 이 심판은 이스라엘도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죽음의 심판에서 살아남을 비밀을 알려 줍니다.

그게 뭐냐?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집의 문에 바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 심판을 단행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표시를 해 두신 것입니다.

그 표시가 어린 양의 피입니다.

 

이에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듣고 집집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에다가 바릅니다.

오늘 본문식으로 말하면 이마에 인을 친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르는 것은 이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어린 양의 것입니다” 라는 표시입니다.

 

문에 피를 다 바르게 한 후 하나님은 죽음에 천사들을 보내서 심판케 하십니다.

가서 심판 하되 문에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집은 넘어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재앙이 넘어갔다는 뜻에서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죽음에 천사들이 애굽 전역에 다니면서 심판 합니다.

천사들이 심판 할 때 어린 양의 피를 보고 살 자와 죽을 자를 판단합니다.

집의 문에 어린 양의 피가 발라져 있으면 묻지도 않고 넘어가고,

어린 양의 피가 없으면 들어가서 애석해 하지도 않고 그 집안에 기둥인 장자를 죽여 버립니다.

장자를 죽었다는 것은 가문을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건 애굽을 멸망시키겠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과 애굽인으로 나누기 위하여 어린 양의 피로 표시를 했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났다는 것은 어린 양의 죽음으로 살아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살아난 자들은 새로운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에는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하나님 백성 됨을 인침을 받았는데,

이제는 어린 양의 피로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출애굽을 한 자들에게는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의미는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혈통에서 어린 양의 피로 바뀐 것입니다.

 

이걸 언약적으로 말하면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바뀐 것입니다.

율법에서 은혜로 바뀐 것입니다.

행위에서 믿음으로 바뀐 겁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니까 구원 받은 무리들인 144.000명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써져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어린 양의 죽음으로 살아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쉬운 말로 어린 양이 죽음으로 144.000명을 낳은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 피로 죄와 사망 가운데 있던 자기 백성들을 구속하고 구원하신 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신약에서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생겨난 민족이 교회로 나타납니다.

교회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곳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12 제자들을 선택하십니다.

그리곤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그 12 제자들을 통해서 교회들이 세워집니다.

그래서 교회를 일컬어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뭔가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아무나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 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입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하는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서 인을 쳐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을 봅시다.

 

고후 1:21-22=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印)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으로 인을 쳤다고 하지요.

그 성령이 어디에 와 있는가요?

우리 마음에 와 계십니다.

 

성령이 그 마음에 와 계신 성도는 예수의 피로 용서 받고 살고 있음을 알아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하지요.

품으라는 말은 닭이 알을 품고 부화하는 것을 말해요.

이는 예수의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그 예수의 삶이 어떤 삶인고 하니 자기를 비우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자기를 비웠어요.

 

그럼 그 안에 예수가 와 계신 성도 역시 자기를 비우는 삶을 살게 되어 있어요.

이건 우리더러 이렇게 노력하고 살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 반대의 말이에요.

이렇게 살아지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그 안에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들이에요.

성령이 그들 속에서 예수의 성품적인 열매들을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 성령에 맺게 한 열매들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일컬어 야고보서에서는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행함이란? 믿음이 일으킨 사건을 말해요.

 

이건 우리 인간들이 노력해서 만들어 내는 행함이 아니에요.

인간들이 노력해서 만들어 내는 행함은 종교적인 일이에요.

종교성으로 나타난 행함에는 인간의 자랑거리가 있어요.

그 일을 행한 인간들을 자랑해요.

그래서 세상 종교에서는 누구를 본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행함을 불의라고 해요.

예수가 만들어 낸 행함만이 의가 되어요.

우리는 예수가 만들어 낸 행함으로 살아가요.

이걸 믿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믿음 속에는 우리 것이 없어요.

믿어야 하는 대상인 그 분의 것만 담겨져 있어요.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들은 그 속에서 예수님의 것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일컬어 성령의 열매들이라고 해요.

 

그래서 이 열매들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금지할 법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제어 하거나 조정 할 수가 없는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서 예수님이 일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믿음이 일으킨 행함이라고 해요.

이 행함이 없는 자들은 성도가 아니에요.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귀신의 믿음이고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귀신도 믿음이 있어요.

그런데 행함이 없어요.

이 시대 교회 안에 이 귀신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 수두룩해요.

 

머리로는 복음을 말하지만 실상에서는 반 복음적으로 살아요.

스스로 속고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본인은 속고 있다는 것을 몰라요.

그러니 소경인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봅시다.

 

땅과 바다에 환난을 일으킬 네 천사가 서 있지요.

그런데 또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오지요.

올라오면서 땅에 네 바람을 붙잡고 있는 천사들을 향하여 잠깐만 하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환난을 유보하라고 합니다.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온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각각 12.000명씩 도합 144.000명의 이마에 인을 칩니다.

이 인 맞은 자들이 큰 환란에서 나오는데, 이들은 모두가 어린 양의 피로 씻김을 받은 자들로서 천국에서 어린 양에게 세세토록 찬송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6장과 7장을 보면 시간적인 순서로 보면 맞지 않아요.

6장에서 인을 떼자 네 말들이 뛰지요.

그러자 이 땅에서 갖가지 재앙이 일어나고 있어요.

 

네 재앙은 교회적으로는 적그리스도 세력들로 인한 재앙이지만 교회 바깥 세상적인 의미로는 세상에 임할 재앙들이에요.

그런데 7장에 보면 재앙을 일으킬 네 바람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치고 있어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고 난 후 재앙이 임한단 말이에요.

그 재앙이 6장의 모습이에요.

그럼 순서상으로 본다면 7장이 6장에 앞선 장면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맞아요.

7장은 6장에 앞선 내용이에요.

그래서 제가 요한계시록 강해를 시작하면서 요한계시록은 사건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므로 순서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이 세상의 역사가 비록 수천 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하루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이걸 요한계시록에 적용을 하면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이 세상에서 수천 년 동안 일어나는 사건들을 한 순간에 다 보여 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구조가 매 장마다 본다는 것으로 짜여 있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하나님이 사도 요한에게 역사 전체를 그림으로 그려서 전시해 놓은 곳을 데리고 가셨어요.

그리고는 전시된 그림들을 보여 주시면서 설명을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미술관에 큐 레이터가 고대와 근대와 현대의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해 놓고서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설명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천사들이 사도 요한에게 큐 레이터가 되어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의 시간관으로 이해하고자 해요.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일들을 과거 현재 미래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해 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아요.

 

사 복음서도 순서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요.

연대기(年代記)적으로 보면 안 되어요.

사건 중심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건을 가지고 영적 비밀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에게는 시간이란 없어요.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도 시간적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성경이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이러한 식으로 말하고 있으니까 이것도 우리의 시간관으로 해석을 합니다.

 

아니에요.

창세기의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은,,,, 표현을 그러한 식으로 한 것이지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하루 이틀 사흘의 개념이 아니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관으로 하루 이틀 사흘이라는 시간은 낮과 밤이 있고 해와 달이 있으므로 생겨난 시간들이에요.

 

그런데 역사의 시간을 제공하는 해와 달과 별들은 넷째 날에 만들었어요.

넷째 날에 하늘이 궁창에 해와 달을 만들고 낮과 밤을 주관케 하시고 사시(四時)와 일자(日子)와 연한(年限)을 이루게 하셨어요.

비로서 시간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간관으로 우리는 하루 이틀 사흘이라는 시간을 나누어요.

 

그런데 창세기 1장의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시간을 나누는 해와 달과 별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첫째 날이라고 하고 둘째 날이라고 하고 셋째 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날은 해와 달이 만들어지고 난 후 생겨난 시간관과는 달라요.

 

해와 달과 별이 만들어지기 전에 날을 역사 속의 시간이 아니에요.

창조에 속한 날이에요.

이 날이 바로 베드로가 말하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는 그런 날인 것입니다.

 

묵시 안에서는 순서가 없어요.

사건만 있어요.

요한계시록은 묵시에 속한 일을 역사로 말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앞뒤가 시간 순으로 순서적으로 있지 않고 사건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6장과 7장이 그러해요.

7장이 6장보다 앞서 있는 장면이에요.

모든 성경이 다 그러해요.

그러므로 성경은 성령의 감동 없이는 해석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네 천사가 나오지요.

근데 6장에 보면 땅을 해롭게 할 네 말들이 나오지요.

네 말이 네 재앙을 몰고 오잖아요.

그럼 7장에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네 천사가 바로 네 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네 말들이 뛰기 전에 행하여진 사건으로 보면 됩니다.

이해가 되나요.

 

이제부터 해 돋는 데로부터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천사가 헤 돋는 데로부터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오지요.

동쪽으로부터 올라온 천사란 생명을 가지고 오는 천사라는 뜻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감추어 버립니다.

 

그곳이 바로 에덴동산 동편이었습니다.

따라서 동쪽이란? 생명과 연관이 있는 것이고 생명을 가지고 오는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치기까지 심판이 유보된 것입니다.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라는 말은 “아포 아나톨레스 헬리우” 라고 하는데,

이는 “동쪽으로부터” 를 의미해요.

이는 곧 어둠을 걷어내고 빛으로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어둠을 걷어내고 빛으로 오시는 분이 누구인가요?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백성들의 이마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시온 산에 서 있는 144.000명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아담과 하와 이야기로 살펴봅시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하나님이 동쪽 문을 닫아 버리지요.

 

창세기 3장을 봅시다.

 

창 3:23-24=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에덴의 동쪽 문(門)을 닫고 천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시지요.

동편에 뭐가 있다고 합니까?

“생명나무의 길”이라고 하지요.

 

생명나무의 길이란? 생명을 가지신 분이 드나드는 길이란 말이에요.

예수님이 다니는 길이란 뜻입니다.

이게 성막의 문(門)으로 나타납니다.

 

성막은 모세가 하늘나라 식양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성막은 곧 하늘나라를 의미하고 하늘나라는 에덴동산을 의미하잖아요.

그렇다고 한다면 성막의 문이 곧 에덴동산의 문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7장을 봅시다.

 

출 27:13-16= “동(東)을 향하여 뜰 동편의 광도 오십 규빗이 될 지며 14 문(門) 이편을 위하여 포장이 십 오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15 문 저편을 위하여도 포장이 십오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16 뜰 문(門)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 짠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성막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늘에 식양(式樣)을 보고 만든 것이지요.

히브리서 10장을 보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막에서 행하여지는 제사 제도를 말하고 있어요.

 

성막에서 행하여지는 제사를 예수그리스도가 자기 몸으로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성막은 곧 예수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이 됩니다.

성막을 의인화(擬人化) 하면 예수그리스도에요.

그러니 성막의 구조가 곧 예수그리스도가 하실 일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막을 보면 문이 동쪽으로 나 있어요.

이 문으로 누가 들어가는가 하면 제사장들이 들어가요.

이 문을 누가 열어 주었는가 하면 예수님이 열어 주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자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지요.

 

마 27:50-53=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건 하늘에서 길을 하나 내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닫혔던 에덴동산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천국의 문이 열린 거예요.

 

그러자 예수의 피로 구속 받은 성도들이 들어가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이걸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이 자기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을 내 주셨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 9:8-12=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10:16-20=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지요.

휘장은 성막의 문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 육체로 낸 길이 바로 성막의 문이에요.

 

성막의 문은 뜰과 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담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 몸으로 그 담을 헐어 버린 것입니다.

알다시피 성막의 뜰에서는 번제를 지냅니다.

 

뜰에서 번제를 지내고 성소로 들어갑니다.

뜰은 세상이고, 성소는 천국을 상징해요.

그럼 번제를 통해서 성소로 들어갈 길이 생긴 거니까

예수님이 곧 성소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어요.

그 문으로 양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게 성막에서 성소로 들어가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이 문은 세 가지 색깔의 베실로 만들게 하셨어요.

성막의 문은 청색과 자색과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만들었어요.

무슨 말인고 하니 가늘게 꼰 베실로 휘장을 만드는데 거기에다가 청색과 자색과 홍색실로 수놓게 하셨어요.

 

홍색은 피 색으로서 대속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청색은 생명의 색으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자색은 왕권의 색으로서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성막의 문인 휘장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은 세 장소는 예수님의 삼직을 말하고 있어요.

뜰에서는 선지자 직으로서 예수님의 육체로 번제의 제물이 되어서 죽어주신 것을 말하고,

성소에서는 제사장 직으로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도우시고 있는 것을 말하고,

지성소는 왕으로서 장차 재림하여 만국을 다스리실 것을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성막의 동쪽 문으로 예수의 피를 힘입고 제사장들이 들락거리는 것은 예수님이 들락거리는 것과 같아요.

 

이게 솔로몬의 성전에서도 말해주고 있어요.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동쪽 문을 닫아 놓았어요.

아무도 그리로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어요.

이는 그 동쪽 문으로는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43장을 봅시다.

 

겔 43:1-5=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3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5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겔 44:1-2=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 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겔 46:1-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안 뜰 동향한 문을 일하는 육일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에도 열고 2 왕은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왕은 문 통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3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월삭에 이 문 통에서 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 8 왕이 올 때에는 이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성전에 동쪽 문으로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오지요.

그래서 육일 동안은 그 문을 닫아 놓게 하였어요.

그러다가 안식일이나 월삭에 열어놓았어요.

이는 백성들이 출입을 막고자 함이에요.

 

그런데 유일하게 출입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왕이에요.

왕만 그 동쪽 문으로 출입하여서 성전을 돌아보고 그 문으로 나갔어요.

이렇게 되면 동쪽문은 이스라엘의 왕이 출입하는 곳이란 뜻입니다.

 

그럼 묻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으로 오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에요.

 

이스라엘의 왕이 누구신가요?

예수님이에요.

예수님만이 성전의 동쪽 문으로 출입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 문이 언제 열린다고 합니까?

안식일과 월삭에 열리지요.

이는 곧 그 동쪽 문으로 들어오는 분이 바로 자기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시는 분이란 말이에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인데 잘 이해하세요.

에스겔이 말하는 성전은 성신으로 지어진 성전을 말합니다.

이는 성신으로 지어진 성전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오신다는 말입니다.

 

신약에 성신으로 지어진 성전이 어디인가요?

성도들 마음이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성령을 성도들 안에 보내주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성도들 안이 성신으로 지어진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달리셔서 죽으신 것은 창조의 엿새동안 일을 한 것의 모형이에요.

그리고 부활 후 승천 하신 것은 일곱째 날 안식하는 것과 같아요.

그럼 이스라엘의 왕이 안식일에 성전의 동쪽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안식의 나라인 천국에서 부활 하신 예수님이 성도들 안에 성령으로 오신 것을 말해요.

 

성령이 오심으로 성도 안에 천국이 주어졌습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새 날이 밝았어요.

성령이 오심으로 성도에게는 곧 안식일과 월삭이 되는 것입니다.

 

월삭이란? 첫 날을 말해요.

성령이 오심으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첫날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성령으로 오심으로서 성도는 일곱째날 안식일과 새 날의 시작인 월삭이 주어진 것입니다.

 

성령이 어떻게 오셨는가요?

예수님의 죽음을 근거로 해서 오셨지요.

예수님이 죽음으로서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어졌어요.

이는 어둠의 권세가 물러간 것과 같아요.

 

성령이 우리 안에 어둠을 물리치고 새 날을 연 것입니다.

성령의 오심은 어둠이 물러 가고 새 날이 온 것이에요.

성령의 오심을 뭐라고 했나요?

성령의 인침이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성령이 성도 안에 오신 것은 헤 돋는데로부터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가 오신 것과 같아요.

성령이 천사처럼 우리 안에 오셔서 하나님의 인을 쳐준 것입니다.

 

비로서 에스겔의 성신으로 지은 성전에 안식일과 월삭에 여호와의 영광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 동쪽문으로 들어 오는 것이 성도들 안에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곳인 동쪽에서 한 천사가 오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가 와서 자기 종들이 이마에 인을 치지요.

 

인을 친다는 것은 내 것이라고 표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표를 했는가 하면 이 땅에 환란이 닥치는데 그 속에서 지키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 환란이 닥치면 지옥이 되어요.

그 지옥 속에서 인 맞은 자들은 예수님이 보호하세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자 큰 환란이 닥치지요.

그럼에도 성령 받은 성도들은 그 환란 속에서도 믿음을 굳건히 지켰어요.

이는 성령이 그 안에서 인침의 역사를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은 성도는 환란 속에서도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식을 누린다는 말은 아무 고난 없이 산다는 말이 아니에요.

고난이 성도를 넘어지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몸은 환란을 당하지만 성도의 구원을 빼앗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 맞은 자들이 큰 환란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하나님께서 환란을 보내는데 이 환란은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자는 다 멸망 받는 환란이에요.

그런데 자기 종들에게는 인을 쳐 주었어요.

 

왜? 환란을 보류하고 인을 칩니까?

환란을 거치지 않으면 인칠 필요가 없어요.

자기 백성들이 그 환란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인을 쳐서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을 맞은 자들은 다 멸망 속에서도 거뜬히 이기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믿음을 지키다가 풀무불 속에서도 타지 않고 거니는 것처럼 말이에요.

 

믿음이란? 고난을 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에요.

고난 속에서도 이겨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고난에 던져보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다 넘어지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교회 안에 환난을 일으키는 것은 자기 백성들을 추수하기 위함입니다.

환난을 통해서 곡식과 가라지가 갈라져요.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가 갈라져요.

 

말씀을 좇아가는 자와 떡을 쫓아가는 자로 갈라져요.

하나님으로부터 인을 맞은 자들은 말씀을 쫓아가고,

인을 맞지 않은 자들은 떡을 쫓아가게 되어 있어요.

 

그 안에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자는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어요.

환난을 이기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지 우리의 능력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행하시는 환난은 우리의 능력으로 이길 수가 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만이 이겨요.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이 자기 종들이 이마에 인을 치는 것은 환란을 이기고 벗어나라는 거에요.

아니지요.

환란을 하나님이 이기고 벗어나게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증거로 인을 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린 이미 인을 맞았어요.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는 성도는 인침을 받은 거에요.

인침 받은 성도에게는 시험이 오면 피할 길도 주세요.

 

우린 지금까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여기까지 왔어요.

앞으로도 인도 해 가실 겁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곧 우릴 데리러 오실 겁니다.

그 날을 사모하면서 사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너는 내 것이라 지명하여 부르시고 인 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성령의 증거로 그 어떤 것으로도 넘어지거나 시험 들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울 산 목 양 교 회 蔚山 牧羊 ??
글쓴이 : 정낙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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