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강. 일곱 인(印)으로 봉한 책 (계 5:1-14)
계 5:1-14=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印)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印)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4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印)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하나님 오른 손에 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 책은 안팎으로 써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이 책을 어린 양이 취합니다.
그리곤 봉인 된 것을 떼십니다.
그러자 만물이 어린 양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이 5장의 내용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책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아버지의 손에 있던 책을 예수님이 취하여서 집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책에 의하여 다스려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을 보면 두 책이 나옵니다.
하나는 책이라고 하면서 단수(單數)로 쓰고 있고,
다른 하나는 책들이라고 하면서 복수(複數)로 쓰고 있습니다.
계 20:12-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단수(單數)로 쓴 책은 생명책이고,
복수(複數)로 쓴 책은 행위 책입니다.
단수(單數)의 책인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아니하고,
복수(複數)의 책들에 기록이 된 자들은 둘째 사망에 떨어지게 됩니다.
위의 말씀으로 보면 하나님은 책을 가지고 일을 하시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책을 가지고 일을 하신다는 것은 우발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계획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창세전에 예정된 수순대로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신 일이란? 자기 백성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걸 야곱과 에서를 가지고 이해하면 쉬울 겁니다.
야곱과 에서는 태어나기 전에 이미 각자의 운명이 결정이 되어서 태어납니다.
요한계시록 식으로 설명을 하면 야곱은 책에 기록이 되었고, 에서는 책들에 기록이 된 것입니다.
단수(單數)로 기록이 된 책인 생명책에 기록이 된 야곱은 행위와 상관없이 구원을 받지만,
복수(複數)로 기록이 된 책들인 행위 책에 기록이 된 에서는 자기 행위에 대한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이로보건데 하나님은 책을 가지고 이 역사를 운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걸 오늘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을 예수님에게 맡기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요?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하시러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린 예수님을 오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곤 우리와 상의하지도 않고 예수님 마음대로 우리를 구원 하셨습니다.
우린 예수님을 십자가를 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지신 예수를 믿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우린 우리 인생 살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일방적으로 개입하신 것입니다.
개입하셔서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놓았습니다.
육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육적 꿈을 앗아가시고 예수님의 꿈을 우리 속에 심어 놓고 우리는 간섭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간섭 받기를 싫어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개입하셔서 우리 인생을 쫑 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을 그닥 기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살라고 하면 우린 당장 예수를 버리고 세상으로 도망을 가고자 할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마치 광야 이스라엘처럼 발걸음은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서 가나안으로 가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것을 사모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실존입니다.
구원이 뭐냐?
쉬운 말로 하나님의 간섭하심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가만 두지 않고 간섭하십니까?
이는 창세전에 하나님이 그렇게 언약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구원을 해 놓으시고 이 사실을 알려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어떤 기도인가요?
에베소서 3장을 봅시다.
엡 3:14-19=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우리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거하여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길이와 높이를 많이 많이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 우리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을 좀 알라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창세전 언약의 목적인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24장로들이 무엇을 하던가요?
면류관을 벗어 던지면서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4 장로들이 천상에서 하는 것이 성도의 구원의 궁극적 목적이고 이것이 바로 창세전 언약의 내용입니다.
좋은 신앙이란?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많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제사가 아니라 긍휼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그리스도 한 분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천국으로 산다고 합니다.
바울의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발 좀 하나님의 그 은혜와 영광을 알아가라고 합니다.
속된 말로 철이 좀 들라는 것입니다.
떡 나부랭이에 목숨 걸지 말고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를 알라고 하십니다.
“국화꽃 하나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라고 하는 어느 시인의 싯귀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가 도대체 어떤 분인지를 좀 알아가라고 우리를 간섭하고 또 간섭해 오신 것입니다.
앞으로도 간섭해 가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어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게 요한계시록의 주제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존재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참새 한 마리를 하나님이 입히시고 먹이시는 것을 알지만 정작 우리 자신은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계신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왜? 사는지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왜?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 손에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어린 양이 취하십니다.
일곱 인으로 봉인 된 것을 어린 양이 하나씩 뗍니다.
그러자 역사 속에 어떤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린 양에 의하여 일어남이 됩니다.
이걸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아들이 하는 심판이 뭡니까?
이는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을 갈라내는 것입니다.
이걸 창세기 1장에서 창조 사건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고 역사에 개입을 하십니다.
그리곤 혼돈 된 세상을 갈라내서 질서로 회복케 하십니다.
빛과 어둠을 갈라내고, 하늘과 땅을 갈라내고, 땅과 바다를 갈라냅니다.
이렇게 갈라냄을 심판이라고 합니다.
성도에게는 구원이라고 합니다.
성도의 구원을 누가 하십니까?
예수님이 하십니다.
예수님이 누구를 구원합니까?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하십니다.
그럼 묻습니다.
구원이 먼저입니까?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것이 먼저입니까?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것이 먼저입니다.
책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창세로부터 구원 받기로 작정이 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이 된 사람에 한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주어지는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것입니다.
이 언약은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에게 창세전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은 성자 예수님이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걸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 손에 있는 책을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취하고 인을 떼는 것으로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을 뗀다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창세전에 아버지와 언약 하신 것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만물의 다스림을 위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고서 책에 담겨진 내용을 이 세상 속에서 하나 하나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만물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라는 말은 생명을 낳는 일을 하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이걸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원이 되려면 먼저 버려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죄 아래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죄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걸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15장을 봅시다.
창 15:1-17=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오십니다.
이 때 아브람에게는 자식이 하나도 없을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자식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하늘에 별과 같이 많이 주겠다고 합니다.
아브람이 가만히 들으니 황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내가 어떻게 믿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면서 하나님의 목숨을 걸고 그 일을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이 일은 아브람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자가 이삭입니다.
그 이삭에게서 야곱이 나옵니다.
야곱에게서 12 지파가 생겨납니다.
12 지파에서 출애굽 할 때 남자 장정만 60만이 생겨 난 것입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합치면 족히 200만이나 됩니다.
이 200만이 어떻게 생겨났습니다.
아브람 언약에 의해서입니다.
아브람에게 언약을 주실 때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그냥 아브람 속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약속으로,,,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약속이 엄청난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람 언약은 창세전 언약을 근거로 해서 주어진 언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을 가지고 창세전 언약이 이 역사 속에서 이렇게 펼쳐질 것이다 라고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이 오셔서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을 기능적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 언약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한 민족이 생겨날 것을 설명하고자 아브람을 선택하여서 그 후손인 이스라엘을 가지고 만방에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지고 창세전 언약은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 주신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언약에 의하여 생겨난 자들입니다.
언약이 먼저이고 백성이 나중입니다.
이걸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이방의 객이 되었다가 구원 받는 것으로 책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후손들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근거로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태어난 자들을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대로 간섭을 하십니다.
언약에 의하여 애굽에서 종살이 하게 되었고,
언약에 의하여 출애굽을 하였고,
언약의 의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태어난 이스라엘을 가지고 창세전에 하신 그 언약대로 구원하는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약의 후손들은 철저하게 창세전 언약이라는 시나리오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묵시가 역사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역사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묵시에 의하여 존재하고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역사에 속한 우리 역시 그러합니다.
이걸 요한계시록에서는 천상과 지상 두 지평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천상에 모습과 지상에 모습을 동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상은 천상에 의하여 다스려지고 있다고 말해 줍니다.
이걸 오늘 본문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시다.
하늘에 보좌가 있습니다.
그 보좌에 하나님이 앉자 계십니다.
그런데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 손에 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이 6장에서 공개가 됩니다.
6장에서 보니까 이 세상 역사를 다스려가는 책입니다.
만물이 이 책에 의하여 움직여집니다.
그러니까 어린 양이 취한 그 책은 만물을 다스리는 언약의 책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는 언약의 책을 누구에게 줍니까?
어린 양에게 줍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에게 이 세상을 위임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이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비지께서 자기에게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을 봅시다.
요 17장 2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 5:25-2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잘 보세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아들이 이 권세를 가지고 만물을 다스립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아들에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음성이 아니고 아들에 음성입니다.
아들에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난다고 합니다.
이게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아버지를 믿는 것이 아니고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아들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걸 시편 2편에서는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고 영을 내리셨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않는 자는 진노하시겠다고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이 말은 곧 이 세상은 예수님의 손에 의하여 다스려져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게 아버지가 세상에 주신 법칙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세상을 심판하는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을 봅시다.
히 1:1-3=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구약에는 여러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 하셨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구약에서는 각양의 일들을 통해서 예표적으로 계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아들로 말씀 하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구약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 하신 것들은 모두가 그 아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구약에 선지자들로 하여금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 하신 것을 직접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아들은 곧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일컬어 기묘자요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9장을 봅시다.
사 9:1-7=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흑암에 있는 자들에게 큰 빛이 비추었다고 합니다.
큰 빛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에게 오셨습니까?
자기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들이 어떤 모습에 처해 있습니까?
무거운 멍에를 매고 채찍에 맞고 있습니다.
압제자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오셔서 그 압제자를 징치하시고 자기백성들이 지고 있는 짐들을 다 내려놓게 하시고 자유와 평강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 일을 누가 해야 하는 일인가 하면 아버지께서 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이 일을 하라고 위임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고 말씀이신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곧 아버지의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일컬어 기묘자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영존하는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님이 아버지라는 말이 아니고 아버지의 일을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마지막 날에 다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다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아버지 손에 있는 책을 어린 양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린 양의 손에 의하여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린 양이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하나씩 떼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제가 하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6장에서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봉인 된 것을 하나씩 해제 할 때마다 이 역사 속에서는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일인지는 6장을 강해 할 때 살펴보기로 합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사도 요한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실까요?
이는 사도 요한이 지금 당하는 아픔도 다 예수님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심입니다.
교회들이 당하는 아픔은 모두가 허락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고난이 닥치고 핍박을 당하더라도 놀라지 말라는 겁니다.
이건 마치 구약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갔을 때 선지자들을 통해서 너희가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려 주신 것과 같습니다.
예레미야 24장을 봅시다.
렘 24:1-10=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같이 버리되 9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흩어서 그들로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로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치욕을 당케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10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로 내가 그들과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두 광주리의 무화과를 보여 주십니다.
한 광주리는 먹기 좋은 무화과가 담겨져 있고,
다른 한 광주리에는 먹을 수 없는 무화과가 담겨져 있습니다.
먹기 좋은 무화과가 담긴 광주리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을 말하고,
악하고 먹을 수 없는 무화과가 담긴 광주리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레미야는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이 정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지금 예루살렘이 썩을 대로 썩어서 그걸 정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이 시대로 말하면 교회가 썩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썩은 교회를 환란에 던져서 정금으로 제련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쪽 유다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신앙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들이 70년 종살이를 하고 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신앙의 부흥을 이루게 됩니다.
결국 환란 속에 던져서 신앙을 회복케 하신 것입니다.
지금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이 당하는 환란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먼저 알려 주셨어요.
그러자 예레미야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고 들은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던 것입니다.
지금 사도 요한도 그러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 교회가 환란에 던져져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썩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신앙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건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라오디게아를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말 교회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하여서 토하여 내겠다고 하십니다.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신앙이 전부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 가운데 던져서 제련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이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구약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환란 당할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기가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 1:2절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19-20=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하나님은 반드시 하실 일을 그 종들에게 먼저 보여주십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은 자기의 비밀을 그 종들에게 먼저 보이시고 일을 하신다고 합니다.
그럼 그 종들은 자기가 본 것을 증거케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장을 봅시다.
렘 1:11-1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장차 하실 일을 보여 주십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신 구약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는 것은 장차 이 땅에 임할 환란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 가지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먼저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주십니다.
살구나무는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얼리는 나무입니다.
이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봄에 전령의 나무를 상징합니다.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고 봄은 부활의 계절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살구나무를 부활의 나무로도 불리워졌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바로 살구나무입니다.
죽은 지팡이에 싹이 난 것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법궤 속에 만나와 삮난 지팡이와 두 돌 판을 보관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삼직(三職)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두 돌 판은 두 언약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언약에 의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걸 돌 판의 깨어짐을 통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첫 돌 판을 받았는데 그것이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깨어졌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의 죄 값을 지고 죽으신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법궤 속에 담긴 두 돌 판은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암묵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은 예수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처럼 부활을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항아리에 담긴 만나는 십자가에 죽었던 그 예수가 살아서 자기 백성들이 먹을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신 살구나무 가지의 의미는 부활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부활인가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하였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북방의 끓는 가마는 바벨론을 말합니다.
바벨론이 끓는 가마처럼 이스라엘에게 임할 것을 말씀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두 가지 환상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그 그림대로 이스라엘을 다루셨습니다.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게 하셨고,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 사실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으로 순순히 포로로 잡혀 가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 선동을 하여서 왕을 위시하여 모든 백성들은 재수 없는 말을 한다는 핑계로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고 핍박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신약의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도 그 일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엄청난 고난을 당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거짓 선지자들은 복 받고 잘 사는 것을 신앙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난이 없이 만사형통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말이 증거되는 교회는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교인들은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는 그 소리를 좋게 여기고 사도 요한처럼 고난을 이야기하는 종들은 이단으로 여깁니다.
어느 시대이고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참 종들은 이단으로 정죄당하고 고난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 맥(脈)은 교회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예수 믿고 복 받고 잘 산다고 하면 좋아라 하고, 성도의 운명은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버려지는 것이라고 하면 화를 냅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얘들아! 너희가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합니다.
주 예수가 이기셨다고 합니다.
그 예수가 우리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니 안심하라고 합니다.
이게 요한계시록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 비밀을 사도 요한에게 신약의 모든 성도를 대표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시고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편배달부가 되어서 하나님의 편지를 지금 우리에게 전달해 준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전해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운행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전해준 편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린 양 되신 그 아들에게 만물을 다스릴 책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니까 그 책은 안팎으로 써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일곱 인으로 봉인이 되어 있습니다.
봉인이 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나 이 책은 볼 수가 없고 또한 이 책의 내용을 알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봉인은 누군가가 해제 시켜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이 누가 그 책의 봉인을 뗄 수 있느냐고 웁니다.
그러자 장로 중에 하나가 알려 줍니다.
그 책의 봉인을 뗄 자는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고 합니다.
그가 누구인고 하니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이게 엄청 중요합니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누가 유언을 하면 일곱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봉인을 하였습니다.
그 봉인 된 유언은 유언하신 분이 죽어야 효력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다고 유언을 하였으면 그 유언은 그 아버지가 죽어야지만 효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봉인 된 것을 뗀다고 합니다.
이는 곧 그 책의 내용이 어린 양의 죽음으로서 비로서 효력이 발생이 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9장을 봅시다.
히 9:9-17=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늘에 식양을 따라서 이 땅에 성막을 주셨습니다.
성막에서는 날마다 죄사함을 받는 짐승의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장차 흠 없는 한 분이 오셔서 자기 몸으로 드려지는 제사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사실을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죽어야 너희 죄가 사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창세전에 아버지와 언약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세전에 아버지와 하신 언약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제 그 언약이 발효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언약이 자기 백성들에게 적용되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의 구원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오른 손에 놓은 책의 봉인을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떼기에 합당하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그 봉인 된 책의 내용이 어린 양의 죽음으로 효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란 뜻입니다.
어떤 효력인가요?
자기 피로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이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어린 양의 죽음을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일찍 죽임을 당한 그 어린 양이 그 책의 봉인을 뗄 자격이 있다고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의 역사는 어린 양의 죽음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어린 양의 죽음은 옛 것으로의 죽음이고,
어린 양의 살아나심은 새 것으로서의 살아남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린 양이 죽으시고 부활 하신 신약의 모든 시대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은 신약의 모든 역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들입니다.
계시록의 내용이 뭔가요?
이제 이후로 나타날 장차 될 일입니다.
그 일이란? 이 땅의 교회들은 예수의 운명에 동참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죽음에 넘겨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처럼 부활하여 이긴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들이여 너희들이 잠시 잠간 고난을 당한다고 하여도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고난은 이긴 자로 드러나게 하는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을 봅시다.
계 7:9-17=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라고 합니다.
이들은 구원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큰 환란에서 나옵니다.
그 환란은 먼저 어린 양이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기셨습니다.
이겨서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제 이긴 자로서 자기 백성들을 간섭하십니다.
어떻게 간섭하는가 하면 환란 속에 던져서 이기도록 간섭을 하십니다.
어린 양처럼 말입니다.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서 이기셔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자신이 걸어 온 그 코스로 인도하십니다.
지금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그 코스에 접어든 것입니다.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이 이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래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역사를 주관하는 책을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으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창세전에 유언(언약)하신 내용들이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어린 양이 떼기에 합당하다는 말은 어린 양이 이 세상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말입니다.
역사는 주인공 중심으로 움직여집니다.
세상의 역사를 일컬어 히스토리(History)라고 합니다.
이는 “그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그가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시고 예수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역사를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어린 양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떼는 것으로 말해주는 겁니다.
봉인이 되었다는 것은 정한 때 까지는 비밀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구약의 다니엘이 보았습니다.
다니엘 12장을 봅시다.
단 12:1-10=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5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편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편 언덕에 섰더니 6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8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9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다니엘이 한 책을 봅니다.
그 책은 그 책에 기록이 된 자는 모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생명책이라 할 수 입니다.
그 책에 기록이 된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봉함하라고 합니다.
이에 한 사람이 그 봉함이 언제까지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강 물위에 선 흰 세마포를 입은 한 사람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나고 난 후 성도들의 권세가 다 깨어지고 난 후라고 합니다.
이는 성도들이 큰 환란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럼 성도들이 언제 환란을 당하게 됩니까?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일어나고 난 후 부터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사도들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를 부활케 하셔서 주와 그리스도를 삼으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러자 핍박이 따릅니다.
그럼 다니엘이 말한 봉한 책의 인봉이 떼어지는 때는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만유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고 난 후 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의 역사가 시작 되면서부터 인봉된 책이 떼어지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구약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초림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구약의 종말입니다.
그 종말의 소식이 예수님의 복음과 함께 증거 되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자 사도들은 구약은 끝이 났다고 외칩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합니다.
어떤 시대입니까?
이는 율법으로 의로워지려고 하던 옛 언약은 끝이 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새 언약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여기에 옛 언약에 속한 자들이 극력하게 반발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증거 되는 현장에는 필연적으로 환란이 동반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기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합니다.
이걸 요한계시록에서는 1260일과 마흔 두 달이라고 합니다.
즉 삼년 반입니다.
삼년 반은 신약의 전 역사를 말합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마흔 두 달과 1260일입니다.
왜? 동일한 기간을 달(月, 어둠)과 일(日, 빛)로 다르게 표기할까요?
이는 신약의 역사는 빛과 어둠이 함께 공존하는 역사가 된다는 뜻입니다.
복음이 증거되는 현장을 말 할 때는 영(靈, 하늘, 빛)을 상징하는 태양의 기원을 삼아 태양력(太陽曆)으로 1260일이라고 하고, 사단의 역사를 말 할 때는 육(肉, 땅, 어둠)을 상징하는 달의 기원으로 태음력(太陰曆)으로 마흔 두 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해(영)를 상징하는 천상의 모습과, 달(육)을 상징하는 지상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두 가지를 다 보았습니다.
성도의 구원과 환란을 동시에 보았습니다.
그 일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부터 일어나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를 죽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예수를 부활케 하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어린 양에게 전권을 위임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을 어린 양이 취하여서 그 인봉을 떼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보았던 그 봉함 된 책의 환상이 약 600년 후에 예수님이 이 세상 오심으로 해제(解制)가 되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어린 양이 그 책을 취하셔서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집행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 책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요한계시록은 구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살펴볼 책도 구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 요한계시록에서 안팎으로 써진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약을 배경으로 살펴봅시다.
에스겔을 보면 이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겔 2:8-10=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9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겔 3:1-11=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4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5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6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하시고 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두루마리 책을 하나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어린 양에게 책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에스겔을 인자라고 하는 것은 역사 속에 있는 묵시적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주신 책이 어떤 것인가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심판의 책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책을 에스겔에게 먹이십니다.
그리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합니다.
이는 그 책 안에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적용을 시키겠다는 뜻입니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집행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책의 내용이 뭐라고 했나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 책의 내용을 집행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환란입니다.
왜? 자기 백성들을 환란에 던집니까?
이는 언약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언약을 보면 축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저주란? 잘라내는 저주가 아니고 고난 받는 것을 말합니다.
쉬운 말로 자식이 말을 안들으니까 두들겨 패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두들겨 패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러나 두들겨 맞는 자식 입장에서는 저주스러운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모와 자식 관계로 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언약 관계입니다.
신명기 28장을 보세요.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 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걸 집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에게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을 이스라엘에게 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너희들은 언약대로 징치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간 것도 다 언약에 의한 것입니다.
언약을 집행한 결과입니다.
형벌의 기간이 바벨론 70년 종살이였습니다.
형벌은 반드시 정한 때가 있습니다.
형기를 마치면 만기 출소를 하게 됩니다.
그게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 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언약 백성에게 있어 죄란? 비언약적 사고로 사는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께서는 환란을 통해서 언약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걸 참 아들에게 하는 징계라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요한계시록에 그대로 반복하여서 나타납니다.
구약 시대 에스겔에게 하신 그 일들을 신약에서는 두 증인들에게 하십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먹었던 그 책을 두 증인들에게 먹이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0장을 봅시다.
계 10:7-11:3=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11: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두 증인에게 작은 책을 먹이십니다.
그리고 성전에 가서 다시 예언하라고 합니다.
성전이 이방인에게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증인들은 1260일 동안 다시 예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구약 이스라엘에게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을 증거하였듯이 사도 요한도 신약의 교회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담긴 작은 책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 이스라엘이나 신약의 교회가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먹이시고 증게케 하는 것은 모두가 자기 백성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하는 그 모든 말씀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 부으면서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간섭하고 때리고 달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책을 집행한다는 것은 자기 백성들에겐 소망이고 위로이고 사랑입니다.
하지만 자기 백성 아닌 자들에겐 저주이고 진노입니다.
성도의 저주와 이방의 저주는 다릅니다.
성도에게 부은 저주는 돌이키게 하는 징계이지만 이방인에게 부은 저주는 심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이방에게 붙여서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자기 백성들을 핍박한 세상은 왜? 내 새끼들을 괴롭혔느냐고 저주해 버리십니다.
이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자기 백성들의 구원이야기와 적그리스도 세력을 상징하는 세상 나라의 심판을 동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양이 취한 책 속에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야기와 적그리스도 세력의 심판이 동시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일을 지금 예수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집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이 사실을 알려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은 교회에게는 위로와 소망의 책이면서도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은 교회와 세상은 다릅니다.
교회에게는 징계의 차원에서 행하여지는 것이지만 세상은 심판의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나타날 때는 분명히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저주스러운 재앙적인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와 다르다고 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장래의 소망을 주는 것이므로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를 봅시다.
렘 29:10-11=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렘 32:36-42=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의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인하여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인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37 보라 내가 노와 분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내어 이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할 것이라 38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3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4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70년이 차면 권고한다고 하지요.
이는 형기가 마치면 놓아 주겠다는 뜻입니다.
이제 고토로 돌아오게 하여서 재앙을 당한 것같이 이제는 복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이러면 복을 주기 위하여 징계를 하신 것이 됩니다.
아픔을 통해서 사랑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이상하게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저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감사가 나옵니다.
이게 언약 백성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는 세상의 환란 가운데 두신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도 이 코스를 걷게 하시고 만유의 주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너희들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먼저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비록 세상에서 진 자처럼 고난을 당하지만 실상은 이긴 자들이라고 합니다.
봐라! 내가 세상으로부터 진 자였지만 실상은 이렇게 이긴 자로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들도 나와 같이 진 자이면서 이긴 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모습이 비록 사도요한과 같이 밧모 섬에서 죽을 지경에 처하여 있지만 실상은 천상에서 어린 양과 더불어 이긴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여 그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고 있다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게 요한계시록을 지금 우리에게 주신 목적입니다.
그 책의 내용이 비록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지만 실상은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무시무시하지만 자기 백성들은 그 어떤 환란 속에서도 반드시 구하고 구해 내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세요.
세상이 두 쪽이 난다고 하여도 우리의 구원은 취소되지도 포기가 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신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서 책을 취하셔서 집행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잠시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으로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만유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고 그 어떤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마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기도 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창세전에 우리의 이름을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을 해 주신 그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어린 양이 책을 취하여서 역사를 운행하고 있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지게 하여서 그 믿음으로 현실을 이겨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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