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지금처럼 큰 대형 서점이 없었고,
작은 동네 서점이 문방구를 겸하여 하는 정도였다.
그때는 '월부책'이 비교적 흔했었는데,
주로 수십 권에서 백 권에 이르는 '전집'이었다.
일하시는 부모님 대신 내가 동생 셋을 돌봤는데,
늘 동생들과 함께 하느라 나는 친구도 없었고,
당연히 친구네에 놀러 간다...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른 채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엄마가, 우리, 특히 나를 위해,
사주신 그 전집책들을 읽으며 보낸 것이었다.
그렇게 사주신 책들이 내 친구들이었다.
여유가 생겨 다시 다른 전집을 사주실 때까지
그 수십 권의 책들을 읽고 또 읽고, 어떤 책은 열 번도 더 읽었댔다.
그 월부책은 내가 십 대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도 계속 되었다.
그때 그 어려운 시절에, 그 전집책들이 없었다면
내 어린 시절, 소녀 시절이 어떠했을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나만큼이나 책을 좋아하던 여동생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우리 둘이서 방 이 편과 저 편에, 혹은 나란히 붙어 앉아서
독서삼매경에 빠졌던 것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곤 한다.
친구네 놀러 한 번 못 가고, 여름 방학에 물놀이는 생각조차 못했어도
우린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읽고픈 책 몇 권 옆에 놓고 있으면 더 부족한 게 없었으니까.
이번 달 초에,
친구 덕분에 그 가족들과 함께,
난생 처음이라 할 만큼 가까운 곳으로 '휴가'를 다녀오던 길에,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형 서점에 갔었다.
전부터 사고픈 책이 있었는데 그건 '천로역정'이었다.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종종 그 책 속의 내용을 언급하시면서,
성경 말씀과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대조하실 때면,
오래전 읽었던, 그래서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그 책을,
꼭 다시 사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휴가철이나 서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몇 층에 나뉘어 어디쯤에 그 책이 있노라고 나와 있었지만,
책은 검색에서처럼 제대로 꽂혀 있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였다.
이왕이면 원문이 다 들어있는, 그래서 두꺼운 책을 원했는데,
페이퍼지에 그나마도 축소판처럼 얇았다.
실망하고 돌아서는 내 눈에, 바로 이 '작은 아씨들'이 들어온 거였다.
그것도 1,2권으로 모두 합하면 850 페이지에 이르는 양이었다.
어렸을 때, 열 번 이상 읽은 책 가운데 하나였다.
책 속에 나오는 네 자매들의 이름과 성격과 하던 말들을
여동생이랑 둘이서 얼마나 자주 주절댔는지 모른다. ㅎㅎ
마치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웃 소녀들처럼~~
이렇게 긴 세월이 지나서 다시 만나니,
그 반가움이야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그 시절, 그 소녀적일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져와서 바로 옆에 두고 난 아직 그 책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겉표지만 몇 번 쓰다듬었을 정도다.
마치 어떤 의식이라도 치르듯이 난 '때'를 준비하고 있다.
주변에 놓아둔 내가 읽던 책들을 얼른 다 읽어치우고서,
그것들을 다 정리한 뒤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읽을 생각이다.
초등학교 동창생을 수십 년만에 만나는 그런 긴장과 기대감이라고나 할지...
그렇지만 그 책을 읽기 위해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그건 또한 읽던 책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그저 곁에 있을 뿐인데도 아무것도 부럽지가 않고 여유롭기만 하다.
키다리 아저씨, 제인 에어, 빨강머리 앤...처럼,
작은 아씨들도 앞으로 내가 살면서 한두 해에 한 번씩은
두고 두고 읽을 나의 영원한 스테디 셀러일 거다.
각자 개성 충만한 그 네 자매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흐뭇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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